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균
1.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보궐 선거 날짜인 2019년 4월 3일이 곧 다가온다.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세상을 떠나고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리고 이는 현 정권과 집권여당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기에 자유한국당이든 정의당이든 민중당이든 모두 당선 후 1년의 임기만 남아 있는 이 보궐 선거에 총력 집중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보궐 선거 구역인 통영시고성군 지역은 KTX 정차역 논란이든, 자유한국당 후보의 뇌물 논란이든 창원성산만큼 부각되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2. 마지막 언론 여론조사에선 민주당 권민호와 단일화를 한 정의당 여영국 후보가 자유한국당 강기윤 후보를 큰 차이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궐선거의 특성상 좀 더 두고 봐야 하고 특히 이후 자유한국당 쪽에서 총력으로 보수층 재겹질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심할 수는 없지만, 단일화란 단서가 없던 선거 도입 시기에 비하면 여영국이 다소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유한국당 측은 이 승세를 역전하기 위해 온갖 수를 썼다. 경기장 측의 제지에도 경남FC 홈경기에 난입하여 선거 유세를 하다 경남FC 구단의 이후 경기나 운영까지도 차질을 빗게 만들었고, 오세훈은 창원에 내려가서 "노회찬은 돈 받아 놓고 자살했다."는 폭언을 쏟아 놓기까지 했다.
굳이 자유한국당이 창원에서 했던 행동들이 아니더라도, 5.18 망언이나 문재인은 좌파 사회주의라고 색깔론을 내미는 등 최근의 행동들을 보면 그야말로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들만 골라서 한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온갖 실책을 이용해 지지율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 더 극성인 것을 보면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자유한국당이 노회찬의 빈 자리를 채워 간다면 그 만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은 더 +1이 될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패배하고 진보정당에 좀 더 많은 기회와 목소리가 국회에서 이어지길 바라는 사람들은 여영국에 투표하길 바란다. 물론 끝까지 완주하며 진보 정치를 알리고 지역 활동과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은 손석형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3. 그런데, 여영국이 단일화 과정에서 민중당 손석형이 아닌 민주당 권민호와 단일화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권민호는 오랜 세월 자유한국당 계열에 있다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사람이었고, 거제시장으로 있을 때는 부당노동행위, 개발계획 사익 추구 의혹, 거제시복지관 관련 시의회 결정을 무시하고 복지사들을 부당해고 하는 등 여러 잡음이 많았던 사람이고, 이 때문에 민주당 거제시 당 위원회에선 그의 입당에 격렬하게 반대 입장을 내기도 했다.
지자체에서 높은 위치인 시장 자리에서 나쁜 짓을 하던 사람이 그에 대한 반성이나 개선 없이 단일화 후 선거 캠프 기자회견에 나란히 서서 박수를 치는 것은 좀 당황스러운 풍경이었다. 굳이 민중당 손석형 측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이것에 대해 문제 제기가 정의당에게 있어 당선이 일단 중요하니 무시해도 좋은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여영국이 이번 선거에 당선되더라도 그 당선이 거제에서 문제만 일으켜서 창원 쪽으로 가서 정치 기반을 잡으려는 자에게 기회를 주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의당의 남은 1년이 보다 사람을 향하고 타협해서는 안 되는 인권과 사람의 정치를 더 고민할 수 있길 바란다.
4. 한편 두 진보 정당인 민중당과 정의당이 끝내 단일화하지 못하고 서로의 상처와 갈등만 더 커진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 안타깝다. 민중당 지지자는 정의당에게 원칙을 버리고 민주당과 그것도 거제에서 악명 높던 반노동자 후보와 단일화했다고 마치 진보가 아닌 보수정당 후보로 돌변한 것처럼 비난하고, 정의당 지지자는 민중당에게 "고인이 된 노회찬 출당 시도를 얘기하며 고인을 팔아 인간으로서 해야 할 선을 넘었다."고 비난하는 상황이다.
