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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 - 여성 파업과 투쟁/ 북미회담 결렬/ 중국 노동자 투쟁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3. 10.

전지윤



미국 교사파업 물결의 의미와 교훈

 

지난 1년 동안 미국을 뜨겁게 달구며 전국에 들불처럼 번져가던 교사파업의 첫 출발점이었던 웨스트버지니아의 교사들이 최근 1년만에 다시 파업에 나섰다가 이번에는 반나절만에 승리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지난해에 건강보험 개악을 막았던 노동자들이 이번에는 학교 민영화를 저지했다. 거의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았고 노동자들은 주의회로 몰려가 점거했으며, 파업에 겁먹은 공화당 주도 의회는 민영화 법안을 부결시켰다.

 

오클라호마, 켄터키, 애리조나, 콜로라도, 노스캐롤라이나를 거쳐 LA까지 도달했던 파업과 승리의 불길이 더욱 활활 타오르게 된 것이다. 커다란 대중적 지지를 얻은 교사파업의 물결 덕분에 지난해 미국의 파업 건수는 32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의회 의사당을 점거하고 승리에 환호하고 있는 관련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들(더불어 유색인종)이 교사와 파업 대오의 압도다수를 차지했다고 한다. ‘흑인생명은 소중하다투쟁, #미투 운동, 이민 연대 운동 등이 파업의 자양분이 됐던 것이다.

 

인종, 젠더, 계급을 교차시키며 투쟁을 증폭시킨 이 과정에서, 또 인상적인 것은 이 파업들이 대부분 지도부보다 평조합원들의 자주적 행동을 통해 전진했다는 점이다. 지난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의 미국민주적사회주의자들(DSA)도 파업에 깊숙이 관여했고, 청년들 속에 파고들며 이미 5만명이 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샌더스는 최근 2020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는데, 부자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해 민중예산을 편성하고 의료, 교육, 친환경 인프라에 투자해서 일자리를 만들고 기후재앙과 불평등에서 벗어나자는 것이 그의 핵심공약이다.(그린뉴딜)

 

이민자 2세인 젊은 여성 하원의원 오카시오 코르테즈와 샌더스가 주도하는 이런 급진화 물결은 대중적 지지 속에 민주당 전체를 왼쪽으로 몰아가며 엘리자베스 워런 등 다른 경쟁후보들도 부유세를 공약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근 트럼프의 국경장벽 건설을 위한 셧다운도 결국 패배했던 것이다. 지금 트럼프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반사회주의 선동에 나선 것은 그의 강함이 아니라 취약함과 불안감을 보여주고 있다.

 

국경장벽 건설에 민주당 주류도 쉽게 타협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이런 미국 분위기는, 민족주의와 국경을 강화하려는 브렉시트에 대응해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분열까지 겪고 있는 요즘 영국 제레미 코빈과 노동당의 상황과 대조적인 것 같다.

 

다양한 억압과 차별들에 맞서 저항이 연결되면서 아래로부터 투쟁이 번져나가고, 그 속에서 좌파가 주변성을 넘어 설득력있는 대안을 제시하며 폭넓은 대중에게 다가가 성장하고, 이것이 다시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킨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번 3.8 국제여성의 날에도 전세계에서 투쟁이 있었고 특히 아래 사진처럼 스페인에서는 600만명이 페미니스트 파업을 했다고 한다. 여성노동자들이 주도한 미국 교사파업 물결에 이어서 이런 장면들은 페미니즘의 제3물결이 반차별, 반성폭력, 반인종주의, 반자본주의, 반가부장제를 향한 새로운 투쟁의 폭발을 만들어내면서 계급투쟁의 전략적 중심축을 이동시키고 있다는 것을 갈수록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북미회담의 결렬과 트럼프의 깽판

 

트럼프는 베트남이 결국 미국의 세계질서로 들어왔다는 상징을 이용하고 싶었을거다. 하지만, 미국에게 첫 패배를 안겨준 나라(베트남)에서,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굴복하지 않던 나라(북한)와 만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미국과 트럼프는 바닥을 드러냈다. 트럼프의 변처리를 맡아왔다는 마이클 코언은 좋은 사람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어제 청문회장에서 진실을 말했다. “트럼프는 인종주의적 사기꾼, 범죄자다.” 트럼프가 저지른 온갖 더러운 짓들이 다시 드러났고, 뮬러 특검의 최종 조사 발표도 임박해 있었다.

