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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 논쟁

폭력/비폭력 논쟁 - 100만 촛불은 배우면서 진화한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6. 11. 25.

전지윤

 


박근혜 퇴진 투쟁이 발전해 나가면서 폭력-비폭력토론도 벌어져 왔다. 논쟁의 한편에는 저들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한편에는 혹시 불상사가 일어나 역풍이 불까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투쟁의 방향에 대한 이런 진지한 토론은 전적으로 환영할 만하다. 민주적이고 열린 토론을 통해서만 답이 찾아질테니 말이다.

 

나는 이 토론이 서로 상처주지 않는 방식으로, 우호적이고 생산적으로 진행되길 기대했다. 일부 사람들처럼 서로를 애국가나 부르는 한심한 사람들’, ‘충돌을 유도하는 프락치라는 식으로 모욕하기 시작하면 토론은 실종되고 감정적 대립만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토론이 폭력-비폭력이라는 부적절한 이분 구도에 갇히기 보다는 대중행동이냐 소수행동이냐는 더 중요한 논점으로 이어지길 바랬다. 소수의 물리력보다는 다수 대중 스스로의 행동이 언제나 중요하고 효과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1119일 이후에 이 논쟁은 경찰 차벽에 붙인 스티커를 뗀 것이 옳았냐, 그리고 왜 그런 행동이 나타났냐는 문제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스티커를 붙인 사람들이, 차벽을 넘어서고 싶은 의지를 상징하려 했다는 것을 볼 때 나도 그 스티커들을 굳이 떼었어야 했나 싶은 게 사실이다.

 

그런 행동을 한 사람들의 나름의 좋은 의도까지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스티커를 뗀 사람들이 조선일보의 평화 시위 프레임에 갇혀서 내면화된 복종을 한 것이고 그래서 박근혜가 저렇게 버티고 있다는 일부의 비판은 좀 과도하게 들린다.

 

이 토론에서 우리는 먼저 국가와 보수우파가 자신들의 후퇴를 감추기 위해서 설정한 잘못된 프레임을 거부해야 한다. ‘작년 민중총궐기와 달리 평화시위를 하니까 우리가 그것을 허용해줬다는 경찰과 법원의 거짓말이 그것이다. 진실은 작년 민중총궐기 10만 참가자들도 평화시위와 행진을 원했는데, 그것을 경찰이 폭력적으로 가로막고 차벽을 세우고 물대포를 쏘면서 충돌이 벌어지고 백남기 어르신의 죽음이라는 비극까지 벌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투쟁의 핵심적 특징은 비폭력 평화가 아니다. 핵심은 지난해에 광화문 광장으로도 못 들어가게 막던 경찰, 법원이 거듭 뒤로 물러서고 있다는 데 있다. 20만이 모인 115일은 세종대왕상까지, 서울만 100만이 모인 12일은 내자동 로터리까지, 전국적으로 100만이 모인 19일은 효자동주민센터까지 물러섰다. 작년과 달리 밧줄이나 몽둥이가 없이도 저들의 후퇴를 얻어낸 걸 주목해야 한다. 후퇴한 건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다.

 

시위에서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는 원인과 결과, 선후관계를 뒤섞으면 안 된다. 80년대 경찰도 무석무탄’(시위대가 돌을 안 던지면 우리도 최루탄을 안 쏜다)이라며 문제의 본질을 흐린 바 있다. 우리가 평화시위를 약속하니 저들이 갑자기 믿음이 생겨서 집회를 허용한 게 아니다. 100만을 차벽과 물대포로 막았다가는 어떠한 반발이 일어날지 두려워 한 경찰과 법원이 후퇴하면서 말만 번지르한 포장으로 그것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지금 자신들의 프레임에 갇힌 시위대를 보면서 만족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민심의 성난 파도가 모든 것을 쓸고 갈 수 있다. 위험한 상황이다.” “잘못하면 생각지도 못한 사태, 최순실 사태보다 더 크고 위험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앞으로도 평화 집회가 이어질 수 있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대로 가면 대통령과 민심이 거리에서 충돌하게 된다. 불행한 사태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조선일보>의 논조에서 느껴지는 것은 이 투쟁이 어디로 발전할지 모른다는 깊은 우려과 두려움이다. <조선일보>2008년 촛불항쟁이 발전하며 자기들 사옥 마당과 벽에 분노한 사람들이 쌓아올린 쓰레기가 가득했던 게 떠올라 밤잠을 설칠 것이다. 그래서 100만의 심기를 살피며 일종의 비판적 지지를 하고 있다. 이 거인이 자기들 쪽을 돌아보며 주먹을 치켜들게 될까봐, 감히 욕하고 비난하기 보다는 아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몇 년전부터 박근혜 퇴진을 내걸고 앞장서 싸워왔던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것도 비판적 지지인 것 같다. 활동가들의 눈높이에서 새롭게 거리로 나선 사람들의 부족함과 아쉬움부터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거리에서 자신의 힘을 느끼고 키우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고무하면서, 또 배우면서 대화하는 자세로 나름의 길을 제시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보인다.

