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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우크라이나/강성희/세번째 권력/조국흑서/타르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3. 4. 23.

전지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대만 개입 발언의 진짜 문제

어떤 마을에 오랫 동안 가장 힘있는 조폭집단이 자기 멋대로 사람들을 폭행하고 갈취하다가, 그 조폭집단이 조금씩 힘이 빠지면서 그들에게 도전하는 새로운 조폭집단이 등장해서 또다른 폭력과 갈취를 벌인다면 어떨까. 먼저 기존의 조폭집단이 새로운 조폭집단을 비난할 자격은 별로 없을 것이다.

기존의 조폭집단이 우리가 새로운 조폭집단을 막겠다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돈과 물자를 내놓으라고 강요한다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새로운 조폭집단이 정당화될 수도 없다. 우리는 새로운 조폭집단의 폭력과 갈취에 반대하면서, 폭력과 갈취를 당하고 있는 피해자들을 도와야 할 것이다. 지금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대한 논란은 이런 틀에서 고민하고 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

먼저 한세기 동안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미국의 역사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자원과 영토를 강탈하고 동맹국들의 침략과 폭격을 돕던 역사이기도 하다. 21세기 들어서도 이라크와 아프간은 그 표적이 됐다. 또 미국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폭격과 지배를 도와왔고, 무엇보다 지금도 한반도 주변에서 온갖 첨단무기를 동원해 전쟁 위기를 부추기며 위협하고 있다.

한편, 새롭게 등장한 것은 러시아와 중국이다. 러시아는 조금씩 주변 국가들에 대한 침략과 지배를 확대하다가 이제 우크라이나를 침략해서 폭격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영토를 강탈하고 있다. 중국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과 전쟁연습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위협과 전쟁연습을 그대로 빼다 박은 것처럼 비슷하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의 최근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발언이 나왔다. 윤석열은 정말 인권과 민주주의를 우선하는 가치외교 때문에 이런 발언을 한 것인가? 누구도 그렇게 보지 않을 것이다. 국내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장본인이 바로 윤석열이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역대 정부처럼 윤석열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벌이는 폭력과 갈취에 대해서 전혀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도와 왔다.

우크라이나 민중을 돕고 러시아의 전쟁을 중단시키고 싶다고? 그러면 왜 병역거부한 러시아인조차 난민 인정은커녕 공항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막고 있는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부터 늘리고 강대국들에게 부채탕감부터 하라고 요구해라. 이러니 윤석열의 이번 발언이 기존 조폭집단의 똘마니로서 충성 발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도 거품을 걷고 정확하게 봐야 한다. 최근 유출된 미국 기밀문서들을 잘 살펴보면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와 전면 대결로 나가거나 우크라이나를 적극 도울 생각이 별로 없다는 속내가 드러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실제로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지원금은 각국 GDP0.3~0.4%에 불과하다.

저명한 경제사학자 아담 투즈는 선언과 실제 사이에 엄청난 차이를 지적했다. 게다가 실제로 들어가는 것들은 미국 군산복합체와 펜타곤에 대한 보조금이라는 지적이 있다. 즉 기존의 조폭집단인 미국은 새로운 조폭집단인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 드는 비용조차 자기 돈을 안쓰고 싶어서 다른 나라들에 떠넘기고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윤석열의 진짜 목적은 새로운 조폭집단을 막고 피해자들을 돕고 싶은게 아니라, 어떻게든 기존 조폭집단에게 상납하면서 더 충실한 하수인의 자리를 얻고 싶은 것에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마을을 더 평화롭고 안전한 곳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신구 조폭집단들이 파괴적 충돌과 대결을 벌이면서 마을을 더 난장판으로 만드는데 힘을 보태는 효과만 낼 것이다.

무엇보다 한반도 주변에서 북중러와 한미일의 대결 구도를 더욱 강화하면서 대화와 화해가 아니라 적대와 군사적 대결로 가는 길을 닦는 효과가 있다. 대만에서도 미중간 전쟁으로 가는 길을 막는게 아니라 그 도로를 포장하며 전쟁의 주요 당사자로 뛰어들겠다는 의지까지 보인다.

