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러시아에서 제가 맞이한 1990년대는 최악의 “불안의 시대”이었습니다. 시장 경제로 재편되는 길목에서 국가 통치력이 대대적으로 약화돼 강도 조직들이 갈취하는 “보호세”가 국가의 세금을 대체한 듯한,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1990년대 중반에 박사과정을 밟았던 모스크바에서는 10만명당 살인율이 약 40명 정도이었는데, 마약 조폭들에게 시달리는 오늘날의 멕시코 도시들이나 남아공의 요하네스부르그 정도의 수치이었죠.
참고로, 대한민국의 오늘날 살인율은 약 0,6 정도로, 그 당시 모스크바보다 거의 75배 정도 더 나은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그때에 한국에 가서 취직하고 싶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안심하고 밖에 다니고 싶다”는 부분은 좀 컸습니다.
1990년대말에 제가 가게 된 한국은 … 네,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종종 이런저런 희비극들은 없지 않아 좀 있었습니다. 한 번 1997년4월에 서울 지하철에서 아마도 약간의 정신 이상이 있으셨던 분은, 그 차량에서 유일한 “가시적 외국인”이었던 저 앞에 와서 “미국 놈들”의 세계 패권이 얼마나 잔인한 수단으로 유지되고, 주한 미군이 얼마나 나쁜 짓을 하고 다니는지 아주 크고 흥분된 목소리로 제게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데, 제가 그에게 “저도 미제 놈들을 너무너무 싫어한다”고 동조하여 그 주장에 대한 수긍을 나타내자 위기 상황이 절로 해소됐습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친미적 국가가 된 요즘에는, 그런 에피소드들이 가능했던 1990년대가 오히려 향수스럽기도 하지요… 그런 경우나, 등산할 때에 가끔 제 옆으로 와서 제게 그 인생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아마도 심심하고 말 상대가 필요한 퇴직자 분들 이외에는 제가 “거리”에서 의도치 않은 일에 부딪친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국의 길거리는 대체로 안전하다”는 말에 아마도 한국을 찾는 많은 외부자들이 동의할 겁니다. 물론 젠더와 인종 차이 등은 엄연히 있습니다. 혼자 있는 여성에게는 세상에 가장 편하고 좋다는 그 서울 지하철도 절대 “안전”할 리가 없고, 만약 비백인 여성이라면 지하철은 그렇다 치고 예컨대 한국 농장에서의 노동과 생활이 안전하다고 보기가 힘들 겁니다. 그래도 굳이 국제 비교를 하자면, 남녀, 내외국인 평균으로는 서울의 거리나 지하철은 아마도 “비교적 안전한” 측에 들 겁니다.
문제는 “거리”라기보다는 “주거”나 “직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1990년대 말에 개인적으로는 그 양쪽에서 그렇게까지 큰 일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전세로 얻은 집에서는 한 번 전세금이 몇 개월 동안 주인의 사정으로 빠지지 않은 경우가 있었는데, 그 때 들은 주인 아주머니의 말은 인상적이었습니다. “힘 없는 너네들을, 우리가 괴롭히지 않을거야”라고, 전세금을 못받을 것 같아 전전긍긍했던 세입자들을 향해서 “위로”하다시피 한 말이죠.
저는, 한국 여권과 재산이 없는 제가 한국에서 얼마나 “힘 없다”는 존재인가를, 그 때에 처음으로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직장은 대학인지라 임금 체불을 한 번 당한 적이 없었습니다. 참고로, 재작년 같으면 임금 체불을 신고한 외국인 노동자는 약 3만 명이었으며, 체불 임금 총액은 1287억 원 정도이었습니다.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의 약 30-40%는, 1990년대 말에는 미등록 노동자를 포함해 약 50-60%는 임금 체불을 경험했는데, 그걸 경험하지 않은 저 같은 사람은 “행운”이라고 봐야 합니다.
대학은 대학인지라 산재를 당할 일도 없어 사실 재한 외국인 노동자 치고는 굉장히 평안한 생활을 한 셈입니다. 한 번 (나중에 박근혜 시절 국정 한국사 교과서의 저자까지 된) 한 교수에게 원고 번역 대가를 받지 못한 등 학계에서 “사기”를 당하긴 했지만, 역시 피해 건수와 피해 액수로 봐서는 그 당시 외국인 노동자 치고 매우 경미한 편이었습니다.
사실, “배움터/직장의 안전성” 차원에서는 저보다 한국인 학생들과 외국인 학생들은 훨씬 더 고생한 걸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가까운 데에서 일어과의 한 교수는 상습적으로 교실에서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는데, 그에게 야구 방망이 등으로 얻어맞은 학생들은 상당수이었던 것으로 관찰됐습니다. 외국인 학생들의 경우에는, 폭력보다 사기 범죄 (알바비 떼먹기 등등)에 많이 시달린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학생들의 안전성 문제로는, 옆에 있었던 체대는 최악이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에 대한 고학년생 등의 폭행은 거의 주기적이었습니다.
“거리”는 안전해도 “직장”이 너무나 불안전하다는 것은 그 때에 대한민국에 대한 제 인상이었습니다. 지금 과연 많이 달라졌나요? 체대 등 특수 단과대를 제외하고 대학에서의 학생들에 대한 폭행과 모독, 폭언은 많이 줄었던 것 같은데, 특히 산재, 산재사, 과로사의 문제는 거의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임금 체불은 코로나 시절에 더 악화돼 가고요. 아마도 한국에서 “직장”의 불안전성은 한국형 자본주의 모델의 유기적인 일부분이 된 만큼, “안전한 거리와 안전한 직장”으로의 이동은 절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기사 등록 202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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