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집중 농성
얼마전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집중 농성’에 함께 했다. 거의 하루 종일 밖에서 떨기는 했지만, 여러 반가운 동지들도 만날 수 있었고 또 의미있는 자리였다. 마지막에 단돈 만원의 지지금을 내고 농성했던 즉석접이식천막도 득템했다.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 수많은 이들과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진보당 김재연 후보도 분명하고 속시원하게 이 법안을 가로막는 세력을 질타하고 제정의 필요성을 말해줬다.
어제도 차별금지법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엄청난 분노와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다. 14년을 기다리며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고, 소중한 것을 잃어온 사람들의 정당한 분노와 비판이다. 아마 민주당은 변명하고 핑계댈 것이다. 우리도 하고 싶은데 국민의힘이 막고 있다고.
물론 국민의힘이라는 골키퍼와 상대편이 이 법을 막고 있다. 그리고 이상민 의원 등은 혐오세력이 365일 하루 종일 의원실 앞에서 비방 피켓팅을 하고(그들의 구호중 가장 웃픈 것은 ‘이상민이 우리 아이들을 동성애자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괴롭히는 전화를 하는 중에도 이 법을 발의한 것도 사실이다. 또 민주당 안에서는 ‘성소수자 당원모임’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민주당을 불신하고 비판하는 이유는 이상민, 박주민, 권인숙 의원 등의 소수를 제외하고는 지도부와 대부분의 의원들이 열의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골키퍼와 상대편을 핑계대면서 사실은 공을 찰 생각도 안하고 침대축구를 하고 있고, 심지어 김회재처럼 반대 편으로 드리볼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 법은 민주당의 변명과 핑계처럼 국민의힘이 결사 반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준석은 얼마전 차별금지법이 ‘독소조항이 들어있고 사회의 근간을 흔들 내용’이라고 매도했다. 윤석열은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면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고 일자리도 없어진다’고 왜곡했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당론으로 반대한다’고 했다. 이들은 결코 단지 일부 개인이 아니라 국민의힘을 대표하는 자들이다.
국민의힘이 이러는 이유는 이 당이 우리 사회의 핵심 기득권 세력에 기반하고 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핵심 기득권 세력에게 차별금지법은 차별과 혐오를 통해서 부와 권력을 늘려온 그들의 이해관계를 위협하는 법안이다. 이것이 국민의 7~80%가 찬성해도 이 법안 통과가 어려운 이유다. 국민의 2%에게 부과되는 종부세에 수많은 언론과 정치세력이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이제 김종인이 원톱이 되면서, 기다리던 명분을 얻어서 국민의힘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금태섭, 권경애 등은 그들이 평소 밝혀온 차별금지법에 대한 ‘소신’이 도대체 그냥 장식용 껍데기였던 것인지, 정말 진지한 것이었는지 밝혀야할 순간이 되었다.(솔직히 수많은 낙인, 편견, 마녀사냥에 침묵하고 동조하던 사람들이어서 큰 기대는 없다.)
어제 차별금지법 집회와 농성에 가면서 가장 아쉽고 고민됐던 것은, 어제 있었던 이석기 의원 석방 요구 대회에 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누구에 대한 차별, 편견, 낙인, 혐오도 반대한다는 측면에서 이석기 의원에 대한 종북몰이 마녀사냥과 벌써 9년째가 되는 감옥살이에 분노하고 당장 석방할 것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문제에서도 이석기 의원에게 낙인을 찍고 마녀사냥을 하고 감옥에 가둔 것은 국민의힘일지 몰라도, 민주당은 그것을 핑계대고 변명할 자격이 없다. 이석기 의원은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감옥에 있었고, 이석기 의원의 석방을 기대하면서 청와대 앞에서 노숙을 하시던 이석기 의원의 누님은 큰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 이 기사에 나오듯이 “2021년이 20여 일 남았다.” “문재인 정부는 연내 석방이라는 답을 통해 마지막 책임을 다해야 한다.”(https://www.vop.co.kr/A00001604419.html)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이석기 의원을 석방하라!
