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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니코스 풀란차스의 민주적 사회주의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3. 7. 6.

클라이드 배로우CLYDE W. BARROW

번역: 두견

좌파 정치 전략은 전통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의회주의와 레닌주의적 "국가 분쇄" 사상으로 갈라져 있다. 니코스 풀란차스Nicos Poulantzas는 두 전략 모두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만의 비전을 발전시켰다. 이 글의 필자인 클라이드 배로우는 텍사스 대학교 리오그란데 밸리의 정치학 교수로서 <비판적인 국가 이론을 향하여: 세계화 이후의 풀란차스-밀리밴드 논쟁>의 저자이다.

출처https://jacobin.com/2023/01/nicos-poulantzas-revolutionary-reformism-democratic-socialism-state-theory

1917년의 러시아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니코스 풀란차스의 <정치권력과 사회계급>(1968)과 랄프 밀리밴드Ralph Miliband<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국가>(1969)의 출판은 주류 사회과학자들이 그 개념을 버린 오랜 공백기를 지나서 정치학과 사회학에서 국가의 문제가 되돌아오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학자들 사이에서는 자본주의 국가 이론에 대한 선입견이 계속되고 있다. 한편, 유럽과 북미에서 민주적 사회주의가 국가적 정치 의제로 돌아보면서 정치적 전술에 대한 새로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술은 명확하게 정의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신중하게 계획된 즉각적인 조치 또는 수행 방법을 포함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전략(장기적 목표)과 전술(즉각적인 행동)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좌파의 정치적 전술의 장기적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하며, 자본주의 국가 이론은 사회주의로의 전환에 대한 추상적 요구를 넘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가?

도로 표지판

풀란차스가 1978년에 마지막 저서인 <국가, 권력, 사회주의>를 출판했을 때, 그는 부분적으로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에서 유로코뮤니즘이 부상하는 상황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에 대한 논란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이러한 발전은 사회주의로의 전환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따라서 민주적 사회주의의 재등장은 정치 이론가들과 정치 활동가들에게 사회주의 전략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요구했다.

풀란차스는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이론이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동안 국가의 역할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이론으로부터 정치적 전략을 도출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응용된 이론-전략적 개념이 확실한 행동의 지침을 제공하는 것 외에는 결코 아무 것도 될 수 없고 기껏해야 도로 표지판의 형태로 작용할 수 있다.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모델"은 작성될 수 없다. 그것은 주어진 경우에 구체화될 수 있는 보편적인 모델이 아니며, 하나 또는 여러 국가에 대해 이론상으로 보장된 무오류의 처방도 아니다."

풀란차스는 "이론과 실제, 이론과 실천 사이에는 항상 구조적인 거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실제 계급 투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내린 전략적 결정에 의해서만 메울 수 있는 격차였다. 그렇다면 풀란차스의 자본주의 국가 이론은 오늘날 민주적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전략을 위해 어떤 행동 지침과 도로 표지판을 제시하고 있는가?

전투에서의 승리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공산주의자 선언>(1848)에서 사회주의 전술의 장기적 전략 목표를 프롤레타리아트의 하나의 계급으로의 형성, 부르주아지 패권의 전복,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 권력 장악이라고 정의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계급에 의한 혁명의 첫걸음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계급으로 끌어올리고 민주주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세기의 모든 중요한 마르크스주의 정치 이론가는 이 전략적 원칙을 수용했다.

에두아르드 베른슈타인은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의 조건"이라고 주장했고 동시대의 칼 카우츠키는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로자 룩셈부르크는 러시아 혁명 이후 블라디미르 레닌과 볼셰비키에 대한 비판에서 보통 선거, 언론과 집회의 무제한적 자유, 자유로운 의견 논쟁 없이는 모든 공공 기관에서 생명력이 사라진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레닌 자신도 일찍이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3차 당대회에서 채택된 전술에 대한 이러한 결의안을 지지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직접적인 이익과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를 위한 투쟁의 이익은 가능한 최대의 정치적 자유를 필요로 하며, 따라서 독재적 정부 형태를 민주공화국으로 대체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한 전투에서 승리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우리는 이제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그것의 종말에 대한 전망에 직면해 있다.

