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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칠레/김건희/윤석열과 좌파/<이상청>/벨 훅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12. 23.

전지윤

 

 

● 칠레 대선에서 좌파의 역사적 승리

 

어제 칠레 대선 결선투표에서 좌파연합 후보인 보리치가 당선된 것은 정말 기쁜 소식이다. 사실 지난 두달 전 1차투표에서는 극우 카스트 후보가 1위를 하면서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카스트는 범죄를 빌미로 강력한 치안을 강조하며 반이민 선동을 하고, 여성부 폐지와 낙태 금지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고, 강력한 신자유주의 노선을 고수하는 후보였기 때문이다.

 

50%도 안되는 낮은 투표율 속에서 카스트가 1위를 차지하고, 보리치 후보의 지지율은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나자, 이러다가 칠레가 국제적인 진보의 견인차에서 반동의 신호탄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경고와 걱정들이 많았다. 그러나 결선투표를 앞두고는 카스트의 극우적 성격에 대한 대중적 경각심이 고조되면서, 다시 투표율이 크게 올라갔고 결국 보리치가 넉넉하게 승리하는 기분좋은 역전이 일어났다.

 

이로써 칠레는 다시 국제적 좌파의 희망으로 우뚝 섰고, 최근 계속된 ‘핑크타이드2.0’(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 정부 집권의 흐름)을 더 강력하게 뒷받침하게 됐다. 이것은 칠레의 노동자, 여성, 사회적 소수자들의 승리이고 전세계 피억압 민중의 승리다. 보리치는 2011년의 거대한 학생투쟁 속에서 등장해서 2014년에 이미 하원의원으로 활약했던 청년 좌파 정치인이고 아옌데의 유산을 계승하겠다고 말하는 급진좌파이다.

 

(수천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선거에서는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이번 대선 과정에서 어느 정도 타협적 발언을 하고 중도적 인사들을 영입해 일부 극좌파들의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의 포지션은 민주적사회주의나 좌파적 사회민주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다. 보리치의 집권은 먼저 국제적 신자유주의의 출발점이던 칠레에서 그것이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자유'롭게 등장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신자유주의는 (미국의 도움을 얻어) 수만 명을 학살한 피노체트의 1973년 쿠데타와 함께 시작됐다. 피노체트의 철권통치 속에 (윤석열이 존경한다던) 밀턴 프리드만과 시카고학파는 칠레를 신자유주의의 실험장으로 만들었고, 이어서 레이건의 미국과 대처의 영국으로 번져갔다.

 

둘째, 보리치의 집권은 칠레의 '88년 헌정체제’의 붕괴에 결정적 쐐기를 박고 있다. 이 체제는 신자유주의와 권위주의의 결합이었다고 할 수 있고, 30년 넘게 중도우파 연합과 중도좌파 연합이 번갈아 집권을 하면서 유지돼 왔다. 그러나 아래로부터 투쟁에 의해서 끝없이 도전받으며 금이 가고 벽이 갈라지다가 이번에 결국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 출발점은 2006년과 2011년에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맞선 거대한 학생투쟁이었다. 이 투쟁은 새로운 급진좌파들의 성장과 의회 진출이라는 성과를 낳았다. 이어서 2017~18년에 수백만명이 동참한 여성 총파업이 이어졌다. 여성폭력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던 이 투쟁은 라틴아메리카를 넘어서 국제적인 페미니스트 투쟁 물결을 촉발하는 방아쇠가 됐다.

 

결정적으로는 2019년 지하철요금 인상이 계기가 돼서 총파업까지 발전하게 된 민중반란이 있었다. 당시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통행금지령을 내렸지만 결국 뒤로 물러섰다. 2020년에 새헌법을 제정하고 제헌의회를 구성할 것인지 국민투표가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고, 올해 5월에는 범좌파가 2/3를 차지하는 제헌의회도 국민투표로 구성됐다.

 

그리고 이제 급진좌파 대통령과 정부까지 선출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30년간 이 나라 정치를 주도한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는 급격하게 쇠락해버렸다. 이제 새정부와 제헌의회가 새헌법의 초안을 만들고, 다시 국민투표로 승인하는 절차가 남아있다. 피노체트의 유산과 신자유주의적 헌정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안적 질서를 만들어낼 희망이 어느 때보다 높다.

