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수단 군부의 반혁명과 학살을 규탄한다
지금 수단에서는 수단판 5.18이 벌어지고 있다. 수단 군부는 즉각적인 민주화와 민정이양을 요구하며 광장 점거 시위중이던 평화적 시위대에 발포해서 벌써 100여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나일강에서 발에 돌을 매단채 발견된 시신들이 나오고 있다. 군대뿐 아니라 친정부 민병대가 곳곳에서 강간 등 폭력을 저지르고 있다. 혁명에 앞장섰던 여성들에 대한 보복이기도 하다.
수단 민중의 거대한 저항으로 30년 독재자 알 바시르가 물러나자, 그 공백을 차지하고 나선 수단판 신군부와 전두환같은 자들이 ‘과도군사위원회’를 꾸려서 시간을 끌다가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서 독재자를 물리친 민중들이 춤추고 노래하던 광장이 피로 물들고 있다.
과도군사위는 9개월 후에 대선을 실시한다고 하지만, 지금처럼 학살을 저지르다가 결국 군부독재로 나가려 할 것이다. 대선을 하더라도, 전두환이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이 된 일이 반복될 것이다. 군부는 민주화를 통해서 자신들이 저지른 다르푸르 학살 등의 범죄가 다시 밝혀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지금 이런 군부 반혁명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은 이집트 독재자 알 시시, 그리고 중동에서 반동세력의 핵심적 거점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왕정이라고 한다. 이들 모두는 8년만에 죽지않고 다시 부활한 ‘아랍의 봄’ 확산 가능성을 싹을 잘라버리고 싶을 것이다.
지금 수단 민중혁명의 연대체인 ‘자유와 변화를 위한 연합’은 노동자 파업과 시민불복종을 호소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이런 수단 민중의 투쟁을 지지하고 반혁명과 학살을 규탄하는 연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연대가 나타나면 좋겠다. 그들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였듯이 그 역도 될 수 있기에
광장에서 평화 시위 중이던 수단 민중
●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나타낸 우려와 불길함
얼마전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불길하고 우울하다. 중도좌우파가 몰락, 후퇴하면서 인종주의적 극우익들이 주요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프랑스에서 르펜의 국민연합, 이탈리아에서 마테오 살비니의 동맹, 영국에서 나이절 패라지의 브렉시트당이 그들이다.
독일의 ‘독일을위한대안’(Afd)과 스페인의 ‘복스’(Vox)도 꽤 표를 얻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인종주의 정당들이 다 합쳐서 40%를 얻었다고 하고, 영국에서 브렉시트당은 보수당과 노동당을 합친 것보다 많은 지지를 얻었다고 한다.
반면 급진좌파들은 선거 결과에서 별로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그리스 재무장관 출신의 괴짜 맑스주의자 바루파키스가 만든 신좌파정당인 Diem25이 새로 등장한 정도. 코빈의 노동당이 브렉시트에 대한 어정쩡한 입장을 유지한 것이 더욱 아쉽게 다가온다. 그나마 기후변화의 위기가 그야말로 비상사태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에서 녹색당들이 급성장한 것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멸종 저항’ 운동의 등장과 맞물려 있다.
극우익과 신나치들의 성장에서 우려스러운 것은 그들이 기층대중의 반체제적, 반엘리트적 정서를 잘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낳은 불평등, 긴축, 빈곤에 대한 반감과 분노를 낚아채서 반세계화로, 즉 반동적 국가주의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거대언론, 대기업, 정치엘리트들이 합심해서 추진해온 세계화나 유럽연합이 우리에게 가져온 게 뭐냐’는 타당한 물음에서, ‘이를 통해서 서구문명과 민족국가를 파괴하려는 세계화 음모의 뒤에 좌파와 무슬림들이 있다’는 반동적 비약으로 나간다.
동시에 ‘무슬림을 반대하는게 아니라 그들이 저지르는 강간과 아동학대를 막자는 것이다’, ‘이슬람 비판은 종교와 표현의 자유다’, ‘인종주의가 아니라 너무 많은 이주가 문제라는 것이다’라는 기만적이고 교묘한 주장들을 섞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대개 여성혐오적 반페미니즘 백래시와 연결되고 있다. 스페인에서 ‘복스’는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돼서 괴롭힘을 당하고 인생을 망친 억울한 사람들을 대변한다면서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성폭력 피해여성이 침묵하거나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는 것을 ‘동의’의 증거로 제시하면서. 오랫동안 가해자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금이나마 반대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지금, 그것이 ‘너무 과도하다’는 목소리가 결집하는 것이다.
물론 유럽의회는 어차피 껍데기고 실권은 독일제국주의와 유럽중앙은행에 있다고 자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출된 의원들이 아니라 선출되지 않은 대기업주, 고위관료, 언론사주들에게 진짜 권력이 있는 것은 국민국가의 의회들도 마찬가지다. 선거 결과라는 온도계가 지금 그 사회와 공동체의 어떤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것인지 깊이 고민하고 돌파구를 모색할 시점인 거 같다.
● 미국은 이란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중단하라
요즘 이란에 대한 군사적 압박과 위협이 심각해지면서 미국의 이란 침공과 전쟁이 임박한 게 아니냐는 말이 많아지고 있다. 이미 작년에 트럼프는 이란-미국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고 최근 전략폭격기, 항공모함 전단 등을 이란 부근에 배치했다. 강경 네오콘 존 볼턴은 ‘12만 미군병력을 이란에 보내겠다’고 말해서 위기의식을 부채질했다.
