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북압박과 핵발전이야말로 ‘비이성적’이다
전지윤
활성단층 위에 지어진 핵발전소들
‘통제불능의 핵 광인’. 며칠 전 북한 5차 핵실험 이후 박근혜 정부와 우파 언론들이 김정은 정권을 비난하며 쏟아 부은 말이다. 경주에서 역대 최강 지진이 발생한 지금, 이렇게 되묻고 싶다. 정말로 통제 불능일 정도로 정신 나간 듯이 핵에 집착하는 게 누구인가?
인구 밀집의 대도시이고 활성단층이 존재하는 부산·울산을 세계 최고의 ‘핵발전소 밀집 지역’으로 만들며 핵발전소 2기를 추가 건설하고 있는 게 ‘통제불능’이 아니면 무엇인가? 지진 위험이 큰 ‘불의 고리’ 지역 옆에서 ‘핵의 고리’ 지역을 만들고 있는 게 ‘광기’가 아니면 무엇인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재앙을 보고도 이러는 것이 온전한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북한 5차 핵실험이 낳은 인공지진보다 이번 경주 지진의 파괴력이 50배나 더 컸다. 북한 핵무기 이상으로 남한 핵발전이 심각하고 당면한 위험이라는 말이다. 북한을 미쳤다고 비난하기 전에 한국 정부는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말이다.
반면,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에 <뉴욕타임스>는 '북한은 미치기는커녕 너무 이성적‘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북한 정권을 미치광이 집단 취급하는 한국 정부나 언론들 탓에 이 기사는 뭔가 일리있어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기사는 핵심을 잘못 짚은 것 같다. 핵심은 북한만이 아니라 미국, 일본, 한국도 비이성적이라는 점이다. 북한 정권의 ‘비이성’은 비이성·비합리적인 주변 국가들의 압박이 낳은 반작용이라는 점이다.
단연코 가장 비이성적·비합리적인 것은 바로 미국과 오바마 정부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실험을 하고, 가장 많은 핵무기를 가진 나라의 대통령이 된 오바마는 취임 초에 ‘핵없는 세상’을 말하며 노벨 평화상을 당겨 받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서 그가 한 일은 미국 핵무기 성능을 더욱 고도화하는 데 1조 달러(1천 100조 원)를 퍼부은 것이다.
또 오바마 정부는 북한에 대한 핵 선제공격과 폭격·침략 전쟁연습을 매년 규모와 강도를 높이면서 진행해 왔다. 전투기, 항공모함, 잠수함 등에서 북한에 핵무기를 발사하는 연습을 틈만 나면 했다. 특히 4차 핵실험 이후 미국의 대북 압박은 최고조에 달했다.
오바마는 한국 정부의 등을 떠밀며 개성공단 폐쇄 등 모든 완충지대를 제거해 갔고, 소위 ‘유엔 역사상 최강의 제재’를 가했다. 이번 북한 5차 핵실험 며칠 전에도 미국은 북한 전역을 사정권으로 둔 핵 탑재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미니트맨) 발사 시험을 했다. 물론 그때는 국제사회의 규탄이나 제재 주장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3년에 한번씩 핵실험을 하던 북한이 이번에는 8개월만에 했다’고 놀랄 게 아니다. 이런 태도를 보면서도 8개월이나 대화를 요구하고 기대한 것이 놀라운 것이다. 북한의 5차례 핵실험 중에서 4차례가 오바마 집권 때 이뤄진 것은 이처럼 명백한 이유가 있다.
특히 한미가 이번에 사드 배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 핵 위험이 사라지면 사드를 배치할 이유가 없다’며 조건부로 연결시켰다는 점을 봐야 한다. 미국은 마치 사드 배치를 확정하기 위한 결정적 한방으로서 북한 핵실험을 학수고대하는 듯이 보였다.
결국 비이성적 광기의 최고봉 자리는 ‘내가 모든 핵과 살상무기를 독점한 채 다른 나라를 멋대로 감시·압박·침공할 수 있는 게 세계평화’라는 미국의 차지다. 이런 미국 때문에 한반도에서 온전한 ‘햇볕정책’은 시행된 적도 없고 따라서 실패할 기회도 없었다.
두 번째 자리에는 ‘미국과 손잡고 북한을 벼랑 끝으로 몰면 한반도 평화가 올 것’이라는 한국 정부가 앉아야 한다. ‘핵에는 핵으로 맞서야 한다’는 북한 정권의 비이성은 세 번째일 뿐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와 주류언론의 거꾸로 된 프레임 속에서는 이 모든 게 뒤집힌다.
그 프레임 속에서 강대국들의 핵과 미사일은 아무 문제가 아니고, 약소국의 핵과 미사일만 제재의 대상이 된다. 미국 경찰의 흑인 살해가 아니라, 필리핀 경찰의 민간인 살해만 ‘인권’ 문제가 된다.
그러니 비이성과 광기는 해결되는 게 아니라 상승작용하면서 악화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핵을 언제 어디서 쏠지 알 수 없으므로 보통의 선제공격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지금 한국 우파들 내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그보다는 북한 정권의 붕괴와 교체를 더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파 일부의 핵무장 주장도 단지 허풍 수준만은 아닌 것 같다. 북한이 중국의 반대에도 핵무장을 했듯이, 남한도 미국의 반대에도 핵무장을 할지 모른다. 핵무장은 박정희 때부터 시작된 이 나라 지배권력의 오래된 갈망이었고, 핵발전을 포기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북한의 핵 포기를 조건으로 하는 조건부 핵무장으로 갈 것을 선언해야 한다. … 속된 말로 핵에 관한 한 '믿을 ×' 하나 없는 세상이다. … 우리의 살길은 우리도 핵을 갖는 것이다.” (<조선일보> 고문 김대중)
물론 이런 방안들은 모두 ‘너 죽고 나 죽자’는 비이성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미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 사드 배치라는 비이성적 선택도, 인구 밀집의 활성단층 지역에 핵발전소를 늘리는 비이성적 선택도 현실이 돼 왔다. 이윤 경쟁과 패권 경쟁의 논리가 이성적 사고와 선택을 가로막아 왔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는 추석 이후 사드 배치 부지 발표를 강행할 것이고, 경주 지진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 확대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모두 ‘종북’으로 몰면서, ‘불순세력’에 대한 탄압과 이간질을 할 것이다.
따라서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핵 발전소를 폐기하라는 이성의 목소리를 더욱 키우고 모아나가야 한다. 강대국들의 전쟁터가 된 폐허 속에서, 지진과 핵발전소 폭발의 재앙 속에서 울부짖으며 사라진 이들을 찾아 헤매는 광경은 상상만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기사 등록 2016.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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