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우리는 난민을 환영한다
영국에서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나온 이후 ‘유럽연합(EU) 탈퇴를 지지했든, 잔류를 지지했든 지금은 인종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맞서 단결하고 투쟁할 때’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당했다. 하지만 브렉시트와 좌파의 전술에 대한 평가와 토론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진지한 운동선수는 다음 경기를 위해 지난 경기를 평가하고 모니터한다. 내가 어떻게 해서 패배했거나 승리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다음 경기를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먼저 좌파의 일부는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기성체제를 뒤흔든 타격이라며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그것이 누구에 의한 어느 쪽에서 타격인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기뻐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예컨대 2001년 9.11 테러는 기성체제에 대한 심각한 타격이었지만 좌파는 이것이 전쟁을 이어질지 모른다는 커다란 우려를 나타냈다.
2008년 미국 금융시장의 붕괴는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타격이었지만, 당시 시작된 대량해고와 주택압류 속에 환호성을 지르는 좌파는 없었다. 기성체제의 위기를 무조건 환영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보통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게 가장 큰 고통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또 그것이 좌파의 기회가 될지, 우파의 기회가 될지는 정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브렉시트는 누가 기뻐하고 기회로 여기고 있는가? 먼저 시리아 난민과 이민자에 연대하며 브렉시트 반대를 호소하다 살해당한 노동당 조 콕스 위원이 무덤 속에서 기뻐하고 있을 리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반면 ‘영국이 우선’이라던 살해범 토마스 메이어는 감옥 안에서 웃음 짓고 있을 것이다.
물론 영국 총리 캐머런과 프랑스 올랑드, 미국 오바마 등이 실망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 기뻐하고 있는 것은 극우익이거나 나치인 나이젤 패라지, 르펜, 트럼프 등이다. 이것이 바로 일부 좌파가 기뻐하는 ‘우파 분열’의 실체다. 즉 지배계급 내에서 더 노골적이고 역겨운 우파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반면 스페인의 급진좌파인 포데모스는 그 직후 총선에서 별다른 성장을 보여주지 못했다. 영국 노동당에서는 우파(블레어 후예)들이 좌파 지도자인 제레미 코빈에 대한 제거 작전을 시작했다. 영국에서 외국인 표적 범죄와 린치가 2배 정도 증가했고, 동유럽 이민자와 흑인들을 겨냥한 ‘폴란드 해충은 꺼져라’, ‘아프리카로 돌아가라’ 등의 낙서가 증가했다. 가슴 아프게도 이민자들은 투표 결과를 보고 공포와 슬픔을 느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일부 좌파는 이것을 ‘계급투표를 통한 노동계급의 승리’라고 환영하고 있다. 보통 이런 주장은 ‘노동계급’을 제조업 육체노동자만으로 한정하는 잘못된 통계를 바탕으로 나타난다. 반면 사무직, 서비스직 노동자들의 다수가 ‘중산층’으로 분류되면서 ‘중산층은 다수가 잔류에 노동계급은 다수가 탈퇴에 투표했다’는 식의 협소한 해석이 나타났다.
물론 제조업이 무너진 변두리 지역의 저소득·저학력층에서 탈퇴표가 많이 나온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 좌파는 ‘기성체제와 엘리트 정치인들에 대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불만과 분노가 표출됐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물론 맞지만, 그림의 일부만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국적 기업과 대형 상업은행과 거대한 정치와 거짓말과 부패와 속임수와 싸웠다.” “주류 정당들은 그동안 이민자들로 인해 병원 약속이 밀리고, 학교에 자리가 없고, 소득이 떨어지는 대중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이게 바로 영국독립당의 패라지가 그 불만과 분노를 부추기며 한 말이다. 즉, 실업과 가난은 바로 EU에 내야하는 분담금, EU가 강요하는 규제와 이민자 수용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브렉시트를 제기한 것도, 캠페인을 주도한 것도, 그 결과로 득세한 것도 보수당 우파와 영국독립당같은 인종주의 우파였다. 이들은 유례없이 인종주의적인 선거운동을 조직했고, 이민자가 몰려오고 있는 사진을 내세운 포스터가 그 절정이었다. 조 콕스 살해범이 외친 ‘영국이 우선이다’는 브렉시트 찬성파의 핵심 구호이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일부 좌파가 잘 보려하지 않는 그림의 나머지 부분이다.
결국, ‘신자유주의와 긴축이 낳은 불만과 분노가 인종주의 우파가 주도한 투표를 통해 뒤틀린 방식으로 표출됐다’가 그림의 온전한 전체인 것이다. 마치 미국에서 트럼프 현상이 ‘기성체제와 엘리트 정치인에 대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불만과 분노의 표출’이기도 한 것처럼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래서 EU가 강요한 긴축정책에 61%가 ‘NO'라고 선언한 지난번 그리스 국민투표와 이번 투표가 비슷하다고 여기며 반기기는 어려운 것이다.
