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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페미니즘이 매력적인 이유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4. 12.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저는 근본적으로 맑스주의자입니다. 한참 유행과 떨어져 있지만, 지금도 적어도 대규모의 생산수단에 대한 직접생산담당자들의 민주적인, 밑으로부터의 관리와 민주적 계획 경제가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이 세계를 구원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단기적, 중기적으로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자본주의에 그다지 미래가 없다고 지금도 보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맑스주의를 고수한다 해도 동시에 또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늘 생각합니다. 맑스주의가 화석이 아닌, 살아 있는 이념으로 계속 기능하자면 맑스주의에 두 가지 시각이 꼭 추가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환경론적 시각과 여성주의적 시각 말이죠. 특히 후자를 결여하는, 계급사회와 그 역사를 함께 해온 여성에 대한 억압이라는 한 가지 기본적 모순을 놓치는 맑스주의라면 이게 가짜 맑스주의죠.

 

제게 페미니즘이 대단히 매력적인 이유는? 페미니즘이라는 시각이 일단 국가와 민족 등 남성 중심의 모든 상상의 공동체들을 상대화시키는 데에 대단히 유용하죠. 노동자들에게 조국이 없다고 <공산당 선언>이 단언하지만, 사실 군에 가서 용감함과 순응주의를 잘 구비해서 행동하는 노동자 출신의 남성들에게는 어쩌면 조국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장교가 되어서 "조국 수호" 미명하의 전도양양한 출세의 길이 보일 수도 있죠.

 

한데 여성에게는 군대와 전쟁이야말로 천적 그 자체입니다. 적군이든 아군이든 받게 돼 있는 피해는 크게 봐선 매한가지죠. 정도의 차이야 있어도요. 예컨대 10월 혁명의 남녀평등론적 전통을 나름 계승한 제2차대전 시대의 쏘련 군에서는 80만 명의 여성들이 간호사뿐만 아니라 저격수나 전투기 조종사 등으로 남성들과 똑같이 복무하고 있었지만, 적색 깃발 아래에서도 남녀 차별의 문제는 여전했습니다. 당은 여군을 "강제로 동거녀로 만들"려는 장교들을 나름 처벌하기도 하고 금지령도 내렸지만, 오늘날 말로는 '성추행'이라고 표현해야 할 부분들이 계속 나왔고 진급 등의 문제에 있어서도 남과 녀는 전혀 '평등'하지는 못했죠.

 

'아군'의 여성들을 그나마 해당 부대 정치위원이 추행 등으로부터 보호할 의무라도 이론적으로나마 맡고 있었지만 '적군' 내지 '적국'의 여성은... 19455, 붉은 군대가 진입한 독일 수도 백림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세상이 다 아는 바이니 굳이 여기에서 상론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나름 훌륭한 혁명 전통을 이은 군대도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군대, 즉 파괴적 남근주의를 몸에 밴 집단일 뿐이죠. 이런 시각 없이는 우린 과연 인류 해방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요?

 

국가/민족에 대한 가장 철저한 비판뿐만 아니라 여태까지의 모든 '해방'으로의 시도들에 대한 가장 필요하고 시급한, 가장 중요한 비판을 바로 여성주의적 시각이 뒷받침돼야 가능해지죠. 그런 비판이 없으면 우리는 진정한 해방을 영영 보지 못할 겁니다. 오늘날에 와서도 자칭 "급진좌파" 단체 안에서 성추행 사건이 벌어진다 해도 사과의 한 마디 없지만, 사실 몸에 밴, 그야말로 당연시되고 아비투스가 된 남성중심주의는 여태까지 대부분 해방 운동에서 감지되곤 하죠. 위대한 사회주의 시인 임화의 그 유명한 <우리 오빠와 화로> (1929) 같이, 초창기 사회주의/노동 운동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는 명시 같은 걸 한 번 다시 감상해보시죠.

 

분명히 "보다 나은 평등의 신세계"를 향하여 자기 희생적으로 나아가는 남녀들을 그리는, 너무나 잘 쓰여진 시지만, 그 시가 형상화하는 '운동의 세계' 안에서도 "용감한 이 나라의 청년인 우리 오빠", ""위대한 오빠"와 여성 화자인 "핏줄을 같이 한 계집애"는 결코 평등한 위치에 있지는 않습니다. "계집애""오빠"를 위로하고 옥바라지해주면서 오빠의 '영도'를 받는 것은 자연스럽게 설정돼 있는 것이죠. 이런 운동들을 위해서야말로, 당연시 돼 있는 불평등한 젠더 역할의 문제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이 매우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운동단계에서 불평등함이 당연시 돼 있다면 과연 집권하거나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할 때에 이런 운동이 과연 평등세계 건설에 얼마나 이바지할 것인가가 문제되는 것이죠.

그런데 저 같은 '남성 지지자'가 여성주의에 가장 바라는 것은, '담론 비판' 그 자체보다도 자본주의 세계가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사회-경제적인 젠더 차별에 대한 시정을 위한 운동입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비졍규직이 될 확률만이 훨씬 더 높은 것만은 아닙니다. 한국 여성의 평균적 하루 가사 노동 시간은 2시간30분이고 한국 남성의 평균적 가사 시간은 하루 18분입니다. 절반 정도의 남성들은 자신들의 식사를 전혀 작식하지 않고 있으며, 42%는 설거지도 전적으로 안합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에서는 기혼 여성이라면 사실 전부 '파트타임 가사 노동자'. 이와 같은 여성들의 과도하고 반복적인 가사 노동은 남성으로 하여금 자본을 위한 주당 52시간 사실 훨씬 넘는 초장기, 과로 노동을 가능케 하는 것이죠. , 궁극적으로 자본도 간접적으로 여성들의 부불 가사 노동에 득을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본이 세금을 더 내어, 여성들의 가사, 육아 노동에 상응하여 국가가 그들에게 보상이라도 지급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성만의 부불 가사, 육아 노동이란 과연 정의로운가요?

 

좌우간 맑스주의, 그리고 진보 운동 전체가 살아 숨쉬자면 남녀 불문하여 여성주의적 시각은 필수입니다. 우리가 "위대한 오빠"와 그런 오빠들을 헌신적으로 도와야만 하는 "계집애"의 세계를 벗어나자면 말씀입니다....

 


 (기사 등록 2019.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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