#차별금지법 #지금당장 #차별금지법연내제정
#국가보안법_폐지 #이석기_석방
●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쟁취 국회 포위 깃발행동
지난주 목요일(11월 25일)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쟁취 국회 포위 깃발행동’에 나도 참가했다. 90여개의 깃발로 국회를 포위하는 이 행동에서 나는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는 깃발을 담당해 들고서 국회 건너편 도로에 서서 힘을 보탰다.
이날 행동 이후에 오후 2시에 국회에서는 민주당 정책위원회 주최로 ‘평등법(차별금지법)’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열리기 전부터 여러 강한 비판을 받았는데, 왜냐하면 찬성 5명, 반대 5명으로 구성된 토론 패널에서 반대 5명이 모두 성소수자에 대한 몰상식한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을 발의까지 하고, 아무튼 소극적이라도 추진하겠다는 정치세력이 왜 이런 토론회를 열었던 것일까. 사실 차별금지법은 그렇게 급진적 요구도 아니다. 가끔 한국에 와서 차별금지법 제정의 경험을 들려주는 외국 고위 인사들을 보면 보수정당 의원들이 꽤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민주당 지도부의 이런 행태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굳이 이해를 하자면 이런 반론이 가능하다.
‘국민의힘은 차별금지법을 당론으로 반대하면서 토론회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데, 법안 처리 절차상 토론회 자체를 하지 않을 수는 없고, 토론자를 찬성 패널만으로 구성하는 것은 불가하기에 형식상 반대쪽 토론자를 부르게 된 것이다. 또 반대하는 사람도 분명 국민의 일부인데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주장 자체를 봉쇄할 수는 없고 설득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사안의 성격이 다른 것을 혼동하거나 섞는 것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들의 목소리 자체를 차단할 것이냐의 문제와 특정한 토론회에서 어떤 사람을 발표자로 부를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민주당은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서 굳이 저런 사람들을 반대 토론자로 부를 필요가 없었다. 이것은 그런 사람들을 같은 국민으로서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가 없다거나, 어디서든 주장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과는 다른 것이다.
민주당은 반대 토론자를 이렇게 구성하고 섭외함으로써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발언을 공론장에서 존중받아야 할 목소리 중에 하나로 위상을 높여주고 말았다. 실제 토론회에서 반대 패널들의 쏟아놓은 발언들은 정말 심각하고 문제가 많았다.
이상원 목사는 “동성애를 ‘혐오스러운 일’이라고 강력하게 표현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말했고, 류현모 교수는 “동성애는 강박적·중독적 성향을 가진 정신질환”이라고 했다. 이요나 목사 “종교적 기독교적 상담법으로 동성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런 생각과 주장을 하는 사람들 말고는 다른 반대 토론자를 구할 수 없었다고 한다면, 이것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세력의 수준과 현실에 대한 생생한 폭로가 아닐 수 없다. 도저히 상식적인 차원에서 의미있는 이성적인 토론을 주고받기가 어려운 상대인 것이다.
혹시, 그것을 폭로하려는 게 민주당 지도부의 숨은 의도였을까? 물론 그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지금 차별금지법을 가로막고 있는 세력의 핵심은 이런 복음주의적, 비과학적 주장들을 진지하게 진심으로 믿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을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물질적 이해관계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고 본다.
성별, 학력, 고용형태, 지역, 종교, 인종 등에 따라서 사람을 차별해서 교육, 고용, 재화, 용역 등의 부분에서 이익을 얻어온 세력들이 그러한 구조의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들의 기득권에 실질적 손실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내세우기에는 자신과 명분이 없으니, 나서지는 못하고 저런 사람들을 앞세우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성경의 가르침’이 어떻고, ‘전환치료’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가 가로막혀 있고, 민주당 지도부는 여기에 큰 책임을 느껴야 한다.
