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시리아의 민중혁명은 어떻게 왜곡·파괴돼 왔는가
지난주 러시아가 시리아 공습을 시작했다. ‘이슬람국가’(IS)를 소탕하기 위해서라는 핑계였다. 러시아가 중동 지역에 직접적 군사 개입을 시작한 것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에서 실패한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와 동맹 상태인 이란도 지상군 파병을 시작한다고 한다. 중동에 더 커다란 전쟁의 불길이 번질거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난민 위기 등을 만드는 악랄한 IS를 소탕하자’는 게 지금 미국, 유럽 강대국, 러시아, 이란, 사우디 모두 한 목소리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IS는 원래 친서방 사우디 정권의 도움 아래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재정적·군사적 독립을 하며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국가체계를 세운 것이다. IS는 ‘이슬람 원리로 돌아가 제국주의가 생지옥처럼 망쳐놓은 중동을 통일하겠다’며 성장해가고 있다.
‘IS가 난민 위기를 만들었다’는 것도 과장이다. 시리아 난민은 IS가 출현하기 전인 2013년 초에 이미 아사드의 학살 속에 6백만 명을 넘어섰다. 아사드는 즉각적 폭력과 학살을 통해서 반독재 민중항쟁이 군사적 무장 저항으로 나가도록 만들었다. 또 반정부 세력 내부의 종파적 갈등과 분열을 부추겼다.
여기에 아랍혁명 납치 기회를 노리던 제국주의의 개입이 결합되면서 시리아 혁명은 종파적 내전으로 변질돼 갔다. 재정적·군사적으로 열세인 반군은 갈수록 서방에 의존했고, 아사드는 반정부 세력을 ‘외세에 의존하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로 싸잡아 매도할 수 있게 됐다.
지금 시리아는 크게 아사드, IS, 친서방 반군에 의해 세 등분 상태다.(일부 쿠르드 자치지역도 나타났다.) 한 시리아인은 “우리는 아침에 시리아 정부군의 공습, 오후에 연합군의 공습, 그 중간에 이슬람국가의 처형 사이에 끼여 있다”고 했다.
여기에 러시아의 폭격이 추가로 끼어들고 있다. 러시아가 노리는 것은 시리아 천연자원에 대한 통제권이며 중동지역에서 군사전략적 교두보 확보이다. 시리아의 타르투스항은 러시아가 확보한 중동지역 유일의 해군기지이며, 친러 아사드 정권의 유지가 중요한 이유다.
러시아가 홈스를 폭격하자, 아사드보단 친미 정권 수립을 선호하는 미국은 그 맞불로 또 알레포를 폭격했다. 폭탄에는 눈이 없으니, 주거니 받거니 폭격 속에 시리아 민중만 죽어나고 있다. 오바마는 ‘푸틴은 과격한 IS와 온건 반군을 잘 구분해서 폭격하라’고 하지만, 웃기는 소리다. 러시아 폭격한 ‘알 누스라 전선’은 바로 미국이 ‘과격 테러집단’으로 지명한 바 있다.
사실, 시리아를 식민지배했던 것도, 레바논과 강제 분단시킨 것도, 종파적 분열의 씨앗을 뿌린 것도, 석유를 위해 유린해 온 것도 프랑스, 미국 등 제국주의 강대국들이다. 이들은 학살자 아사드 제거보다 2011년 ‘아랍 혁명’의 불씨 제거에 더 관심이 많았다.
따라서 ‘오바마의 시리아 정책이 실패해 왔다’는 것은 반만 맞는 말이다. 저들은 ‘튀니지에서 시작해 이집트로 번졌던 혁명의 불길을 시리아에서 잡아냈고, 이집트에서도 다시 반혁명에 성공했다’고 평가하며 만족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IS 소탕’은 이들이 중동에 군사적 개입을 재개하는 좋은 빌미가 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의 대실패 이후 주춤했다가 말이다. 특히, 아래로부터 혁명의 희망이 자라는 것은 모든 나라 지배계급에게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서로 갈등·경쟁해 온 미국, 러시아, 중국, 이란, 사우디, 이스라엘이 모두 ‘IS 소탕’ 구호 아래 손을 잡는 괴상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근래 개봉했던 영화 <바르샤바 1944>에도 독일로 진군하던 소련군이 유대인 봉기에 대한 독일군의 진압을 기다렸다가 폴란드로 들어오는 내용이 나온다.)
지금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반테러’를 내세운 아랍 반혁명 동맹의 야만을 목격할 수 있는 세 군데 거점이다. 이집트에서는 수천 명의 학살과 사형이 이뤄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에서 툭하면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아사드는 특히 아랍 혁명 물결의 파괴자로 나서며 권력을 유지하고 무려 20만 명 이상을 학살해 왔다. 아래 표가 보여주듯 시리아 민중의 대부분을 죽인 것은 IS가 아니라 아사드다.
아사드가 ‘반제국주의’라는 것은 착각이다. 냉전 시절 친소 정권이었던 아사드는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는 등 타협 시도를 해 왔다. 지금도 ‘미국의 반테러 전쟁을 돕겠다’고 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친미 정권 수립을 더 선호하는 미국에 맞서 러시아의 힘을 빌리려 하지만 말이다.
