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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배달 천국"의 이면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12. 17.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한국 만큼이야 아니지만, 노르웨이에서도 서서히 "배달 문화"가 정착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종종 Foodora 등 음식 배달 업체들을 이용합니다. 저는 한국에서는 지인들과 같이 있었을 때에 몇 번 "배달의 민족"을 통해 음식 주문, 배달을 받아 본 일은 있긴 있었는데, 노르웨이에서는 한 번도 배달된 음식을 먹어본 일이 없습니다. 초밥이 먹고 싶어 질 때에 그냥 무식하게 (?) 약 15분 언덕을 내려 거기에 있는 초밥 집에서 물건을 사가지고 다시 집으로 올라 옵니다.

 

운동을 겸해서 "스스로의 배달 노동자"가 되는 것이죠. 물론 이런 삶을 한국에서의 지인들에게 권할 수는 없을 겁니다. 노르웨이 생활에는 여유가 많지만, 여유 없는 대한민국에서는 만성 과로에 시달리는 많은 직장인들에게는 배달 말고 잠깐이나마 밥 먹을 방도는 없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가능할 때까지 이 "배달 문화"의 엄습에 개인적으로 좀 저항해 볼까 합니다. 현재의 "배달 문화"가 전혀 바람직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만 해도 음식 배달 시장은 이제 17조 정도랍니다. 한국 경제의 주축이 점차 되어 가는 서비스 부문의 주요 업종이 되어 가는 것이죠. 참고로 우리 나라 커피 시장은 6조, 사교육 시장은 9조 정도, 그리고 성매매 시장은 약 30조로 추산되는데, 배달 시장은 이제 그 만큼 국내 "주요 시장" 중의 하나가 된 것입니다. 앱 사용자 숫자는 2500만 명이나 되는데, "전국민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싸고 편한데 뭐가 문제냐"라고 아마도 제게 반문하실 분들이 계실 터인데, 문제들은 사실 많아도 너무 많죠. 우선 환경에 치명적으로 안 좋은 플라스틱 포장의 과도한 사용부터 문제고, 배달 바이크가 태우는 휘발유부터 - 기후 위기의 차원에서는 - 아주 큰 문제입니다. 사실 "배달 문화"는 반환경적인 소비주의의 전형적 사례죠. 그러나 그것과 함께 또 심각한 문제들이 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이죠.

 

커피를 서빙하는 노동자들은 비정규 고용과 저임금, 안 좋은 근무 조건에 시달리고, 성매매 시장의 종사자의 경우에는 "노동자"이면서도 성착취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배달은 과연 어떤가요? "라이더 연봉은 1억"이라고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정확하게 배달 노동자의 평균 소득은 256만 원 정도입니다. 앱 수수료와 세금을 납부하고 나면 라이더에게 남는 것은 사실 "최저 임금"보다 아주 약간 높은 금액이죠. 그러니 "배달 시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실제로 저임금 노동입니다.

 

거기에다 평균 노동 시장은 1일 9,6시간에다 사고들이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서울시 2륜차 사망 사고 60%의 주인공은 바로 배달 앱 종사자들입니다. "앱 종사자"라는 게 또 뭘 의미할까요? 계약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법적으로 그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아 "자영업자"로 분류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휴가나 병가, 4대 보험은 어떻게 될까요? 사실 각종 사회적 보험에 가입한 라이더들이 전체의 약 4할밖에 안됩니다. 그만큼 보험료가 비싼 편이기도 하죠.

 

75%가 사고의 경험이 있는 라이더들이, 크게 다치면 산재 보험도 못 받을 각오로 거리들을 아찔한 속도로 달린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저는 솔직히 배달 음식을 사먹을 마음이 싹 없어집니다. 노르웨이 배달 노동자들이 바이크가 아닌 자동차로 배달을 하고, 혹시나 사고가 나면 당연히 국비로 치료를 받고 산재 인정이 되지만, 저임금은 마찬가지라서, 그것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죠.

 

그렇다면 배달 문제의 해결은 있을까요? 저 같은 몇 안 되는 개인들이 안 사먹는다고 해서 이 엄청난 규모의 시장은 어디 사라질 리가 없고 앞으로 더 커질 겁니다. 약 13만 명이 되는 배달 노동자들에게 계속 해서 낮은 단가와 희생을 강요하는 것보다는, 배달 단가 인상, 그리고 이에 따르는 배달 음식 값의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 같은 게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배달이란 당연한 것이 아니고 "약간의 사치"라는 걸 우리가 이해하고, 그 만큼 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제조업에서는 평균 월급은 370만 원 정도인데, 배달업 종사자들도 궁극적으로 그 정도로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계약의,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는 플랫폼 노동이라는 것 자체를 법적으로 차단시키는 것이 진보 운동의 최종적 목표가 돼야 합니다.

 

앱을 통해서 특정 업종의 종사자가 "노동"을 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그는 노동자로, 앱을 돌리는 업체가 사용자로 인정돼야 되고, 그 관계는 묵시적으로 "고용"으로 인정돼야 됩니다. 플랫폼 노동이라는 새로운 착취의 형태를 차단시키지 않으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저임금 무권리 노동의 보편화라는 디스토피아죠.

 

(기사 등록 20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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