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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한국의 극우들이, 업그레이드(?)된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3. 30.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뉴질랜드에서 저질러진 끔찍한 백색 반이슬람 테러를 보고 이런 생각을 문득 하게 됐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은 반이슬람, 반난민 테러의 무풍지대일까요? 여태까지야 대체로 그래왔습니다. 개신교 근본주의자 등의 반난민, 이슬람 혐오 세력들은, 그렇지 않아도 외국인들을 매우 촘촘히 관리하고 일본 그 다음 세계적으로 두번째로 낮은 난민 인정률을 자랑하는(?) 정부더러 이슬람계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그냥 강력 주문(?)만 해온 것이지 그 무슨 '직접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습니다.

 

'직접 행동'을 아직까지 그래도 대체로 삼가는 것은, 한국 극우들과 각종의 배외주의적 테러 행각에 익숙해진 구미권 극우 사이의 차이이기도 했습니다. 극우들은 '직접 행동'보다는 각종 '단속'에 너무나도 능한 국가에 "보다 철저한 단속"을 요구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추세로 봐서는 한국 극우들과 구미권 극우 사이의 차이는 가면 갈수록 좁아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본래 한국의 극우들은 참 단순했습니다. 극우들의 중요한 기둥 중의 하나인 근본주의적 기독교 교회 등은 소련을 "적색 악마", "사탄"으로 보고 그랬지만, 사실 반소주의는 한국에서는 매우 부차적인 이념이었습니다. 박정희가 1970년대에 대소 외교에 나서고, 일부 한국 명망가들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그 "악마"의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에 (옛날에 "오렌지" 이경숙씨로부터 직접 들은 바로는, 그녀는 이미 1979년에, 국제 행사 참석차 방소하여 제 스승인 미하일 박 선생님도 모스크바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답디다) 그걸 반대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죠. 악마고 뭐고 실리 외교는 실리 외교니까요.

 

마찬가지로 1991년에 "반공 우방" 대만을 버리고 그 두려운 "중공"과 수교했을 때에도 반대세력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한국의 극우들에게는 소련도 중국도 그 자체로서 극히 부수적인 문제이었죠. 그들의 '반공'의 유일무이한 관심의 중심은 바로 그들의 신분을 위협할 수 있다고 간주되는 북조선, 그것뿐이었습니다. 소련이고 중국이고 맑스주의 이론이고 뭐고 한국 반공주의자들에게는 그다지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어요. 반공은 반북이었고, 그게 국시인 이상 따로 '행동'할 것도 없이 국가적 '총화단결'에 잘 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죠.

 

한국 극우들이 나름의 '자기 혁신'을 해본 최초의 사건은 2004년 이후 뉴라이트 출범이었습니다. 반북이야 당연 여전했는데, 그 근거가 좀 달라진 것입니다. 전통적 '반공'이라기보다는, 한국 기층 민중들의 인권에 하등의 관심이 없는 뉴라이트들이 좀 더 멋져 보이는 '북한 인권'의 수사를 적극 차용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리고 한국의 역대 권위주의적 정권을 찬양하면서 '북한 독재 반대'를 외쳐대는, 재미있는 자가당착을 범하기도 했는데, 좌우간 단순한 '반공' 대신에 '인권과 [북한] 민주화'수사를 가지고 자기 이야기를 포장한 건 좀 새로웠습니다. 한데 뉴라이트의 정치 생명은 길지 않았습니다.

 

일제 시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국 엘리트들의 최대의 관심사인 "일제에의 부역의 역사적 합리화"에 열을 올리다가 박근혜와 함께 몰락한 셈이죠. 이외에는 공병호씨 같은 캐릭터들이 모종의 "특색 있는 극우주의"(?)를 실험하기도 했습니다. 공병호씨의 공식적 이념은 영미권의 고전적인, "작은 정부"를 전제로 하는 신자유주의이었는데, 이게 한국 사회에서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물론 모범적 신자유주의 사회긴 하지만, 이건 영미권과 또 다른 "한국식 신자유주의"이니까요. 재벌들이 관료집단을 적극 내세워 상당히 "" 국가를 본인들의 고민 해결사로 이용하는, 그런 식의 신자유주의죠.

뉴라이트나 "순정 영미식" 신자유주의자 등과 같은 엘리트 집단들은 한국 극우주의를 크게 바꾸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박사모 등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정통 극우주의' (반북 친미)도 나름 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일베의 활동이 본격화된 2010년대 초반부터 좀 더 색다른 민간 파쇼적 극우 운동은 그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일베를 그 전형으로 하는 새로운 민간 극우들은 물론 북조선에 대한 혐오 감정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이외에도 매우 다양한 혐오 대상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여성은 가부장적 '통제'/'지배'의 대상이지만 페미니스트들이 혐오 대상이고, "못사는" 세계 체제 주변부는 경멸의 대상이지만 국내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많은 경우엔 혐오의 대상입니다. 거기에다가 자유주의 정치인과 투쟁에 나서는 각종의 약자들 등도 혐오 대상에 추가되고, '민주주의'/'민주화' 등은 욕설처럼 쓰입니다. 여성 권리 주장, 체류 중인 외국인, 자유주의 정치인,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 1920~30년대 유럽의 고전적 파시즘과 거의 같은 색채죠. 히틀러의 열성 팬들이 소련을 증오했던 만큼 일베들의 중국 혐오가 깊은 듯한 인상을, 저는 가끔 받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아직도 폭력적인 직접 행동에 나설 수 있는 단계는 분명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대중적인 배외주의 정치는 가동되긴 됐습니다. 작년에 일베와 같은 민간 파시즘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여 일부 근본주의적 기독교인과 극우 정객들이 제주에 온 시리아 난민들을 갖다가 미증유의 전국적인 집단 광풍을 일으킨 바 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이언주나 조경태 등 일부 극우 정객들이 심히 배외주의적 법안 발의를 하는 등 극우 정치의 "일베화" 현상이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일부 젊은 극우 정객들의 언어는 거의 1920년대 독일 내지 이태리 파쇼들의 수사를 방불케 할 만큼 "대담"해졌습니다. 예컨대 자한당의 김준교가, 한국이 "세계를 좌우하는 국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찬란한 나라,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될 거라고 호언장담합니다. 본인의 정당이 집권만 한다면요. 만약 이 문장들에서 "한국" 대신 "독일"을 집어넣는다면 과연 이게 누구의 수사로 보일까요?

 

하여튼, 한국 극우들이 요즘 업그레이드(?)됐습니다. 단순 반북주의자들도 상당히 남아 있지만, 젊은 극우들은 인제 배외주의, 여성 혐오, 난민 혐오, 이슬람 혐오 등 구미권 극우들과 거의 같은 사상적 스펙트럼을 드러냅니다. 거기에다가 한국 대자본의 아류 제국주의적 포지션과 유관한 듯한, 그런데 누가 들어도 상당히 엉뚱하게 들리는 대국주의적(?) 욕망까지도 내비칩니다.

 

여태까지 백색 테러를 국가에 맡기고 국가를 믿고 지내는 역사가 있는 만큼 이들이 쉽게 직접적 백색 테러에 나서지 않으리라고 봐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경제적 상황이 크게 악화되면 일베와 같은 부류의 폭력범죄화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습니다. 좌우간, 자유주의 정치가 민생의 향상에 계속 실패만 하는 도중에서 극우들의 힘이 은연 중 커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기사 등록 2019.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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