박노자 교수는 “한쪽 제국주의가 다른 쪽 제국주의에 의해서 생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시리아 민중들은 미국과 러시아 등 여러 제국주의들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지적했다. 또 “절실한 것은 국경을 넘는 좌파들의 평화 련대”라고 했다.
필요한 것은 제국주의의 개입에 반대하면서, 독립적인 민중의 힘과 단결로 아사드에 맞서는 것이다. 세속 좌파들이 이런 대안 건설에 실패해 왔기 때문에 IS같은 이슬람급진파들이 저항세력의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을 직시해야 한다.(그 점에서 쿠르드 독립 투사들이 외세에 의존하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해 E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홈스는 불타고 있다>는 2011년에 시리아에서 진정한 아래로부터 혁명이 등장했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홈스는 이번에 러시아가 폭격한 지역이다.) 하지만 그 혁명이 어떻게 끔찍한 피바다 속에 빠졌고, 힘겨운 무장 투쟁 속에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도 보여 준다.
이 다큐의 주인공인 시리아 국가대표 축구선수 출신의 혁명가 바셋은 ‘이 혁명의 끝이 올까’라는 친구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그럼! 저들은 불사신이 아니니까.”
● 그리스와 새로운 좌파는 어디로?
9월말에 있었던 그리스의 조기 총선에서 시리자와 치프라스가 우파 신민주당을 꺾고 다시 집권당의 위치를 유지하게 됐다. 치프라스가 긴축을 중단하겠다던 약속을 어기고 트로이카에 굴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왔다.
시리자뿐 아니라 각 당의 득표 결과를 보면 시리자가 승리했던 지난 1월 총선 결과와도 비슷하다. 하지만 그것은 겉보기만 그럴 뿐이다. 중요한 내용상의 차이점이 있다. 지난 1월 총선 때 시리자는 트로이카와 그리스 주류 언론들의 집중포화와 공격을 받으면서 선거운동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트로이카와 주류 언론의 우호적인 반응과 지원사격을 받을 수 있었다.
더구나 시리자는 그리스 주류 언론과 한 목소리도 반긴축 극좌파 정당을 매도하기까지 했다. 지난 1월에 시리자는 긴축 반대와 ‘대안은 있다’고 주장하며 선거운동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주류정당들과 같이 ‘긴축 수용말고 대안은 없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1월에 시리자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대중의 희망과 투지에 힘입은 것이었다. 반면 이번에 시리자가 이용한 것은 대중의 실망과 사기저하였다. 즉, 치프라스는 ‘긴축을 중단할 수는 없고 대신 더 인간의 얼굴을 한 긴축을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우파인 신민주당보다 훨씬 덜 강하게 덜 열의를 가지고 긴축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부패한 우파보다는 굴복한 좌파가 낫다’는 이같은 차악론은 어느 정도 먹혔다. 그리스 민중들은 1월에는 ‘최선’이라고 기대하며 시리자를 뽑았지만, 이번에는 ‘차악’이란 심정으로 시리자에게 표를 줬다.
그 결과로 계속 정권을 유지하게 된 시리자 정당과 정부는 이미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 이 당은 더 이상 긴축에 반대하는 다양한 좌파와 활동가들의 연합체라기보다, 긴축을 수용한 치프라스와 그의 충성스런 지지자들의 정당으로 보여진다. 치프라스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좌파 연합체로서 성격도 희미해졌다. 시리자 정부의 전 재무장관이었던 바루파키스는 ‘치프라스는 영혼을 팔아서 시스템의 일부가 됐다’고 한탄했다.
이번 선거에서 시리자 내의 좌파들이 왼쪽으로 이탈해서 건설한 ‘민중연합’이 득표율 3%를 못 넘으며 의석을 하나도 얻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2.9%를 득표했는데, 돈도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창당 한달만의 선거라는 점이 불리했을 것이다.
특히 시리자가 퍼뜨린 사표 논리도 작용한 것 같다. 즉 ‘지금같은 박빙 상황에서, 민중연합을 찍으면 시리자가 패배하고 우파인 신민주당이 득세한다’는 논리였다. 공산당 등이 시리자보다 오히려 민중연합을 더 공격한 것이 좌파의 분열상을 더 부각시킨 점도 있을 것이다. 민중연합과 다른 극좌파들의 선거연합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아쉽다. 그랬다면 긴축 반대와 투쟁 호소의 목소리가 의회에 반영될 기회가 충분히 생겼을텐데 말이다.
민중연합 자신의 실책도 있었다. 민중연합은 시리자와 차별성을 긋겠다며 유로존 이탈(과 드라크마화로 복귀)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일반적인 반긴축 반자본 과제보다 더 강조했다. 이를 이용해 시리자와 주류언론은 민중연합을 ‘드라크마 좌파’라고 매도했다. ‘드라크마화로 돌아가면 통화가치 하락과 물가 인상 속에 오히려 저소득층에 더 힘들어진다’는 거였다.