 

물론 낙관만 할 수는 없다. 이번에 극우의 급성장과 1차 투표에서 1위는 불길한 조짐이었다. 4년 전에 지지율 8%에 불과했던 카스트는 이번에 중도우파 몰락의 틈을 비집고 순식간에 4배로 성장하며 위협을 가했다. 카스트는 비록 패배했지만 강력한 기반을 만들었다. 이번에 동시에 진행된 상하원 선거에서도 우파는 여전히 거의 절반의 의석을 차지하게 됐다.

 

특히 우파는 범죄와 치안, 이민과 일자리 문제에 대한 기층 민중의 실질적 불안과 고통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좌파가 이 문제들에서 뚜렷한 대안과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며 회피하는 자세를 보였다는 게 여러 분석에서 지적되고 있다. 중간에 보리치의 지지율이 정체하며 위기를 맞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좌파 내부에서 분열과 갈등이 확대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2019년 민중반란 때 ‘정권 퇴진을 위한 중단없는 투쟁’을 주장하던 좌파는 당시 보리치 등의 제헌의회 국민투표 수용을 배신으로 여기며 비판했던 게 사실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원칙의 순수성’을 고수하며 카스트보다 보리치에 대한 공격에 주력하던 좌파들이 존재했다.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칠레공산당의 청년여성 의원인 카밀라 발레조는 이렇게 지적했다. “좌파가 서로 차이를 과시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반면, 우파는 서로 싸우면서도 계급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빠르게 결집한다. 불행히도 그들은 훨씬 더 계급의식적이다.” 그러나 칠레의 민중과 좌파는 지금까지처럼, 또 희망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우리는 칠레에서 배울 것이 더 많다. 사실, 이 나라에서도 지난 30여년간 칠레와 맞먹는 거대한 아래로부터 투쟁 물결들이 이어져 왔다. 2004년, 2008년, 2016년... 하지만 왜 우리는 칠레의 좌파들처럼 그런 대중투쟁을 의회구성 변화나 제도개선과 연결시키고, 중도개혁 정부의 한계를 넘어서며, 좌파의 연대와 단결을 통해서 ‘87년 체제’를 넘어설 기회와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했을까.

 

많은 성찰, 새로운 방향의 고민과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피노체트의 후계자를 아옌데의 후계자가 물리친 어제야말로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는 노래를 들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위해 투쟁하고 죽어갔던 칠레의 민중과 투사들을 기억하기 좋은 날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0-rnnitNBc (아래 사진은 ‘신자유주의의 요람이었던 칠레가 이제 무덤으로 바뀔 것’이라고 연설하는 보리치.)

 

● 윤석열 부인의 과거 논란 – 사생활 캐기인가 공적 검증인가

 

얼마 전에 나는 ‘이재명은 소시오패스’라는 폭력적 낙인찍기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그 글은 일부 사람들에게 공감과 호응을 얻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 중에 한 분이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몰상식한 행태를 비난하면서 ‘진짜 소시오패스는 바로 이들’이라고 하는 것을 봤다. 낙인찍기가 문제라면서 스스로 그것을 반복하는 모순에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최근 민주당 공동선대위장에 대한 가세연과 족벌언론, 국민의힘의 집단린치에 공분했던 사람들 중에서 일부가 김건희 씨에게 보이는 태도에서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관음적으로 누군가(특히 여성)의 과거와 사생활을 캐고, 편견어린 낙인을 찍는 것이 문제라고 했던 이들이, 정치적 반대진영의 사람에게 비슷한 행위를 하며 별 문제의식을 못 느끼니 말이다.

 

그런 분들은 억울해 하며 항변할 것이다. 정경심 교수, 윤미향 의원, 조동연 씨의 경우와 김건희 씨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이다. 특히 앞선 두 사람의 경우는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언론과 정치권과 지식인들이 그야말로 융단폭격을 가했다.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고, 포털과 유튜브와 온라인 댓글들 속에서 두 사람은 두 번 죽고 세 번 죽었다. 누구도 감히 나서서 막으려 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같이 돌을 맞는 분위기였으니.