 

폭력과 물리적 충돌에 대한 거부감도 공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사회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서 싸워 오던 사람들이야말로 폭력없는 세상을 바라지 않았던가. 우리는 단지 순수한 평화가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구조에서 폭력의 뿌리를 없애고 싶어 해 왔다. 그래서 어떠한 폭력과 억압도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상상해 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든지 평화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공감하면서 진정한 폭력이 무언지 주장할 수 있다. 백남기 어르신, 삼성직업병, 가습기 살균제 등에서 드러난 이 체제의 어마어마하고 잔인한 제도적, 구조적 폭력을 폭로할 수 있다. 1995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 폐렴 사망자 7만명 중 2만명이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시장논리와 이윤추구가 낳은 이 끔찍한 폭력을 고발해야 한다.

 

물론 그런 거대한 폭력은 그만큼 거대한 물질적 힘을 통해서만 막을 수 있다. (150여년 전 사람이 오늘날에 대해 대부분의 답을 내놓았다는 식의 관점은 피하고 싶지만) 그래도 굳이 마르크스의 말을 빌자면 비판의 무기가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고, 물질적 힘은 물질적 힘에 의해서 전복돼야 한다. 그러나 사상은 그것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때 물질적 힘이 된다.’ 즉 거대한 대중이 잘못된 세상을 바꾸겠다는 신념으로 무장하고 일어선다면 그것이 곧 물질적 힘인 것이다


따라서 지난 주말 집회 때마다 대중의 바다 속에 들어가 유인물을 배포하고, 서명을 받고, 각종 퍼포먼스를 하면서 왜 박근혜만이 아니라 그 정책들도 문제였는지, 그 바탕에는 누구의 어떤 논리와 이해관계가 깔려있는지 구체적으로 주장·폭로한 사람들이 정말 중요한 일을 했다고 본다. 비록 겉보기에는 그것이 전혀 과격하지 않게 보였겠지만 말이다.

 

예컨대 반올림 활동가들은 이재용을 고발하는 풍선을 아이들과 같이 온 가족들에게 나눠주고 박근혜의 가면을 쓰고 같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재용이 최순실을, 최순실이 박근혜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퍼포먼스를 계속 진행했다. 그러면서 삼성과 재벌의 탐욕과 그것이 낳은 참상을 고발했다. 하루 종일 수많은 인파 속에서 이런 캠페인들을 계속 진행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고단한 일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가 쏟아지면서 힘든 줄 몰라 보였다.

 

지금 거리로 나온 100만 명은 박근혜 퇴진을 목적으로 모여서 평화시위를 수단으로 택한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가 저렇게 버틸수록 목적을 이룰 더 효과적 수단을 고민할 것이다. 또 박근혜 퇴진을 넘어선 더 나아간 목적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아직까지 대중의 다수는 물리적 충돌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금같은 역사적 격변기는 하루가 한 달 같은 때이고, ‘비폭력을 외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누구보다 더 전투적 행동에 나서게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대중 자신의 경험과 의식변화 속에서 올 것이다.

 

동영상으로 높은 곳에서 찍은 100만의 촛불을 바라보면 그것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유기체를 보는 듯해서 감탄스럽기만 하다. 이 유기체는 지금 하나씩 실험을 해보면서 자신의 갈 길을 찾는 것 같다. 20만이 모여서 변화가 없으면, 100만이 모이고, 100만이 모여도 안 되면 200만이 모이고, 그래도 안 되면 노동자 총파업과 농기계 행진과 대학생 동맹휴업을 건설하고, 이런 식으로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활동가들이 하는 주장, 폭로, 선전은 이런 길 찾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사회의 급진적 변화는 소수의 활동가가 무장하고 나설 때 시작되는 게 아니라, 압도다수 대중이 모든 걸 걸고 행동에 나설 때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그럴 때 대중의 압도적 힘은 경찰, 군대같은 국가의 억압기구를 순전히 물리력으로 제압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위대한 사회변혁은 항상 하급 군인과 경찰들이 대거 시위대 편으로 설득, 동화되는 과정을 보여 줬다. 지금 우리 앞에 그런 운동을 건설할 기회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트랙터를 몰고 박근혜 퇴진 상경 투쟁중인 농민들  


 

(기사 등록 201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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