#차별금지법 #지금당장 #차별금지법연내제정
● 미얀마 쿠데타 300일
얼마전 포스코 앞에서 열린 미얀마 쿠데타 300일 맞이 ‘기후악당, 노동착취, 인권탄압 포스코 규탄대회에 갔다 왔다. 비가 내리고 갑자기 추원진 날씨와 강풍 속에서도 미얀마 민중에 연대하고 포스코에 분노하는 참가자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자리였다. 미얀마 쿠데타가 일어난지 300일이 지났지만, 몇 년이 지난 느낌이다. 미얀마 민중들이 너무나 오래동안 고통받고 있고, 하루라도 빨리 군부가 물러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인 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는 <한겨레>에 실린 천기홍 교수의 ‘미얀마에서 온 편지’를 봤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21428.html 미얀마 현지에서 계속 전해져 오는 천기홍 교수의 글은 항상 깊이있게 여러 가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강경하게 미얀마 ‘봄의 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아마 뭔가 껄끄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소 갸웃거리게 되는 내용도 몇 번 있었다.
그럼에도 이 분의 글들은 미얀마 민중의 투쟁과 승리를 위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검토해 봐야 할 꺼리들을 던져주는 점이 있었다. 이번 글도 그러한데, ‘친군부 밀고자를 암살하는 반군부 조직들의 암살 대상이 밀고자의 가족들로까지 확대’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또 군부만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여유있게 쇼핑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지는 것이 ‘시민들 내부의 분열’로 나아갈 것을 염려하고 있다.
아마도 ‘지금 군부에 의해서 벌써 미얀마 시민 1200여명이 살해 당했고, 수많은 이들이 납치와 고문을 당하고 있고, 군부의 포격으로 온 마을이 지옥같은 쑥대밭이 된 탄틀랑 등을 보고도 이런 속 편한 이야기를 하는가’라는 반발이 나올 수 있다.
지금의 학살과 폭정에 책임이 있는 핵심 군부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은 무조건 비판하고 반대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그것을 주된 전술로 삼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또 지금 상황에서 더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군부를 지지하고 협력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다만 천기홍 교수가 고민하거나 우려하고 있는 것이 어디서 비롯한 것인지는 알 것 같다. 이것은 어떤 전략과 전술을 통해서 반군부 저항세력이 시민들의 마음을 얻으며 더 큰 힘을 키워나갈 것이냐의 문제이면서, 반군부 민주주의 혁명을 통해서 미얀마 민중이 만들어가려는 세상에서 어떤 가치들을 더 우선할 것인가의 문제와도 연결돼 있는 것 같다.
미얀마 민중을 위해 별다른 도움을 주지도 못하면서 이런 고민이나 키보드로 두드리고 있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미얀마에서 지금 투쟁하고 있는 투사들과 그것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누구보다 이런 문제를 치열하고 깊게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언제나 지지하고 응원한다.
