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브렉시트 논쟁 - 영국이 우선? 이민자 환영과 연대가 우선이다!

전지윤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들 


영국 총리 캐머런은 처음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 카드를 꺼내면서 몇 가지를 노렸을 것이다. 먼저 국내 정치·경제적 문제로 쌓인 불만을 유럽연합으로 돌려서 피해가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국내 정치에서 보수당 안팎의 우익 반대파를 통제하며 주도권을 높이려는 구상도 엿보였다. 나아가 이것을 무기삼아 유럽연합으로부터 더 강한 이민 통제권 등을 받아내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 캐머런은 설마 브렉시트가 가결되진 않을 것이라고 봤던 것 같다. 하지만, 며칠 전 노동당 조 콕스 의원 피살 사건은 상황이 매우 복잡하며 심각하게 발전중이란 것을 드러냈다. 이 충격적 사건은 갈피를 못 잡아 헷갈리던 나에게도 고민을 정리하게 해주었다.


시리아 난민과 연대해 온 조 콕스 의원을 살해하며 테러범이 영국이 우선이라고 외치는 순간, 눈 앞의 안개가 걷히는 듯 했다. 물론 브렉시트 반대쪽에 서있는 사람들 속에 코빈과 노동당, 주요 노총, 친이민자 단체만이 아니라 보수당 일부, 대기업과 주요 언론, 서방 강대국 정부 등이 있다는 것은 여전히 매우 찜찜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극우 인종주의자들, 보수당 우파, 프랑스의 르펜, 미국의 트럼프 등과 같이 찬성 쪽에 서는 것은 더 안 될 일 같다는 생각이 커진 것이다.

 

극우익인 영국독립당과 보리스 존슨같은 보수당 우파의 인종주의적 주장들은 사실 너무 역겹다. 유럽연합의 지나친 노동·환경 규제와 분담금이 영국 경제를 망치고 있다? 국경 통제권을 확보해 쏟아지는 이민자들을 막아야 한다? 이민자들이 너무 많아서 복지부담이 커진다? 유럽연합의 초국가적 성격이 영국의 정체성을 위협한다? 누구에게든 심한 말은 피하고 싶지만 솔직히 이런 주장들은 헛소리라고 밖에 달리 표현하기 어렵다.


캐머런도 이민규제를 주장하고 얼마 전 유럽연합에게서 더 많은 규제권한을 얻어내긴 했지만, 이 인종주의 우파들은 그 정도는 부족하고 그냥 국경을 닫아버리자는 입장이다. 물론, 이에 맞서 유럽연합 잔류를 주장하는 일부 좌파들이 유럽연합을 무슨 국제주의적이고 노동친화적 기구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현실과 전혀 맞지 않다.

 

유럽연합은 태생부터 신자유주의적인 기구였고, 그 본질은 그리스에 긴축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더구나 유럽연합은 중동 곳곳에서 침략과 폭격을 자행해 온 나토(NATO)라는 제국주의 기구와도 연결돼 있다.


그래서 지금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대열에는 인종주의 우파들만 있지는 않다. 일부 극좌파는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적 성격에 반대해 나가자고 한다. 유럽연합과 보수당이 합심해서 추진한 긴축 정책들이 영국 노동자들의 삶을 망쳤다는 것이다.

 

문제는 극우파도 백인 저소득층 속에서 기성정당과 엘리트들이 잘못된 정책으로 모든 걸 망쳤다는 포퓰리즘적 주장을 하며 그것을 반이민 선동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사실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에는 별 이견이 없다. 오히려 더욱 강한 마가렛 대처식 신자유주의를 그리워하며, 다만 유럽연합 안에서의 이민자의 약간 '자유로운' 이동마저 없애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브렉시트 논의와 구도를 주도해 온 게 사실이다.


따라서 극좌파들의 좌파적 탈퇴라는 의미부여가 잘 다가오지 않는다. 지금 투표 용지에는 좌파적 탈퇴라는 기표란이 따로 있지가 않다. 브렉시트가 가결된 후 우파들이 환호하고 이민자들이 좌절할 때 아니다. 이건 좌파적 탈퇴다라고 말한다고 상상해보니 더욱 그렇다.

