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장애인 운동 단체 활동가이며 이론가인 밥 윌리엄스-핀들레이Bob Williams-Findlay의 <장애 실천disability praxis> 책에 대한 소개와 서평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 내에서 장애의 사회적 구성을 분석하고 변혁적인 장애 실천을 통해 해방을 향한 길을 제시하며 장애인 차별에 대한 혁명적인 비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비록 이 책이 아직 한국에서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장애인 운동에 대한 고민과 논의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며 번역 소개한다. 이 글의 필자인 로완 포춘Rowan Fortune은 영국의 사회주의 활동가이고 유토피아 문학과 상상력에 대해 글을 썼다. <추락하는 체제: 혁명을 위한 활동가 가이드>의 공저자이다.(번역: 두견)
마르크스주의에서 순수한 무관심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다. 마르크스주의는 이론을 비실체화되고 탈역사화된 것, 즉 삶을 생명이 없는 범주로 분류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자면, 이론은 실제하는 상태를 폐지하는 실제 운동 속에서 작동하며, 여기서 '실제'는 투쟁을 통해 모순된 사회적 힘으로부터 감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혁명적 장애 이론가인 밥 윌리엄스-핀들레이는 마르크스주의적 실천으로서의 장애 투쟁에 대한 흥미로운 이론을 제시한다.
<장애 실천>은 장애인 단체의 형성을 '새로운 집단적 사회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동시에 공동의 목적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윌리엄스-핀들레이는 그러한 조직의 다른 이론가들과 교류하고 때로는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그가 이해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실천이 이론 그 이상이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파울로 프레이레의 용어를 빌리자면 '변화해야 할 구조를 향한 성찰과 행동'이다. 세상을 이해하는 것과 변화하는 것은 서로 맞물려 있다.
이 주제에 대한 지침으로 영국 장애인 정책의 네 가지 주춧돌이 확인되었다. 1. 장애의 근본적 원칙(즉, 장애는 개인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 2. 자기 조직화, 3. 탈시설화와 자기 주도적 생활, 4. 문화와 정체성이 그것이다. 이는 책의 전반부에 대한 청사진을 제공하며, 그 자체가 후반부의 토대가 된다.
이러한 주춧돌은 분리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장애 정치의 상호 연결된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는 윌리엄스-핀들레이가 머리돌이라고 부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격리에 반대하는 신체장애인연합’(UPIAS)이 처음으로 장애의 틀을 짜고 '장애에 대한 급진적인 사회적 해석의 발전과 적절한 시기에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 될 수 있도록 길을 닦은' 방식이다.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을 암시하고 있지만, 완전한 주춧돌은 이 통찰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실천을 기반으로, 윌리엄스-핀들레이는 이러한 전통에 합류하여 '장애를 손상의 성격과 정도에 따른 '개인의 문제'로 보는 관점'을 거부하면서도 '손상은 어떤 의미에서는 장애인의 사회적 억압의 근거가 된다'고 주장한다. 대신 그는 '손상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 대체 용어는 장애의 결과에 대해 '알거나 알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가 위험하다고 보는 것은 '손상 효과'라는 개념인데, 대부분의 경우 장애의 영향을 물질적,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손상을 가진 사람이 장애인으로 변모하는 관련 억압의 사회적 성격을 놓치거나 최소한 모호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는 자본주의에 뿌리를 둔 이데올로기보다 앞선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손상을 가진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크게 달라졌지만, 자본주의 생산 방식이 발달한 이후에야 개인을 특별한 집단으로 분류하는 체계적인 접근 방식이 생겨났다."
이것은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으로서, 이 속에서 '이데올로기적, 물질적 조건을 결합하여 권력을 행사하게 하는' 시스템을 통해 장애인은 의존적이 되고 평가 절하되는 것이다. 이것의 함의는 광범하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선한 의미로 인식되는 '돌봄'은 '종종 양날의 검으로, 권한을 부여하고 동시에 권한을 박탈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돌봄'의 양면성에 대한 질문은 장애인의 삶에 대한 자본의 지배뿐만 아니라 장애에 대한 노동운동의 많은 개념적, 실천적 개입에 대한 비판의 핵심이다.
그러나 윌리엄스-핀들레이는 사회적 해석을 단순히 공식에 따라서 읽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 장애 관련 실천의 성과와 실패를 평가하면서 이를 다시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사회적 해석을 확장하여 손상의 성격에 적용한다. 그는 '손상에 대한 사회적 모델의 부재는 장애 정치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 부재는 손상의 현실과 마주치는 사회적 환경 사이의 관계에 모호한 영역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사회적 맥락은 우회할 수 없으며, 항상 세계에 대한 우리의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
손상에 대한 '중립적'이거나 미리 주어진 이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 해석을 완전히 확장하지 못하면서 '사회적 산물로서의 손상을 다루지 못한 것'은 '이론적, 정치적 고려를 포함하는 급진적 장애 실천의 발전을 약화시켰다'. '손상의 현실'이라는 관점은 '급진적'인 정치에서도 장애의 자연화를 다시 주장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식으로 윌리엄스-핀들레이의 분석은 장애인 운동의 양면성, 즉 전진뿐만 아니라 퇴행의 경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장애인 운동에 대한 칭찬과 비판을 동시에 담고 있다.