#SaveMyanmar #save_myanmarpeople #StandwithMyanmar #StopCoup #RejectMilitary
● 전두환 사망 이후 3일
전두환 사망 후 3일 동안의 상황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것은 군부독재와 기득권 카르텔에 맞서서 이 사회의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고 희생했던 많은 이들의 투쟁과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느낌이었다. 국가와 정부 차원의 추모나 애도, 예우와 국가장 추진 등은 없었을뿐 아니라 어떤 세력도 아주 노골적으로 공공연하게 전두환을 추모하거나 찬양하지는 못하고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의힘도 공식적인 애도의 입장을 내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도 조문을 가려다가 취소했을 뿐 아니라 홍준표도 지지자들의 반대 때문에 조문가지 못했다. ‘죽음과 망자에 대한 기본적 예의’가 중요한 사회에서도 전두환은 그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미움받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80년 광주에서 전두환과 신군부는 군홧발로 도청을 함락하고, 이후 공포와 폭력을 통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역사 속에서는 패배했다는 것이 명백해진 것이다. 80년 광주에서 백기투항이 아니라 끝까지 목숨을 걸고 총을 들고 저항했던 투사들에게 우리 사회가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 정신을 이어서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위해서 어떤 어려움과 탄압과 희생도 무릅쓰고 싸워 온 수많은 이들이 이러한 역사적 변화와 전진을 만들어온 우리 사회의 진정한 영웅들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누가 전두환을 애도하고 조문을 갔는가를 봐야 한다. 먼저 국민의힘 원내대표 김기현, 윤석열캠프 조직총괄본부장 주호영,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 윤상현, 박대출, 김석기(용산참사 살인주범), 민경욱 등이 직접 조문을 갔다. 국민의힘 전대표이자 대선경선 후보였던 황교안, 전 주일본 대사 권철현, 전 경북도지사 김관용, 손학규, 반기문 등도 직접 조문했다. 이명박, 박근혜, 이준석은 직접 조문은 못했지만 조화를 보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김민배 TV조선 대표는 근조화환을 보냈다. 전두환과 신군부의 독재체제가 어떤 사회적 세력의 지지, 협력, 방조 속에서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고 어느 세력에 의해서 이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장면들이다.
무엇보다 <조선일보>는 이 모든 세력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했다고 볼 수 있는 사설을 실었다. “현대사 아픔과 갈등, 굴곡, 논란 안고 떠난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는 이 사설은 전두환의 잘못과 범죄를 몇가지 나열한 다음에 그의 ‘공’을 대조시킨다. 전두환 덕분에 “‘물가 안정’ 등 경제적으로는 발전”했고 “경제 발전과 개방 정책으로 늘어난 중산층”이 있었고, 결국 “평화적 과정으로 권력을 이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는 어두웠던 역사의 기억도 그와 함께 떠나보냈으면”하고 “대립과 갈등, 상처를 넘어서는 길로 가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한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말도 인용한다.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그 누구이든 표적삼아서 없던 죄까지 만들어내서 인간 그 자체를 증오하도록 끝없이 부추겨온 장본인들로서 참 어색한 말이다. 모두의 미움을 받았고,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한 전두환은 사망했지만, 그를 도와서 그런 역사적 범죄가 가능하게 했던 구조와 세력은 여전히 남아서 어두운 과거의 청산과 기득권 카르텔 구조의 해체를 가로막으며 '천년왕국'을 꿈꾸고 있다.
● 한국의 학살자 전두환과 미얀마의 학살자 훌라잉
얼마전 점심시간에 또 중국 대사관 앞에서 미얀마 민중항쟁에 연대하며 중국 정부의 미얀마 군부에 대한 지원과 협력을 규탄하는 1인시위를 했다. 이번에도 철식 동지와 함께했다. 그러면서 전두환의 사망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이 어떠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 걱정했던 바와 달리, 노태우 때처럼 주요 정치인들이 조문을 가고 애도를 하거나, 정부가 국가장을 추진하는 등의 일은 없을 것 같다.
얼마 전에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 했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던 윤석열도 조문가겠다고 했다가 비판을 받고는 번복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전두환의 유산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낫다고 보기는 여전히 어렵다. 1980년에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과 군사독재의 생명 연장은 단지 전두환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주의와 국가는 냉전시대에 군부 일당독재를 통해서 국가주도의 압축성장으로 성공적인 자본축적을 이뤄왔다. 이 체제는 1980년에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지만 광주에서 ‘피의 학살’을 통해 권력구조와 축적체제를 복원시켰다. 당시에 신군부의 반혁명은 미국 정부의 암묵적 묵인, 재벌과 족벌언론들과 보수개신교 지도자들, 사법행정 엘리트들과 여타 기득권 세력의 지지와 협력 속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물론, 오늘날의 시대와 상황은 그 때와 많이 다르다. 그러나 그 구조와 세력들이 사라졌는가 묻는다면 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여전히 한반도에서 냉전구조의 해체나 종전 선언, 평화협정 등을 가로막고 있다. 군부가 인위적으로 육성하며 덩치를 키워준 재벌은 오늘날 이제 한국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족벌언론들은 이제 선출권력을 넘어서는 엄청난 영향력과 의제 설정력을 과시하고 있고, 민정당과 민자당에서 이어진 국민의힘은 권력 탈환을 통해 2016년 촛불 이전으로의 회귀를 노리고 있다. 전두환과 5공 정부 아래서 충직한 하수인이던 김종인은 정치원로가 돼서 오늘날 한국정치의 ‘킹메이커’로 불리고 있다.
