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박노자]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반전평화 투쟁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2. 7.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세계 냉전이 1989년에 종식된 것은 적어도 한 가지 매우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세계 군비가 오래간만에 상당히 줄어든 것이죠. 냉전의 마지막 해인 1989년에 세계의 군비는 미화 15천억 정도이었는데, 소련이 붕괴되고 중국이 경제 건설에 집중하는 상황에서는 5년 뒤에는 약 미화 1조불 수준까지 내려갔습니다.

1990년대 초중반은 세계의 "죽음의 장사", 즉 무기 장사에는 불황 중의 불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안 하고 살기에는 무기의 제조와 판매는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 높은 것입니다. 그래서 1999년에 미국은, 미국의 안보에 하등의 영향을 줄 수 없는 머나먼 유고를 공습했으며, 대체로 그 전쟁을 전후한 시기부터 세계의 군비는 다시 쑥쑥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2001년 아프간 침략, 2003년 이라크 침략 등등은 무기 산업에 "하늘의 선물" 같은 역할을 했죠. 그 때부터 지금까지 각국 국방 예산의 증액, 무기 산업의 지속적인 증산의 결과, 작년의 세계 군비는 아예 1918억 불, 즉 거의 2조 불 정도 된 것입니다. 1990년대 중반의 수준보다 거의 2배나 껑청 뛴 것이죠. 아무래도 2008년의 불황 이후에는 무기 산업이야말로 각국 "경기 부양"의 중요한 기제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난 20여년 동안의 무기 경쟁에서는 동아시아는 절대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비록 세계 무기 시장에서는 아직도 미국이나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과 같은 주요 행위자는 아니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꾸준히 군부 예산을 증액하고 무기 생산을 증산시키고 대외적 무기 판매고를 높였습니다. 2010년부터 한국의 국방비는 거의 40%나 늘어났습니다. 중국의 국방비 증액 속도와 거의 같은 속도죠.

2015-2020년간 그 전의 5(2010-2014년간)에 비해 무기 수출은 아예 143% 정도로 늘어나 지금 세계 10위의 무기 수출 대국이 된 겁니다. 세계 시장의 2,2% 정도 차지하게 됐고요. 물론 한국의 경우에는 무기 수출보다 (주로 미국산) 무기 수입의 액수는 훨씬 더 큽니다. 그러나 이미 한화 에어로스페이스와 같은 한국의 대표적인 방산 기업은, 세계의 46위 무기 판매 업체가 된 것입니다. 아마도 앞으로는 가면 갈수록 한국 재벌의 비즈니스에 있어서는 "죽음의 장사" 비율은 높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요즘 군부 예산을 흔히들 "국방 예산"이라고 부릅니다. "국방""국가의 방어", national defence의 약어입니다. 그러나 과연 군비의 증액과 무기 생산의 증산은 거시적인 시각에서는 "방어", 즉 전쟁 억제에는 도움이 됩니까? 진행 중인 무장 분쟁의 숫자 (56), 2022년 현재 오히려 1989년보다 더 높은 것이고 1996(40)보다도 높습니다.

무장 경쟁을 거듭하는 세계는 사실 무장 분쟁으로 폭발되기가 더 쉬운 세계죠. 미군도 2001년 아프간 침략 이후로는 계속해서 아프간과 중동, 아프리카에서 이런저런 전쟁 행위를 수행해 왔지만, 예컨대 러시아군도 1999년 제2체첸 전쟁의 시작 단계부터 거의 쉬는 해는 없어 왔습니다.

2차 체첸전쟁 (1999-2009), 다게스탄에서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의 전쟁 (2009-2017), 그루지아와의 전쟁 (2008), 크림 반도 합병과 동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2014년 이후 계속), 시리아 전쟁 (2015년 이후 계속)...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러시아에서도 전쟁은 지속적이고 평화의 나날이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또 그렇게 해야 무기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제조업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이죠.

가장 무서운 것은, 전쟁과 무기 경쟁이 일상인 후기 자본주의의 "전쟁 (준비)하는 국가"에 우리 시민들이 그저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라크 침략과 같은 엄청난 규모의 평화에 대한 대형 범죄들은 종종 거대한 평화 운동의 물결을 가져다주긴 합니다. 그러나 반전 운동이 합법적으로 가능한 미국에서도, 예컨대 아프간 침공과 점령에 대한 저항은 그다지 강하거나 가시적이지 않았습니다.

예멘이나 소말리아에서의 펜타곤 군사 작전은 아예 다수 시민들의 눈 밖에 벗어나 있으며, 지속적인 펜타곤 예산 증액도 진보주의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동의를 얻는 듯합니다. 진보의 기반 중의 하나는 제조업 노조들인데, 그 제조업의 절반 이상이 군수 기업이지 않습니까? 미국처럼 대한민국 역시 합법적인 반전 운동이 제한적으로나마 가능한 사회지만, 문 정부 하에서의 국방부 예산의 폭주에 대해 진보 동네에서도 그다지 반대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기 판매를 "업적"으로 자랑하는 문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그다지 시민 사회에서 비판이 많이 나오지 않죠. "죽음의 장사"가 일상이 된 이 삶에 우리가 그냥 익숙해져 버린 것 같습니다. 반전 운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러시아 같은 경우에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반대 운동은 극소수 (주로 자유주의) 지식인의 "담론"에 그칩니다. 노동계급이나 좌파의 반전 운동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무기 장사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모든 국가들이 "무기 경쟁에서 밀리면 우리가 죽는다"는 식의 공포 의식을 유포시키고 신냉전이 가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는 아마도 평화 반전 투쟁은 제일 어려운 싸움일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 투쟁을 포기해서도 안됩니다. 전쟁과 전쟁의 준비가 다반사이자 일상이 된 사회에서는 어떤 바람직한 변혁도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고, 신냉전의 경계선들을 넘어 여러 나라의 피해 대중들이 연대해야 이 미친 체제를 함께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사 등록 2022.2.7)

*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newactorg@gmail.com/ 010 - 8230 - 3097 / http://www.anotherworld.kr/608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