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프레이저는 뉴욕에 있는 뉴스쿨 포 소셜 리서치(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의 철학 및 정치학 교수로 사회, 정치, 페미니즘 이론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식인 자본주의: 우리 시스템이 민주주의, 돌봄, 지구를 어떻게 삼키는가-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국내에도 <좌파의 길 -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로 출판) 등이 있다. 이 인터뷰에서 프레이저는 현대 제국주의에서 자연의 부와 돌봄의 이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자본 축적에서 몰수의 계속되는 역할, 금융화된 자본주의에서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지는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 번에 나누어 연재한다. 이 글은 두 번째이며 마지막이다.(번역: 두견)
* 몰수expropriation는 필요한 노동 시간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노동을 의미하는 초착취와 어떻게 다른가?
초착취는 유색인종 노동자가 백인 노동자보다 임금을 적게 받아 더 높은 착취에 직면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도 사용된다. 나는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는 순전히 경제학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다. 노동력 착취는 단순히 더 많은 가치를 추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위와 위계, 그리고 이러한 노동이 다른 질서에 따른 강압, 폭력, 굴복 등의 형태에 노출된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몰수는 경제적 수탈의 메커니즘뿐만 아니라 강압이라는 정치적 메커니즘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미국과 같은 국가에서도 유색인종 노동자들은 강제 감옥 노동, 경찰의 괴롭힘, 폭행, 심지어 살인, 다른 형태의 신분 비하와 굴욕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자본 축적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초착취라는 범주는 지나치게 경제주의적이라고 바라보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착취와 몰수의 구분은 대략 전 세계의 인종 구분과 일치한다고 덧붙이고 싶다.
초기 몰수의 시기 이후 유럽 인구가 착취당하는 노동자 계급의 대열을 채운 반면, 계속해서 몰수를 당한 것은 내륙과 식민지 지역의 유색인종 인구였다. 주변부에서 몰수의 관계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자본주의 중심부의 착취를 이해할 수 없다. WEB 뒤 보이스Du Bois와 같은 흑인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은 그의 저서 <흑인의 재건>에서 유럽과 북미의 백인 산업 노동자 계급의 착취가 흑인 노예 노동자에 대한 몰수와 어떻게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지 보여주었다.
* 제국주의적 몰수와 착취의 메커니즘은 과거에 비해 오늘날 어떤 상대적 비중을 차지할까?
몰수와 착취는 자본주의 발전의 여러 단계에 걸쳐 축적에 기여했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특히 이러한 여러 단계에서 착취와 몰수의 관계를 역사화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둘의 형태와 상대적 비중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보는 데 관심이 있다. 예를 들어, 금융화된 자본주의에서 부채는 제국주의적 수탈의 엄청나게 중요한 메커니즘이 되었다. 글로벌 금융 기관은 국가가 사회적 지출을 줄이고 긴축을 시행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일반적으로 투자자와 결탁하여 가치를 추출하는 데 부채를 사용한다.
부채는 또한 에너지, 물, 경작지, "탄소 상쇄"의 공급을 목표로 하는 기업의 토지 확보를 위해 글로벌 남부의 농민들을 강탈하는 데 사용된다. 그리고 부채는 핵심부에서 축적이 진행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임금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재생산 비용에 미치지 못하는 긱gig 경제(단기임시직 노동에 의존하는 경제)의 불안정한 서비스 노동자들은 확대된 소비자 신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모든 수준과 모든 지역에서 부채는 새로운 몰수의 주요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이로 인해 새로운 혼성적 형태의 몰수와 착취가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탈식민지 국가에 거주하는 명목상 자유 임금 노동자들은 국가 부채의 부담이 너무 커서 노동의 상당 부분이 부채 상환에 사용되고 있다. 부유한 지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소비자 부채가 엄청나게 증가하면서 과거에는 단순히 착취만 당하던 노동자들이 이제는 일종의 재정적 몰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혼성적 형태는 노예로 착취당하는 흑인 노동자와 자유롭게 착취당하는 백인 노동자 사이의 오래된 선명한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 그 구분은 훨씬 더 흐릿해졌다. 그렇다고 제국주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며, 단지 이러한 관계를 그려내는 것이 더 복잡해졌을 뿐이다.
* 최초의 제국주의 열강은 식민지 정복과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약탈을 통해 부와 군사력을 쌓았다. 그 이후 새로운 제국주의 열강이 등장한 것인가? 그렇다면 이 새로운 강대국들의 경제적 기반은 무엇이었을까?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주의 국가를 제국주의 국가로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열어두고 - 이것은 복잡한 쟁점이지만 - 보면, 일부 공산주의 이후의 국가가 제국주의 국가라는 것은 내가 보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중국이다. 제국주의는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행하고 있는 채굴주의를 설명하는 데 적합한 용어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과 같은 방식으로 이를 실행하고 있지 않더라도 이는 마찬가지 사실이다; 중국의 경우 정복과 직접적인 식민지 착취가 아니기는 하지만 말이다.
* 금융화된 자본주의에서 일어난 변화에 비추어 볼 때, 초국적 기업이 제국주의 국가에 제도적으로 고정되지 않고도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까?