보수개신교계는 얼마 전 ‘국가비상긴급기도대성회’를 열어서 ‘문재인 정권이 북한 정권 수립기념일인 2019년 9월 9일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던 것은 사회주의를 하자는 의도였다. 차별금지법과 동성애와 무슬림을 막기 위해 힘을 모으자’고 했다. 전두환은 ‘김일성 왕조가 무너지는 순간을 보고싶다’며 유해를 화장해서 휴전선 전방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한다.
야만과 반동의 형태와 주제는 달라졌겠지만, 그 위험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2016년 촛불이 기득권 카르텔과 보수정치 체제를 무너뜨렸다는 생각은 매우 섣부른 것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언제나 그렇듯이 역사의 전진과 후퇴는 항상 국제적 차원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행되는 과정이다.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동아시아의 상황은 우리에게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일본에서 자민당의 보수 일당독주가 도무지 흔들리지 않고 있고, 홍콩과 태국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도전이 폭력적으로 짓밟혔으며, 나아가 미얀마에서는 군부의 학살과 반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두환은 죽었지만, 미얀마의 전두환인 군최고사령관 훌라잉은 멀쩡히 살아서 미얀마 민중을 학살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그런 훌라잉을 돕고 있다. 중국 정부를 규탄하며 학살자 훌라잉에 맞서는 미얀마 민중의 포기하지 않는 투쟁을 응원한다. 미얀마의 전두환은 여전히 살아서 학살을 저지르고 있고, 미얀마의 광주는 현재 진행형이다. 미얀마 민중은 반드시 반혁명을 막아내고 학살자를 단죄하고 처벌할 수 있기를.
#SaveMyanmar #save_myanmarpeople #StandwithMyanmar #StopCoup #RejectMilitary
● 니카라과가 보여주는 것
지난달 중앙아메리카의 니카라과에서 있었던 대선에서 다니엘 오르테가가 75%의 득표율로 4연임이자 통산 5선에 성공했다. 높은 득표율은 마치 오르테가가 니카라과 국민의 커다란 지지를 얻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 중남미에서 이어지는 ‘핑크타이드 2.0’(좌파 정권 집권의 흐름)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고작 20%밖에 안됐다. 즉 오르테가는 전체 유권자의 고작 15%만의 지지를 얻은 셈이다.
왜 80%에 달하는 유권자들이 투표를 기권했을까? 오르테가가 7명의 야당 유력 대선후보들과 40여명의 야권 인사들을 구속해 버리고, 집회와 결사 자체를 막았기 때문이다. 오르테가 정부는 국가보안법, 사이버 보안법, 정부에 대한 ‘증오’를 금지하는 법안 등 온갖 악법을 만들어서 정치적 자유를 억누르고 선거를 요식행위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방식으로 오르테가는 2007년부터 벌써 14년 동안 장기 집권과 독재적 통치를 지속하고 있다. 2017년부터는 아예 자신의 부인을 부통령으로 임명해 부부 동반 독재를 하고 있다. 당연히 이에 대한 저항도 있었다. 2018년에 오르테가 정부가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악을 자행한 것이 방아쇠가 되면서 쌓이던 불만과 분노가 폭발했다.