 

아찔한 트럼프는 위기를 덮을 빅딜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협잡의 달인은 또다시 자신은 100을 얻으며 상대에겐 10을 주는 날강도 딜을 원했고, 뒤로 빼놓았던 볼턴 카드도 꺼내 북한을 을러댔다. 당연히 북한은 ‘100을 원하면 적어도 50은 줘야지 않냐고 되물었을 것이다. 판은 깨졌고, 평화에 대한 기대는 여성을 유린하고 돈으로 입막아온 파렴치범에 의해 짓밟혔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가 이건 잘하고 있다. 힐러리였으면 전쟁났을지 모른다고 말해왔다. ‘노벨평화상 주자는 듣기 괴로운 말도 있었다. 물론 힐러리와 민주당은 또 다른 매파일뿐이었고, 트럼프는 공화당에서도 비주류였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과정에서 트럼프라는 요소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리더의 결단만 주목하는 위로부터 역사관은 틀렸다. 그간의 변화는 미국의 쇠퇴, 미중 갈등의 격화 속에 미국 패권전략의 변화라는 더 큰 배경에서 비롯했다. 대북압박이 낳은 모순적 결과로 북한이 핵,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상황에서, 전쟁은 어려우니 되려 대중압박에 북한을 포섭하자는 의견이 미국 지배계급 내에서 이미 불거지고 있었다.

 

이런 전략 조정기엔 힐러리같은 인사이더보단 트럼프같은 아싸가 새로운 선택에 더 적극적이고 유리했다. 선거와 국내정치적 고려도 중요했고. 힐러리였어도 전쟁은 선택지일 수 없었고, 기껏 전략적 인내(혼수상태)’를 지속했을 것이다.

 

물론 전략의 조정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얼마든지 되돌려질 수 있다는 게 어제 또 드러났다. 이 위기를 어떻게 넘겨도, ‘북핵 신고와 검증과정 속에 어떤 돌발변수가 나타날지 모른다. 하지만 길게 보면 아프간과 시리아에서처럼 주한미군의 철수도 배제할 순 없다. 두 나라에서처럼 대리인과 동맹국을 통한 개입이지 진정한 철수는 아니겠지만.

 

무엇보다 그동안의 변화에서 중요했던 것은 북한의 선택이다. 북한이 위험천만한 치킨게임을 멈추며, 미국과 대화하겠다는 방향을 택하지 않았다면 그간의 변화는 불가능했다. 이성적, 합리적 판단을 먼저 한 쪽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었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선군정치와 병진노선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간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다른 나라와의 약속을 지킨 적이 거의 없고, 50년 넘게 자신을 목졸라 죽이려한 나라와 대화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북한은 지난 1년간 많은 양보를 했다. 반면 미국은 돈 아끼려고 전쟁연습 중단한 거 말고는 한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사실도 아니지만, 어제 북한이 제재 완전 해제를 요구했다면 그건 완전히 옳고 정당한 것이다.

 

애처로운 건 중간에 끼어 트럼프 달래기에 바쁜 문정부다. 방위비 분담금도 들어주고, 베네수엘라의 과이도도 지지해줬고, 조만간 사우디의 도살자 빈 살만까지 초청해 미국의 중동 패권을 돕겠다는 말이 나온다.

 

공정하게 보자면 문정부는 주요한 순간마다 분명 중재자로서 기여했다. 이것은 촛불과 정권교체가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촛불을 들었던 남한 민중, 미국 패권에 맞섰던 중동 민중, 김정은 정권의 변화를 만들어낸 북한 민중, 이들 모두가 지금의 변화를 낳는데 중요한 구실을 한 주체다.

 

덕분에 지난 1년간 한반도에서는 핵, 미사일 시험, 미국 전략무기 출동 등으로 우리가 밤잠을 설치며 불안에 떨던 상황이 사라졌다. 분명 큰 의미있는 변화다. 문제는 지정학적 불안정의 더 중요하고 큰 배경인 미, , 러 강대국간 갈등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는 지금 상황의 모순이다.

