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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백 명의 적과 백 번의 싸움을 준비할 것이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3. 15.

윤미래

 


 

내가 몇 년간을 목청껏 외쳐왔던 것이 커다란 착각이었다는, 굉장히 창피한 자기 반성.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고, 성별도 없고, 인종도 없다는 거짓말에 아주 오랫동안 홀려 있었다.

기만당한 피해자라고 스스로 규정할 생각은 없다. 나는 내 의지로, 전력을 다해, 적극적으로 그 신념을 선택했다. 남성들과, 백인들과, 강대국의 사람들과, 사이좋게 한편이 되고 싶었으니까. 그러면 든든할 것 같았으니까. 그게 길이고, 그래야 이긴다고 믿었다. 계급 투쟁에 걸린 이익은 국적이며 성별, 인종 따위의 알량한 기득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크니까, 그것을 똑바로 지적하고 설득하면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본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남이 점유한 자원을 빌어쓰는 데는 당연하게 대가가 있다는 쉬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게 옳다는 이유로 자기 걸 나눠주는 강자는 세상에 없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자가 됐으면서도 권력의 생리를 그렇게 몰랐다.

 

계급적 이익이 성별, 민족, 인종적 기득권보다 더 중하다는 부등식이 성립하려면 양자택일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건 자동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자기 기득권이 단결에 방해가 되면, 자기 것을 내려놓기보다는 일단 약한 쪽을 윽박지르고 세뇌해서 동맹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먼저 하는 게 강한 자의 당연한 반응인데, 나는 그걸 몇 번이나 목전에서 보면서도 저건 허위의식이고 근시안이라고, 꾸짖어 계몽시켜야 할 일이라고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었다. 강한 자의 입장에서는 그게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 했다. 내가 먼저 깨달아 진실을 아는 자라는 지식인적인 교만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기득권도 잃지 않으면서 계급 투쟁도 이기고 싶은 합리적 강자로 하여금 전자를 포기하도록 강제하려면, 빼앗기면 화를 내고 맞으면 반격해서 우리가 살아 있는 인간이고 그렇게 자기 좋을 대로만 하게 놔두지 않을 만큼의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고작 최악의 억압자를 차악으로 대체하기 위해서 투쟁에 몸을 던질 생각이 없다. 우리의 해방이 약속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혁명을 하지 않겠다. 너희가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우리는 이 동맹을 깨버릴 것이다. 다시는 잊어버리지 못하게 될 때까지, 그들이 잊어버리고 또 개 같은 수작을 시도하면 시도할 때마다 몇 번이든 몇 번이든 반복해서. 미국에서, 스페인에서, 브라질에서, 여성과 흑인들은 이미 자신을 그렇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한 번의 축제로 모든 이가 자유를 찾고 사해 동포가 하나되는 경이로운 희망에 더는 속지 않으리라. 단단하고 성실하게, 매번 땀과 피를 흘려야만 미치도록 감질나게 조금씩 손에 들어오는 것들만을 믿고 바랄 것이다. 세상이 백 번을 뒤집어지고 백 명의 적과 차례로 싸워야 우리가 해방될 수 있는 거라면 백 번의 싸움을 준비할 것이다. 싸우기 위해 편을 짜는 데서부터 또다른 싸움이 필요하다면, 건너뛰려 하지 않을 것이다.  



3.8 국제여성의 날에 칠레 거리로 나온 여성들 


(기사 등록 2019.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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