 

유럽연합은 처음부터 신자유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구조물이었고, 극좌파들이 전통적으로 유럽연합을 반대해 온 것은 옳았다. 나도 그리스 문제에서는 긴축을 강요하는 유럽연합에 맞서 그렉시트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리스와는 맥락이 다르다. 그리스는 유럽연합의 주변부 약소국이었고, 긴축 강요에 맞서며 탈퇴 주장이 나왔다.

 

반면 영국은 중심부 강대국이며 반이민의 맥락에서 탈퇴 주장이 나왔다. 캐머런이 그런 의도로 투표를 제안했고 그동안 우파들은 외국인 혐오, 인종주의, 이슬람포비아를 부추기며 캠페인을 해 왔다. 게다가 대처 정부 때부터 영국은 신자유주의의 최첨단을 달려 온 나라다. 유럽연합이 영국에 신자유주의를 강제했다기 보다는, 영국이 앞장서서 신자유주의를 유럽에 퍼뜨려 왔다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따라서 그렉시트였으니 반드시 브렉시트여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마치 좌파가 억압하는 민족의 분리독립권과 억압받는 민족의 분리독립권을 구분해 왔듯이 말이다. 더구나 조 콕스 의원 피살 사건으로 정세와 구도가 더 분명해졌으니, 좌파들은 기존의 프레임과 전술을 원점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 진다.

 

더불어 좌파적 탈퇴에 대한 주장들은, 그것을 반대로 뒤집어보면 모순이 드러나는 것 같다. 예컨대 브렉시트가 가결되면 캐머런이 힘을 잃고 보수당이 분열할 것이란 주장은 반대로 노동당 코빈도 힘을 잃고 나이젤 패러지, 르펜같은 나치와 보리스 존슨같은 보수당의 인종주의 우파가 힘을 얻는 데라는 반문을 가능케 한다.

 

유럽연합 잔류파 중에도 인종주의자들이 많으니 이것은 이민 찬반 투표가 아니다는 주장은 탈퇴파 중에도 신자유주의자들이 많으니 신자유주의 찬반 투표도 아닌가라는 의문을 떠오르게 한다.

 

잔류한다고 이민자가 보호되는 게 아니다는 주장은 그럼 탈퇴한다고 신자유주의가 사라지는가라는 의문을 낳는다. ‘인종주의에 맞서기 위해 중요한 것은 투표가 아니라 투쟁이라는 주장도 신자유주의에 맞선 투쟁이 중요한 거지 투표가 중요한가라는 반문을 하게 한다.

 

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어차피 이민자의 권리는 단결과 투쟁으로만 쟁취된다고 하지만, 이왕이면 이민자들의 사기나 단결과 투쟁에 더 도움이 될 투표 전술을 택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유럽연합이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적 구조물이고, 진보적으로 개혁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유럽연합 틀 속에서 착취와 지배를 유지하려는 자들에게 계속 맞서 싸워야하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이 투표가 주되게는 이민 찬반 투표의 성격을 띄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당 지지층과 젊은층에서 잔류 지지가 높고 보수당 지지층과 노년층에서 탈퇴 지지가 높은 상황인 것이다. 이런 구도는 좌파가 만든 것도 원한 것도 아니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고, 이민자들은 이 투표 구도와 결과를 앞두고 걱정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에 대한 토론 과정에서 한 동지가 한 말이 핵심인 것 같다.

 

제가 일하는 곳엔 이주민들이 많고 객지에서 다른 나라 출신으로 살아가는 상황이 이 사람들을 얼마나 주눅들고 힘들게 하는지 매일같이 느끼는데,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투표를 하게 된다면 난 이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투표를 하진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해 봤어요.” 


나는 허승영 동지의 사려깊고 명확하게 사태를 설명해주는 글에 큰 도움을 얻었고, 그 대부분의 주장에 동의한다. 나도 또한 정보와 경험의 한계 때문에 판단에 조심스럽다. 마찬가지로, 어디에 표를 던지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인종주의에 맞서서 이주민들과 연대해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유럽연합 탈퇴 투표는 맞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유럽연합의 본질에 대한 통렬하고 가차없는 폭로와 비판은 계속해야겠지만 말이다. 조 콕스 의원 피살범은 영국이 우선이라고 외쳤다. 천만에! 인간이 우선이고, 이주민이 우선이고, 이주민은 우리의 친구이며 언제든 어디서든 환영받아야 한다.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anotherworld.kr/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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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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