2008년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분당 이래 10년이 넘도록 두 진보정당의 주요 진영들이 서로 불구지천의 원수처럼 싸우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이젠 아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나의 이야기만 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으레 얘기하는 보수 정당과 자본인지 아니면 반대 쪽 정당인지 지켜보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간 것은 진보정치에서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고 토론하며 정책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만을 하고 서로의 입장만을 관철하고 이를 위해 갖은 수단을 사용해서 결국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그것이 자신들만의 변명 내지 남 탓만 하다 봉합이 되지 못하고 더 커져 버린 역사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쪽은 상대가 종북몰이에 함께 했고 우리가 정당해산이 됐음에도 침묵함으로써 동조하고 동지를 팔았다고 울분을 토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도 상대가 북한과 내통하여 동지들의 인적 사항 등의 정보를 북에 넘겼다며 북에 동지를 팔았다고 울분을 토하는 것이 두 세력의 오랜 반목의 기원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둘은 그렇게 반목하면서도 서로 유사한 길을 걷기도 했다. 소위 민주진보 단일화라고 불리는 행동은 현재 정의당을 비난하고 있는 민중당 계열에서도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노동당으로 한명숙 후보와 단일화하여 심지어 민주노동당 학생 선거운동단이 2번을 흔들며 선거운동에 함께 했던 것을 기억한다.(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 완주하고, 한명숙의 선거 패배에 온갖 욕을 먹었던 사람은 노회찬이었다.)
정의당 계열에서 민중당 계열에 대해 가장 비판하는 점은 뭐든지 머릿수로 다수를 찜해 소수를 억누르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정치하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민주노동당이 분열되고 통합진보당도 분열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정의당 계열도 결정적인 순간엔 다수의 원칙으로 의견을 관철시키려 한 적이 있었고 이번 선거에선 반대로 민중당 쪽에서 정의당이 다수인 것을 이용해 선거 단일화 등에서 소수인 민중당을 소외시켰다는 불만을 가져 오기도 했다.
5. 이 긴 글은 그러니까 "두 정당 모두 나쁜 것들이야. 모두 서로를 깔 자격 없어."로 결론 짓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보정당이 이러는 동안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진보-진보 단일화가 끝끝내 이뤄지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뤄지지 못할 수 있다 치더라도 서로 상흔만 더 남기고 서로 더 싸우기만 하다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십여년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다 모두에게 실망하고 떠났다. 지지자 뿐만 아니라 활동가들도 소진되고 사라졌다.
그렇게 진보정당의 역량 또한 서서히 사라져 갔다. 노동당, 정의당, 우리미래, 녹색당, 진보당 등등 진보를 표방한 정당들이 여러 개가 생겼지만 그 누구도 2004년 총선 비례 대표 13.03%의 지지율 이상을 받아 보지 못했다. 서로 반목하는 속에서 진보정당으로서 내세울 수 있는 정책들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거나 민주당 계열에서 활용되어 자기 것인 것처럼 얘기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마치 민주진보 단일화가 아니면 지역구 선거에선 당선도 스스로 되기 어려운 상황을 더욱 고착화 시켰다.
6. 여영국이나 손석형이나 둘 다 손색 없는 지역의 활동가이고 둘 다 국회의원으로서 활동할 자격이 충분한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둘 사이에 차이점은 정당 사이의 반목을 빼면 거의 없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다른 곳을 보고 있다.
혹시 여영국이 당선된다면 노회찬 사후 무너졌던 민주평화당과의 원내교섭 연합이 다시 만들어 질지는 모르겠다. 다만 정의당과 민중당이 서로 원내에서든 바깥에서든 뭔가 해 보는 것에 대해선 서로가 같은 자석의 극처럼 밀어내고 어쩜 기성정당과의 콜라보보다 어렵게 된 것은 아쉽다.
7. 각자가 원하는 후보가 원하는 결과가 얻길 바란다. 여영국이든 손석형이든 두 진보 후보의 선전은 진보 정당을 지금 이 순간에도 남아 응원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향한 진보정치가 아니라 사람에게 상처만 되는 진보정치를 넘어서기 위해 조금씩 고민하길 바란다. 그저 서로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프라이드만 남고 나머지는 황야가 되는 진보정치가 아니라 다시 사람이 살아가고 존중받는 진보정치를 소망한다.
(기사 등록 20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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