투쟁을 주도했던 것도 제도권 야당이 아니라 자발적인 청년과 학생, 여성, 노동자와 농민들이었다. 그러나 오르테가 정부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폭력 진압에 나섰다. 정권 퇴진 요구로까지 발전한 투쟁은, 군경의 총기 발포 속에서 무려 3백여명이 사망하고 수만 명이 탄압과 체포를 피해 망명하면서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부정선거 속에서 오르테가는 다시 권력을 연장하고 있다. 이 모든 게 비극적 역설인 이유는 다니엘 오르테가가 과거에 친미 독재 정부에 맞서 싸우는 혁명가였기 때문이다. 오르테가와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은 잔혹한 친미독재 정권에 맞서서 무장 투쟁을 벌이는 제3세계의 대표적 좌파였다.
1979년에 마침내 산디니스타가 소모사 친미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국유화 등 사회주의적 변혁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기대를 걸었었다. 미제국주의는 당연히 이것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고 강력한 경제봉쇄와 재제 속에 우익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면서 내전을 일으켜 좌파 정권을 무너뜨리려 했다. 많은 국제좌파들이 미국을 비판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좌파 혁명가로서 오르테가의 태도는 변질돼 갔다. 소수의 중앙 지도부에게 권한이 집중된 속에 민주주의는 질식돼 갔다. 특히 2007년에 그와 산디니스타가 재집권에 성공하고 나서 후퇴는 본격화했고, 그는 혁명가에서 독재자로 변신해 갔다. IMF와 세계은행이 권고하는 정책들을 받아들였고, 2018년에 연금 개악도 IMF의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 물론 오르테가의 가족과 친인척들이 만든 가족 족벌기업들은 그 속에서 큰 수혜를 얻었다.
혁명과 좌파 정권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의해 밖으로부터 무너진 게 아니었다. 물론 지금 오르테가를 비판하는 쪽에는 반미 좌파정권을 마땅치않게 여기는 친미 우파 야당, 다국적기업들의 목소리도 섞여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제국주의를 내세우는 좌파적 수사학 속에서 막상 오르테가는 이민과 마약 문제 등에서 미국과 일부 협력하고 있다.
오르테가의 비극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사회주의와 반자본주의 혁명을 추구하는 것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준다. 모든 억압과 차별에 일관되게 반대하는 것, 언제든지 잘못을 인정하고 비판을 수용할 줄 아는 것, 가장 일관되고 철저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 등이 정말 중요하다.
항상 느끼지만, ‘우리는 혁명가들이므로 답을 가지고 있고, 혁명적 원칙에 대한 이견과 타협은 용납할 수 없으며, 우리가 하는 일들은 모두 혁명을 위한 것이고, 반면 우리에 대한 비판은 혁명을 가로막는 것이다’라는 독선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그 속에서, 열악하고 힘든 조건 속에서 고군분투하던 혁명가들이 막다른 골목과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을 자주 보게된다.
그것은 내부적 이견을 입막아 버리고 징계하면서 ‘민주집중제’라고 정당화하거나, 성폭력 피해자를 괴롭히면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고 정당화하거나,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비판을 ‘개혁주의자들과 노조 관료들의 공격’이라고 우기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고, 더 심각한 잘못들로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성찰하며 오류에서 배우고 교정해 나가야만 한다.
● 코로나 - 오미크론의 위협
지금 새롭게 등장한 강력한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서서히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위드 코로나'로 넘어가려던 많은 나라들이 다시 여행차단과 재봉쇄로 나아가기 시작하고 있고, 세계 증시의 대폭락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오미크론’이라고 명명된 이 바이러스는 기존의 델타 변이보다도 더 강력하고, 감염률이 2배에서 심지어 7배나 더 높을 수 있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의 치료법이나 백신도 잘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처음 발견된 이 변이 바이러스는 곧 이어서 남아공, 홍콩, 벨기에, 이스라엘 등에서도 발견되면서 급속한 확산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1년만에 빠른 속도로 백신이 개발되고, 주요 국가마다 백신 접종율이 70%를 넘어가면서 ‘위드 코로나’로 넘어가던 상황에서 왜 이런 불길한 소식이 다시 들려오는 것인가?
