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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밀레니얼 좌파가 어떻게 조직될 것인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8. 8.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애당초에 독일 사민당이 있었습니다. 1875년에 조직된 독일 사민당은 전통적으로 유럽에서 가장 가시성이 높았으며 다른 나라 사민당들에게는 조직의 모델을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델은 굳이 사민당만의 독자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독일의 통일 이후에 각종의 사민주의적 그룹들을 통일하여 출발한 사민당은, 어디까지나 바로 독일 국가를 '벤치마킹'했습니다. 전당대회는 국회의 격이었으며, 당의장과 부의장들, 그리고 각 부문 (재정 등) 책임자 등은 정부 격이었습니다.

 

당비는 당원이라는 당의 '국민'들이 내는 일종의 '세금'이었으며, 당원들을 규합한 지역당들은 국가의 행정구역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국가에 관을 대변하는 신문이 있었다면 당에도 기관지가 있었습니다. 실은 불안했던 1920년대에는 당은 아예 자위군, 즉 일종의 (편법적인) 당군까지 거느렸습니다. 그러나 사민당은 - 예컨대 각종의 극우들과 달리 - 군사력을 통한 국가 장악을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당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의회를 평화적으로 장악한 뒤에는 당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정규직 공장 노동자들에게 '좋은 세상'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 자본가들에게 세금을 매겨서 이미 비스마르크가 그 시초를 놓은 복지제도를 보다 완벽하게 만들고, 노조들의 경영참여 등을 통해서 정규직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노조 간부층을 "준 국가 관료"로 그 위상을 격상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됐습니다. 전후 경제 붐이 아직 한참이었던 1966년부터 당은 입각돼 있었으며 1969년부터 그 당수인 빌리 브란드트가 국무총리가 됐습니다. 총자본도 호경기에 총내수력의 강화를 원하는 만큼 복지제도의 완성을 비교적 쉽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노조 간부들의 경영 참여도 확보됐습니다. 그런데 복지제도의 완성 작업이 한참이었을 때에 독일 젊은이들 중에서는 구좌파인 사민당보다 어쩌면 각종의 신좌파 조직들은 훨씬 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국가의 경영을 맡은 사민당의 당 관료들도 경영참여를 하게 된 노조관료들도, 많은 젊은이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노동자 대중의 대변자'라기보다는 차라리 지배 계층의 한 별동대이었습니다. 그들의 당 내지 노조 운영 방식도 국가 조직 만큼이나 민주성을 결여했습니다. 결국 '평화적인 국가 장악'의 실험을 대단히 아쉽게 끝났습니다. 호경기가 끝난 뒤에는 총자본은 '내수력 강화' 대신에 저임금 노동력의 제공을 요구했으며 이미 국가 경영자 정신을 그대로 가진 당 관료들은 그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2003~5년에 사민당 정부는 "하르츠 법안"을 채택하여 복지국가를 신자유주의적 상황에 맞추어서 "하향조절"시키고 독일을 많은 면에서 한국과도 비교할 수 있는 저임금에 기초한 수출국으로 재디자인해놓았습니다. 사실 그 뒤로는 사민당을 '좌파 정당'으로 논하기 자체가 아마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좌파는 피억압자의 이해관계를 위주로 해서 사회를 개혁하는 세력인데, 2000년대의 사민당은 과거 사회개혁의 결과들을 취소시키는 데에 바빴습니다.

 

본래 볼셰비키들은 독일 사민당을 모방해서 만들어진 러시아 사민당의 급진파에 불과했습니다. 독일사민당보다 지하 작업 등을 더 많이 중시한 것은 차이었지만, 구조 자체는 동일했습니다. 당은 중앙위라는 유사 '내각'을 중심으로 해서 만들어진 작은 '국가'이었으며, '국가'에서는 '관료' 격인 상근 간부들은 '국민' 격인 당원들의 '세금' (당비)으로 먹고 살면서 조직, 영도 사업 ('국가적 통치권')을 맡았습니다.

 

독일사민당과 볼셰비키들의 길이 결정적으로 갈라진 것은 1914~8년의 제1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독일사민당은 전쟁을 지지해주는 대가로 차후의 의회장악, 평화적 국가권력 장악의 가능성을 담보 받으려 했다면, 반전과 혁명적 패배주의 입장에 선 볼세비키들은 자국의 패배 이후의 당에 의한 국가권력의 혁명적 장악의 가능성을 내다봤습니다. 목표 - 즉 국가 권력의 장악 - 는 하나이었지만, 기존 제도의 장악이냐 새로운 제도의 창조냐의 차이였습니다. 결국 볼세비키들도 기적같이 독일 사민당 못지않게 그 목표를 나름 달성했습니다.

