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팔레스타인이 자유로워질 때까지 우리는 거리를 떠날 수 없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종청소와 대학살이 7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보통 많은 서방언론이 ‘하마스가 데려간 인질을 구출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말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이스라엘은 현재 하마스보다 30배 더 많은 팔레스타인 '인질'을 감금중에 있다. 더구나 하마스는 어떻게든 이스라엘에 잡혀간 자신들의 동료(인질)들을 구출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반면에, 이스라엘군은 정작 인질 구출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
인질을 구출하고 교환할 수 있는 협상과 휴전을 거듭 거부할 뿐 아니라, 인질이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무모한 폭격과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결국 이스라엘의 목적은 인질 구출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죽이는 것에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이것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기에 국제형사재판소는 하마스와 함께 네타냐후도 전쟁범죄자로 규정하고 체포 영장을 신청했다.
그러자 네타냐후와 시온주의자들은 또 역시나 '너 반유대주의', '너 하마스' 이러면서 국제형사재판소를 비난하고 있다. 바이든도 네타냐후와 하마스를 함께 전쟁범죄자로 규정한 국제형사재판소ICC를 비난하며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는 동등성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네타냐후는 하마스와 비교가 불가능한 최악의 전쟁범죄자, 학살자이며 반드시 당장 체포돼야 하기 때문이다.
서방의 정치적 도구라고 비판받던 국제형사재판소와 국제사법재판소마저 이스라엘 정치 지도자들을 전쟁범죄자로 규정하고 라파 침공 중단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기는 하다. 이스라엘과 시온주의의 국제적 고립,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의 헤게모니 쇠퇴를 보여주는 일이다. 그래서 미공화당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은 ‘다음으로는 미국이 전범으로 기소될 수 있다’며 걱정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에서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학생들의 연대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아래 사진처럼 고등학생들까지 행동에 나서고 있다. 더구나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 대학들의 조교, 교사, 연구원 등으로 구성된 노조의 조합원들은 79%의 찬성으로 학생들의 팔레스타인 연대 농성을 학교당국이 부당하게 탄압하면 언제든 파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어서 실제로 5월 20일에 부분 파업에 들어갔다. 이것은 지난해 같은 소속 노조가 빅3 자동차 회사에 맞서 파업하고 승리한 여파기도 하다. 경제투쟁의 승리가 정치투쟁을 고무하고 가져온 셈이다. 이런 투쟁과 연대의 상승 작용은 더욱 더 강화되어야 한다. 그 바탕에는 7개월 동안의 대학살 속에서도 결코 무릎꿇지 않고 있는 팔레스타인 민중이 있다.
저명한 좌파 이론가인 피터 후디스는 “중요한 것은 가자 주민의 강인한 회복력이다. 지금까지 가자 주민이 하마스의 은신처나 인질을 밀고했다는 보고는 단 한 건도 없다....많은 가자 주민들이 자신들의 집과 땅을 지키기 위해 중앙과 북부에 남아 있거나 계속 돌아가고 있다”고 이것을 지적했다.
그리고 <예닌의 아침>의 작가인 수전 아불하와는 이렇게 썼다. “가자는 이제 전 세계이다. 가자는 우리 삶의 의미이자 진실의 순간이다... 잔해와 죽음, 비참함이 가득한 어둠에서 우리를 인도하는 가장 위대한 빛이 솟아난다... 가자지구는 인류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시온주의 엔진의 바퀴가 계속 돌아가도록 방치한다면 더 이상 파시즘의 한계는 없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자유로워질 때까지 우리는 거리, 전장을 떠날 수 없다... 미래는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미국 대학의] 젊은이들이 앞장서서 보여주고 있다.”
#CeasefireNOW #BDSNow #EndIsraelsGenocide
● 탄핵 위험 피하려고 전쟁 도발하는 윤석열
남이 대북전단을 보냄 -> 북이 대남전단을 보냄 -> 남이 대북확성기 설치와 방송 -> 북이 대응 사격 -> 남이 몇 배로 보복 공격 -> 국지전 -> ???