그러니, 유럽의 극우인종주의 세력과 반미를 말하는 좌파의 일부가 비슷한 논리로 러시아의 전쟁을 옹호하는 것도 보고싶지 않은 일이지만, 좌파가 조선일보와 윤석열과 비슷한 논리를 피면서 지금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발언을 지지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다행히 지금 우크라니아 무기 지원 발언을 비판하고 있는 많은 세력들과 민주당까지도 대체로 러시아의 침략은 잘못이고 러시아군의 즉각 철군이 필요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당연히 지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것이 옳다고 본다.

강성희 의원의 국회 진출이 낳은 적색 공포와 진보의 논란

얼마전 재보선에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당선해 국회로 들어간 후부터 보수우파들은 엄청난 히스테리와 공포심에 휩싸여 있는 것 같다. 국힘을 중심으로 이들의 달력과 시계는 종북 통진당이 나라를 집어삼키고 있다며 난리를 쳤던 2012~13년의 박근혜-김기춘 체제 종북몰이의 절정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앞장선 것은 매일같이 특집 기사들을 쏟아내는 <조선일보>. 제목과 단어들에서 살떨림이 느껴진다. ‘경기동부연합’, ‘이석기파’, ‘강성 주사파’, ‘폭력 혁명’, ‘국가기간 시설 타격’, ‘북한식 체제’, ‘반국가 단체’, ‘내란 음모’, ‘간첩’ ... 어제는 진보당과 건설노조를 엮어서 비리횡령범들로 몰아갔다. 특히 강의원이 국회 국방위로 가면 나라가 무너질 것 같았다.

강성희는 국방위로 가서 군사 기밀 정보들을 입수해 고스란히 북한에 넘길 것이라는 논리였다.(미국처럼 선의의 도청과 첩보를 하지 않을 거라고 볼테니 ㅋ) 기사와 사설과 칼럼들을 읽다보면 거의 강의원은 테러리스트이거나 간첩이거나 시한폭탄과 같은 위험인물이다.

아마 국힘 의원들은 강의원을 국회 안에서 만나거나 스치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라서 피해갈 것이라는 것에 5백원을 건다. 악수라도 하면 바로 손을 소독할 듯 하다. 이미 선거운동 기간에 그토록 종북몰이 마녀사냥을 했으니, 선거 끝나고 새삼스레 태도가 바뀔 리는 없었다.

하지만 종북몰이의 낙인과 편견을 벗겨놓고 보면 강의원은 간첩도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그냥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의 진보 의원이다. 진보당의 강령도 유럽의 사민당 좌파 수준이고, 다만 반제국주의와 반전평화를 특히 강조하는 점이 있다. 그 때문에 강의원이 지금같이 위험천만한 한반도 상황에서 국방위에 가는 것은 더 필요했다.

군비증강, 핵무장, 선제공격, ‘이에는 이를 외치는 국힘이나 그런 안보 논리에 타협하는 민주당이 내지 못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강의원은 국방위로 가지 못했다. 아쉬운 것은 이 과정에서 강성희가 국방위로 가면 왜 안되나라는 다른 목소리는 보수족벌언론은 물론 개혁언론들과 심지어 진보 좌파들 속에서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생각이 달라도 악마화말고 만나자는 청년 진보정치인들도 이준석은 만나도 이석기와는 절대 만날 수 없다. 진보좌파 속에서는 다른 논란이 더 많았다. 물론 마녀사냥을 속에서도 비판할 게 있으면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논란들이 썩 납득가지는 않았다. 하나는 강의원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민주당에 고맙다는 현수막을 걸었다는 논란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뭔소리인가 싶었다. 개혁에 실패해서 윤석열 정부를 낳았고, 노동정책 등에서 문제가 많은 민주당이 뭐가 고맙다고? 그런데 확인해 보니 강후보는 민주당이 재보선에 후보를 안내고 양보해서 고맙다고 한 것이었다. 현수막을 자세히 보면 작은 글씨로 적혀있다. 민주당이 다 잘했고 지지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또 다른 논란은 강성희 선본이 종북몰이에 반박하며 만든 웹자보에서 색깔론의 최대 피해자는 김대중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사실이다. 김대중은 간첩과 종북으로 몰려서 암살당할뻔 했고 감옥갔고 사형 직전까지 갔다. 내가 아무리 김대중을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매우 비판적이더라도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론 두가지 모두 다른 표현이나 방식, 사례 등을 사용했으면 어떨까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배신적 행위라도 한 것처럼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왜 이런 식의 논란이 벌어지는지 약간 의아했다. 아마도 다가오는 총선과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을 둘러싸고 논쟁이 격화하고 불신과 갈등이 커지는 반영이 아닌가 싶다.