 

특히 언론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검증도 없이 마구 던졌고, 진중권과 김경율 등의 ‘비난 전문가’들이 끈질긴 지원 포격을 했다. 반면 김건희 씨에 대해서 주류언론과 포털은 대체로 침묵하고 있고, 진중권 등은 180도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일부 유튜브 방송과 <뉴스공장> 등이 나서고 있지만, ‘전사회적 집단 괴롭힘’이라고 보긴 어렵다.

 

반대로, 주류언론들과 일부 지식인들은 김건희 씨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쪽을 공격하고 있다. ‘정치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여성의 과거에 관심을 갖고 사생활을 캐는 한심하고 저질스러운 사람들’이라면서 말이다. 이런 비판을 의식해 민주당도 ‘쥴리 벽화’ 논란이 벌어질 때는 ‘사생활 침해의 금도를 넘었다’며 공식적으로 선을 그었다.

 

이처럼 누구는 사적인 카톡대화와 자녀의 일기장까지 뒤지며 생매장을 하다가, 갑자기 ‘정치인 가족의 인권과 여성 사생활의 수호자들’로 변신하는 주류언론과 지식인들의 선택적 정의감을 보면서 뭔가가 치밀어오는 것은 이해가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김건희 씨에 대한 과거와 사생활 캐기를 정당화해주는 명분일 수 없다.

 

정치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누군가(특히 여성)의 사생활을 캐며 편견을 부추기고 낙인찍는 것은 누가 누구에게 하더라도 잘못이다. 대규모로 하면 더 문제지만 소규모로 해도 잘못이다. 거대 주류언론들이 주도해 전사회적으로 정경심 씨에게 해도 잘못이지만, 유튜브 방송이 주도해 더 작은 규모로 김건희 씨에게 해도 잘못이다.

 

‘김건희 씨 스스로가 먼저 인터뷰에서 쥴리를 언급해 이 문제가 공론화된 것’이라는 정말 구차한 변명은 말아야 한다. 강용석을 욕하면서 그들의 방식을 비슷하게 따라가는 것은 모순이고, 이것을 ‘눈에는 눈’이라며 정당화한다면 스스로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있다는 고백이 될 것이다. ‘눈에는 눈’은 우리 모두가 세상을 보지 못하게 만들 뿐이다.

 

일부에서는 ‘대통령 부인은 단지 개인이 아니므로 공적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여성의 과거와 사생활을 캐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대부분 핑계로 들리는 이유는, 지금 김건희 씨에 대해 주로 문제삼는 내용이 대부분 여성차별, 여성혐오적인 편견이나 낙인들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김건희 씨가 쥴리라는 이름으로 유흥업소에서 접대를 했었고, 여러 남자들과 동거와 이혼을 했었고, 성형을 해서 외모가 크게 달라졌고...’ 여기에서는 공적 검증이 필요한 부분을 찾기 어렵다. 이 문제들은 모두 ‘여성은 몸을 함부로 굴리면 안 되고, 한 남성에게 충실해야 하고, 자연스러운 미를 가져야 하고....’ 따위의 전형적인 성차별적 편견들과 이어진다.

 

김건희 씨가 성산업에서 일한 적이 있었냐는 입증돼지 않은 사실일 뿐 아니라, 그것이 왜 밝혀져야 할 사실이고 비난받을 이유가 되는지도 납득할 수가 없다. 직업은 귀천이 있고 편견도 정당하다는 것인가? 남성 정치인이 성구매를 한 적이 있는지를 밝히는 게 훨씬 타당하고 필요한 검증이라는 말이 더 설득력 있다.

 

동시에, 이런 태도는 ‘민주당 서울시장 부인의 성형중독설’이라며 사진까지 비교해 싣던 족벌언론들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은, 족벌언론들과 친조중동 지식인들이 ‘성차별적인 저열한 호기심과 인권침해’라는 ‘선택적 맞는 말’로 반격할 기회만 줄 것이다.

