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균
1.
며칠 전에 이 여론조사를 보았다. 그리고 이 여론조사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준석의 전장연 발언이 다수에게 지지받는 것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의견, 이준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35%나 되냐며 경악하는 의견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잘 모른다는 사람이 9%나 되는 것이 더 참혹하다는 사람도 있었고...
2.
내가 이걸 처음 봤을 때 느낌은 생각보다 내가 체험하는 것보다 이준석의 의견에 사람들이 동조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준석이 전장연에 직접 못된 말을 SNS에 쏟아 놓기 이전에도 지하철 타기를 할 때마다 현장에서든 온라인에서든 온갖 혐오와 욕설을 들어야 했다.
소위 왜곡된 "버스타세요" 영상은 이준석이 얘기하기 전에 유튜브에 돌았던 거고 현장에서 장애인에게 욕설하는 사람들이나 역에 붙인 우리 선전물을 떼는 사람들, 페이스북 메시지나 메일로 요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무위키는 전장연을 불법시위나 일삼는 집단으로 열심히 난도질 당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준석이 강화 스위치를 눌러서 더 강화돼서 우릴 공격하는 강도가 쌔지긴 했지만...
그런 광경을 직접 "전장연 활동가"로서 전천후로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수의 의견이 우릴 비난하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이준석식 혐오에 함께 하는 사람보다 그걸 혐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이준석이나 펨코, 디씨, 나무위키 등에 있는 다수의 "형상 없는 네트워크 속 사람들"만 대중의 의견이라고 챙기고 추수하는 것은 확실히 정치에서 재고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강해졌다.
계속 사람들이 말하는 인터넷 여론 과다대표는 둘째 문제치더라도, 인터넷에서 여과되지 않는 어떤 혐오 차별의 목소리에 화염방사기를 달아 주는 순간 어떻게 정치가 참혹해 지는지 그리고 현실은 또 참혹한 정치와 괴리되는지 보여 주는 것 같았다.
3.
물론 그러면서도 드는 생각은 그렇다고 반대의 경우, 여론조사가 이준석을 지지하는 결과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활동을 멈춰야 하는 건가? 이런 의문을 할 수도 있으니까.
사회에서 다수의 권력을 가지고 있고, 그 권력으로 오만 권리를 다 누리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권리는 고사하고 차별과 배제를 계속 일상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의 사람들에게 여론조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어차피 이 사회가 가르치는 주류의 교육이나 사회적 통념은 체제를 지탱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이상 중요하게 다루지 않으니까.
특히나 경쟁이 심화되고 개인과 개인이 찢어지는 사회에서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은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팍팍한 지금 특히나 사회적 소수자가 일상을 멈춘다면 더 혐오 배제가 유혹하기 쉬울 것이라고 본다.
특히 일상에서 어떤 매체와 함께 하냐가 그 유혹의 정도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나무위키, 유튜브, 디씨 펨코 등 커뮤니티 사이트 등의 접근성이 가장 높은 20대가 이준석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48.7&)과 동의하는 사람(42.3%)의 차이가 적은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다시 말해 설사 목소리 외치는 소리가 소수일지라도 인권과 권리를 위해서라면 결국 행동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거니까. 단지 그 이유로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2002년 지하철 선로 내려가고, 버스를 막을 때도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그 때는 지금보다 더 비난을 받았다. 집에만 있거나 시설에 있어야 하고 4월 20일만 동정과 시혜를 베풀어 줘야 하는 장애인이 목소리 외치는 것이 상상이 안 가는 거였으니까.
그럼에도 계속 수십 년을 목소리 외친 것이 어쨌든 이 역설적으로 이 여론조사의 결과를 만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닌 것 같지만 설사 소수라도 끊임없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만들어 간 것이 지금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있어서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는 혐오와 배제를 하는 사람들이 탈시설을 가지고 물고 늘어진다. 이동권으로 무언가 요구하는 "하찮은" 장애인이 이젠 "보호해 주는" 시설이 아닌 사회에 나가겠다 하고 그걸 위해 예산을 요구하는 것조차 "이기주의적"인 것처럼 몰아 세우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싸워 나갈 것이다. 비단 제도를 바꾸는 것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장애인도 살아간다는 이 당연한 이야기가 일상에 스며 들기 위해서 우리도 살아가기 위해선 멈출 수 없는 거니까.
4.
미국에서 흑인과 백인이 버스 좌석도 다르게 앉았던 "비문명적" 일상도 흑인의 백인좌석 앉기 투쟁으로 그 일상이 붕괴됐다.(여전히 미국 사회 인종차별 문제가 산적해 있는 고민이 남아있긴 하지만) 어떻게 왕과 귀족을 넘어설 수 있냐고 상상할 수 없던 "비문명적" 사회도 결국 전세계의 혁명으로 붕괴됐다.
대중과 함께 운동을 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에만 몰두하며 마냥 추수만 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사회에 계속해서 모를 심고 물을 뿌릴 것이다. 해가 뜨겁게 비추고 어쩔 땐 폭풍이 몰아치더라도 인권이 노란 들판으로 익어갈 때까지 멈추지 않으리라.
(기사 등록 202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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