 

서독에서 복지국가가 그 황금기를 구가했던 1970년대나 1980년대 초반에는 소련이나 동독의 대공장 숙련공들은 그 조상들이 일찍 맛보지 못했던 '좋은 삶'을 어느 정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개인 임금은 서방보다 낮아도 사회 임금 (각종의 공공 문화 시설, 여유 시간에의 문화 활동 등)은 더 높았고 직장 안정성도 서방 이상이었습니다. , 서방의 젊은이들도 권위주의를 반대했지만, 동독이나 소련의 권위주의는 사민당이나 서독 노조보다 훨씬 더 공고했습니다. 소련이나 동독의 복지국가는 동시에 경찰국가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호경기가 끝난 뒤에는 사민당의 복지 국가 못지않게 볼셰비키들의 복지국가도 치명적 위기를 맞았습니다. 제조업의 수익성이 떨어진 1980년대의 미국에서는 그나마 수익성이 확실했던 군수공업으로 돈이 막 몰리고, 이렇게 해서 심해진 무기 경쟁에서 미국보다 재력이 약했던 소련은 결국 사실상의 파산을 맞은 것이었습니다. 비교적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느라 서독 등에 이미 엄청난 채무를 지고 있었던 동독은, 서방 눈치 보느라고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의 파괴로 이어진 데모들을 감히 강경 진압하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서독의 사민당 못지않게 구 소련의 폐허에서도 구 공산당 관료들은 신자유주의를 도입시켜주는 대리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1914~18년에 사민주의자와 볼셰비키들의 길은 갈라졌지만, 국가의 관리인이 된 그 계승자들은 1990년대 이후에 신자유주의 도입이라는 공동분모로 '재통일'을 본 셈입니다. 사민당의 총리 출신인 게르하르드 슈뢰더가 옛 소련 공산당의 관료들이 운영하는 '가스프롬'의 로비스트가 된 것은, 이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968년의 신좌파들은 구좌파의 권위주의를 가지고 '저들이 좌파로서 이미 죽었다'고 선언하곤 했지만, 좌파로서의 사민당들이나 구 동구권 공산당들의 정치적 사망이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은 1990년대 이후이었습니다. 그런데 끝은 바로 새시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사민당들이나 옛날식 공산당들은 이미 좌파로서 기능하지 못하지만, 사실 날로 격차가 벌어지는 신자유주의 사회야말로 좌파를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좌파가 제 기능을 못하면 그 빈 자리를 채울 것은 '국민의 전선'이나 트럼프와 같은 극우 궤변가, 선동가들이죠.

 

문제는 '어떤' 기반을 가지고 '어떻게' 조직된 좌파가 필요하느냐입니다. 사민당이나 볼셰비키들은 (주로 남성인) 대공장 정규직 숙련공 집단을 그 기반으로 삼았지만, 사실 오늘날 산업구조에서 (남성) 대공장 정규직 숙련공은 경제적인 이익의 분배를 가지고 기업주와 갈등할 수야 있어도 급진화되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여러 피억압 직업 집단들 중에서는 그나마 좀 나은 입장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보다 먹이사슬 구조에서 더 나은 입장에 설 수 있는 피고용자들을 찾자면 공무원이나 고등 전문가 (교수, 대기업 고급 기술자 등) 정도일 것입니다. 급진화가 상대적으로 더 쉬운 것은 신자유주의로 상대적으로 더 많은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 여성, 중소기업 노동자, 서비스업 종사자, 불안 노동자 등입니다.

 

문제는, 과연 편의점 알바나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국가처럼 조직된 당의 '국민' (당원)이 되어 '세금' (당비)을 내고 '국회의원 선거' (전당대회 내지 당 간부 선거)에 참여할 여력이라도 있는가 라는 부분입니다. 대공장 시대가 낳은 '유사 국가' 형태의 정당은, 과연 서비스업, 불안 노동의 시대에도 그대로 유효할는지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쉬운 문제는 절대 아닙니다. SNS온라인 그룹 중심으로 운영되고 유사 국가적, 서열적 조직이 아닌 네트워크로 조직되는 단체에는 유연성 같은 장점도 있는가 하면 사실상 비민주성의 가능성도 적지 않게 내재돼 있습니다. 전통적 정당에는 당대회 ('국회')를 통한 당원들에 의한 당지도부 견제의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네트워크 조직에서는 관리자의 교체는 아예 조직의 와해로 이어질 우려도 큽니다. , 관료화나 권위주의 위험성이 있다 해도, 전통적 정당 형태의 조직도 그 플러스가 만만치 않습니다.

 

한데 이 조직은 만약 불안 노동자들을 안고 가자 하면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중심으로 연결돼야 할 셈이고 이미 신뢰를 잃은 의회에서의 투쟁 (사민당의 길)이나 현실성이 없는 국가의 무력 장악 (볼셰비키의 길)보다는 결국 장외 행동, 즉 불안 노동자 대중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군중, 가두 행동 같은 일에 상당한 비중을 두어야 할 셈입니다. 어쩌면 당 세포의 정기적인 모임보다 비정규직 투쟁이 있는 곳에 가서 연대하고 같이 싸우는 일이 더 잦아야 할 듯합니다.

 

결국 사민당이나 공산당과 같은 '유사 국가'보다 신자유주의의 폐허에서 서로의 어려움을 도와주고 연대해주고 나아가서는 공동행동을 계획하고 사회적 사안마다 피억압자의 목소리를 내는, 더 수평적이며 더 유연한 조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연히 사민당이나 공산당의 영욕의 역사를 배워야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조건하에서 또 다른 새로운 역사도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기사 등록 20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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