 

냉전이 열전으로 폭발하는 것을 방지하던 대표적 장치들인 중거리핵전력조약(INF),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등이 줄줄이 파기되기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강대국들이 핵탄두를 만들고, 서로 겨누고, 쏘고 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치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앞장서며 베네수엘라 군사침공도 위협하고 있는 게 트럼프이니 노벨평화상은 말할 가치도 없다. 평화를 위해선 트럼프를 달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은 글렀다. 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기꾼은 더러운 치부가 드러날 때마다 또 어떤 깽판을 놓을지 모른다.

 

어느모로 봐도 트럼프는 하루빨리 탄핵당해 마땅하고, 만약 그 빈자리를 트럼프와 대척점에 있는 미국정치의 또다른 아웃사이더, 버니 샌더스가 차지한다면 지금 보다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트럼프의 북미회담 깽판이 보여준 제국주의의 관성

 

북미회담의 결렬에 대해서 트럼프의 깽판만 강조한다면 오해의 여지가 있고 분명히 일면적일 것이다. 물론 트럼프의 개인적 기질과 코언 증언의 후폭풍, 국내정치적 맥락 등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이런 요인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트럼프가 <협상의 기술>에서 썼던 야비한 잔기술들이 등장했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만든 배경과 힘이 더 중요했던 것도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딥 스테이트’(심층국가, 즉 자본주의 국가의 진정한 권력자들)와 미국 지배층의 대북강경파들이다. 트럼프의 판 깨기가 미국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았다는 것은 뭘 말하는가.

 

여전히 미국 지배계급의 주류는 대북 압박과 제재를 통한 세계패권 추구라는 기존 방식에 익숙하고 놓고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화당과 민주당을 넘어선 문제이고, 오히려 민주당이 더욱 심해 보인다. 이들은 주먹과 근육을 통해서 패권을 지키려는 전통적 제국주의자들이다.

 

인사이더들의 이런 분위기가 강력하게 존재했기에 아웃사이더인 트럼프도 불리한 조건에선 더욱 이들의 구미에 맞는 기술을 택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더불어 트럼프가 다가오는 미중회담에서 시진핑의 양보를 압박하기 위해 여봐란 듯이 판깨기를 한 것(성동격서)이라는 한겨레 박민희 기자의 지적도 타당하다고 본다.

 

지금, 워싱턴의 분위기는 다시 네오콘 시절로 돌아갔다. 영변 플러스 알파에 핵탄두, 핵 리스트, 화학무기 등까지 다 나왔다. 이건 완전히 북한이 그토록 반발하던 리비아 모델이고, 수십년간 위험천만한 치킨게임을 낳았던 바로 그 논리다. 무대 위에 주인공으로 설치고 있는 것도 존 볼턴이다.

 

여기서 다른 분석과 평가들에 대해서 굳이 논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일부 분석과 평가에서 나타나는 두가지 이상한 전제들만은 짚고싶다. 그것은 바로 북한의 비핵화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처럼 보는 것, 또 그걸 하지 않으면 대북제재는 당연한 것처럼 보는 것이다.

 

물론 반전, 반제, 평화주의자로서 모든 전쟁과 무기와 핵에 철저히 반대한다. 하지만 좀 이상하지 않은가. 미국,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 하다못해 인도와 파키스탄도 다 핵이 있는데 데 왜 북한만 비핵화하는게 당연한 의무인가? 미국의 비핵화는 왜 의제조차 아닌가? 제일 많고 제일 위험한데.

 

그리고 트럼프도 인정하듯 대북제재는 북한 민중들이 먹고 사는 것을 고통스럽고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계속 상대에게 주먹으로 두들겨 맞으면서 협상을 하는 게 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됐는가? 남들 다 가진 핵을 가졌다고, 남들 다하는 로켓 시험했다고, 왜 북한 민중만 계속 괴롭힘을 당하는가?

 

만약 이 두 가지를 당연한 전제처럼 놓고 분석하고 있다면 어디에 서서 누구의 시각으로 이 문제를 보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는 냉전과 대결의 오랜 시절 동안 이런 관점에 길들여져 왔다.

