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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자본주의에서 돌봄, 동의 및 강압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10. 30.

번역: 두견

 

#미투 운동과 미국의 브렛 캐버노 사건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폭력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앨런 시어스(Alan Sears)가 섹슈얼리티, 성적 강압과 동의, 그리고 오늘날 성해방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어즈는 성소수자이자 사회주의 활동가로서 캐나다의 사회주의 조직 뉴 소셜리스트(New Socialist)’의 회원이며 토론토 라이어슨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서 사회재생산이나 퀴어 해방에 대해 많은 글을 써 왔다. 이 인터뷰는 사회재생산 이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출처:

https://www.rs21.org.uk/2018/10/06/care-consent-and-coercion-under-capitalism/

 


'트랜스젠더와 연대하는 레즈비언' 배너를 들고 행진하는 시위대 



* 당신은 티티 바타차리아(Tithi Bhattacharya)가 편집한 사회재생산 이론’(Social Reproduction Theory)에 대한 책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장을 시작하면서, 동성결혼과 같은 30년 전에는 우리 중 많은 이들이 가능하다고 생각지 못했던 성과를 얻은 상황을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진정한 성적 해방을 성취하지 못했다.

 

나는 우리가 지난 30년 동안 성정치의 손익이 복잡하게 뒤섞인 것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성과를 얻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내가 커밍아웃을 했던 어린 시절에 감히 희망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와 북반구의 몇몇 지역에서 레즈비언과 게이에 대한 법적 차별이 없어졌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다. 법적 결혼을 포함하여 우리의 관계는 인정되고 있다. 퀴어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고 입양할 수 있는 법적 권리도 획득되었다. 나는 직장에서, 나의 가족과 나의 파트너의 가족에게, 그리고 은행이나 다른 사무실에서 낯선 사람들에게도 나의 섹슈얼리티를 공개할 수 있다.

 

#미투의 순간은 성희롱과 여성 및 트랜스젠더들이 삶에서 겪는 폭력의 심각성과 규모에 대해 광범하게 인식하게 만들어줬다. 이것은 시기적으로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성폭력에 맞선 여성 투쟁의 토대 위에 세워졌다.

 

이런 토론과 논의의 수준뿐 아니라 입법과 같은 조치들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에 따라 내가 가르치는 온타리오의 대학캠퍼스에서는 동의에 대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성희롱과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강력한 정책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취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법적 평등만으로는 거리의 폭력이나 괴롭힘을 막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아는 거의 모든 퀴어들이 공격의 위협이나 위험을 느낀다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경험했다.

 

공공장소에서 단순히 퀴어라는 이유로 폭력을 당할 위협은 트랜스젠더에게, 더구나 그가 차별받는 인종이라면 극적으로 더 커진다. 여성들은 보통 공공장소, 직장, 그리고 집에서 괴롭힘, 위협, 그리고 폭력에 직면한다. 우리가 얻어온 성취들은 불균형적으로 LGBTQ의 사람들 중에서 세계 북반구의 먹고살만한 백인 레즈비언과 게이 계층에게 혜택을 주었다.

 

비록 [동성간 성행위를] 비범죄화하는 것을 넘어서 젠더와 섹슈얼리티에서 공공연히 관습을 벗어난 삶을 살며 완전한 권리로 가는 길은 아직 멀었지만, 인도의 대법원이 영국 식민지법에서 비롯한 형법 제377조를 무너뜨리는 것을 보는 것은 멋진 일이었다.

 

그리고 북반부가 수출하려고 하는 레즈비언과 게이의 권리 모델은 우리가 전진할 완벽한 지도를 제공하진 못한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레즈비언과 게이 권리 모델은 토착원주민이거나 차별받는 인종인 많은 사람들의 삶의 경험과 잘 맞지 않는다.

 

그들은 흔히 젠더와 섹슈얼리티에서 일탈로 인해 생명줄이자 고통의 원천이기도 한 출신 공동체와 복잡한 관계 속에 있는 레즈비언과 게이 공동체에서 일상적인 인종차별에 직면한다. 트랜스젠더들은 얼마 전 분명한 법적 권리를 얻었지만 폭력, 괴롭힘, 그리고 배제의 수준도 높다. 이것의 분명한 표지는 북아메리카에서 인종화된 트랜스 여성의 살해이며 이는 현재 진행중인 야만적인 진실이다.

