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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우리 시대의 거울, 1930년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4. 6. 18.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세계 체제의 역사를 보면 대체로 "글로벌화"를 향해서 달려가는 것은 대부분 시대들의 경우에 그대로 확인됩니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탈국경" 지향성은 자연스럽습니다. 한국에서 인건비가 오르면 방직 공장을 방글라데시에서 짓고, 휴대폰을 사주는 고객들이 주로 외국에서 산다면 삼성, LG처럼 그 휴대폰들의 90% 이상 해외에서 만들고, 이런 것은 사실 자본의 "생리"입니다. <공산당 선언>은 유명하게도 "노동자들에게 조국이 없다"고 성명했지만, 실은 자본가들에게야말로 궁극적으로 조국이 없습니다. 글로벌 생산, 소비 체계는 그들의 진짜 조국이지만, 그들에게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란 그저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한데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위기", 또한 "공황"에 봉착합니다. "공황"을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체는 결국 "국가"입니다. 그래서 대규모적 위기 내지 공황 이후에는 종종 "국가" 본위의 시대가 세계 체제 역사상 다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는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2008년 세계 공황을, 국가들이 나서서 공적 자금 퍼붓기라는 미봉책으로 "땜질"해서 통과했는데, 그 공황 이후 국가 본위의 경제라는 새로운 그림이 결국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사에서는 이와 같은 시대는 한 번 이미 있었습니다. 바로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의 시대, 1930년대이었습니다. 그 시대를 보면 어쩌면 우리를 기다리는 미래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해 약간의 시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30년대는 일단 기술이 대단히 빨리 발전되는 시기이었습니다. 군비의 상당 부분이 연구개발비용으로 들어가는 만큼 군사화의 시대들은 대개 기술 발전이 빠릅니다. 1930년대도 그랬습니다. 1930년에 제트엔진이 발명되어 1930년대말에 제트 전투기들이 이미 나오고 있었고, 1936년부터 헬기의 실용적 사용이 시작됐습니다. 레이더 발전이 시족되고, 텔레비전이 계속 진화돼 1940년에 세계 최초의 칼라TV까지 나왔습니다.

디즈니와 일본 스투디오들이 주도하는 애니메이션 발전 역시 괄목할 만했습니다. 자동화된 세탁기는 미국에서 최초로 1937년에 특허가 나오는 등, 우리가 익히 아는 "가전"들은 이미 1930년대에 속속 나왔습니다. , 2차세계대전의 파괴 이후에 1945년 이후 "자본주의 황금기"가 와야 세탁기, 세척기, TV, 청소기 등 가전들의 생산과 소비가 대량화될 수 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가전 제품의 생산은 특히 1950-53년 한국 전쟁 시기에 빨리 성장했습니다. 전쟁은 자본주의 경제로서 "최고의 특수 시대"인 셈이죠...

1930년대는 무엇보다도 "국가화된 경제", 즉 국가가 (소련처럼) 공업 경제를 아예 국유화시키거나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처럼 대기업들을 통제, 지휘하는 시기로 기억돼 있습니다. 1945년 이후에 패권 국가가 된 미국에서는 1940년까지만 해도 정부 지출이 GDP10% 밖에 안되었지만, 사실 미국은 다소 예외적이었습니다. 그 당시 패권 국가로 아직 남았던 영국만 해도, 케인스의 <고용, 이율, 화폐의 총론>이란 기념비적 저작이 나온 1936년 그 당시에는 정부 지출은 이미 GDP의 무려 29,3%이었습니다.

패권 국가가 이 정도이었다면 도전 국가들은 더 많이 나갔습니다. 나치 독일에서는 정부 지출 비율은 1936년에 30% 정도이었지만, 그 지출 중에서는 군비가 70% 이상 차지하기에 그 성장도 아주 가파르게 이루어졌습니다. 도전 국가들의 경우, "국가화된 경제"란 대개 전략 물자의 중앙집권적 배분, 국채 발행, 배당금 지급의 통제와 주주 권리의 정지, 그리고 대기업의 전략 산업 투자 유도와 물가 단속 등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국가화된 경제의 "모델"격은 바로 (일본인) 관료들이 기업의 투자와 생산 등을 치밀하게 지휘, 감독했던 만주국이었습니다. "만주 모델"은 나중에 박정희 시대 한국 경제 모델의 청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주국만이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국민당 치하의 중화민국에서도 1937년 전면전 발발 이후부터 공업 국유화의 바람이 일어나, 1944년에 이르러 공업 생산의 절반 정도는 국영 공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중국형 "-국가 주도 자본주의"란 사실 이미 민국 시대에 형성된 것이죠.