이것이 윤석열의 지지율 추락과 탄핵 위기 탈출 전략인 것이 갈수록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결코 대다수 탈북자를 대표할 수도 없는) 극우 ‘탈북단체’는 미국 정보당국이 지원하는 돈을 쫓아서 대북전단을 보내 왔다. 이제는 윤석열 정부가 직접 탈북단체들을 뒤에서 독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임하고 감옥가기 싫어서 가자에서 전쟁과 학살을 지속하는 네탸냐후와 윤석열은 너무 닮았다.
윤석열은 북한 대남전단을 “오물”, “비열한 도발”이라 했는데, 그러면 과거에 남쪽에서 보내던 대북전단은 무슨 품위와 교양있는 선전물이었던가? 김정은 부인을 능욕하고 맨날 여성노출 사진과 심지어 노무현-이설주 합성 사진까지 있었던 것으로 악명 높은게 대북전단이었는데... 최근에는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인 성격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보면 요즘 디지털 성범죄, 성폭력의 트랜드인 소위 ‘지인능욕’을 앞장서 개척한 세력들 중에 하나가 바로 (아마도 국정원과 연결된) 반공냉전극우 세력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역시나 계급-젠더-민족 모순은 분리되기 어렵고 항상 복합적으로 교차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저질의 위험한 행태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옹호돼 온 것도 기막힌 일이다. 얼마 전 평산 쪽으로 워크샵 다녀온 사람에게 들으니 문재인 집 앞에서 '문재인 간첩, 사형' 외치는 극우 유튜버들도 여전히 매일 확성기 방송 중이라고 한다. 극단적 수준의 혐오선동, 폭력적 괴롭힘, 스토킹이지만 2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이것을 막으려는 법과 제도를 추진할 때 일부 언론과 지식인들이 가로막으며 내세운 논리 또한 ‘표현의 자유’였다. 비판적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할 자유를 철저히 가로막는 윤석열 시대에 이처럼 ‘표현의 자유’는 주로 혐오와 폭력을 부추기고, 평화와 생명을 위협하는 무기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의 한반도 위기 패턴에서 특히 더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의 바이든 정부와 일본의 기시다 정부도 대중국 봉쇄 강화나 군국주의 재무장이라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윤석열의 불장난을 방조할 가능성이다. 정치적 위기와 탄핵 위험을 피하려고 위험천만한 전쟁 도발 좀 그만하도록 하루 빨리 윤석열 정권을 끝내야 한다.
● 멕시코, 남아공, 인도 선거 결과를 보고
멋진 순간. 멕시코에서 여성들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으로 다국적 기업들에게 초착취당하고, 마약카르텔에 의한 여성폭력과 살해도 극심한 나라였다. 하지만 ‘한 명도 더 잃을 수 없다’고 외치며 싸운 여성들의 투쟁과 적극적 여성할당제로 이제 대법원장과 중앙은행 총재와 국회의장이 여성이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까지 탄생했다.
‘여성할당제’를 극렬 반대하는 이준석이 싫어할 얘기이다. 멕시코의 오브라도르 중도좌파 정부는 노동자 임금 인상, 노조 설립 지원, 노동시간 단축, 부자 증세 등에 성과를 내서 이번에 6년전보다 더 큰 선거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부패, 범죄, 불평등은 여전하고 더 심해진 면도 있는데 이것은 미국의 영향력과 다국적 기업, 마약카르텔의 힘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6년만에 해결하지 못했다고 오브라도르 정부를 비난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지나치게 타협하며 굴복하고 있다는 좌파적 비판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제 새정부의 실천이 중요하다. '선거의 해'라는 올해에 최근 멕시코와 달리 남아공 선거 결과는 우울하다.