그 점은 이해가 가지만 좀 더 생산적이고 정말 핵심적인 토론과 비판이 전개되면 좋겠다. 진보당의 반제국주의와 반전평화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앞에서는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 등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도 무리인 부분이 있다. 진보좌파 후보의 단일화는 공감하지만 연합정당에 대한 주장들은 필요성과 현실성 모두 부족해 보인다.

다른 진보정당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진보당이나 강의원이 민주당에 부적절하게 타협하거나 비판을 포기한다면 지적해야 한다. 무엇보다 윤석열과 국힘에 맞서 제대로 더 강력하게 투쟁하지 않는다면 넘어갈 수 없다. 다만 그 와중에도 종북몰이 마녀사냥에 맞서서는 언제나 함께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진보촤파도 대부분 종북몰이에 침묵 방조하던 2012~13년의 악몽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이준석을 초대해서 축사를 들은 '세번째 권력'의 착각

얼마전 청년 진보정치인들의 정치그룹인 '세번째 권력'이 출범식에 이준석을 초대해 축사를 들은 것은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소식이었다. 양당구도 속에서 진보정치의 몫은 여전히 중요하고, 특히 청년세대의 진출은 필요한 일이고,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소통하는게 낫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말이다.

그 자리에서 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은 우리는 서로를 악마화하지 말자고 했는데, 이준석의 문제점들을 비판하며 거리를 두는 것은 악마화와 아무 상관이 없다. 진짜 악마화를 이해하고 싶으면 최근 당선한 강성희 의원에 대한 조선일보와 국힘의 태도를 보면 된다.(이것은 거의 손도 닿으면 안되는 뿔달린 괴물 취급이다.)

이준석은 정치에 입문한 이후 계속해서 경쟁지상주의와 능력주의를 퍼트려왔고, 무엇보다 여성과 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부추기며 정치적 기반을 넓혀왔다. 물론 이런 사람과도 얼마든지 같은 자리에서 토론할 수는 있다. 하지만 중요한 자리에 초대해서 위상을 높여주며 축사를 듣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기성 정치인들의 특권과 반칙을 한 치도 용납할 수 없다며 혹독하게 비판해 오다가 하필 성비위와 뇌물 입막음 시도의혹으로 물러난 사람을 초대한 것도 너무나 역설적이며 정치적 냉소를 부추긴다. 무엇보다 이준석에게 공격받아온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쓰라린 상처를 주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여기에는 이준석을 무슨 기득권 정치인들에 맞서 소신있게 정치개혁과 세대교체를 추구하다가 꼬투리가 잡혀서 쫓겨난 억울한 희생양으로 보는 관점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중대한 오해일 뿐이다. ‘부모 찬스와 하버드 학벌 덕에 박근혜 키즈로 정치인이 된 이준석에게 진짜 기회는 박근혜 탄핵 이후에 찾아왔다.

위기와 분열에 빠져들던 보수우파는 새로운 의제와 세력으로 얼굴, 간판을 교체하면서 외연 확장과 부활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목소리를 높인 것이 반페미니즘, 중국혐오 등을 이용해 청년층을 파고든 이준석, 하태경 등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준석(또는 하태경)은 종북몰이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진짜 종북을 때려잡아야지 아무나 종북으로 몰아가는 방식은 더 이상 약발이 떨어져서 효과적이지 않다는 게 이들 입장의 핵심이었다.

물론 이준석은 이미 대선 선거운동 때부터 윤석열 세력과 갈등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것은 누가 더 주도권과 권력을 가질 것인가를 둘러싼 다툼이었다. 여기서 전현직 특수통 정치검사들이 주축이었던 윤석열 세력은 이준석의 성비위와 뇌물 입막음 시도의혹을 들고 나왔다.

결국 이준석은 윤석열 후보 앞에 납작 엎드리며 극적인 화해와 포옹을 했고, 며칠 후에 윤석열은 여성가족부 폐지멸공SNS에 올리며 우파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이준석은 윤석열 후보의 멸공 챌린지에 뒤따라 동참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윤석열 집권 이후에 다시 퇴출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이준석이 꺼낸 카드는 전장연을 표적 삼아서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이준석은 SNS에 하루에도 몇 개씩 글을 올리며 장애인 활동가들의 권리 요구와 투쟁을 불법’, ‘민폐로 낙인찍었다. 온라인 공간에서 전장연과 장애인 활동가들에 대한 혐오에 찬 온갖 막말, 욕설이 폭증했다.