금융화는 국가와 기업의 권력 역학 관계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기업은 더 많은 권력을 갖게 되고 강대국을 포함해서 국가는 더 적은 권력을 갖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경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국가의 부를 능가하는 거대한 글로벌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 권력은 영토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 자본주의 국가라고 보기는 어려운 - 안도라Andorra와 같은 조세 도피처에 본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명목상 우리 시대의 패권 국가인 미국에서도 끊임없이 국가 권력에 맞서고 있다(미국이 여전히 패권 국가라고 해도 급격히 쇠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국가는 애플이나 구글을 통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한 민족국가에 명확하게 위치하고 국가가 모든 종류의 휴식과 혜택을 제공하는 "국가 대표 선수"인 기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지 않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렇지만, 초국적 기업이 제국주의 국가에 제도적 기반 없이도 운영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여전히 통화 시스템, 은행 시스템, 자금 이체 능력 등에서 세계 통화인 미국 달러의 힘에 의존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의 재산법은 기본적으로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협정(TRIPS)의 형태로 국제법이 되었다.
캐서린 피스터Katharina Pistor는 재산, 분쟁 해결, 계약법 등에 대한 미국의 법적 이해가 어떻게 미국의 국가 권력의 연장선상에서, 아니 정확하게는 미국의 법적 체제의 연장선상에서 세계화되었는지 살펴보는 좋은 책, <자본의 코드>를 저술했다. 이것이 미국 정부가 실제로 애플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 두 경제가 그 어느 때보다 통합되어 있으면서도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리고 미국과 이스라엘과 같은 전통적인 제국주의 강대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심지어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전면적인 전쟁을 일으키거나 국경을 넘어 군사력을 배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글로벌 자본주의의 역학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미국에 대한 많은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군사적으로 미국은 핵무기를 보유한 유일한 국가는 아니지만 여전히 매우 강력하다. 경제적으로는 여러 문제가 뒤섞여 있다. 그리고 도덕적으로도 신뢰도가 매우 약화되었다. 현재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전쟁에 대해 나는 미국 유대인으로서 미국이 단순히 수도꼭지를 잠그는 식으로 이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하지만 모든 점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글로벌 정치 무대에서 언제, 어떻게 자신을 주장할지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이는 여전히 진행 중인 작업이다: 중국은 가장자리를 맴돌며 많은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여전히 언제, 어떻게 나설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중국이 새로운 패권 국가가 될지, 아니면 새로운 다극적인 질서가 등장할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쇠퇴하는 강대국이자 다소 약한 패를 가진 러시아도 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 그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 꽤 잘 대처해 나가고 있다. 러시아는 접경 국가뿐만 아니라 시리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세계 정치에서 체급을 넘어선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중국, 러시아, 터키, 이란 및 기타 국가들이 미국에 대항하는 블록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을 보고 있다.
한편, 유럽연합은 내부 분열과 연합의 구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지정학적 차원에서 심각한 정치 플레이어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중국과 미국의 경제는 매우 통합되어 있다. 그 점이 걸림돌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혼돈 속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집권할 무시무시한 가능성 같은 와일드카드도 존재한다.
경제의 얽힌 실타래를 푸는 측면에서 특정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 그리고 미국 우선의 고립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가 외교 정책에 있어서는 기존의 외교 정책보다 조금 더 합리적이지만 새로운 칼을 휘두르는 것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매우 험난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안정적인 헤게모니의 부재에 대해 매우 우려할 만한 이유가 있다. 미국은 통제 불능 상태이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로 인해 매우 어리석은 짓을 할 수도 있다. 지금은 위험한 시기이다.
* 반제국주의 투쟁들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는가? 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논의한 내용에 비추어 볼 때 21세기 반제국주의와 반자본주의적 국제주의는 어떤 모습일까?
가능성은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또 다른 문제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언제든 끔찍한 핵전쟁이나 세계 대전에 휘말릴 수 있다. 우리는 생태계의 위기로 인해 지구의 붕괴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세계의 부유한 지역에서도 생계의 측면에서 엄청난 불안전성과 불안정성이 존재한다.
정상적인 확실성이 무너진 이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재고하고자 한다. 이로 인해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동맹을 고민하는 좌파 세력에게 공간이 열렸다. 그러나 우리는 우파,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초기 파시스트적 또는 적어도 권위주의적인 포퓰리스트의 부상도 목격했다. 이는 모두 부르주아적 헤게모니의 붕괴에 대한 반응이다(지정학적 의미보다는 그람시적 의미에서).
나는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와 2011년 [점령하라 운동] 이후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왔다. 어떤 때는 해방적 좌파가 반자본주의와 반제국주의 동맹을 구축할 가능성에 대해 더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어떤 때는 극우파가 불만에 호응하는 데 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점은 페미니스트, 반인종주의, 민주주의적이고 친환경적인 새로운 반제국주의와 반자본주의적 국제주의를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형용사는 움직이는 사람들의 정당한 실존적 관심사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우리는 경찰 폭력에 대항하는 투쟁이 기후에 대항하는 투쟁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경찰 폭력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한 가지 희망을 주는 것은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개별적이고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모든 문제는 내가 최근 저서에서 '식인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동일한 근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자연, 돌봄, 피정복 인민의 부, 모든 노동자들의 에너지와 창의성을 살육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붙박이 같은 구조적 경향임을 보여 주려고 노력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연결고리를 이해할 수 있다면 더 광범위한 동맹이 합리적이기 시작할 것이다. 어떻게든 서열을 매기지 않으면서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개별적 움직임 중 어느 것도 그 자체만으로는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를 가져올 만큼 강력하지 않다.
(기사 등록 202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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