니코스 풀란차스도 권위주의적 국가주의의 부상을 우려하는 상황에서는 우리가 민주적 사회주의를 원한다고 주장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적 자치의 민주적 사회주의 형태가 제도적 형태, 즉 과도적 민주적 사회주의 국가로서 어떤 것을 수반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요구를 명확하게 공식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두 가지 전략

<라인신문>의 편집자로서 그의 초기 저술 중 일부에서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노동계급을 위한 정치적 진보로 받아들였다. 그는 그것이 하나의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정치적 껍질이라고 생각했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는 보편적 참정권이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 선언>, <독일 공산당의 요구>(1849), <고타 강령 비판>(1875)과 같은 저서에서 마르크스는 막강한 누진적 소득세(재정 정책), 강력한 중앙은행(통화 정책), 산업, 교통, 통신 및 농업에 대한 공공 투자(산업 및 고용 정책)에 기반하는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강령을 옹호했다.

동시에 그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정책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모두를 위한 무료 공교육, 무료 법률 서비스, 소비세 폐지, 강력한 사회 안전망(실업 보험, 노령 연금, 주택, 보건의료 등), 완전한 정교 분리가 포함되었다. 1872년 마르크스는 미국, 영국, 네덜란드와 같은 성숙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노동자들이 "평화로운 수단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러한 복합적인 정책과 선거 전술은 100년 이상 동안 우리가 사회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정치 프로그램을 크게 정의해 왔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71년 파리 코뮌의 결과로 정치권력의 장악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바꾸었다. 마르크스는 코뮌이 "기본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정부이며, 노동의 경제적 해방을 해결하기 위해 마침내 발견된 정치적 형태를 위한 전유계급에 맞선 투쟁의 산물"이라고 결론지었다. 엥겔스에 따르면, 1848년에 새롭게 부여된 보편적 남성 참정권의 결과가 "자본주의 국가 권력"이었던 반면, 파리 실험의 다른 점은 노동자 계급이 비국가적 정치 형태의 자치를 창출했다는 것이었다.

마르크스가 코뮌에서 본 것은 1848년과 비교하여 "현대 국가 권력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정치 형태였다. 그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의 "전통적인 작동 기계를 변형"하고 "계급 지배의 도구로서 그것을 파괴"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동계급은 단순히 기성 국가 기구를 손에 넣어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 휘두를 수 없다. 그들의 노예화를 위한 정치적 도구는 그들의 해방을 위한 정치적 도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19세기 후반부터 사회주의 전략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논쟁은 주로 베른슈타인의 <진화적 사회주의>(1899)와 같은 저서에서 표현된 의회적 사회주의의 지지자들과 레닌의 소책자 <국가와 혁명>(1917)이 보여주는 국가를 분쇄할 필요성을 주장하는 혁명가들 간의 논쟁이었다.

사회주의로 향하는 민주적 길

풀란차스의 글 대부분에서 두 번째 학파에 부합하는 전략을 옹호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를 들어 1975년에 그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사회주의로의 전환은 단순히 국가권력의 변화(부르주아지를 대체하는 노동계급과 그 동맹자들)에 의해 일어날 수 없다. 이 전환은 국가 기구의 분쇄를 요구한다. , 이러한 기구의 수장을 교체하는 문제가 아니라 실제 조직적 구조의 급진적 변형에 대한 문제이다.” 그러나 <국가, 권력, 사회주의>(1978)에서 풀란차스는 명시적으로 국가 분쇄 입장을 포기했다.

“전통적으로 그 [국가] 기구를 부수거나 파괴하는 것으로 불려온 것을 위한 장소는 더 이상 없다... 마르크스가 직설적인 목적으로 사용한 분쇄라는 용어는 결국 매우 특정한 역사적 현상을 가리키기 위한 것이었다. 즉, 모든 종류의 대의 민주주의 또는 ‘형식적’ 자유를 근절하고 순수하게 직접적이고 기층 민중의 민주주의와 소위 진정한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주의로 가는 민주적 길과 민주적 사회주의 자체를 무엇보다도 정치적(정당) 다원주의와 이데올로기적 다원주의, 반대자를 포함한 모든 정치적 자유의 확장과 심화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국가 기구를 박살내거나 파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동시에 풀란차스는 여전히 다음과 같은 경고를 포함하고 있다:

“국가에 존재하는 대중적 계급의 존재로부터 국가의 급진적인 변혁 없이 대중이 권력을 계속해서 장악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심각한 정치적 결과를 초래하는 오류가 될 것이다... 국가 내 인민 대중의 행동은 국가 변혁의 필요조건이지만 그 자체가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의 마지막 저서에서 풀란차스는 의회적 사회주의의 선거 정치를 통합하는 동시에 이를 넘어 직접 민주주의의 형태를 수용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의 전략을 정의했다. 풀란차스는 국가를 분쇄하는 대신에 이제 그가 "국가의 급진적 변형"이라고 부르는 것을 구상했다. 그러한 변형은 노동자의 소유권과 자치적 관리와 같은 혁신뿐만 아니라 대중 민주주의 기관(러시아 맥락에서 "소비에트"의 원래 의미)에 기반한 제한된 형태의 "평의회 공산주의"를 포함할 것이다.

