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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한일 관계, 그리고 민족주의적 내부 결속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7. 18.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요즘 한일 관계의 파국은, 17년 전의 북일 관계의 파국을 연상시킵니다. 그 때 고이즈미 준이티로 그 당시 일본 수상이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전까지 양국 외교부들은 아주 오랫동안 꾸준히 수교 준비를 해왔습니다. 북조선으로서는 식민화에 대한 보상금 등 고속경제 개발의 시작을 위한 "스타트 케피탈"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서 매우 적극적 자세로 임했고, 일본의 자본들이 그 돈의 일부로 그들에게 토건공사 등이 발주되고 고속 개발 중의 북한이 일본 기술 등을 사주는 새로운 '고객'이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양쪽으로서는 보기 드문 사업의 '기회'가 보였습니다. 이런 들뜬 분위기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매우 이례적인 '선의의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냉전기 한 때의 일본인 납치에 대해 공개 사과한 것이었습니다. 고이즈미가 만약 그 때 식민화에 대한 사과로 응답해주고 북일 수교 코스를 그대로 밟았다면 아마도 동북아의 역사는 지금과 좀 다른 방향으로 갔을 겁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가지 않았습니다. 고이즈미의 '맞사과'는 없었습니다. 납치 파해자(의 일부)가 일본으로 돌아왔지만, 식민지 시기 강제 징병과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그 어떤 보상도 이루어진 바 없었습니다. 납치에 대한 사과는 식민지 시대 과거에 대한 참회가 아닌, 엄청난 민족주의적 광란의 폭풍을 일본 사회에서 야기시킨 것입니다.

 

고이즈미 정부는, 여태까지 대북 관계 정상화에 들여온 비용과 앞으로의 협력에 따를 이윤 등을 합리적으로 계산해서 그 민족주의적 광풍을 잠재우려 한 것은 아니고, 그 반대로 거의 바로 그 광풍에 편승했습니다. 식민주의에 대한 침회와 보상 문제는 아예 의제에서 빠졌다 싶이 하고 앞으로의 협력과 이득은 매우 주변적 고려로 밀려났습니다. 북한은 "우리 민족의 구성원에 감히 손을 댄 적"이 되고, 2002년 이후의 대북 관계의 주된 코드로 '납치 문제'만이 일관됐습니다. 비합리성? , "자본주의적" 사고의 차원에서는 이게 다 비합리성의 극치에 가까울 것입니다. 일본이 취할 수 있는 커다란 이득을 스스로 내팽개친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자본주의의 세계에서만 사는 건 아닙니다. 이 세계는 동시에 '국민 국가'들의 세계죠. 국민 국가의 통치권을 독점한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이렇게 해서 얻은 정치적 이득이라는 무형의 재화는, 일본 기업들이 잃은 사업 기회라는 유형의 재화보다 훨씬 컸습니다. 나름 주권을 극대화시킬 줄 아는 탈식민 국가로 큰 과거의 식민지 북조선은, 과거의 식민모국 일본의 주류적 우파 민족주의자들에게 내부 결속을 보장하는 '외부의 적'이 된 것입니다.

 

일본의 지배자들만이 이렇게 사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실은, 1930년대로 돌아가는 듯한 이 세계에서는 정치적인 '민족주의적인 내부 결합'을 위한 경제적 실리의 포기는 꽤나 흔하지요. 보통은 이게 그 동시에 군수 기업들의 이해관계와도 긴밀히 연결돼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대이란 관계를 보시지요. 일본의 민수 기업(특히 석유 회사, 엔지니링 회사 등) 입장에서는 이란을 따돌리고 배제시키는 트럼프의 정책은 '난센스' 그 자체입니다. 이란 핵 딜을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여 대이란 경협에 뛰어들면 득될 게 훨씬 많죠.

 

한데 이란-미국 사이의 전쟁설이 나돌 때마다 록히드 마틴을 비록한 군수 기업들의 주가는 막 오릅니다. 무엇보다는, 샤흐(절대 왕권) 시대에 미국의 속국이었다가 1979년 혁명 이후에 주권을 "감히" 되찾아 나름의 주체적인 지정학적인 행위자가 된 이란에 대한 미국의 보수적, 극우적 민족주의자들에게 대이란 강경책의 호소력이 엄청납니다. 저들이 1979년의 굴욕에 대한 '설욕'을 지금도 원하는 것이죠.

 

2000년 초반에 대북 외교와 경협의 가능성들을 우파적인 민족주의적 '민족 대결합'을 위해 희생시킨 고이즈미의 전례를, 지금 아베가 열심히 따르는 것입니다. 한국과의 관계의 장기적 미래를, 그가 우파적인 민족주의의 '대동단결'을 위해 희생시킵니다. 결국 그들이 '설욕'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이 적어도 일부 부분에 있어서는 일본과 비교적 평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근대 국민 국가가 됐다는 사실입니다.

 

옛 식민지가 '감히' 그렇게 됐다는 건, 구 식민모국의 우파 민족주의자들은 아무래도 '용서'를 못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궁극적으로 엄청난 오판을 한 것입니다. 경제 보복은 장기적으로 동북아 지역에서의 일본의 '대륙''반도'로부터의 고립을 심화시켜 일본의 군사주의적 '열강화'를 유일한 옵션으로 만들 셈입니다. 막다른 골목이며, 결코 일본 시민들로서는 행복하지 못할 길, 지역 전체로서 절대 바람직하지 않는 길입니다....

 

(기사 등록 2019.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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