남아공의 민족회의는 세계 최대의 빈부격차같은 계급차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결국 인종차별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며 이번 선거에서 30년만에 패배했다. 그 자리를 좌파보다는 인종주의적 우파나 믿기 어렵고 위험해 보이는 정파들이 빼앗아가고 있다. 민족회의를 왼쪽에서 비판하던 '경제자유투사'당의 의석이 오히려 줄어든 것이 특히 아쉽다.
물론, 가장 우울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인도 총선 결과이다. 네오파시스트 모디 정부가 다시 집권 연장하고 개헌 가능선까지 확보할 것이라는 안좋은 소식이다. 이제 인도의 소수자와 무슬림들에게는 더 큰 고통이 다가오고 있다. 모디 정부는 무슬림을 강제수용하고 인종청소하겠다는 구상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전, 꼭 모디같이 보이는 악당을 시원하게 박살내는 폭발적 액션 영화 <몽키맨>을 흥미있게 봤는데, 역시 그것은 영화에나 나오는 일이었다. 한편, 프랑스에서도 2년전 마크롱을 위협했던 '신생태사회민중연합'(오른쪽 사회당부터 왼쪽 공산당까지)이 분열 해체되고 신나치 르펜의 당이 유럽의회 선거 1위를 넘보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어디서든 좌파는 선거에서 독자적 순수성만 고집하긴 어렵다...
* 좋은 소식과 추가적 사실 정정. 120석이라던 출구조사 결과를 뒤집고 인도 야당연합이 총 543석 중에서 230석을 차지하는 개표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인도 민중은 모디에게 강력한 타격을 가했다. 인도에도 모디에 충성하는 엉터리 여론조사와 언론이 많다더니...
● ‘군인의 생명은 소중하지 않다’는 노골적인 선언
군대에서 사망 사고가 연달아 터지고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와 국힘은 채해병 특검법을 거부했다. 이것은 ‘군인의 생명은 소중하지 않다’는 노골적인 선언이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지난 일주일간 "사망 사고 하나하나를 채 상병 사건 식으로 보면 ... 우리 군이 어떻게 됐겠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중대재해법을 군에도 적용하자는 건가", "이런 군대는 이미 군대가 아닐 것이다", "안전지상주의에 빠진 군은 전쟁할 수 없는 나약한 군대"라는 사설과 칼럼을 계속 실었다.
그래서 일부에서 ‘윤석열이 임성근과 도대체 무슨 관계이길래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두면서 챙긴 것인지는 큰 미스터리’라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의문으로 보인다. 임성근과 특별한 관계가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윤석열은 ‘병사 하나 죽을 때 마다 군 지휘부가 책임져야 하는 이런 식으로 하면 누가 군 지도자를 하려고 하겠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훈련을 하거나 부대 지휘를 하다가 좀 죽을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은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악하려고 했을뿐 아니라, 이태원 참사에서도 자신은 물론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서울시장 등 아무도 책임지게 하지 않았다. 그러니 더더욱 ‘150여명이 죽어도 책임지지 않는게 맞는데 1명이 죽었다고 사단장이 책임져야 하나’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노동자와 시민뿐 아니라 군인의 생명을 얼마든지 사라져도 좋은 도구로 생각하니 그토록 툭하면 북한과 전쟁을 불사하자고 앞장서 난리쳐 온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윤석열은 자신과 생각이 일치하는 조선일보가 매년 성대하게 주최하는 ‘아시안리더쉽’ 어쩌구하는 요란시끌한 돈잔치 포럼에 지난주에 직접 참가해 축사를 했다. 3년 연속 한번도 빠짐없이 참가한 것이다. 4.3 추모제에는 ‘대통령이 모든 행사에 매년 갈 수는 없다’고 하면서 가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아무리 요즘 조선일보가 윤석열을 좀 욕하지만, 기본으로 이들의 동료의식은 유별나다.