 

물론 김건희 씨에 대한 논란 속에는 무조건 기각할 수 없는 내용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학력 위조와 논문 표절의 문제이다. 이것은 잘못이 명백하지만, 학벌주의 사회가 가하는 엄청난 압박에도 시선이 간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학위를 가져야 인정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지독한 모멸을 겪는 게 이 사회다. 김건희 씨의 이력을 보면 그 속에서 발버둥친 서글픈 흔적이 보인다. 과연 유력 정치인의 부인이 아니었어도 이것까지 검증대에 오르게 됐을까?

 

반면, ‘사생활을 캐기가 아니라 공적 검증’이라는 주장들 중에는 명백히 타당한 내용이 존재한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코바나컨텐츠에 대한 기업들의 뇌물, 삼성 아크로비스타 뇌물, 모친과 함께 각종 부동산 투기와 사기를 저질렀다는 의혹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부터는 공적 검증이 필요한 권력형 비리들과 김건희 씨의 과거와 사생활 문제가 뒤얽혀 있다.

 

삼부토건 회장 조남욱이 호텔나이트 클럽에서 정재계 인사들과 정치검사들을 불러서 지속적으로 접대를 했고, 그 과정에서 향응을 받으며 각종 이권과 청탁을 들어주고,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수사와 기소를 막아준 정치검사들 중에서 양재택, 홍만표와 함께 윤석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여러 증언과 증거들이 나오고 있고, 김학의 별장사건이 보여줬듯이 정치검사들의 뿌리깊은 관행이기도 하다. 윤석열은 조남욱의 서울대 법대 후배이면서, 조남욱의 중매로 결혼을 했고, 결혼 이후에 자신의 장모와 부인이 저지른 주가조작과 부동산 사기 등을 묵인하고 공모하는데 검사로서 지위와 권력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는 개인의 사생활이라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공적 검증과 규명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것이 김건희 씨의 과거나 사생활과 연결돼 있다는 것인데, 따라서 필요한 것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두 가지 영역을 철저히 분리해 다루는 것이다. 더불어, 김건희 씨보다는 윤석열에게 더 초점을 맞추어야만 한다.

 

여성을 성적 도구로 여기는 남성들이 주도해 위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김건희 씨는 보조적인 하위공범이거나 일부 피해도 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윤우진 게이트’가 보여주듯이 윤석열은 결혼 전부터 부패한 정치검사였지 부인 때문에 변질된 게 아니다. 결국, 김건희 씨가 ‘쥴리’였는지, 동거를 했는지, 성형을 했는지 등은 알 필요도 없고 캐서도 안 된다.

 

정말 캐야할 문제는 윤석열이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부정을 저지르고 가족 등의 비리를 덮었는가이다. 정경심 교수의 꿈 이야기까지 털어대던 검찰과 언론은 이 문제들을 제대로 취재하지도 수사하지도 않아 왔다. 김건희 씨의 주가조작과 뇌물혐의는 제대로 수사도 기소도 안 되고 있다. 이 진짜 문제가 아니라 ‘쥴리’에 집착하는 것은, 윤석열과 검언정 카르텔로 향해야 할 분노와 비판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검언정 카르텔은 ‘여성의 사생활과 인권’을 운운하며 물타기를 하면서 정작 검증이 필요한 부분도 같이 덮을 것이다. 이런 구도는 검언정 카르텔에게 오히려 득이 된다. ‘부당한 사생활 캐기’와 ‘정당한 공적 검증’이 섞여있는 이 논란에서 필요한 것은, 사생활을 캐고 낙인을 찍는 게 아니라 정말 공적 검증과 비판이 필요한 부분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다.

 

● 윤석열을 지지하는 좌파라는 모순에 대해서

 

얼마 전에 (한때 좌파 이론가로 유명했던) 윤소영 교수가 인터뷰한 내용이 실린 기사를 보고 놀랍기도 하고 여러모로 씁쓸했다. “마르크스주의자라면 파시즘을 막기 위해 자유주의나 보수주의자와 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 운동권이든 좌파 지식인이든 파시스트는 막아야 하니 윤석열을 지지해야 한다.”