이러한 정신으로 그는 급진주의자들 사이에서 가장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인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체성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며, 실제로 장애인 정체성의 이중성을 직접적으로 인정한다. 윌리엄스-핀들레이에게 이러한 이중성은 '억압적으로 강요된 정체성을 전복하는 동시에 집단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투쟁에서 비롯된다.' 이 책에서 다룬 다른 많은 내용처럼 이러한 역학 관계는 장애 실천뿐만 아니라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모든 투쟁에 적용된다. 사회 외부에서 사회를 바꾸려고 할 수 없으며, 우리는 우리가 폐지하고자 하는 세상에 의해 만들어지고 틀지워진다.
윌리엄스-핀들레이는 사회적 해석이 장애인 운동을 정체성에 기반한 분리주의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다는 비난을 강력히 거부한다. 실제로 이러한 비판은 '장애인 운동의 광범위한 목표가 변혁적 의제를 위한 집단적 추진이 아니라 개인적 자유로서의 시민권과 인권 획득으로 축소되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쏟아져 왔다.
따라서 사회의 전반적인 변혁에 초점을 맞춘 사회적 해석은 장애를 정치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국에서 장애에 대한 사회적 해석은 분리주의적 의제가 아니라 통합주의적 의제였다.' 이러한 관점은 신체를 투쟁의 현장으로 만드는 변화하는 맥락을 외면하는 좁고 정적인 정체성 개념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윌리엄스-핀들레이는 '돌봄'에서 '손상',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르지만 관련된 문제에 동일한 방법론적 이해를 적용하여 항상 역사적, 사회적 과정에 포함된 맥락에서 주체성을 강조한다.
두 번째 파트 '새로운 장애 실천을 향하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단순한 비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윌리엄스-핀들레이는 기존 시스템의 잘못된 가정을 해체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변화 프로젝트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현재 영국 사회보장의 위기는 단순히 자원을 늘리거나 민영화를 중단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전체 시스템이 억압적이고 목적에 맞지 않으며 완전한 변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가 영국 단체 ‘포용을 위한 행동Act 4 Inclusion’에서 구체화한 이 프로젝트는 생태사회적 인식을 바탕으로 (관련된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가치 중심적 돌봄 접근 방식의) 공동 생산을 제안한다. "공동체 기반의 생태사회적 지원 및 자기 주도적 생활 시스템은 자산 관점에서 집, 기존 관계 및 이웃 등과 관련하여 노인과 장애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파악한 다음, 친숙하거나 선택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데 장애가 되는 요소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서비스와 지원을 파악하는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장애 실천>은 현재의 투쟁 위기에 대한 냉정한 평가이자 투쟁의 활성화를 위한 호소이기도 하다. '장애 정치와 문화는 상호 작용하여 현상 유지에 도전한다.‘ 이런 의미에서 윌리엄스-핀들레이는 '정치적, 문화적 집단 정체성의 형성은 과도기적인데, 이는 수단이 목적이 되고, 그 목적은 인류 내부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공허한 구호나 제스처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와 함께 과거의 투쟁을 기반으로 한다. 모든 억압과 마찬가지로 장애는 사회화 이전 세계의 '자연스러운' 또는 불가피한 특징이 아니라 사회 조직의 역사적 패턴과 이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의 결과라는 급진적인 통찰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처음에는 '정상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제대로 다루어졌다:
'정상성이라는 개념은 19세기에야 등장했으며 처음에는 다양한 형태의 표준화와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와서는 새로운 도덕률이 되기 시작하면서 사회 다윈주의자들과 우생학 운동의 호의를 받는 이데올로기적 지형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일상적인 장애의 감각적 재생산에 반대하여 새로운 장애 실천이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모든 이들이 공유된 경험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변화라는 공동의 혁명적 목표를 가지고 연대하는 것이다.
“억압의 교차적 특성을 인정하는 것은 정체성 인식을 넘어 포용적인 공간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대화를 포함해야 한다. 이는 사회적 관계의 다양성과 사회적 제약을 더 잘 드러내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 장애인 운동이 조정되지 않았고, 특수한 손상 그룹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상황에서, 1990년대 이후 세대 간 격차는 말할 것도 없고, 경험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통점을 찾아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마지막 장인 '잿더미에서: 새로운 장애 실천?'에서 윌리엄스-핀들레이는 현재 장애인 운동이 직면한 도전의 정도와 앞으로 나아갈 다양한 경로의 가능성을 모두 인정한다. 그는 '...장애인 활동가로서 우리는 기존 구조 내에서 개선을 위한 투쟁을 병행하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 이를 변화시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긴장은 실패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잘 헤쳐나간다면 그러한 억압이 없는 미래로 이어질 수 있다. '<장애 실천>은 장애 관련 이론과 정치를 학문적 방종의 상아탑에서 구출하여 물질적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공동체로 되돌려줄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기사 등록 2024.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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