윤석열은 축사에서 “전통과 권위의 정론지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조선일보”라고 격찬을 했다. 하지만 아래 조선일보의 지배구조를 보면 이것은 그냥 ‘방씨네가족신문’이다. 이런 조선일보에 가서 아첨하는 윤석열, 조선일보의 눈치보던 정치인들, 툭하면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던 ‘진보’ 정치인들, 조선일보와 함께 '22:88 사회를 바꾸자'던 ‘노동운동가’들, 조선일보에 달려가 글쓰는 지식인 엘리트들, 모두가 한심하고 믿음이 가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국민연금에 대한 민주당의 ‘통 큰 양보’는 잘못이다
여전히 윤석열과 국힘을 하루 빨리 끌어내리는 게 우리 사회의 주요 과제이고 그럴 시간도 부족하긴 하지만, 민주당에 대해서도 강한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민주당은 지난 며칠 사이에 소득대체율을 44%로 하는 ‘통큰 양보’와 ‘대승적 결단’을 하겠다면서 ‘국민연금 개혁’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자고 윤석열에게 재촉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당장 납부해야할 보험료는 크게 오르지만 나중에 받는 돈은 여전히 용돈 수준에 머물게 된다. 이것은 지금도 먹고살기 빠듯한 사람들에게 큰 부담을 주면서 노후의 불안과 빈곤을 그대로 방치하자는 말이다.
얼마전 공론화위에서 다수 시민들이 지지하며 채택된 ‘보험료 13%, 소득대체율 50%’도 사실 아쉬운 수준이다. 그런데 국힘은 그것을 거부하며 소득대체율 43% 고집하며 계속 개악을 요구해 왔다. 여기에 이재명 민주당이 44%로 타협을 추진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국민용돈화를 위한 개악 야합이 아닐 수 없고 완전한 이율배반이다.
왜냐하면 민주당은 공론화위에서 시민들이 지지한 안을 찬성한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대폭 후퇴하면서 국힘과 타협을 추구하고 있다. ‘통큰 양보’?, ‘대승적 결단’? 도대체 누가 이재명과 민주당에게 이런 식으로 우리의 삶과 노후와 미래를 '통크게 양보'할 권리를 줬다는 말인가?
이것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협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을 따르는 것’이라던 말을 전부 다 뒤집는 것이다. 윤석열, 국힘과 ‘협치’하기 위해서 공론화위가 확인한 민심을 배반하는 것이다. 민심의 다수가 추미애 의장을 원하는데도 거부했듯이 민심의 다수가 안전한 노후를 원했는데 그것을 거부한 것이다.
조국혁신당의 태도도 납득하기 어렵다. 조국혁신당은 공론화위가 채택한 방안이 맞다면서 그래도 민주당 방안을 지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보다 앞장서 개혁을 추구하고, 민주당이 타협하고 주춤거릴 때는 더 강하게 개혁을 추구하는 쇄빙선이 된다고 하더니? 사회권 선진국으로 가자더니? 참으로 실망이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재명 민주당의 이런 야합 추진을 조중동과 한겨레경향과 김진표 등이 지지하며 빨리 통과시키자고 나서고 있다. 특히 조중동은 ‘일단 더내고 덜받는 개악만이라도 민주당이 하자고할 때 21대 국회에서 먼저 통과시키고 국민연금, 기초연금, 직역연금을 통합하며 구조를 개악하는 것은 22대 국회에서 하면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과 국힘은 구조적 개악이 없이 보험료만 올리는 것은 부족하다며 버티는 중이다. 아마도 “거대 양당 연금 개혁안은 ‘사기’”라고 하면서 “구연금·신연금 분리”를 주장하는 이준석과 개혁신당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연금 문제에서 최악의 세대간 갈라치기 개악 추구세력은 이준석과 개혁신당이기 때문에 보수우파로서 선명성 경쟁과 지지층 이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어차피 윤석열과 국힘이 안받을 것이니까, 윤석열의 연금개혁의 허구를 드러내면서 주도권을 잡아보자’고 이런 방안을 던진 것이라고 아무리 좋게 해석해줘도, 이것은 잘못된 어리석은 방향이다. 이렇게 ‘더 내고 덜 받는 개악’을 먼저 던져놓고 21대 국회가 끝나면, 22대 국회는 그것을 기준삼아서 더 개악하는 방향으로 끌려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TV 토론을 돌아보면 윤석열이 주도해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모든 후보들(이재명, 안철수, 심상정)의 초당적 합의 장면이 있었다. 이 문제는 ‘40년 후면 기금이 고갈된다’는 엉터리 예언 속에 청년세대와 노년세대 갈라치기가 너무나 강력하고, 그래서 보험료를 올리고 지급금액을 조금이라도 낮춰야 한다는 게 기정사실처럼 돼 왔다. 이것이 민주당 후퇴의 배경에 있다.
