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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신념 때문에 박해받는 한국 양심수와 미국 정치범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1. 11.

남수경



[이 글의 필자인 남수경은 미국 뉴욕에서 도시빈민, 이주민, 여성, 성소수자 등을 대변하는 공익인권변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법률서비스노동조합(Legal Services Staff Association UAW/NOLSW)의 조합원이다. 대구경북지역 독립 대안 언론인 <뉴스민>에 실렸던 글(http://www.newsmin.co.kr/news/17000/)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필자와<뉴스민>에 감사드린다.] 





2017년 새해 벽두부터 고국에서 들려온 소식에 가슴이 답답하다. 1월 5일,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교육학 고전인 <페다고지>, 저명한 역사학자 E. H. 카의 <러시아 혁명>, 대학에서 교재로도 쓰이는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와 <철학의 빈곤> 같은 진보적인 인문사회과학 출판물을 모아놓은 온라인 사이트인 <노동자의 책>을 운영한 것이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 행위’라고 검찰은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적 권리를 탄압하는 대표적인 악법이다. 특히, 제7조 ‘찬양, 고무죄’는 기본적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항으로, 유엔 인권위원회 자유권규약위원회(UNHRC)가 이미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박정희 이후 계속된 군사독재 아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정치적 사상과 신념 때문에 고초를 당해 왔는가. ‘공안사범’과 ‘간첩단’이란 이름으로 조작된 수많은 사건 뒤에는 그로 인해 삶이 고스란히 파괴된 피의자들과 가족들이 있다. 소위 ‘문민정부’에서 국가보안법으로 고초를 당한 적이 있는 필자는 당시 공안검사가 나의 가족들 신변까지 위협하고, 내게 평생 감시받으며 사생활이 없이 살 것이라고 협박하던 일이 떠오른다.


수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구금하는데 이용된 대표적인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소위 ‘민주화’ 이후에도 폐지되지 않았고, 계속 정치적 반대자들을 억압하는 데 이용돼 왔다. 특히, 이번 <노동자의 책> 대표 구속은, 지난 몇 달 동안 누적 인원 천만 명이 거리로 나와 촛불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공안검사 출신 김기춘, 황교안, 그리고 그 무리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증거다. 그들의 장기인 색깔론, 공안몰이로 거리에 나온 사람들을 분열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그러기에 <노동자의 책>에 대한 공격은 우리 모두에 대한 공격이다.


미국은 어떤가. 미국에도 양심수, 정치범이 있을까? 


미국 정부는 미국에 정치범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민권운동가 출신으로 미국의 유엔대사가 된 앤드류 영이 1978년 한 프랑스 신문과 인터뷰에서 미국에도 수백 명의 정치범이 있다고 말했다가, 곧바로 워싱턴의 집중포화를 받은 바 있다.


미국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미국에도 수많은 정치범이 있다.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다가 투옥된 사람들이다. 물론 미국에는 노골적으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탄압하는 한국의 국가보안법 같은 법은 없다. 하지만, 더 체계적이고 교묘하고 세련되게 정치적 반대자들과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코인텔프로(COINTELPRO-Counter Intelligence Program)라는 암호로 불린 비밀사찰, 정보 공작이다.


코인텔프로는 악명 높은 FBI의 에드거 후버 국장이 1956년에 미국 내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응하려는 방법으로 시작한다. 카운터-인텔리전스라는 용어가 말해주듯이, 정치적 반대자들을 적으로 간주했다. 주로 미국 공산당과 사회주의 좌파 세력들, 푸에르토리코 독립운동가들, 흑표범당 같은 흑인민권운동 단체와 활동가들, 반전운동단체와 활동가들 그리고 원주민 저항운동 등이 이 공작 대상이었다. 오늘날까지 투옥된 대부분 정치범들은 바로 이 공작의 희생양들이다.


오바마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미국의 정치범들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가장 오랫동안 복역하고 있는 정치범 중 하나인 레너드 펠티어를 오바마가 대통령에서 물러나기 전 특별 사면을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제사면위원회 같은 인권단체와 그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펠티어는 흑표범당 당원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무미아 아부자말과 함께 가장 널리 알려진 미국의 정치범이다.


그의 옥중 수기 <나의 삶, 끝나지 않은 선댄스>가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된 레너드 펠티어는 미국 원주민 운동의 산증인이다. 1944년 노스다코타의 원주민 보호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1970년대 초부터 원주민 저항운동에 참여했다. 1972년 ‘아메리카 인디언 운동(American Indian Movement-AIM)’이라는 원주민 저항단체에 가입해 핵심 멤버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 단체는 원주민의 자치권과 문화 보존을 위해 1968년에 만들어졌다.


1973년 2월에 AIM 소속 오글라라 라코타 부족 200여 명이 운디드니 마을을 점령한다. 운디드니는 1890년 미국 정부와 약속으로 새로운 땅으로 이주하던 300여 명이 넘는 원주민이 학살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1970년대 운디드니가 위치한 사우스다코타의 파인릿지 원주민 보호구역은 미국 정부 지원을 받는 족장 딕 윌슨이 철권통치를 하고 있었다. 