윤석열의 위기가 더 심각해지면 이준석은 다시 구원투수가 될지 모른다. 그러면 이준석은 또다시 세대간, 젠더간 대립이 본질인 것처럼 몰아가면서 희생양을 찾을 것이다. 그것은 종북몰이와는 다르지만 더 나은 것이 아니고 더 위험한 측면도 있다. 이준석을 초대하고 대접할 때가 아니라 비판하고 경계할 때다.

조국흑서 5인방 등의 역지사지를 기대하며

원래 누군가가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나서서 같이 욕하는 것은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따라서 권경애 씨를 특별히 따로 비판하기 보다는 언제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던 조국흑서5인방에 대한 포괄적인 글을 한번 써서 기고해 봤다.

3년전에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도 뜨악했지만, 최근에 다시 읽어보고서 더욱 더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래 글에서 자세히 적지 못한 권경애 씨에 대한 추가적 이야기는 있다. 권경애 씨는 글과 책 등을 통해서 문재인 정부는 파시즘과 독재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검찰을 나치의 희생양이 됐던 유대인과 비교해 왔다.

검찰개혁 집회를 파시스트들의 봉기에 비유했고, 더더구나 별장 성접대 김학의의 출국금지 는 나치가 독일 의사당 방화 사건을 공산당의 소행으로 조작했던 것에 비유했었다. 그러면서 보통 국민들 중에 누구도 김학의처럼 억울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했었다.

검찰은 유대인이고 김학의가 억울한 피해자이고 김학의 출국금지가 독일 공산당에 대한 나치의 마녀사냥과 비슷하다니, 다시 봐도 기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권경애 씨는 이번에 학폭 피해자 유가족의 공개 사과 요구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언카르텔의 집요한 공격과 괴롭힘을 당하던 피해자들을 그토록 비난하면서 끝없이 사과를 요구하던 태도와 비교하면 매우 역설적이었다. 물론 권경애 씨도 지금 매우 괴로울 것이 분명하다. 잘못이 분명한 사람이더라도, 언론과 여론의 집중적 비판을 받는 것은 힘든 일이다.

정순신 검사의 경우도 비슷하다. 정순신은 청문회에 두 번째 불출석하면서 공황장애를 호소했다. 그리고 두 달 가까이 이어지는 보도와 신상털기로 인해 병원 치료 중이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실일 것이고 안타까움과 연민, 너무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두 사람이 이번 경험을 통해, 별 잘못도 없이 검언카르텔의 표적이 돼서 몇 년을 집중적 공격을 받고 온 가족이 화형대에 올려졌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자행했던 괴롭힘을 돌아보길 기대한다.

“정치검찰과 족벌언론들이 주도한 이 사태 속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또 다른 집단이 바로 지식인 명망가들이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공동 집필한 이 책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우파적 공격에 나선 세력에게 중요한 무기를 제공하면서 '조국 흑서'라는 이름까지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됐고, 족벌언론들의 대대적인 홍보 속에서 주로 보수 지지층의 필독서가 됐다.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위선적이고 탐욕스러우면서 멍청하고 능력도 없는 주로 NL 운동권 출신의 586들이 광기 어린 팬덤들에 의존해서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면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가 되고 있고, 그나마 윤석열과 검찰이 그것에 맞서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운동권' 출신의 '진보 지식인'으로 구분돼왔다는 것이 중요했다. '운동권 출신의 진보 지식인들도 민주당을 비판하고 윤석열을 지지하고 검찰을 편들고, <조선일보>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중도층이나 진보 지지층의 여론까지 움직였다.

”이들은 앞으로도 자신들이 큰 상처를 준 윤미향 의원에게 사과한다거나 윤석열 '신검부' 정권 탄생을 도운 과오 등 여러 오판에 대해서 성찰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갈수록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위기로 치닫고 있는 윤석열 정부와 함께 몰락할 생각도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을 찾을 것이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83

윤석열 퇴진을 위해’ 414일 기후정의 파업에 함께합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것은 10.29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긴커녕 유가족들을 두번세번 죽이고 있는 것이다. 한미일 동맹을 위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팔아치운 것도 그 못지 않게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또 단기적으로 큰 문제는 간첩단 조작하고 종북몰이를 하며 민주노총을 탄압하고 주 69시간 노동을 추진하는 것, 소수자의 인권을 짓밟고 차별금지법 가로막고 여가부 폐지 등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등의 문제가 있다.