 

이것에 대해 말할 것이 훨씬 더 많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 성적 해방은 성적 활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간, 공간, 지식,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강제 불임화나 성차별, 인종차별, 성적대상화, 계급에 따른 비인간화 등 어떠한 형태의 강제나 강압도 없이 낙태, 피임, 더 안전한 섹스를 위한 수단들에 완전히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이것을 우리의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가 가야할 길이 많다는 것은 꽤 확실하다.

 

* 최근의 거대한 법적 및 문화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이성애규범성’(heteronormativity)이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성적 실천과 관계를 계속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이성애규범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설명할 수 있는가?

 

성행위나 관계 형성의 특정한 이성애적 관행이 모든 에로틱하고 친밀한 표현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는 널리 퍼져있는 사회적 가정이 이성애규범성이다. 이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법, 직장에서의 기본적 관계, 학교같은 사회제도를 통해 조직된 현실이다. 섹스와 젠더 규범에서의 일탈은 적어도 왜 예외가 될 만한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는다.

 

LGBTQ 사람들은 우리가 다른 무언가로 정체화하고, 뭔가 정상성을 깨는 것으로 자기 컨셉을 변경하는 작업을 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모두가 우리를 이성애자인 것으로 가정하기 때문에 커밍 아웃을 해야 한다. 개념으로서의 프라이드(자긍심)”의 역사는 단순한 홍보 슬로건이 아니라 섹스와 젠더 규범성에서 표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지난 30년 동안 레즈비언과 게이의 권리에 대한 성취는 또한 동성애규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동성간의 관계는 지배적인 이성애 모델의 단순한 변형일 것임을 전제로 한다. 이것은 이성애규범성을 종식시키지 않았고, 다소 변형시켰다.

 

이 새로운 동성애규범성은 북반구의 일부 정부들이 지배적인 권력 관계 속에 레즈비언과 게이 삶의 어떤 합법화된 형태들을 통합하는 것과 관련돼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이것을 호모내셔널리즘’(homonationalism: 성소수자 내에도 출신 국가와 인종, 성별, 계급 등에 따라 차별이 존재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라고 부른다.

 

북반구의 많은 정부들은 현재 국외에서 제국주의 침략과 국내에서 이슬람혐오적 인종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레즈비언과 게이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을 악용하고 있다. 그리고 캐나다는 확실히 이것의 좋은 사례이다.

 

* 사회재생산 이론은 우리가 생산현장의 착취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그들의 삶을 살고 재생산하는 방법에 대해서까지 자본주의 체제를 통합된 전체로서 이해하는데 아주 유용하고 도움이 된다. 사회재생산 이론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우리의 개인적, 성적 관계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사회재생산 이론은 어떻게 우리가 우리를 유지하며 다음 세대를 키우는지에 관한 삶 만들기라는 매우 단순한 초점에서 시작한다. 계급사회는 살아있는 노동에 대한 착취에 기반을 두고 있고, 그것은 역사에 걸쳐 다른 형태를 취해왔다.

 

다른 누군가의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을 착취하려면 상당히 명백하게도 그들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이 요구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을 살아있게 만드는 활동들은 (유급 노동이 이뤄지는) 일터 그 자체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동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고갈시키고, 에너지를 소진하고, 배가 고파지게 되고, 몸과 마음이 상하게 되고, 옷을 더럽힌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우리는 이미 노동할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로 나타나야만 한다.

 

우리가 삶 만들기를 완벽한 순환으로 본다면, 유급 작업장을 위한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전체 노동 과정은 체제의 중요한 일부이며, 주로 인종화되거나 이주민인 불균등한 여성들의 무급 또는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정에서 여성들은 쇼핑, 요리, 세탁, 상처에 키스 등을 더 잘 한다. 삶을 유지시켜주는 이런 노동들은 가정 또는 병원, 데이케어 센터, 학교에서 무급이거나 저임금이다. 우리의 성생활은 삶을 만들어내는 이러한 더 넓은 관계 속에 위치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북반구에서 삶 만들기의 규범적 모델은 로맨스와 성적 매력을 중심으로 구축되어지는 지속적인 커플 관계 형성에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은 우리 자신을 살아있게 하고, 서로를 돌보며, 다음 세대를 키우는데 핵심이다.