물론 연금문제를 지금 이대로 나두자는 것이 아니다. 적립식 연금은 고령화와 저출생으로 재정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국민연금 장기체납자나 형편 때문에 가입도 못하는 열악한 처지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이 ‘더 내거나 덜 받게’되는 연금 개악을 통해서만 이것을 해결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지금도 용돈 수준인 연금을 지금처럼 개악한다면 OECD 1위 수준의 노인 빈곤률과 자살률은 더 악화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재벌들이 운영하는 사적연금으로 밀려갈 것이다. 필요한 것은 어떻게 부를 재분배하고 보편적 복지를 강화해서 공적연금을 제대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다른 목소리다.
공론화위에서 시민들이 숙의하고 토론하며 채택한 ‘보험료 13%, 소득대체율 50%’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다. 이야말로 윤석열과 국힘이 끝까지 거부하면 국회에서 민심에 따라 통과시켜야 방안이다. 민주당은 여기서 후퇴하지 말아야 하고, 조국혁신당도 그런 후퇴를 돕지 말아야 한다. 진보정당들이라도 당장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
● 퀴어문화축제와 미국, 영국, 독일 대사관에 대한 논란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와 퍼레이드에 미국, 영국, 독일 대사관이 파트너로 이름을 올리고 광장에 부스를 차리는 것에 대해 논란이 크다. 먼저 이 문제에 대해 일부에서처럼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에게 ‘핑크워싱의 주도자’, ‘전쟁과 학살의 들러리’, ‘우경화와 배신’이라고 도덕적 매도나 조롱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과도하기 때문이다. 퀴퍼조직위는 기본으로 차별과 혐오가 극심한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해서 애써온 사람들이다. 한국은 여전히 정부, 서울시, 기독교주류, 혐오세력들이 퀴퍼 행사를 사사건건 가로막고 방해하고 있다. 이 속에서 연인원 10만명이 참가하는 거대한 행사로 발전한 퀴퍼를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소수의 퀴퍼조직위 사람들이 직장을 다니고 생계를 해결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서 적금을 깨고 대출을 받으며 매년 적자가 나는 행사를 어렵게 준비한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기업 후원을 받고 대사관을 유치한 것도 무슨 대단한 상업적 욕심보다, 성소수자의 존재와 권리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으며 안전한 행사를 하고픈 고려일 것이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춤추는 기분’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그럼에도 이미 몇 년전부터 미국 대사관 등의 부스 참여에 대한 문제제기가 존재해 왔고, 올해는 너무나 특별하다.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 동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끔찍한 대량학살과 인종청소를 진행하고 있고, 미국의 협력과 지원이 여기에 결정적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개월 동안 우리가 매일같이 목격한 것은 생지옥이 된 가자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었다. SNS에는 이런 글이 매일 올라오고 사람들은 매일 울고 있다. "오늘 아침 저는 목이 잘린 아기의 시체를 흔드는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지난 주에는 이미 죽어 임산부에게서 아기가 꺼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 달에는 조각난 형의 시신을 배낭에 넣고 다니는 동생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행동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퀴퍼는 정치적 행사가 아니다’, ‘다른 곳도 미국 정부나 대기업의 후원의 받는 경우가 있다’, ‘시일이 너무 촉박해서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은 다가오지 않는 게 사실이다. ‘고생하는 퀴퍼조직위 분들이 알라서 잘 판단하고 해결할 것’이라고 기다리며 격려만 하기에는 지금 타들어가는 마음이 가라앉지가 않는다.
