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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피해자 민족주의"와 그 한계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12. 6.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대체로 민족주의자들의 "과거 기억"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결속을 가장 잘 다지는 집단 기억은 바로 과거의 집단 피해입니다. 그래서 "민족 수난"은 거의 모든 민족주의들이 공유하는 주요 테마죠. 그런데 "수난"만을 강조하다 보면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이 잘못하면 너무 "약체"로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수난" 테마와 함께 꼭 나타나는 대목은 "우리들의 과거의 위대성"입니다. 역사 속에서 백마를 탄 개선의 장군들에 대한 "자랑스러운" 기억이 없으면 민족주의적 "자기 긍정"은 잘 이루어지지 못하는 편이죠.

 

이런 차원에서는 오늘날 러시아 민족주의는 전형적입니다. 그 역사 기억의 중심은 제2차 대전, 특히 소독 전쟁이고, 그 전쟁의 역사 속에서 "집단 피해"도 "위대성"에 대한 긍지도 다 구할 수 있는 겁니다. 나치로부터 입은 피해란 실로 상상을 초월하니까 그것을 집단 기억화하여 이데올로기로 만드는 데에 그렇게까지 큰 인위적 노력들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위대성은 물론 독일, 베를린 의사당 위에 꽂힌 소비에트의 적색 깃발, 백마를 탄 개선의 장군 주코브 원수의 이미지에서 충분히 구해지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이와 같은 민족주의적 해석, 즉 "집단 피해"와 "위대성" 위주 해석의 문제점은? 자명합니다. "우리" 편에 대한 비역사적 미화부터 문제죠. 예를 들어서, 슬라브인 등 동유럽 주민들을 "열등 인간"으로 취급한 인종주의자인 나치 침략자들에게는, 역설적으로는 엄창난 수의 러시아인을 비롯한 소비에트 시민들이 붙어 부역 행위를 한 것입니다. 나치 군에 입대한 소비에트 공민 출신만 해도 대부분의 역사 학자들이 1백만 명 가까운 것으로 판단합니다. 본인들을 인종 차별하는 침략 군대에 그들이 입대한 이유들 중에서는 물론 개인적 생존을 구해보려는 기회주의 등도 있었겠지만, 정치적 이유도 전혀 없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잉여를 농업 부문에서 공업 부문으로 이전시켜 초고속 군사 공업화를 이루려는 스탈린 식 조국 근대화 프로젝트는, 농민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을 안겨 주었죠. 농촌에 대한 착취와 차별, 그리고 농민의 전통 (종교 신앙 등)에 대한 폭력적 부정 등은, 결국 파쇼 침략자들에게 붙더라도 스탈린을 타도하고 싶어하는 "내부의 적"들을 오히려 대량 생산한 것입니다. 친나치 부역을 어떤 방식으로도 정당화할 수야 없지만, 그 원인의 일부를 스탈린 정권이 스스로 제공한 것도 사실이죠. 그런데 그 사실은, 소독 전쟁에 대한 민족주의적 해석, "피해와 위대성" 위주의 해석 속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죠.

 

그러면 한국사의 경우에는 이 민족주의적 해석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첫째는, 자가당착의 정도가 너무나 심한 것입니다. "수난사"는 "우리가 그 누구도 침략한 적이 없는 민족"이라는 테제를 내걸지만, "위대한 과거"를 찾다 보면 남을 침략하지 않고서는 도대체 강해질 리가 없었던 과거의 강국들을 주목하게 되죠. 이 강국들이 이웃들과 전쟁을 벌였을 때에 과연 "순수한 방어전"만을 벌인 것인가요? 순수한 방어란 세계 전쟁사에는 없습니다.

 

한국의 역사 민족주의 담론에서는 "위대한 우리 과거"의 상징처럼 된 고구려 역사를 보면 수나라와 전쟁을 벌인 것은 물론 큰 그림의 차원에서는 수나라의 영토 팽창 야욕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그 전쟁 속에서는 고구려는 "수난"만 당하지 않았습니다. 선제 공격도 제법 했죠. <삼국사기>를 그대로 믿는다면 598년에 고구려 영양왕이 "率靺鞨之衆萬餘 侵遼西", 즉 수나라의 요서 지역을 선제 공격한 것은 전쟁의 발단이 된 겁니다.

 

전쟁하다 보면 때때로 남의 영토를 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예컨대 조선의 군이 1419년에 "왜구 소탕" 차원에서 일본의 대마도를 정벌했을 때에는 대마도 주민의 가옥만 해도 2천 개 정도 불태워 없애버렸습니다. 조선의 왜구 피해를 줄이기 위한 선제 공격이기도 했지만, 왜구에 시달려온 상국 명나라를 위한 "군사적 서비스"라는 외교적 차원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지역사 맥락 속에서의 복잡한 공격-방어 교차 관계를, 과연 "민족의 수난"과 "위대한 과거"만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요?

 

둘째, "민족"이라는 몰계급적 집단성 속에서는 역사적인 피해와 가해의 계급적 본질이 소거됩니다. 예컨대 일제의 중국 침략 속에서는 식민지 조선의 다수 빈민들에게는 엄청난 피해와 고통이 주어진 것입니다. 징병, 징용부터 시작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일제가 세운 괴뢰 만주국에서 남만방적이라는 회사를 운영한 <동아일보> 사주 김성수의 동생 김연수 (金秊洙)처럼 수많은 조선 기업인들이 제국의 침략을 "기회"로 이용하려 했습니다. 즉,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제국주의 침략의 피해는 '민족적' 차원 이외에는 핵심적으로는 계급적 차원을 갖고 있었는데, 바로 이 계급적 차원을 "민족 수난사" 이데올로기가 못보는 것이 그 한계라면 한계입니다.

 

물론 이 나라에서 횡행하는 민족주의 담론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가령 <반일 종족주의> 식의, 일본 우파 식의 역사적 민족주의는 "민족 수난"이라기 보다는, 역사의 사실들을 왜곡해 가면서 일제의 한반도 강점이나 1945년 이후 미국의 "후견" 밑에서의 남한의 자본주의적 개발의 "위대성"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실 과거의 자민족 중심의 "수난/위대성" 패러다임보다는, 이 새로운 친제국주의적인, 국가주의적인 민족주의 패러다임은 퇴보면 퇴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민족주의적인 역사 해석에 대한 대중적인 반성 대신에 민족주의적 프리즘의 종류만이 훨씬 더 퇴보적이며 반동적인 것으로 교체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기사 등록 20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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