 

오죽하면 이번에 문재인이 3.1절 연설에서 빨갱이를 이해와 포용의 대상으로 언급한 것이 논란이 됐겠는가. 이석기 의원도 사면하지 않으면서 변명처럼 그런 말 하는 게 얄밉긴 했지만, 잘 말한 것이다. 민중당을 제외하곤 진보정당 중에서도 단 한 곳도 이석기 의원 사면 제외를 비판하지 않는 현실에서, ‘통진당과 이석기는 문제가 있고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사족을 달지 않고는 말하기 어려운 이런 세상에서... 문재인만 탓하기도 뭐하다.

 


중국 노동자 투쟁에 대한 논쟁

 

얼마전 <레디앙>에 또다시 중국 정권의 편에서 노동자와 학생에 대한 탄압을 옹호하는 글이 실렸다.(http://www.redian.org/archive/130230) 이 분의 입장은 나도 앞서 비판한 적이 있지만, 또다른 분을 재반박하는 형식으로 또다시 아주 길게 중국 정권을 변호해 주고 있다. 길고 어려운 글을 안좋아 하기에 이번엔 더 간단히 반박코자 하고, 그래서 이 분 글에서 일리있고 지지하고 공감할만한 부분에 대한 언급은 아쉽지만 과감히 생략하겠다.

 

이 분의 글은 항상 길고 자세한데, 이것은 풍부한 사실과 논리로 알차다기보다, 나무 하나하나에 우리 눈을 가두면서 숲을 못보게 한다는 느낌을 준다. “양쪽 주장을 늘어놓다가는... 무의미한 글이 되기 쉽다고 하시던데, 나아가 한쪽(중국 권력자들) 입장만 일방적으로 늘어놓는 글이 돼버린 거 같다.

 

더구나 중국 정권 옹호마저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아무리 이 글을 봐도 자쓰 투쟁에 어떤 불순한 친서방 외부세력이 개입했다는 것인지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 자쓰 투쟁을 서방 정권이나 다국적 기업이 직접 도왔다는 어떤 증거도 제시 못하고 있다.

 

당연하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에 많은 자본을 투자한 서방 정권이나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 노동자들의 권리와 투쟁이 늘어나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다. 중국에서 노동자의 권리나 임금이 높아지면 언제든 베트남이나 더 싼 곳으로 튈 준비가 된 게 이들이다.

 

서방 언론에 자쓰 투쟁에 대한 보도가 많이 나왔다는 것, 그런 보도를 고스란히 신뢰해선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물론 그것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자쓰 투쟁에 연대한 사람들이 서방과 연계된 외부세력이라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박정희, 전두환 때 서방 자유주의 언론에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보도가 많이 나왔다고해서 미국이나 서방 강대국들이 한국 민주화 운동을 사주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더구나 자쓰 투쟁과 연대하는 사람들은 중국 현지의 활동가들과 접촉하면서 서방 주류 언론보다 홍콩이나 미국의 좌파 비주류 언론들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특히 좀 심하다고 느낀 것은 이 분이 중국 정부가 언론 통제와 검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며 직접 클릭해 확인해보라고 링크를 건 부분이다. 당연히 이 링크들은 한국에서 다 접속 가능하다. 근데 핵심은 중국에서 접속 가능하냐는 것이다.

 

중국의 노동자와 활동가들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게 아니다. 이런 링크 정도가 아니라 중국에서 유튜브, 구글, 페이스북, 심지어 다음까지도 접속이 어렵다는 것은 중국에 체류해 본 사람은 모를 수가 없다. 그런데 유학까지 같다온 분이 이걸 모를리가.

 

이 분의 글을 통해 봐도 자쓰 투쟁에 대해 명백하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이렇다. 1. 불만이 쌓여온 노동자들이 노조 건설, 복지 개선 등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였다. 2. “좌익인사들학생운동 출신 노동운동가들이 여기에 연대했다. 3. 노동자들의 불만을 대변하고 해고자들을 구제하는데 공회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불충분했다.

 

그런데 이 명백한 사실을 확인하고서도 이 분은 이상한 결론을 내린다. 노동자와 활동가들이 공장가동 정지를 한 것은 회사의 정상적인 운영질서에 대해 엄중한 영향을준 것이고, “파출소 점거를 한 것은 실정법 위반이며 사회 기강을 어지럽힌 죄란 것이다.