사실, 이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일이고 이미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던 문제이다. 북미와 유럽의 부자 나라들은 백신을 사재기해서 비축해두고서 1차, 2차접종에 이어서 부스터샷까지 맞고 있는데,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은 백신을 구경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다국적제약회사들과 부자나라들이 백신의 특허권을 지켜주며 기술 공유를 하지 않는다면 언제 어떤 변이가 출현할지 모른다는 경고가 있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누군가 백신을 맞지 못하고 죽어갈 때, 백신 접종률이 70%는 넘어가던 ‘선진국’들은 마스크를 벗고, 파티를 벌이며 유통기간이 지난 백신 몇 백만회 분을 폐기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코로나가 악화시킨 실업과 빈곤으로 고통받는 수억 명이 생겨날 때, 미국의 억만장자 5명(제프 베조스, 마크 주커버그, 워렌 버핏,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은 코로나 2년 동안에 합산 재산이 85%나 증가했다고 한다.
지난해 나왔던 아래 그림을 보면 부자 나라가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가난한 나라들은 ‘가장 늦게, 가장 적게’ 백신 접종을 받을 예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엄청난 격차와 불평등 속에서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들은 거대한 변이 바이러스의 실험실로 남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변종과 변이들이 전세계적으로 번지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오미크론’이 처음 발견된 보츠와나는 백신 접종율이 20%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거꾸로 말하자면, 부자 나라의 정부들과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잘못된 정책 방향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재앙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 된다.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전세계가 힘을 모으고 공공기관과 공적자금까지 투여해서 만들어진 백신을 몇몇 다국적 제약회사가 독점하는가? 왜 전 인류를 괴롭히는 질병의 백신과 치료제가 사적 재산권으로 인정돼야 하는가?
다시 분명히 확인된다. ‘모두가 안전할 때까지 아무도 안전할 수 없다.’ 백신에 대한 지적재산권과 사적소유권을 인정하지 말고, 국가가 개입하고 통제하여 공공적 방식으로 코로나 방역과 백신 접종을 해야 한다. 코로나 기간에 오히려 더 부자가 된 이들에게서 코로나로 고통받은 사람들을 지원할 재원을 가져와야 한다.
● 피터 라인보우의 『도둑이야!』를 읽고
최근 갈무리 출판사의 요청을 받아서 피터 라인보우의 『도둑이야!』를 읽고 서평을 써서 보냈는데, 그 서평이 <참세상>에 실렸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6384
“자본주의의 본질은 사람들이 경계 없이 누리던 ‘공통장’(commons: 땅과 물, 산림 등)에 울타리를 쳐서 사적 소유의 경계를 세우고 훔쳐가는(‘인클로저’) 것에 있고, 무언가를 도둑질이라고 규정하는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진짜 도둑이라는 것이 라인보우의 관점이다...
“라인보우는 공장에서 노동조합을 통해서만 “진정한 투쟁”이 벌어지고, 나머지는 “이차적인 운동”이라는 “흔한 이해방식”을 거부하고 원주민 봉기, 노예제 폐지 투쟁, 농민 반란, ‘기계-파괴’ 등을 모두 자본주의적 축적에 맞선 투쟁으로 자리매김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적 정설을 거부하고 이처럼 탈식민주의적, 페미니즘적, 상호교차적인 관점을 추구하는 라인보우는 ‘공통장이라는 하나의 유령이 마르크스주의를 괴롭히고 있다’고 본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아니라, “공통장”(commons)에서 ‘공통적인 것’(the common)을 훔쳐가는 자들에 맞서서 ‘공통화’(commoning)를 추구하는 ‘공통인’(commoner)들의 ‘공통주의’ 전통이다.”
(기사 등록 202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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