국가화된 경제란 '인민'들에게는 과연 득이 되나요? 군사화된 국가의 경우, 1970년대 박정희 시대의 한국도 그랬듯이, 국가적인 경제 성장이 다수에게 가져다주는 혜택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1930년대도 대체로 그랬습니다. 나치 독일의 1933-37년간 실질 GDP 성장은 아예 미증유의 55%에 달했지만, 잉여의 대부분은 무기 생산 등에 재투자되어 노동자들에게 배분되는 몫은 1929년에 비해 소폭 하락했습니다.

개인 소비량은 19% 정도 늘어났다지만, 그건 주로 중산층 이상의 소비 증가분이었지, 노동자들의 경우 실업 해소나 관에서 조직해주는 휴가 여행 등으로 혜택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소비는 별로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스탈린의 소련 역시 엄청 빠르게 GDP 성장을 이루었지만, 노동자들의 소비는 줄어들고 상당수 농민들이 아예 아사 지경으로 몰렸습니다 (1931-33년 아사자만 해도 2-3백만 명 정도이었습니다).

조선에서는 <조선소작조정령> (1932) 내지 <소작료통제령> (1939) 등으로 국가가 다수 농민들의 삶에 훨씬 더 깊이 개입하게 되었지만, 농민들의 실질적 생활 수준은 결코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드물게 제조업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이 1933-40년 사이에 약 20-25% 오른 경우는 바로 지금의 중국처럼 그 당시의 떠오르는 공업 대국 미국이었습니다. 한데 실업률이 하도 높아 1938년만 해도 여전히 20%이었습니다. 실업을 해소키기고 실질임금의 가파른 인상을 더더욱더 촉진시킨 것은 ... 물론 제2차 대전의 발발이었습니다.

빠른 기술 발전, 국가화되는 경제, 점차 굳어지는 국경들, 그리고 계속 벌어지는 격차와 대중들의 생활 수준의 동결 내지 하락, 그리고 결국에는 경제 문제들을 해소시켜주는 큰 전쟁의 도래... 오늘날과 약간 좀 겹쳐지죠? 한데, 오늘날 여론 조작 등 대중들에 대한 행위자성 박탈은 소셜 미디오 알고리즘 조작, 댓글 공작 등 "소프트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적어도 제도적 민주주의가 남아 있는 사회들에세는 반대자들이 고립화를 당해도 신체적인 위해를 당하지 않지만, 1930년대는 프로파간다 국가와 경찰 국가, 수용소 국가 등이 공존했던 시기이었습니다.

수용소들이 소련이나 나치 독일 같은 초강경 권위주의 국가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민족주의를 박멸하려 했던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아마도 오늘날 소셜 미디오를 통해 퍼져나가는 각종의 국가적 메시지와 비슷한 것을 찾자면 1930년대의 포스터들을 주목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틱톡 비디오처럼, 1930년대 포스터들이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를 내면화하기 쉬운 "이미지" 형태로 대중화시켰습니다. 사실 북한의 반미 포스터도 남한의 반공 포스터도, 미학적으로 봤을 때에 1930년대 일제의 전쟁 동원, "내선 일체" 포스터들을 거의 그대로 계승한 것입니다.

2008년 이전과 같은 대기업 본위의 탈국경적 신자유주의는 이미 퇴조기입니다. 새로운 국민 국가 본위의 시대가 오고, 이 시대의 모습을 좀 더 깊이 이해하자면 1930년대라는 근대사상 최초의 "국가화된 자본주의" 시대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과거가 "그대로"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한데 오직 "큰 전쟁"만이 누적된 경제 문제들을 "해소"시킬 수 있었던 1930년대 말기의 상황은, 전쟁들이 계속 지속되고 새로운 전쟁들의 위험성이 심화되는 이 시대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1930년대 말기의 인류는 제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를 예방하지 못했습니다. 이 역사적 경험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더 잘 할 수 있을까요?

(기사 등록 202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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