 

이것은 얼마 전 운동사회에서 논란을 일으키며 비판받은 좌파 학생단체의 입장과 연결돼 있다. “진정한 좌파라면 정권교체를 위해 윤석열 후보 지지를 감수해야”, “민주당 재집권을 막기 위해서 윤석열 후보의 지지도 감수할 수 있다.”

 

어떤 좌파 단체처럼 나이많은 선배 지도자의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거나 그것에 이견을 제시하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요즘 서울의 주류 대학가에서 청년남성을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를 증오하고 윤석열같은 우파를 지지하는 흐름이 만만치 않은 것의 결과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더 서글프고 웃펐던 것은 그리고 얼마 후에 <조선일보>에 실린 논설위원의 글을 보고서 였다. 그 칼럼은 윤석열을 응원하면서 이런 조언을 했다. “최근 한 주요 좌파 학생운동 단체가 민주당이나 정의당 후보가 아닌 국민의힘 소속 윤 후보 지지 입장을 표명하는 이례적 사건이 발생했는데 윤 후보 측에서 이들과 진지한 소통을 한 번이라도 해봤는지도 묻고 싶다.”

 

만약, 이 조언대로 소통과 협력이 추진된다면 그것처럼 희비극적인 일도 드물 것이다. 좌파 운동단체와 강경 보수세력이 자유주의 세력에 맞서서 손을 잡는 모양새가 될테니 말이다. 그러면 국민의힘은 오른쪽으로는 태극기부대와 극우개신교에서 왼쪽으로는 좌파 운동단체까지 포괄하게 되는 셈이다.

 

당의 계급적 기반, 사상적 지향, 정책적 실천을 종합해 볼 때 국민의힘이 한국사회의 전통적 기득권 우파이고 주류 지배계급의 정당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던 학자(심지어 과거에 어느 책에서 그를 ‘한국의 레닌’으로 추겨세우던 이들도 기억난다)와 좌파 학생 단체가 왜 이런 당과 후보를 지지하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된 것일까?

 

학술적 이론가와 주류 대학 출신들에서 비롯한 엘리트주의, 포퓰리즘에 대한 부정확한 정치적 분석, ‘적의 적은 동지’라는 극단적 진영논리에서 원인을 찾는 지적들도 있던데, 더불어서 뿌리깊은 반NL 정서와 논리도 지적하고 싶다. 한국의 운동사회에서 NL과 PD의 갈등과 대립, 불신과 적대는 정말 오랜 역사와 뒤틀린 사연이 존재한다.

 

여기서 가장 분파적이고 엘리트적인 이들의 일부는 ‘NL = 친북 = 민족주의 = 전체주의’라는 도식을 발전시켜 왔다. 여기서 북한은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보다도 후진적인 봉건적 전체주의 체제로 상정된다. 이런 논리는 NL이나 자신들이 보기에 NL과 가깝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증오하거나, 국가 탄압에서 방어하지 않거나, 심지어 타도할 주적으로 여기는 태도를 낳았다.

 

이것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진중권 씨라고 할 수 있다. 우파 정부의 종북몰이를 반대하기보다 편승하며 피해자들에게 돌을 던지던 진중권 씨는 지금도 흔히 ‘문재인 정부 = 586 NL 운동권 출신 = 친북 주사파 = 자유민주주의에도 미달하는 자들’ 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재명을 “파시스트”라고 규정하는 윤소영 교수의 주장도 비슷하게 들린다. 더구나 이런 주장은 이재명이 “좌파 파시스트”라는 <조선일보> 류근일의 주장과도 묘하게 공명한다. 류근일은 문재인 정부가 “NL(민족 해방) 인민민주주의 패거리”이고 대선은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싸움”이라고 주장한다.(사실, 류근일도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던 60년대 좌파 출신이다.)

 

결국, 이런 논리와 입장은 전통적인 기득권 우파가 2016년 촛불 이전으로 다시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데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 진중권, 김경율, 권경애 등은 금태섭을 연결고리로 해서 외곽과 측면에서 사실상 국민의힘과 윤석열을 돕고 있다.