물론 브렉시트에 찬성 투표한 1700여만 명이 전부 인종주의자라고 본다면 지나친 과장과 비관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유럽에서 인종주의가 ‘경제적 변형’을 통해 나타나고 있고, 우파가 이것을 이용해 왔다는 점을 봐야 한다. 그것은 이런 식이다. ‘인종차별을 하자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이민을 수용하기에는 일자리와 집과 학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국인에게만이 아니라 이민자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이런 논리가 얼마나 교묘하고 광범한지 슬라보예 지젝같은 저명한 좌파 학자까지 이민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할 정도다. 그리고 브렉시트 투표 이후에 영국 정부와 정치권에서 ‘긴축을 중단하고 투기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제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이민을 더 통제하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그동안 유럽에서 이슬람포비아와 반이민 인종주의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경고하던 일부 좌파들이 갑자기, 반이민과 인종주의는 별로 심각하지 않다며 브렉시트를 환영하고 있는 것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브렉시트와 반이민이 별로 상관이 없다는 주장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그 반대로 캐머런과 오바마가 우리 편이라거나, EU가 인권·노동권과 이민자를 보호해 왔다거나, EU를 진보적으로 개혁할 수 있다는 주장들 또한 사실과 거리가 멀다. 캐머런과 오바마는 신자유주의적 공격과 경제 위기 고통전가 등을 주도해 온 장본인들이다.
EU는 처음부터 미국과 경쟁하기 위해 유럽 각국에 신자유주의적 규칙과 구조조정을 강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EU의 본질은 그리스에 살인적 긴축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EU는 중동의 난민들이 건너오지 못하게 막으며 수만 명을 지중해에 빠져죽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브렉시트를 찬성해야 했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쓰레기통에서 벗어나자고 똥통을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즉, EU를 벗어나 극우가 지배하는 영국 국민국가 강화로 돌아가는 것은 더 나은 대안일 수 없다.
브렉시트를 주도한 우익은 대처리즘 시대의 영국을 그리워했고, 유럽 내에서 비자와 여권없이 이동할 수 있는 자유마저 없애고 싶어했다. 또 EU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들과 개별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주장했다.
더불어, 지금 EU와 연결돼 있는 나토(NATO)가 흔들리는 것도 반길 일만은 아니다. 영국을 통해 미국이 통제하던 나토를 벗어나 유럽방위군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제국주의 체제가 아래로부터 투쟁으로 약화되는 게 아니라, 제국주의 질서가 균열을 일으키며 군사적 불안정과 전쟁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좌파가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원칙에서 EU 탈퇴 지지가 맞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번지수가 틀린 것이다. ‘영국 국민국가 강화’도 ‘원칙’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캐머런, 오바마의 편에 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패라지, 트럼프의 편에 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원칙’일 수도 없었다. 핵심은, 원칙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어떤 전술이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둘째, 누구와 같은 편에 설지의 문제가 가장 중요했다. 각종 분석과 자료를 살펴보면 노동당 좌파인 제레미 코빈의 지지자, 주요 노총 조합원들과 특히 근래 투쟁을 경험한 노동자들, 유색인종과 이민자, 무슬림, 청년, 민족적·종교적 억압을 겪어 온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등에서 특히 브렉시트 반대가 많았다. 또 다문화주의, 여성주의, 생태주의, 이민자 권리에 친화적인 사람들일수록 브렉시트 반대를 지지했다.
바로 이들 속에서 기반을 마련하고 넓히는 것이, 좌파가 영국에서 어떤 의미있는 투쟁을 건설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과제라는 게 분명해 보인다. 이들이 신자유주의와 긴축에 덜 분노한다고 볼 이유도 없다. 더구나 이번 투표에서 이들이 보여 준 반우파·친이민 정서는 공감하지 못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EU에 대한 이들의 환상에 대해 비판적 토론과 설득을 하면서도 말이다. ‘신자유주의 기구인 EU에 환상을 갖는 것은 개혁주의’라며 가르치고 선을 긋기보다 말이다.
그렇다고, 이번에 인종주의 우파들이 주도한 브렉시트 찬성에 이끌린 저소득 백인 노동자, 실업자, 가난한 연금생활자 등을 포기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좌파가 반우파·친이민 노동대중들 속에서 기반을 넓히며 강력한 단결과 투쟁을 건설해 긴축을 중단할 수 있는 힘을 보여줄 때, 더 효과적으로 이들을 왼쪽으로 견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오늘날 유럽에서 인종주의 우파와 나치의 위험은 실질적이며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지금 영국독립당은 제3당이며 나치와도 연계를 맺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나치인 르펜의 국민전선이 차기 대선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그리스, 독일 등에서 극우익이 급성장하고 있다.