중기적으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지금 방향대로 가면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될 뿐 아니라 국지적 군사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그것이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전쟁으로 번질지도 모른다는 소름끼치는 시나리오에 있다. 그러면 아비규환 속에서 어마어마한 희생자들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정책 중에서 우리 모두에게 가장 치명적이고 큰 위협이 되는 것은 기후 위기에 대비해서 화석연료를 감축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앞당기는게 아니라 그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문제다. 이것은 그야말로 멸종의 문제이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6차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세기 내에 지구 온도는 1.5도나 2도 이상으로 치솟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피하려면 2035년까지 화석연료 사용을 3분의 2 가까이 줄여야 한다. 유엔 사무총장은 화석연료 중독이야말로 상호확증파괴이며 인류는 몽유병자처럼 기후재앙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고 했다.

기후 재앙의 부조리는 가장 책임이 큰 것은 선진국과 억만장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가난한 나라나 가난한 사람들보다 수천배에서 수만배나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며 지구를 망친 책임이 있다. 그런데 기후재앙으로 더 빨리 더 많이 피해와 고통을 겪을 가능성은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몇십배가 더 높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대재벌과 부자들 편에서 기후재앙을 피할 대책을 거부하며 뒤로 미루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대책의 절반이라도 이행할 의지를 보였다면 윤석열 정부는 그 반에 반에도 못 미친다. 따라서 여기서도 결론은 윤석열 정부를 하루 빨리 퇴진시키는 것 말고는 기후 재앙에서 우리 모두를 구할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기후재앙을 피하려면 결국 자본주의에 도전해야 한다는 주장들에도 동의한다. 그래서 기후재앙을 막고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언제나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분들에게 감사하고 연대하는 마음도 담아서 한달 전에 414기후정의파업 추진위원에 나도 가입했다.

미국이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한 것에서 놀라운 측면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의 국가안보실을 도청했다는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감청이 아니라 도청이 맞다. 어떤 단어를 쓰느냐부터 정치적 의도를 보여 준다.) 일단 전혀 놀라운 소식이 아니다. 미국이 전세계 주요 나라의 정부와 핵심기관들을 도청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에드워드 스노든이 10년전에 내부고발하며 폭로한 사실이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실까지 도청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좀 충격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윤석열이 졸속으로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고, 특히 미국의 첨단 도청장치들이 넘쳐날 미군기지 바로 옆으로 이전한 것이 가져온 자업자득으로 보인다. 이건 거의 대놓고 도청하라고 판을 깔아준 셈이다.

다만, 이 사태에 대해서 미국 정부와 한국의 <조선일보> 등 족벌언론들이 보이는 뻔뻔스러운 이중성은 놀라운 점이 있다. 미국 정부는 바로 얼마전까지 중국이 정찰풍선을 보내서 다른 국가와 정부들을 도청하려 한다고 맹비난했다. 그래서 최첨단 전투기를 출격해서 그 조잡한 풍선들을 격추하기도 했다.

하지만 산산히 부서진 잔해 속에서 그 정찰풍선이 실제 무엇을 한 것인지는 (일부러?) 밝혀내지 못했다. 심지어 40만 달러짜리 미사일로 격추한 풍선 중에 몇 개는 미국인들의 취미동아리가 하늘로 올린 몇백 달러짜리였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최근에도 미국 정부와 정치권은 SNS 플랫폼인 틱톡이 청소년에게 유해하고 데이터를 수집해서 중국에 넘기는 것 같다면서 사용금지와 퇴출을 추진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미국 정부는 그러면 실제로 데이터를 수집해서 멋대로 이용한 것이 이미 밝혀진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왜 문제삼지 않냐는 질문에 별다른 답을 하지 못해 왔다.

