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쟁점과 주장

백남기 농민을 지키고 함께 생명의 물결을 이루자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6. 9. 30.

전진한(의사/ 인의협 회원)

 

 



"아빠는 세상의 영웅이고픈 사람이 아니야.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지

 

지난 11월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후 백민주화씨는 이렇게 썼다. 이 말처럼 그는 대학 시절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맞선 시위를 주도하다가 수차례 제적과 수배, 구속, 물고문 등을 당했고, 귀향한 뒤로는 농사를 지으며 농민운동을 해왔다


그러던 1114일 새벽 빚 없이 농사짓는 세상을 말하려 올라와서는 경찰 물대포에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고자 했지만 이렇게 우리 가슴에 남게 됐다.

 

그가 왜 죽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검찰과 경찰은 사인을 밝힌다며 부검을 요구했고 법원은 결국 부검영장을 발부했다.

 

국민들이 병사외인사에 대해, 그리고 사망진단서 작성 요령까지 학습하게 된 이 상황보다 상식조차 무너진 이 사회를 잘 보여주는 단면은 없을 것 같다. 그의 죽음은 의학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고, 또한 그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 이것을 두고 투쟁해야 하는 현실은 답답하지만 한 사람의 의사로서 몇 글자를 보탤 수밖에 없다.

 

그의 사인은 분명하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소생은 불가능한 상태여서 의사는 퇴원을 권유했다. 수술은 연명치료의 의미 외엔 없었다. 그의 진단명은 급성 경막하출혈, 즉 외상으로 인한 뇌출혈이다. 외상이 심하여 또 다른 종류의 뇌출혈인 지주막하 출혈도 동반됐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의 수술기록, CT 등 의무기록에 정확히 남아 있다.

 

경찰이 부검의 근거로 삼고 있는 사망진단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엉터리다. ‘원 사인은 외인성인 급성 경막하출혈로 표시했으면서도 사망진단서에는 병사라고 기록했다. 초보적인 오류를 저지른 서울대병원은 원칙을 어겼지만 수정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 장단에 맞춰 경찰은 외인사인 줄 알았는데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돼 있으니 부검을 해보자고 주장하고 있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주치의는 부원장과 교수에게 이렇게 쓰라는 지침이 와서 어쩔 수 없다고 유가족에게 말했다고 하니, ‘정치적 진단서라는 의혹은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경찰이 백남기 농민의 상태를 가족들보다 먼저 병원으로부터 계속 제공받아왔던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검경은 진상을 남김 없이 밝히기 위해서는 부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렇게 이미 드러난 사실도 왜곡하고 있는 자들의 과학적부검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무엇보다 살인을 한 당사자가 시체에 손대겠다는 것을 왜 허락해야 하는가?

 

역사도 그것을 증명한다. 1991년 한진중공업(당시 대한조선공사) 박창수 노조위원장은 서울구치소에서 단식투쟁 중 의문의 부상을 입고 안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안기부 요원을 따라간 후 몇시간 만에 변사체로 발견됐다


그의 죽음으로 조선소노동자들이 전면파업을 벌이자, 며칠 후 경찰은 병원에 백골단과 전경 22개 중대를 투입해 해머로 영안실을 부수고 들어와 주검을 탈취하고 강제 부검했다. 그리고는 '노조활동과 구치소 생활에 염증을 느껴 투신자살했다'단순추락사로 사인을 발표했다.

 

백남기 농민의 경우 사인을 완전하게 은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는 그의 영상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검 논란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일차 목표일 것이다. 마치 논쟁의 여지가 있는 듯한 사안으로 몰고 가며 혼란을 부추기고, 시간을 흘려보내면 사람들의 분노를 어느 정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또한 부검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것이 모호하다면 또다시 논쟁의 여지를 남길 수 있으리라 볼 것이다.

 

최근 일베 등에서는 빨간 우비를 입은 사람이 그를 가격했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는데, 이 황당한 주장은 이 나라 검경의 머리에도 들어있는 것이다. 나는 검시(사체조사)에 참여해 담당 검사가 바로 그런 것들을 확인하기 위한 부검이라고 시인하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 고위관계자도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것은 맞지만 머리에 생긴 외상에 다른 원인이 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언론에 밝혔다. 진실을 확인하고 싶은게 아니라, 보고 싶은 무엇이 있는 것이다.

 

백남기 농민을 죽인 것도 모자라 죽음의 원인을 두고 장난을 치는 이 정부는 정말 잔인하다. ‘고인에 다시 경찰의 손이 닿게 하고 싶지 않다’, ‘부검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기절할 것 같다는 유가족들의 절규를 제대로 들어보기는 했을까?

 

박근혜 정부가 이렇게 무리를 거듭하며 강제부검을 시도하는 이유는 이 싸움에 걸린 것이 크기 때문이다. 강제부검은 바로 이 정권이 국가폭력에 의한 살인을 반성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반대하는 사람들 입을 계속해서 막고 탄압하겠다는 의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경찰이 백남기 농민의 분향소 설치도 막으며 추모를 방해하는 이유다.

 

그가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외쳤던 것은 농민의 삶 보장, 노동개악 반대, 국정교과서 폐기, 사드 배치 반대, 의료 철도 가스 공공 민영화 중단 등이었다. 물대포가 쓰러뜨린 것은 '인간답게 살자'는 평범한 우리 모두의 외침이었다. 따라서 우리 모두 백남기. 진상을 밝히고 살인자를 처벌하는 일은 저항할 권리, 죽지 않고 말할 권리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것일 뿐이다.

 

유가족과 백남기 농민 대책위는 법원의 영장 발부에도 부검 시도를 굳게 거부하고, 정부에 끝까지 사과와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국가폭력 종식과 물대포 추방을 요구하며 계속 싸울 것이라고 했다.

 

이 나라에서 물대포 사용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물대포는 그 이미지와 달리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망과 부상을 낳아온 살인무기다. 영국은 지난 해 안전 문제를 이유로 본토에서 물대포 사용을 금지했는데, 그 때 심각한 인체 부상 사례로 언급한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일 정도로 이 나라는 세계적 교훈거리다. 물대포에 최루액을 섞어 발포하는 나라도 찾아보기 힘들다.

 

부검해서 파헤쳐야 할 것은 박근혜 정부라는 분노가 점차 퍼지고 있다. 유가족들의 요구는 바로 이러한 힘이 모여질 때 이뤄질 것이다. 지금도 매일 밤 서울대병원에서 시민들이 모여 밤을 새며 백남기 농민을 경찰로부터 지켜내고 있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매일 밤 서울대병원에서는 촛불이 밝혀지고 있고, 101일에는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가 대규모로 열릴 예정이다. 그의 손에 쥐었던 밀알이 싹이 나 수없이 많은 밀알이 됐듯, 우리도 한데 모여 생명과 평화의 물결을 이뤄야 한다.   


(기사 등록 2016.9.30)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anotherworld.kr/164


'다른세상을향한연대의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