매해마다 퀴퍼에서 미투에 나선 여성들을 지지하고, 혐오세력의 차별과 폭력에 맞서고,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했듯이, 올해는 폭격과 학살 속에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에 연대하는 의미를 담으려는 기획과 준비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을 떨치기 어렵다. 그런 고민이 없지 않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반영할지에 대한 의견의 차이일까?
모르겠다. 대량학살의 핵심 공범인 미국 대사관 등이 예전처럼 퀴퍼에 참가하는 것에서는 차이를 느끼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퀴퍼를 보이콧하고 불참하자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내일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은 이스라엘 대사관 옆에서 학살 규탄 집회를 하고 퀴퍼에서도 미국 대사관 등의 부스 앞에서 항의 캠페인을 한다고 한다.
다행히 퀴퍼조직위도 이런 캠페인을 이해하고 보장해 준다고 한다. 정말이지, 이번 퀴퍼에 참가한 수만 명의 사람들 속에서 이스라엘, 미국 규탄 목소리가 거대한 파도처럼 일렁이는 모습을 보고 싶고, 수천 수만명이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피켓, 깃발을 들고 구호를 따라 외치며 행진하는 장면을 꼭 보고 싶다. 퀴퍼 조직위의 더 적극적인 자세를 기대하고, 문제의식을 가진 더 많은 분들이 이런 행사와 행동에 동참하길 기대한다.
#CeasefireNOW #BDSNow #EndIsraelsGenocide
● 영화 <생츄어리>와 곰보금자리 프로젝트
어제 저녁에 야생동물들의 삶과 죽음, 생존과 보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 <생츄어리>를 보고 왔다. 영화가 끝나고 최태규 수의사와 곰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가 진행하는 간담회에도 참석했다. 영화는 동물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였다.
동물들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지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동시에 동물들에게 인간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고, 동물에게 반성, 사과하며 치유를 제공하고픈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고민과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또 영화를 보다보면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의 공통점을 생각하게 된다. 하루 종일 철창 속에 갇혀서 정형행동을 하는 동물을 보면서 ‘탈시설’의 과제를 고민하게 되고, 동물에게 보금자리(생츄어리)와 보살핌을 제공하려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역사회 돌봄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또 영화 속에서 동물의 안락사를 고민하는 논의를 보면서,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찬반 논란이 떠오른다.
간담회에서도 누군가를 돌보거나 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 등을 했던 분들이 자신의 경험과 영화를 보면서 느낀 감정을 이야기했다. 물론 동물과 인간은 다르다. 생츄어리는 탈시설이기 보다는 더 편안하고 큰 시설이고, 안락사에 대한 동물의 의지와 선택은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인간이든 동물이든 강제로 가두고, 자유를 박탈하고, 폭력을 가하고, 생명을 빼앗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이다. 그래서 간담회에서 동물이 겪는 고통과 인간이 가하는 폭력을 보면서 무력감과 절망을 느낀다는 사람들의 말에,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저지르는 거대한 폭력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곰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들이 무력감과 환멸에 굴복하지 않고, 끝없이 작은 돌을 쌓아가고 있듯이, 우리도 이스라엘과 그 동맹세력들의 학살을 막아내기 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면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수밖에는 없다.
영화가 좀 더 친절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예컨대 곰보금자리를 위해 후원하는 방법 https://tinyurl.com/2xs9gowb 을 알려 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
● SWP의 11년만의 사과를 보며 노동자연대에 하고픈 부탁
아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좌파 단체인 노동자연대(노연)에게 괴롭힘을 당한 성폭력 피해자들을 부족하나마 곁에서 도와 왔다. 그러면서 단지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며 비판했을 뿐인데 노연에게 온갖 인신공격을 당하다가, 나중에는 5천만원 민사소송이라는 보복까지 겪었다.