 

그러면서 평범한 노사분규여론화하고 목적의식성을 부여한 노동운동가들을 비난한다. 이걸 보면 정말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이 달라진다는 말이 실감난다. 만약 자신이 지금 활동하며 연대하고 있는 울산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면, 이 분은 노동자와 활동가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응원했을 것이다.

 

불만을 집단적 요구와 투쟁으로 발전시키고, 공장을 멈춰서 힘을 보여주고, 사측을 편들어 동료를 연행한 경찰을 규탄하고, 부분과 지역의 투쟁을 더 큰 정치적 투쟁으로 발전시키는, 그 하나하나를 다 의미있게 평가하고 응원했을 것이다. 특히 평범한 노사분규를 여론화시키며 목적의식적으로 개입한 활동가들에 대해, 평소처럼 자생성과 의식성에 대한 레닌의 말을 성경처럼 인용하며 칭찬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일이 중국에서 벌어지니까 이 분은 지금 회사의 정상적인 운영사회기강의 수호자가 돼서 노동자와 활동가들을 비난하며 탄압을 옹호하는 편에 섰다. 노동자와 학생들이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며 노래를 부르고, 동료의 석방을 요구하고, 유인물을 나눠 준것이 모두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법질서가 무너지지 않게끔 존중하는 것스스로 지켜가는 게 기본 상식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 분이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주체가 돼서 아래로부터 자유롭게 사고하고 투쟁하면서 건설하는 모든 억압이 사라진 해방된 사회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사회주의국가가 위로부터 법질서와 사회기강을 강화해나가고 노동자들은 그것에 군말없이 순종하는 체제다.

 

이분도 차마 친서방 외부세력이라고 비난하지 못하는 중국노동회보’(China Labour Bulletin)에 따르면 최근 중국의 노동운동가 3명이 또 공공질서 방해와 군중선동혐의로 체포됐다이것이 회사의 정상적 운영과 사회기강, 법질서가 바로잡혀 간다는 반가운 소식일까? 반면, 중국노동회보는 자쓰 투쟁 등을 거치며 중국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파업 물결이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https://maps.clb.org.hk/strikes/en) 중국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일하고 말없이 순종하는 노예들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고, 희망은 여기에 있다.

 

 

콜린 캐퍼닉의 정치적 승리

 

2년전 경찰폭력과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뜻으로 미식축구 시합전에 국가의례를 거부해서 트럼프와 우파들의 거센 비난을 받고 결국 스포츠계에서 왕따 당했던 흑인 쿼터백 선수 콜린 캐퍼닉, 그가 얼마 전에 또한번 의미있는 정치적 승리를 거두었다는 반갑고 통쾌한 소식이다.

 

이번에 그 무대는 바로 전세계에서 1억 명 이상이 시청한다는 슈퍼볼 결승전이었다.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은 항상 당대 최고 인기 가수들이 공연하고, 공연 자체도 항상 큰 화제를 몰고왔다. 그래서 이 공연에 한번 출연하는 것이 많은 가수들의 소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콜린 캐퍼닉에 연대하는 의미에서 제이지, 리한나, 핑크, 카디B 등이 모두 출연을 거절하면서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는 공연가수를 구하지 못하는 위기에 처했다. 간신히 마룬5를 섭외했는데, 그러자 그 공연을 보이콧하자는 서명운동이 벌어져 10만 명이 서명을 했다고 한다.

 

이런 여론에도 슈퍼볼 공연은 오랜 꿈이고 영광이라던 마룬5는 출연을 강행했는데, 어제 확인해보니 역대 최악의 지루한 공연이라는 평가만 남았다. 하루만에 유투브 공연 동영상에 싫어요55만개가 달렸다고 한다. 마룬5의 리드보컬인 애덤 르바인이 웃통까지 벗어가며 노력한 것 같던데. 더불어 이번 슈퍼볼 시합 자체가 역대 최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이번에 벌어진 일은 콜린 캐퍼닉이 국가의례를 거부했을 때 그 애국심없는 개자식을 짤라버려라고 했던 트럼프의 정치적 패배기도 하다. 트럼프는 이번에 국경장벽을 고집하면서 셧다운을 지속하다가가 결국 일단 물러서야 했는데(월급을 못받게된 공항 노동자들이 업무를 중단하면서 공항이 마비되기 직전에), 또다른 망신이다.

 

 

(기사 등록 2019.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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