2008년에 시작돼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제 위기, 중동을 지옥으로 만든 전쟁, 희생양을 만들고 노동자를 이간질하는 이슬람포비아, 좌파의 거듭된 실패와 분열 등이 그 배경이 되고 있다. 이 속에서 극우익과 나치는 실업자, 빈민, 소외된 사람들의 기성체제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비집고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1930년대의 유럽에서는 이 비슷한 요인들이 더 심각했다. 경제 위기는 1929년 대공황으로 폭발했고, 인종주의는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당시 독일에서 히틀러와 나치도 실업자, 빈민, 소외된 사람들의 기성체제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이용해 급성장했다.
30년대 초에 나치는 집권 사회민주당 주정부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제기했다. 당시 독일공산당은 이 투표에 찬성표를 던지며 그것을 ‘적색 국민투표’라고 불렀다. 독일공산당이 집권 사민당을 반대할 이유는, 오늘날 좌파가 유럽연합을 반대할 이유보다 더 많았다.
사민당은 로자 룩셈부르크같은 혁명가를 살해하고 발포까지 하며 노동자 파업을 짓밟고 있었다. 독일공산당은 사민당의 위기와 나치의 부상을 ‘체제의 위기이자 좌파의 기회’라고 반겼다. 하지만 그 결과는 재앙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브렉시트에서 ‘좌파적 탈퇴’를 주장한 일부 좌파가, 그 결과를 ‘노동계급의 전진’으로 반기는 것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지금의 시급한 과제는 근거없는 낙관을 거두는 것으로 보인다. 앞선 경기에 잘 대처하지 못한 운동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승리감에 들뜨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이번 투표 결과로 우파가 득세하며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고, 그것은 노동당 코빈 제거 시도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 영국의 거의 모든 지배계급과 우파가 코빈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코빈은 영국에서 신자유주의와 긴축, 인종주의와 반이민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상징이자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코빈의 입장은 이번 브렉시트 국면에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그는 인종주의 우익에 맞서 브렉시트를 반대하면서도, 캐머런과 손잡고 유럽연합을 찬양하는 광대로 나서기는 거부했다. 오히려 주로 왜 이민을 환영하고 긴축을 중단해야 하는지 주장했다. 이것이 노동당 우파가 코빈을 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따라서 코빈이 처음부터 ‘좌파적 탈퇴’를 주장하고 나섰어야 한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그것은 더 큰 혼란을 낳으며 우익에게 도움만 됐을 것이다.)
좌파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코빈 지지자들과 단결해서 코빈을 지켜내는 것이다. 레프트유니티(Left Unity)라는 연대체와 모멘텀(Momentum)이라는 전국적 풀뿌리 단체로 모여 있는 이들은 그동안 코빈을 지지하며 노동권, 시리아 폭격 반대, 기후정의 등의 운동을 건설해 왔다. 대부분 브렉시트에 반대했고, 최근 코빈을 지키기 위해 2주일만에 10만 명이 노동당에 입당할 정도의 힘과 기반도 보여주고 있다.
좌파가 정말 능동적으로 상황을 바꾸고 싶다면 이들 속에 개입해야 한다. ‘국경과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보자’는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는 이들에게 ‘EU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코빈은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설교하기보다는 함께 투쟁하고 토론하며 배우려고 해야 한다.
그리고 ‘EU 지지냐 반대냐’라는 뒤틀린 전선을 해체해야 한다. 이 속에서는 EU에 대한 좌파적 반대와 지지, 우파적 반대와 지지가 뒤섞이며 노동계급의 분열만 커진다. 이민을 환영할 것이냐 반대할 것이냐, 긴축을 반대할 것이냐 지지할 것이냐, 우익을 반대할 것이냐, 지지할 것이냐 라는 더 분명한 전선을 형성하고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그런 투쟁이 더 강력하고 넓어질 때, 좌파가 위기와 분열을 극복하고 노동계급 다수의 신뢰를 얻게 될 때, 그럴 때 신자유주의적 EU를 벗어던질 뿐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할 가능성도 생기고 커질 수 있을 것이다.
브렉시트 지지를 ‘체제 파괴’로, 브렉시트 반대를 ‘체제 수호’로 묶어버리는 것은 그래서 옳지 않다. 핵심은 어떤 방법이 진정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체제 도전과 파괴를 가능하게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좌파의 답은 분명하다. ‘영국이 우선’이 아니라 가장 억압받는 이민자들과 연대하며 빼앗긴 모든 이들의 단결과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 항상 ‘최우선’이다.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 http://anotherworld.kr/164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의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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