그런데, 노연의 ‘국제사회주의 전통’은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에서 이어졌다. 그리고 SWP는 노연보다 앞서 성폭력 피해자들을 괴롭히고 가해해서 영국 좌파 운동에서 심각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양상과 패턴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이것이 단지 우연이거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조직의 문제라고 생각해 왔다.
다만 영국 SWP는 한국의 노연처럼 피해자의 조력자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하고 그러지는 않았다. 그 점에서는 한국 노연이 영국 SWP보다 훨씬 더 심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전혀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그런데 어제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됐다.
영국 SWP가 무려 11년만에 잘못을 반성하며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이 성명에서 SWP는 ‘당시에 우리의 대응은 전적으로 부적절했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한다. 이를 교훈으로 삼겠다. 이제 성폭력 사건 처리 방식을 변경해 무관용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2013년의 실수에서 배웠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https://socialistworker.co.uk/press-releases/statement-2013/
이 소식을 듣고 일단은 반가웠다. 비록 11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언제나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가장 빠른’ 법이니까, 끝까지 반성과 사과를 거부하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니까.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웠고, 성명을 읽어보고는 실망스러웠다. 실제로 영국 좌파들 속에서도 반응은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1년만의 너무 뒤늦은 사과라는 것에 대한 지적뿐 아니라, 막상 사과 성명을 어디에도 공개해 올리거나 공유하지 않고 있고, SWP 홈페이지에서도 찾기 어렵게 숨겨둔 것부터 이상하다는 지적이다. 내용에서도 막상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구체적이지가 않고, 이미 다 해결된 지나간 과거처럼 말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받고 있다.
11년전에 SWP에서 분리해 나온 RS21(21세기 혁명적 사회주의)도 강력 비판했다. ‘피해자들은 삶이 파괴됐고 아직도 트라우마 속에 살고 있다. 그것은 SWP와 좌파 전체에 해를 끼쳤다. 이제야 사과했지만, 책임자들은 여전히 SWP 지도부에 있다. SWP는 자신들이 세계를 구할 혁명정당이라고 믿기에 모든 것을 희생해 조직을 지키려 한다. 투쟁에 헌신하고 있지만, 여전히 SWP는 혁명적 좌파 건설의 막다른 골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1년전 피해자 중 하나의 반응과 비판이다. ‘사과 소식을 나중에 친구에게 전해 들었다. 당사자인 나에게 어떤 연락도 없었다. 11년전 피해자 괴롭힘을 적극 조장하며, 나를 경찰 스파이라고 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SWP 지도부에 있다. 이번 사과는 진심어린 반성이 아니라 계산된 사과이고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이번 SWP의 반성과 사과는 문제 해결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최근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청년 저항의 폭발에 SWP가 회원 가입을 확대하려고 뛰어들면서, 이 골치아픈 문제를 얼버무리려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회원 가입을 권유할 때 이런 질문이 나오면 개별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성명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참 실망스럽고 한편으로 걱정이 된다. 지금 한국의 노연도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반전운동 건설과 조직 확대, 회원 가입에 적극적이다. 그래서 한국 노연도 영국 SWP처럼 이런 식의 별 의미없는 ‘반성과 사과’를 따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이번만큼은 또 영국 SWP의 뒤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
노연 동지들은 더 나은 방식과 내용을 찾아야 한다.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반성과 사과를 하는 것은 정말 필요하지만, 단지 조직 보존과 확대를 위한 면피용의 꼼수는 아니어야 한다. 반드시 피해자들과 나같은 사람에게 직접 구체적으로 진정성이 담긴 반성과 사과를 해야 한다.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신뢰를 회복하며 노연 자신과 운동사회 모두에게 진정으로 투쟁과 연대에 도움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지금 노연이 열심히 건설하는 반전운동도 진짜로 힘을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 노연에게 너무 많이 실망하고 기대가 무너져 왔지만, 이번에도 또 그러지는 않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촉구한다.
(기사 등록 202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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