그러나 풀란차스는 이러한 혁신이 러시아 혁명 중에 발생했던 것처럼 "이중 권력" 전략을 통해 현대 민주공화국의 민주적 요소에 도전하고 대체하는 대신 이를 강화하고 확장하고 심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믿었다. 러시아 사례를 논의하면서 풀란차스는 1918년 초에 새로 선출된 제헌의회를 폐지함으로써 볼셰비키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전략의 이름으로 국가 기구를 감독과 규제가 없는 상태로 방치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사회주의적 형태의 권위주의적 국가주의, 즉 스탈린주의의 발판을 마련했다. 분권화된 소비에트는 국가적 규모에서 복잡한 현대 사회의 일상 활동을 지시할 정치적 능력이나 기술적 전문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필요한 만큼만 오래 참아야 할 불행한 유물이 아니라 민주적 사회주의의 본질적 조건으로 보아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민주적 사회주의

풀란차스는 민주적 사회주의가 정책과 정치로 구성된 두 갈래의 전략이라고 결론지었다. 한편으로 그것은 "각자는 그 능력에 따라, 각자는 그 필요에 따라"라는 원칙에 따라 보다 평등한 사회를 촉진하기 위해 고안된 일련의 정책과 프로그램을 수반했다. 이 전략은 기본적인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풀란차스가 "경제적 장치"라고 부르는 중앙은행, 조세 제도, 고용 및 임금 정책, 무역 정책, 사회 보험 등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생산 수단에 대한 공공 및/또는 노동자의 소유권이라는 결과를 가져와야 했다. 그렇지만, 풀란차스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변형된 형태의 대의 민주주의와 직접적 기층민중 민주주의를 결합하는 정치적 전략(국가의 급진적 변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로의 민주적 길, 민주적 사회주의의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정치적 자유와 대의 민주주의 제도의 확대 및 심화(그것은 또한 대중 집단의 획득이었다)가 직접 민주주의 형태의 확산 및 자주 관리 기관들의 급증과 결합되는 방식으로 국가를 급진적으로 변혁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풀란차스에게 이것은 사회주의로의 민주적 길이란 대중이 항상 국가 네트워크 내에서 소유하고 있는 흩어진 저항 중심의 확산, 발전, 강화, 조정 및 지도를 포함하는 긴 과정이 될 것임을 의미했다. 그들이 국가의 전략적 지형에서 진정한 권력의 중심이 되는 방식으로 말이다.”

풀란차스는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에 대한 요구를 대신하여 좌파 정부가 대중적인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와 노동자의 자주관리를 국가에 통합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가 경쟁하는 이중 권력상황이 아니라 단일한 노동자 국가가 두 가지 형태의 민주주의를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풀란차스는 "정면을 향하는 이중권력 형태의 전략과는 반대로 국가와의 권력 관계를 수정하기 위한 투쟁"을 요구했는데, 이는 "국가 기구의 전면적인 변화"를 의미할 것이었다. 그는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이론이 기껏해야 전략적 의사 결정을 위한 "일련의 표지판"일 수는 있지만 로드맵은 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어떤 종류이든지 상관없이 '모델'을 구축하는 것"에 대한 이전의 경고를 반복했다. 풀란차스의 이러한 고찰은 몇 가지 쟁점을 불러왔다. 변형된 민주공화국을 노동자의 소유권, 자주관리 및 다른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와 결합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찰은 국가 이론의 통찰력에서 끌어낼 수 있는 입헌적 개혁의 정치적 전략을 확인하는 동시에 정치적 전술을 단순한 단절과 항의를 넘어 장기적인 목표로 향하게 했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단순한 경제 프로그램이나 사회 정책의 세트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구조적 관계를 노동계급에 맞게 재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입헌적 개혁의 전략이다. 다시 활성화되고 더 확장적인 민주주의 없이는 사회주의는 있을 수 없다.

(기사 등록 202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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