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박노자] "절차적 공정"의 허구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노르웨이를 부자로 만든 것은 바다 속 유전들입니다. 거기에서의 일은 힘들고 때로는 위험하지만, 임금만큼은 좀 높습니다. 평균보다 40-50%를 더 주는 것이죠. 몇 년 전에 제가 소속돼 있는 공무원 노련 (NTL)의 노조보에서는, 이 유전에서의 노동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유전 노동자 중에서는 외국인의 비율이 꽤나 높은데, 상당수는 폴란드 사람들입니다. 그 중의 다수는 직접 고용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인력 업체를 통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직장 관리자와 유착한 한 인력 업체는 한 폴란드 노동자에게 고용 수속을 대리하면서 그 임금을 노르웨이 전국 평균보다 약간 낮게, 즉 노르웨이인 동료들보다는 훨씬 더 낮게 책정했습니다. "언어 소통의 문제", "경험 부족" 등을 거론하면서요. 이렇게 해서 책정된 "외국인 임금"은 해당 부문의 최저임금 이상이었기에 굳이 "절차" 내지 "법률" 차원에서는 "불법"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해당 노동자는 본인이 동료보다 덜 받는다는 사실을 까막히 몰랐습니다. 나중에 동료들에게 그 임금액 이야기를 듣고 분노해서 노조의 법률 지원을 받아 소송을 걸었습니다. 비록 절차상으로는 최저임금 이상이라면 개별적 피고용자와 개별적 고용주가 임금을 "임의 계약"하는 게 쌍방의 자율이지만, "약자 차별 방지"라는 법익이 더 우선이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었습니다.

 

지금 "절차적 공정"은 한국 신보수주의의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되는 모양입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1980년대에 레이건 등 극우들의 "복지 여왕들" (welfare queens)을 공격하는 정치 수사의 수법과 좀 엇비슷한 것입니다. 레이건이나 그를 지원 사격해주는 극우 언론들의 표적은, "납세자들을 등쳐먹으면서 복지 혜택을 부정 수령하는 가짜 약자"이었는데, 매체에서의 그 사진들을 보다 보면 다수는 흑인 싱글맘 같은 이중, 삼중의 소수자들이었습니다.

 

흑은 싱글맘들 중에서는, 그 당시 극우들이 공격했던 것처럼 복지 혜택을 타서 그 돈으로 대마초 등을 사는 경우가 전혀 없었느냐 하면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개별적 경우들은 당연 있었을 수도 있었겠죠. 문제는, 그 경우들을 침소봉대한 언론들은 "큰 그림"을 전혀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큰 그림" 차원에서는 흑인 (23%), 여성 (21%), 싱글 맘 (31%)의 빈곤율은 오늘날에 와서도 평균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죠. 과거에는 더 하면 더 했습니다. 1980년대말 미국에서는 48%의 흑인 싱글맘들은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극우 언론과 정치인들은, 만성적 가난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약자들에게는, 육아, 가사를 하면서도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이들과 "공정하게 취직 경쟁을 해서 직장을 찾으라"고 소리 높여 요구했지만, 이런 "공정"의 요구는 가난과 차별의 현실과는 아주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결국 레이건 따위의 "복지 여왕들"의 맹공격이나 "공정" 타령은, 사실상 인종적, 젠더적, 생활 여건상의 소수자, 약자들을 때리면서 스스로를 "주류"라고 상상하는 유권자들의 지지 기반을 공고화시키는 수법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격차, 차별이라는 자본주의적 사회의 "바탕 화면"을 고려하지 않는 "공정"의 요구는 대개는 전혀 공정하지 않습니다. 이 요구로 지금 정치 자본을 축적하고 있는 윤석열이나 이준석 등은, 구미권의 극우들과는 동시에 상당히 중요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미권 극우들의 전통적 표적은 "타고 난" 소수자들입니다. 미국이나 서구에서는 비백인 이민자들인가 하면, 낙태의 전면 금지 같은 무리수를 둔 폴란드의 극우 정권의 경우에는 여성들이 표적이 된 거죠.

 

한국에서도 물론 대중적 극우주의의 외국인 혐오나 여혐, 이슬라모포비아 등은 유별납니다. 단, 여성 유권자들의 반응이나 중국 내지 중동 국가들과의 비즈니스를 고려해야 하는 극우 정객들은, 일단 혐중이나 여혐 망언들을 어느 정도 자제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소수자 대신에 주로 약자들의 "공정 위반"을 문제 삼습니다. 그들의 가장 손쉬운 표적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 아니면 각종의 약자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 정책 ("퍼주기")입니다.

 

그리고 약자에 대한 공격을 정당하기 위해서는 그들은 약자를 마치 "강자"인 것처럼 허위 서술하는 전략을 이용합니다. 조직률이 12%에 불과하고 경영 참여도 못하는 한국 노조들은 구미권에 비해 대단히 취약하지만, 보수 언론들이 그들을 마치 "노동 귀족들의 초강성 조직"으로 만듭니다. 한국의 GDP 대비 복지 지출 비율은 프랑스의 31%보다 거의 2,5나 더 낮은 12,5%에 불과하지만, 보수 언론들은 "사회주의" 타령이나 열심히 합니다. 외국인 혐오나 여험보다 공개적으로 발설하기가 훨씬 쉬운 노조 혐오, 사회 정책 혐오가 극우 기반 다지기에 열심히 이용되는 것입니다.

 

약자 혐오를 정당화하는 전가의 보도는 "능력주의"입니다. "공정하게 경쟁해서 실력 차이로 졌으면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노동자로서의 처지를 감수하라, 억울하면 노오오력해서 채용 시험에 붙으라"는 식의 이 이데올로기는 물론 허구 그 자체입니다. 한달에 평균 사교육비로 150만원 이상 내는 강남구 출신하고, 그 금액이 30-40만원에 불과하는 금천구 출신하고는 그 무슨 "공정 경쟁"은 애당초에 가능합니까? 출발선 자체가 다르면 달리기 시합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런데 역사적으로 "시험을 통한 출세" 등식에 익숙해진 분위기에서는 "시험"을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이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절차 공정"과 하나의 콤비가 돼서 요즘 비교적 잘 팔리는 모양입니다. 특히 신자유주의 이외에는 그 어떤 다른 현실도 체험한 적이 없는 20대의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 말입니다. 어쩌면 극우 정권이 한 번 더 등장하여 그 다음에 한 번 더 국정 운영에 실패해서 보기 좋게 망해야 오늘날 "공정"과 "능력"의 주술에 걸린 사람들은 뒤늦게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사 등록 202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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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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