윌슨은 사병(私兵)조직을 거느리며 FBI와 인디언사무국(BIA)과 긴밀히 협조해 AIM과 동조자들을 탄압하고,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렀다. 이에 맞서 운디드니를 점거한 AIM 회원들은 원주민보호구역 내 부정부패 조사 및 책임자 처벌, 원주민들의 열악한 실태에 대한 해결, 그리고 미국 정부가 과거에 원주민과 맺은 조약 이행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무시하며 무력진압을 했다. 결국, 71일간의 대치 끝에 연방군과 윌슨의 사병(私兵)조직이 점거자들을 소탕했다. 운디드니 점거가 실패로 돌아간 후, 부정부패의 축으로 원주민들의 원성을 샀던 윌슨과 인디언사무국, 그리고 FBI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점거운동에 동조한 원주민을 보복 살해했다. 원주민들이 ‘공포 통치’라 부르는 상황이 이후 몇 년간 지속된다. 당시 AIM 동조자로 몰린 원주민 64명이 살해됐지만, 이 사건들은 현재까지 미결로 남아있다.


이런 폭력적인 상황에서 펠티어는 원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1975년 AIM 일원으로 파인릿지의 원주민 보호구역에 파견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총격전에서 두 명의 FBI 요원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 기소됐다.


그의 사건과 재판은 AIM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조작된 것이었다. 나중에 공개된 자료들은 파인릿지에서 벌어진 총격전이 FBI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FBI는 펠티어가 범인이 아님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을 그의 변호인에게 공개하지 않고 숨겼다. 펠티어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증인들도 나중에 FBI의 협박 때문에 위증했다고 밝혔다. 


담당 검사조차도 펠티어가 사망한 요원에게 직접 총을 쏘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그에게 불리한 증거들이 조작되었음에도 펠티어는 유죄 판결을 받고 이중(二重)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펠티어는 “나의 유일한 죄는 나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 싸웠다는 것이다. 나는 그 요원을 죽이지 않았다”며 체포된 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국제인권위원회는 펠티어를 정치범으로 선정했다.


현재까지 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의 사면을 요청하는 서명을 했다. 그리고 심지어 항소심 재판을 지휘한 연방검사조차 최근에 오바마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사면을 촉구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는 임기가 불과 며칠 안 남은 지금까지 그의 사면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응답하지 않고 있다. FBI 대변인은 자신들의 수사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으며, 따라서 레너드 펠티어를 석방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FBI의 입장은 레너드 펠티어가 감옥에서 죽음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가 펠티어를 사면하지 않는다면 그는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현재 72세로 당뇨와 심장 질환을 앓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1월 20일에 대통령에 취임할 트럼프 정권에서 그가 가석방될 가능성은 회의적이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자신을 ‘법과 질서’의 수호자로 자처하면서, 경찰 공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느슨히 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테러리스트 혐의자는 고문해도 상관없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했다. 따라서 트럼프 정권에서 펠티어가 석방될 가능성은 정치적 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 사면을 기다리는 또 다른 장기수는 푸에르토리코 독립운동 지도자인 오스카 로페즈 리베라가 있다. 그는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독립투쟁을 위해 조직된 지하조직 ‘민족해방군 (Armed Forces of National Liberation-스페인어 약자로 FALN)’의 일원으로 1981년 미국 정부의 전복을 꾀했다고 70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죄목은 반란음모죄였지만, 실제로는 저항 조직 일원이었다는 사실이 장기형을 받은 이유였다. 2010년 7월 깔로스 알베르토 토레즈를 마지막으로 같이 구속되었던 조직원들이 모두 석방되면서, 리베라는 현재 가장 오래 복역 중인 FALN 조직원으로 알려져 있다. 35년 이상 복역 중인 그는 현재 74세다.


이외에도 2013년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자행된 미군의 전쟁범죄를 위키리크스에 폭로했다고 군사재판에서 간첩죄로 35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 군 내부고발자 첼시 매닝(브래들리 매닝에서 개명)은 감형을, 그리고 NSA(미 국가 안보국)의 무차별 시민 감청을 폭로한 후 망명 중인 또 다른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도 미국에 돌아갈 수 있도록 오바마에게 특별사면을 요청하고 있다. 첼시 매닝은 군 교도소에서 거의 일 년 가까이 독방에 갇혀 있으면서 수차례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엔과 국제인권단체들은 독방 수용을 고문의 일종이라고 규정한다.


세계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 그리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희망과 변화’라는 메시지로 당선된 오바마가 정말 민주주의 수호자임을 자처한다면, 임기를 마치기 전에 모든 정치범을 사면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전 세계에서 이데올로기, 정치, 종교상 신념이나 견해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새해 아침에 소망해 본다. 


(기사 등록 201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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