 

섹슈얼리티, 친밀감, 돌봄, 여가, 경제적 계획, 주택과 식생활은 모두 하나의 묶음으로 되어 있다. 우리의 에로틱한 삶이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유지하는 실질적 작업을 중심으로 하는 단일관계에 완전히 제한된다고 보는 것이 이치에 맞는가? 이것은 혼자인 사람들과 파트너가 없는 부모들을 포함하여 이 모델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비록 성적 매력이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낭만적 사랑의 중심에 있어야 하지만, 섹스는 실제로 자본주의 하에서 조직되는 삶을 구성하는 방식에 의해 매우 하찮은 것이 돼 버린다. 우리의 성생활은 보통 우리가 이미 우리의 삶의 에너지를 유급노동, 보육, 통근, 쇼핑, 세탁 그리고 설거지에 쏟아 붓고 나서의 시간들로 한정된다.

 

왜 우리의 감각과 에너지 주기가 절정일 때 섹스를(우리가 그것을 원한다면) 할 수는 없는 것인가? 게다가 젊은이, 집 없는 사람, 보호시설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섹스를 위해 허락된 시간이나 공간이 없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삶의 수단을 얻기 위해 성적 활동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섹스는 단순히 자연스러운 욕구나 멋진 취미가 아니라 착취와 억압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을 만들어가는 핵심적 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회재생산 이론은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게 하는 결정적 도구들을 제공한다.

 

* 책에서 당신이 쓴 부분을 보면 어떻게 성폭력이 체계적이고 일상화되는지에 대해 쓰고 있다. 당신은 우리 자신, 다른 사람들, 몸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어떻게 부분적으로 우리의 노동 경험과 노동력의 성별화에 기초하고 있는지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제공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자세히 설명하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체적 예를 들어 주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의 성별분업이 만연해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당연시 여긴다. 여성들은 불균형적으로 과도한 양의 무급 가사노동과 돈을 벌기 위한 많은 돌봄노동, 사적 서비스 노동을 한다. 심지어 레즈비언과 게이 가정들도 집에 매우 어린 아이들이 있을 때 이런 종류의 노동 분업을 떠맡는 경우가 많다.

 

유급노동의 조직과 양질의 접근하기 쉬운 보육의 부족함은, 주로 유급노동에 종사하는 한 사람과 무급노동에 집중하는 또 다른 사람이 없이는 일이 진행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나는, 노동의 분업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형성하는 방법에 대해 우리가 충분히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본다


예를 들어, 농사나 건설 등 등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여성에게는 여성스러운외모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이는 그러한 종류의 노동이 필요로 하는 조건과 양립할 수 없는 복장 및 메이크업(예컨대 하이힐같은) 방법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할 때, 당신은 건설 현장에서와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당신의 몸과 목소리를 사용해야 한다. 어떤 종류의 노동과 관련된 고통, 기술, 보상은 매일 반복되는 것을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각인된다.

 

아이들의 삶은 많은 경우에 그들이 삶을 통해 계속 할 것으로 예상되는 노동의 종류를 중심으로 조직되게 된다. 소녀들은 더 어린아이들을 돌보도록 요구받을 것이고, 소년들에게는 가정의 건축 계획을 도울 것을 요청할 가능성이 더 높다.

 

많은 가정에서 소녀들과 소년들에게 주어지는 장난감들도 노동분업을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 젠더는 적절한 행동과 기대에 대한 일련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노동과 놀이를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 속에 깊이 내재화되는 일련의 관행들이다.

 

* 내가 보기에, 당신의 설명에서 가장 매력적인 측면 중 하나는 내가 전에 본 어떤 것보다 더 깊이있게 동의의 개념을 탐구하기 시작한 방법에 있다. #미투 운동에서 나타난 논의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사회재생산의 프레임을 사용해서 말이다. 당신은 동의, 남성의 특권, 그리고 강압에 대한 개념을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는가


직장, 학교, 사회적 행사들, 그리고 실제로 사회 도처에 스며들어 있는 성적 괴롭힘과 강압에 맞서는 여성들을 목격하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순간이다. 정부의 권한의 위임받은 온타리오 대학들에서, 성관계에서의 열정적이고 지속적인 동의에 대해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캠페인을 진행한 것은 정말 고무적이다.