지금 이 문제를 덮고 미국을 감싸주기 바쁜 <조선일보> 등 한국 족벌언론들의 이중잣대도 기막힌 수준이다. 많은 이들이 지난해 연말에 이들 언론을 도배했던 중국 비밀경찰서소동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이 언론들은 어떤 해외 반중단체의 주장만을 근거로 갑자기 어떤 중식당을 비밀경찰서로 지목했다.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것은 입증돼지 않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북한 무인기에 대한 이들 언론의 보도 또한 호떡집에 불난 식이었다. 당장 북한이 용산 대통령실을 도청했을지 모른다며 격추하거나 군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난리 였다. 요즘 공안탄압과 간첩단 조작 보도도 비슷하다.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정보들이 북한에 넘겼졌을 수 있다면서 문재인 5년 동안 간첩 천국이 됐다고 했다.

이 모든 보도들의 공통점은 항상 아니면 말고이면서, 기정사실처럼 반복한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 군사적 경쟁으로 유지되는 이 세계체제 속에서 모든 국가들은 첩보와 스파이 행위를 한다. 그 어떤 것도 지지할 수 없다. 하지만 가장 그걸 많이 하는 나라와 그 하수인들이 자기 편은 깨끗한 척하면서 별 근거없이 남들만 비난하는 모습은 그만보고 싶다.

다층적인 느낌을 준 <타르><리틀 칠드런>

근래에 본 영화 중에서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타르>. 케이트 블란쳇의 엄청난 연기로 유명했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었다. 권력에 중독되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도 모르게 나르시즘에 빠지다가 망가지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윤석열이나 한동훈도 떠오른다.

그래서 선택된 주인공의 배역이 모든 것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던 것 같다. 영화의 맨 처음에 한참이나 모든 제작진의 이름이 자막으로 오르던 이유도, 영화는 단지 감독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사람이 함께 만든 결과라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였다고 한다.

그런데 일종의 미러링으로서 보통 중년의 남성이 맡고 있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여성 레즈비언으로 설정하고 있다. 논란을 일으켰지만 그것이 더욱 더 권력 중독의 위험이 개인적 특성보다는 사회적 위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강하게 보여주는 장치라고 판단한 것 같다.

가장 높은 위치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게 되면 더욱 많은 것을 욕망하게 되고, 위계적인 서열에 따라서 사람을 대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다층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와 미투, 그에 따른 사회적 단죄를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가지 잘못과 의혹만으로 순식간에 누군가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매장시키는 문화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느낌도 받았다.

그것은 타르의 잘못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다소 모호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과 SNS와 미디어가 순식간에 퍼트리는 일면적 소문에 따라서, 급속히 타르와 손절을 택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읽혀진다.

그런 다층적 의미로 다가왔던 이유 중에 하나는 타르의 감독인 토드 필드의 성향과 관련있다. <타르>를 찾아보게 된 것은 토드 필드의 새로운 작품이라는 정보를 알았기 때문이었는데, 그의 전작인 <리틀 칠드런>이 워낙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었기에 그랬다.

<리틀 칠드런> 또한 가족과 결혼 제도 속에서 억눌리고 소외돼 가다가 일탈을 향해 나가는 중산층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주된 줄기로 나오지만, 동시에 성범죄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영화는 정말 드물기에 더 인상적이었다.

주인공들이 사는 동네에는 일종의 성도착증 속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맥고비)이 전자 발찌를 차고 출소하는데, 그러자 그 동네의 많은 사람들은 염려하는 부모모임을 만들어 그를 혐오하며 추방을 선동한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맥고비가 수영장에 나타나자 독극물이 수영장 에 풀린 것처럼 모든 사람이 우루루 물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결국 그는 넓은 수영장에 혼자 수영을 하다가, ‘너무 더워서 수영을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하며 경찰에 끌려나간다. 맥고비를 여전히 너무나 사랑하는 그의 엄마, 극단적 행동으로 낙인을 지우려는 맥고비, 가장 적극적으로 맥고비 추방 선동을 하는 인물의 복잡한 과거 등은 성범죄자에 대한 악마화라는 단순한 시각을 거부한다.

이런 장면들은 한국사회에서도 조두순 출소 이후에 벌어진 여러 사회적 현상과 그것에 올라타는 한동훈 법무부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 어떤 혐오도 착한 아이가 되어라는 맥고비의 엄마가 남긴 유언과 사랑의 힘보다 크지 않았다.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도 물론 인상적이었고 <레볼루셔너리 로드>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감동과 흥미를 줬다.

(기사 등록 202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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