더구나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미국을 향해 이란에 대한 폭격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우디 유조선과 선박이 의문의 공격을 당했고, 이것이 이란의 소행이라고 하면서 이란과 전쟁의 빌미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북한이 연달아 미사일 시험을 했다. 핵과 미사일 시험을 모두 중단한지 1년이 넘게 지났지만 대북제재는 여전하고, 한미 군사훈련만 다시 시작되는 상황이 북한을 이런 행동으로 나서게 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나서야 미국은 남한의 대북 식량지원을 허락한다고 생색내고 있다. 웃긴 것은 미국의 대북제재야말로 북한 식량난의 원인중 하나란 점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도 미국의 허락없이 풀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남북대화에도 열의를 가질 이유가 없어 보인다.
정리하면 이렇다. 오바마와 합의하며 핵개발을 포기한 이란은 지금 트럼프의 전쟁 위협 앞에 놓였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대화에 나선 시점은, 북한이 미국까지 날아갈 미사일에 핵탄두를 실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다음이었다. 이제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중단하자 트럼프는 다시 약속을 어기고 아무 것도 양보않으면서, 베네수엘라에서 정권교체 쿠데타를 후원하며 군사적 개입을 시도했다.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미국의 적대 대상이 된 어떤 나라든 미국의 약속을 믿거나 핵무기를 포기하면 ‘*된다’는 말이 된다. 핵무기가 없는 나라는 결국 미국의 대화 상대가 아니라 침략 대상이 됐다. 미국과 트럼프는 상대방이 총과 칼로 무장해 있을 때만이 뭔가를 들으려 하기 때문이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은 완전히 틀렸고 위험한 말이지만, 미국과 동맹세력이 그 말을 신봉하면서 현실로 만들고 있다.
● 스리랑카 부활절 테러를 돌아보며
4월 21일 터져나왔던 스리랑카 부활절 테러는 당시에도 너무 큰 충격이었지만, 지금까지도 그 여파가 남아있다. 사망자만 250여명에 500여명이 중경상을 입은 파괴적 테러였고, 이것은 지난 십여년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다. 이 정도의 테러가 제1세계에서 발생했다면 언론과 여론의 충격과 애도도 이렇게 금세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도 참담하고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제도 스리랑카에서는 무장한 기독교도들이 반무슬림 폭동을 일으켜 사망자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이런 비극의 뿌리는 스리랑카가 서구 강대국들의 식민지배를 받던 시절에 뿌려진 소수파 타밀족과 다수파 싱할라족의 ‘분리 지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당시 영국제국주의는 타밀족을 앞세워 싱할라족을 억압했고, 40년대말에 독립한 이후에는 그 억압구조가 반대로 역전된 채 유지됐다.
압도적으로 불교도인 싱할라족에 의해 억압받는 소수민족이 된 힌두교 타밀족은 무장투쟁으로 맞섰고 그 내전은 30년 가까이 수십만 명의 희생자와 100만 명의 난민까지 만들어냈다. 이 속에서 소수종교인 무슬림들도 총알받이로 동원되거나, 학살, 강제이주 등을 겪어야 했다.
의문인 것은 왜 이번 테러가 불교도가 아닌 기독교도를 겨냥했냐는 것이다. 그것은 제국주의 식민지배 시절에 기독교가 억압자의 종교였던 것에서 비롯했던 것 같다. 지금은 피억압자의 소수종교가 됐지만, 이데올로기적 유산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더구나 오늘날 중동에서 제국주의는 이슬람포비아에 기반한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침략과 학살을 자행하고 있고, 그것이 기독교 근본주의와 연결돼 있다. 시리아에서 축출당한 이슬람국가(IS)는 ‘복수가 성공했다’며 이번 테러를 기뻐했다.
미국과 국제연합군이 IS 제거 군사작전을 시작할 때부터 ‘이슬람극단주의는 국가로서는 사라져도 세력으로서 더욱 확산될 것’이라던 불길한 예측은 현실이 됐다. 반혁명의 일부이며 대다수 무슬림도 억압한 이슬람국가를 핵심적인 반혁명 세력인 제국주의가 이슬람포비아를 부추기며 공격한 것이 문제다.
불교도와 싱할라족은 과거에 억압받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일부가 억압자가 됐다. 얼마전 뉴질랜드에서는 무슬림들이 테러의 희생자가 됐지만 이번에 스리랑카에서는 일부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이 가해자가 됐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복잡한 모순의 교차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가해와 피해가 엇갈리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 수많은 무슬림들이 함께 슬퍼하며 이번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지만, 인종주의적 우파들은 이것을 왜곡하고 악용해 또 이슬람포비아를 부추기려 할 것이다. 그래서 평범한 죄없는 대다수 무슬림들도 이번 테러의 피해자들이다.
스리랑카 정부는 통행금지, SNS 차단, 베일 금지 등 억압 강화를 대책으로 내놓고 있지만, 소수종교들이 서로를 적대하며 막다른 절벽으로 치닿는 속에서 불교-싱할라 연합에 기반한 극우민족주의적 지배층과 권력구조는 더 공고해질 것이다.
(기사 등록 20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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