 

그보다, 진보좌파는 기득권 우파인 국민의힘도, 자유주의 세력으로서 타협적 한계를 보여 온 민주당도 아닌 제3의 좌파적 대안을 건설하는 게 더 나은 입장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중도자유주의적인 민주당의 왼쪽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과 별 다를게 없는 안철수, 모피아 출신의 김동연과 ‘제3지대’를 모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 점에서 민주노총과 진보정당들이 머리를 맞대고 진보후보 단일화를 추진하자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다행스럽다. 동시에 그 일부로서 ‘사회주의 좌파 후보 경선’도 진행되고 있다. 물론 이미 진보좌파 정치세력들이 너무 오랜 갈등과 분열과 불신의 역사를 지내오면서 그 세력과 기반이 많이 줄어들고 나서야 너무나 뒤늦게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더구나 여전한 갈등과 불신, 서로 다른 이해타산 속에서 그 성사 가능성도 높아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금, 큰 기대나 바람이 일어나지는 않고 있다. 다만 이런 움직임이, 이제라도 진보좌파가 서로의 다른 강조점과 이견을 존중하면서 갈등과 불신을 극복하고 공동의 과제와 기반 확대를 위해 힘을 모으는 새로운 장기적 흐름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와 팽길탄

 

대중문화나 예술은 시대와 호흡하며 그 흐름과 분위기를 담을 수 밖에 없을텐데, 그 점에서 최근 여러 드라마들에서 기존의 틀을 깨는 여성 캐릭터들이 주요한 구실을 하고 있는 현상은 반가운 일이다. 요즘은 기후정의와 비건 등의 이슈도 꽤 자주 TV프로들에 등장한다. 얼마 전에는 ‘<맛있는 녀석들> 비건 특집’을 광고하는 것을 보고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신임 문체부 장관을 주인공으로 한 신랄하고 파격적인 정치풍자 코미디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이상청)도 그런 변화의 일부로 보였다. 시간관계 상 전편을 다 보기는 힘들었고, 뒤로 가면서 좀 늘어지는 점이 있어서 중간에 멈추었지만, 몇몇 부분은 정말 웃기고 기발했다.

 

‘체수처’(문화체육계 비리 등에 대한 수사기구, 명백히 공수처의 패러디)를 출범하면서 초대한 피해자를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고 죽기 직전의 모습’으로 분장시키는 장면은 전형적인 성폭력 피해자상을 세워놓고 거기에 끼워맞추려는 새태를 풍자했다. 여성혐오를 이용해 청년남성들의 표를 얻으려는 ‘위대남’이라는 캐릭터는 명백히 이준석에 대한 풍자였다. '내로남불연구소'는 명백히 '가로세로연구소'의 패러디였고.

 

기재부가 그 어떤 정부부처보다 위에 있고, 고위 공무원이 퇴직하자마자 기업으로 스카웃되는 모습, 정치인들의 가족과 사생활까지 서로 약점을 잡아 폭로하고, 그래서 여론의 표적이 된 사람과 너도나도 재빨리 ‘손절’하는 모습 등은 지난 몇 년간의 정치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문체부 장관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진보 지식인’은 아무래도 진중권 등을 모델로 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가 툭하면 알튀세르를 들먹이며 그럴듯하지만 별 의미없는 소리들을 늘어놓는 장면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그런 지식인들이 술에 만취해 노래방 ‘도우미’를 불러 같이 춤을 추며 인터내셔널가를 열창하는 장면에서 정말 빵 터졌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역시 최고의 풍자는 팽길탄 목사였고, 그가 등장할 때마다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목사이자 아스팔트 우파이다가 보수우파 정당에 영입된 이 인물은 명백히 전광훈 목사를 모델로 한 것이다. 막말로 뒤덮인 그의 집회 연설을 일일이 옆에서 영어로 통역해주는 장면, 여성의원을 성추행하는 장면, 정부를 빨갱이라고 공격하는 장면 등이 나온다.

 

압권은 그가 지지자들을 모아놓은 기도회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장면이다. 아래 화면캡쳐에서 보듯이 화이트보드에는 ‘미친 자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 없다’는 제목이 달려있고, “좌파 = 동성애 옹호 = 엉덩이를 주로 사용 =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 빨가면 사과 = 선악과 = 인류의 타락 = 사탄”이라는 도식이 적혀 있다.