어떤 통화냐가 아니라 긴축 중단이 핵심이며, 그것에 수반되는 유로존 이탈 속에 기층 민중의 삶을 위한 무슨 조치들이 필요한가가 쟁점이 돼야 했는데 말이다. 트로이카에 굴복해 긴축을 수용한 시리자와 긴축을 거부하며 계속 싸우려는 좌파의 구분이 더 중요했다.
결국 민중연합은 시리자의 굴복이 낳은 대중의 냉소·환멸을 저지하는 방파제를 세워내는 데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이 속에서 큰 폭의 투표율 하락이 나타났고, 정치권 전반을 비꼬고 조롱해 온 ‘중도연합’이 일부 표를 가져갔다.
그럼에도 시리자의 일부였지만 그것에 용해되지 않은 좌파가 2012년 이후 최초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본격화할 긴축에 맞선 투쟁은 이제 시작이고 진정한 승부는 선거보다는 여기서 판가름 날 것이기 때문이다.
시리자에서 독립적인 좌파의 존재와 그들이 건설할 반긴축 투쟁과 연대는 너무나 중요하다. 민중연합이 이번에 얻은 15만 표와 수천의 활동가들은 그 종자돈이다. 시리자 정부가 긴축을 강행하면서 더 많은 이탈이 있을 것이고, 민중연합은 그들을 흡수하며 더 큰 단결과 투쟁으로 나가야 한다.
시리자라는 더 큰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배우고 좌파적 목소리를 내다가, 용해되지 않고서 진지한 투사들과 함께 나온 극좌파들은 여기서도 중심적 구실을 해야 한다.
나치의 성장 가능성과 위협이 심각해지는 지금, 이것은 특히 중요하다. 그리스에서 나치의 위험은 실질적이다. 최근에 교육방송 다큐영화제 ‘EIDF 2015’에서 상영한 <아고라: 민주주의에서 시장으로>를 보면 이것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거기에는 긴축 5년을 거치며 ‘나는 짐승이나 쓰레기가 아니다’하고 절규하는 사람들 속에서 급속히 성장하는 황금새벽당이 나온다. 이들이 흑인 이민자의 등에 칼로 나치 문양을 강제로 새긴 살벌한 장면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다큐멘터리는 2011년 투쟁의 절정기에 신타그마 광장에서 거대한 집회와 점거, 자유로운 토론과 발언 속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피웠던 모습도 보여 준다. 시리자를 넘어선 좌파의 진정한 과제는 바로 이런 투쟁과 희망을 되살리는 것이다. 그리스의 극좌파들이 여기서는 선거에서처럼 강령적 차이를 부각하며 선을 긋기보다 힘을 모으길 기대한다.
● 폴크스바겐과 ‘클린 디젤’의 대사기극
폴크스바겐 스캔들이 전세계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이 스캔들은 미국과 유럽 자동차 산업의 경쟁, 전기차의 등장과 세계 자동차 산업의 재편 등을 배경으로 하는 것 같다. 동시에 이 스캔들은 자본주의 기후변화에 대한 고민도 던지고 있다.
이에 대한 한 <블룸버그> 칼럼니스트의 지적은, 자본주의에서 기후변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이유를 잘 보여 주는 것 같다. 그의 지적은 이렇다.
‘폴크스바겐 스캔들의 배경인 클린 디젤 전략은 유럽 각국 정부가 주도한 정책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 속에 유럽 정부들은 친환경을 내세워 가솔린 엔진에서 디젤 엔진으로 바꾸는 정책을 주도했다.
디젤 엔진은 탄소를 적게 태워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고 세금과 규제를 줄였다. 결국 유럽에서 디젤 자동차 판매는 늘었고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디젤엔진은 미세 먼지와 질소산화물 등 인체에 해로운 물질은 더 많이 배출했다.
더구나 더 많은 자동차가 팔리면서 온실가스는 늘어났고 지구온난화는 더 심화했다. 유럽의 많은 도시는 질소산화물이 늘어나는 공기오염에 직면했다. 폴크스바겐이 역사상 가장 큰 사기를 저질렀다면, 그런 사기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준 것은 유럽 정부들이다.’
그렇다면 지금 부상하는 전기차는 다를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전기차에 필요한 전력도 결국 석탄, 석유, 천연가스 연소 과정에서 나온다. 더구나 전기차의 제조공정은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한다.
결국, 이윤 논리에 도전하지 않고서 기후변화가 가져 올 재앙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 ‘변혁재장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 http://rreload.tistory.com/164
* ‘변혁재장전’의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변혁 재장전’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 세상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월 첫째주 세상읽기 - 한일 정상회담/ 샌더스/ 진보 통합 (0) | 2015.11.04 |
---|---|
10월 둘째주 세상읽기 - 반드시 막아야 할 박근혜의 ‘역사 쿠데타’ (1) | 2015.10.14 |
9월 첫째주 세상읽기 - 그리스의 새 좌파/ 김승교 동지 추모 (0) | 2015.09.02 |
8월 셋째주 세상읽기 - DMZ 지뢰 폭발, 텐진항 대폭발 (0) | 2015.08.17 |
8월 첫째주 세상읽기 - 그리스, 국정원, 세월호, 이주노조 (0) | 2015.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