 

이러한 캠페인을 지지하고, 진정한 성해방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더 나아가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동의의 개념은 인간 상호작용에서 계약 모델에 기초한다. 평등하고 자율적인 개인들이 조건들을 만들고 교환의 행위를 규정하는 거래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고용을 포괄하는 기본적 노동계약을 통해, 비록 공식적으로는 동등한 당사자로 보이지만 깊은 불평등을 갖는 계약을 형성할 때, ‘동의강압사이의 구분이 선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노동자들은 고용 조건들에 자유롭게 동의할 수 있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그 직업이 필요하고, 흔히 성희롱과 강압을 포함한 많은 것들을 참아야만 한다. 우리는 또한 더 멀리 나가야 한다. 성적 강압은 단순히 (사장같이) 더 강력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 불평등을 이용한 결과만이 아니라, 실제로 근본적인 방법으로 불평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안젤라 데이비스는 미국의 노예제도라는 조건 하에서 성폭행이 만연했던 것에 대해서 중요한 글을 썼다. 그러한 상황에서 성폭행은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방식으로 노예를 비인간화해서 복종하게 반드는 프로그램의 일부이다. 일상적인 폭력, 언어 및 문화적 관습의 말소, 그리고 가족의 파괴와 함께 말이다.

 

이 비인간화 프로그램은 임노동 고용에 따른 공식적 평등에 의해 제거되지 않았다. 현실이자 위협으로서 성적 괴롭힘과 강압이라는 일상적 경험은 노동, 여가, 가정에 대한 여성의 경험을 형성하는데 일조하고, 이것은 인종화, 식민화된 비인간화를 통해서 격화된다. 성적 강압은 단지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불평등의 결과물만이 아니라, 그 불평등을 형성하고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불어넣는 것을 돕는다.

 

* 성적 정체성의 문제, 트랜스포비아와 트랜스 해방의 문제가 어떻게 이러한 사회재생산 이론의 프레임에 들어맞는지에 대해 생각을 말해줄 수 있는가?

 

사회재생산 이론의 핵심에 있는 삶 만들기의 관계는 인종화되고, 성애화되고, 젠더화된 계급관계들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젠더는 이러한 관계를 통해 구성되며, 이러한 사회에서 강압적인 관계들의 집합으로 작동한다. 젠더와 성적 규범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학대, 배척, 가난, 폭력을 통해 지목되고 처벌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 공동체는 다르게 살아가며 성적 강압에 도전하는 가능성을 거듭 만들어냈다. 나트 라하(Nat Raha)는 이처럼 지속되는 억압과 삭제 속에서도 트랜스젠더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수단으로서 트랜스 커뮤니티의 사회재생산에 대한 강력한 분석들을 수행해 왔다. 이것은 가장 잔인한 폭력과 배척에 직면한 유색인종 트랜스젠더들에게 특히 더 중요하다. 트랜스 해방은 젠더 강압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삶을 만드는 관계, 작업장, 공동체 및 가정에서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나는 우리의 [기존] 사회재생산 이론이 흔히 젠더를 당연하게 여기며, 예를 들어 가사일의 사회화를 통해 무급노동이라는 불평등한 부담으로부터 여성들을 자유롭게 하는 등, 단순히 젠더화된 관계의 다른 배치를 추구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더욱 밀어붙여서 아래로부터의 활기찬 민주주의, 사회화된 집안일, 노동자들의 작업장 통제가 또한 성적 강압의 제거와 정해진 삶의 궤도의 해체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는 것은 흥미롭다.

 

* 섹슈얼리티와 성적, 젠더적 폭력을 이해하기 위한 사회재생산 이론의 프레임은 우리가 조직하고 저항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나는 사회재생산 이론의 프레임이 다음에 올 새로운 좌파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정치를 향해 사회주의적 사고방식을 전환하는 데 중요한 도구상자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를 가정, 지역사회, 작업장에서 만들어지고 마무리되는 젠더화되고 인종화되고 성애적으로 구조화되는 계급관계라는 개념에 눈을 뜨게 한다.

 

또한 나는 사회재생산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발전시킨다면 반인종주의, 페미니스트, 반식민주의, 퀴어와 트랜스젠더적 관점과의 교류를 통해 우리가 더 많은 것을 배우도록 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캐나다에서는 인종주의의 형성과 정착민 식민주의가 자본주의적 사회재생산의 핵심이 되는 방식을 포착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다.

 

나는 여기서 생태학에 대해선 언급도 안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 만들기에 대한 어떤 꼼꼼한 논의도 다른 인간, 다른 종들, 그리고 우리 주변의 세계와 인간의 관계에서 상호성의 파괴를 다루어야 한다.  



(기사 등록 2018.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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