 

이런 기상천외하고 황당무계한 주장과 논리를 펼치며 너무나 진지하게 열변을 토하던 팽길탄 목사는 이어서 태극기를 흔드는 지지자들과 함께 ‘동성애와 싸우고 좌파 정부를 무찌르자’는 찬송가를 개사한 노래를 다같이 부른다. 또 어김없이 ‘가장 즐거운 시간이 돌아왔다’면서 모금을 한다.

 

이 블랙코미디는 사실 코로나 전까지 3년 넘게 매주 주말마다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 가면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다. 더 블랙코미디인 것은 이런 세력이 지금 지지율 1~2위를 다투는 유력 우파후보 지지세력의 일부라는 것이고, 또 이들의 압박과 눈치보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이 아직도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벨 훅스를 추모하며 – 페미니즘 혁명과 사랑

 

벨 훅스가 사망했다는 슬픈 기사가 올라왔다.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영향과 배움을 주었던 위대한 사상가였고, 그의 책들은(<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 <올 어바웃 러브>...) 이미 고전이 돼 있었다. 내가 페미니즘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배운 게 있다면 거기서 벨 훅스의 영향은 결정적이었다.

 

벨 훅스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주장했다. “단 한 번도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들만의 것이라고도 그래야만 한다고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소녀든 소년이든 모두가 페미니즘에 한 발 더 다가오게 설득하지 못하면 페미니즘 운동이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확신했다.”

 

페미니즘이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중심적인 것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세상에 페미니즘을 더 많이 알려야 한다. 옥외광고판을 세워야 하고, 잡지에 광고를 실어야 하며, 버스와 지하철, 기차에서도 광고해야 한다. 텔레비전으로 우리의 메시지를 널리 퍼뜨려야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페미니즘을 널리 알려야 하고, 이 운동이 모두의 머리에 가닿고 마음을 울리게 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벨 훅스는 “자기들만 아는 은어같은 어려운 학술용어로 쓰여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였거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될 수 있는 선구적인 페미니즘 이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누구보다 앞장서 그것을 제시하려고 했다.

 

그것을 위해 남성도 할 몫이 있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부장제는 남성들도 고통스럽게 만들고, 남성들이 다 죽어 없어져야 하는게 아니라면, 가부장적 특권에 맞서서 “혁명적 투쟁”에 나서는 남성들은 “진정한 동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과 연대해 투쟁하지 않고서 페미니즘 운동은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남성의 특권을 벗어던지고 페미니즘 정치를 기꺼이 포용한 남성은 투쟁의 소중한 동료이지 페미니즘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다.”

 

더구나, 교차성에 대한 선구적 이론가였던 벨 훅스는 여성 억압이나 가부장제와만 투쟁하지 않았다.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제국주의-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가부장제”라는 게 벨 훅스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벨 훅스의 혁명적 상상력은 언제봐도 심장을 울리게 한다.

 

“아무도 지배받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여자와 남자가 무조건 똑같거나 평등한 곳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의 틀을 만드는 기준인 세상 말이다. 누구나 타고난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는 세상에서, 평화와 가능성의 세상에서 산다고 상상해보라. 페미니즘 혁명만으로는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없다. 인종차별과 계급 엘리트주의, 제국주의도 함께 종식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벨 훅스는 무엇보다도 ‘사랑’의 사상가로 가슴에 남아있다. ‘사랑을 믿지 않고 냉소하고 등을 돌리는 시대’의 일부였던 사람으로서, ‘의지를 가지고 사랑을 선택하고 실천하자’는 벨 훅스의 주장은 뒤통수를 때리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로서 사랑을 설명하던 벨 훅스는 “우리는 사랑으로 다시 돌아와 사랑이 가진 변화의 힘을 선언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혁명과 같다”고 주장했다.

 

“진정한 페미니즘 정치는 언제나 우리를 속박에서 자유로, 사랑이 없는 곳에서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이끈다... 페미니즘 정치를 택하는 것은 곧 사랑을 택하는 것이다.” 벨 훅스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배울게 너무 많다.

 

(기사 등록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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