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론의 혁신

LGBTQ+ 정체성의 신자유주의적 균열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9. 15.

어떻게 레즈비언과 게이 정체성이 복지국가와 함께 나타났는지, LGBTQ+ 공동체가 이제 사회적 양극화에 직면해 있는지에 대한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와의 인터뷰이다. 피터 드러커는 예일 대학교에서 역사를,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그는 LGBTQ+ 운동에 대한 논의의 전문가이다. 이 인터뷰에서는 그의 작업의 중심 주제인 자본주의, 특히 이른바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시대에 LGBTQ+ 정체성을 구축하고 균열시키는 것에 대해 논의한다.(번역: 두견)

 

출처: https://www.leftvoice.org/the-neoliberal-fracturing-of-lgbtq-identities/

 

 

섹슈얼리티와 젠더 정체성에 기반한 억압에 대한 정치적, 이론적 논쟁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두 개의 주요 학파가 통합되었다. 첫 번째는 (민족성, 섹슈얼리티, 젠더, 나이 등과 관련된) 정체성을 "여성" 또는 "흑인"과 같은 특정 집단의 이익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보는 "정체성주의"identitarian 학파라고 부를 수 있다. 이것은 비록 계급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억압의 경험을 규정하더라도, 계급과 같은 다른 물질적 측면을 배경으로 남겨둔다. 정체성주의 학파는 (이성애자들의 시민권과 비교하여)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의 평등을 획득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 내에서 권리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젠더 평등" 또는 "다양성"에 대한 요구를 그들의 강령에 통합한 신자유주의 정당들의 의제 수렴이 있다. 한편,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부문에 대한 반응으로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수행성performativity 이론을 포함하는 퀴어 이론들과 관련된 학파가 생겨났다. [주디스 버틀러와 마르크스주의의 토론은 안드레아 다트리Andrea D'Atri의 <빵과 장미: 자본주의 아래서 젠더와 계급>(플루토Pluto 출판사, 2020)의 8장을 참조하라.]

 

정체성주의적 관점과는 대조적으로, 이 관점은 젠더와 섹스는 정체성을 정의함으로써 억압적이고 배제적인 문화적 구조물을 부과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수행적 실천들을 통해 이러한 범주를 전복할 것을 제안한다. 이 개념은 주어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서 섹슈얼리티와 젠더의 경험과 표현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형성하고 조건화하는 물질-경제적 측면을 간과한다. 이런 틀 안에서 역사적으로 LGBTQ+ 정체성의 균열 과정을 위치시킨 피터 드러커의 성찰은 이 논쟁에 대한 기여를 나타낸다.

 

드러커는 역사학자 존 드밀리오John D’Emilio가 설명한 것처럼 전후 시기에 LGBTQ+ 정체성의 출현에서 출발하여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이러한 정체성의 균열 경향에 대해 논한다. 이것은 1945년 이후에 등장한 "고전적인" 게이-레즈비언 정체성의 이미지에 도전하는 새로운 부문의 출현과 관련이 있다. 이 인터뷰에서 언급된 많은 문제는 그의 논문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아래에서 LGBT 정체성의 균열>에서 발전한 것이다.

 

*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아래에서 LGBT 정체성의 균열>이라는 글에서 당신은 제국주의 국가에서 레즈비언과 게이 정체성의 구축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복지국가와 함께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그 정체성이 나타난 것인가?

 

역사와 다른 역사가들을 읽으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게이와 레즈비언의 전형적인 형태를 취한 것이 인류 역사상 이전에 존재했던 대부분의 동성 관계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우선, 인류 역사의 대부분에서 서로 다른 섹슈얼리티는 젠더의 차이와 연결되어 있었다.

 

트랜스 정체성은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 역사에서 아주 아주 오래된 것이다. 트랜스젠더는, 예를 들어 어느 정도는 여성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맡은 남성도 자신의 성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20세기에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점차 다른 규칙적 변화 속에서, 게이 남성과 레즈비언이 섹슈얼리티를 제외하고는 다른 남성과 같은 남성, 다른 여성과 같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게이 남성은 원칙적으로 이성애자 남성만큼 남성적이어야 하고 레즈비언은 원칙적으로 이성애자 여성만큼 여성적이어야 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수많은 변화와 연결되었다. 이것은 경제에서 소비자의 욕구가 특히 중요해지고, 물건과 상품에 대한 욕구가 점점 더 다른 인간에 대한 욕구와 연결되는 소비지향적 자본주의의 성장과 연결되었다.

 

이것은 역사가 조나단 카츠Jonathan Katz가 19세기 말에 '이성애의 발명'이라고 부른 것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결혼이 사랑에 기초한다는 생각이고,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생각이었다. 다른 계급들과 다른 시대의 인구 사이에 아주 서서히 퍼진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특정한 성별의 사람들이 욕망의 대상이 되었고, 이것은 처음에 이성애적 욕망의 형태로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동성애적 욕망의 형태로 이어졌다.

 

이것은 대부분 주로 중간계급 사람들 사이에서 처음에 발생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포드주의Fordism 아래서 노동계급의 대량소비가 확산되면서 노동계급 사이에도 확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노동계급의 소비가 가능했던 가장 부유한 국가들에서 새로운 형태의 동성적 섹슈얼리티, 게이 및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를 보게 된다.

 

또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전통적인 가족에 완전히 의존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의 복지 국가가 성장한 곳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전형적인 형태의 게이 및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와 게이 및 레즈비언 공동체들을 만들었다.

 

* 당신은 전후 호황의 종말이 모두에게 나쁘지는 않았고, 모든 LGBTQ+ 사람들에게 나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누가 신자유주의의 시작으로부터 이익을 얻었는가?

 

신자유주의는 지난 40여 년간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기였다. 이것은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세계 대부분의 노동계급 사람들은 임금과 생활수준이 정체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일하는 사람들에게 나쁜 소식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래시계 소득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 좁아지는 중위소득 집단, 그리고 바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 비교적 저소득층에서도 상당한 양의 소비를 기반으로 했던 포드주의 경제는 소수 인구의 사치스러운 소비를 기반으로 한 경제로 점차 대체되고 있다. 그 소수의 일부는 LGBTQ+ 사람들로 구성된다. 이것은 현실보다 미디어에 의해 촉진되는 상상 속에서 더욱 사실이다. 왜냐하면 게이 라이프스타일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소비와 모든 종류의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클럽에 가고, 술을 많이 마시고, 마약을 하고, 멋진 식당에 가고, 사랑스러운 휴가를 즐기고, 유람선을 타고 등등의 게이 남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일련의 국가들에서 게이와 레즈비언이 더 많은 시민권을 획득하고 신자유주의적 사회에 점점 더 통합됨에 따라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점점 더 가능해진 게이 라이프스타일의 이미지이다. 내 생각에는 이것은 소수의 LGBTQ 사람들에게만 사실이지만, 아주 작은 소수라기 보다는 중요한 소수이다.

 

* 1970년대 중반에 대안적인 성적 정체성 또는 젠더 정체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주겠는가? 그리고 세부 사항을 안다면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지역에서 그 과정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포드주의 시대에는 다른 시대에 비해 동성애자 공동체가 좀 더 동질적이었다. 술집과 사우나는 계급을 초월한 사교와 관계 형성 등의 장소로 여겨졌다.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그것은 사실과 멀어진다. 포드주의 시대에 존재했던 다소 획일적인 게이 레즈비언의 정체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균열되기 시작한다.

 

엘리트 게이 정체성은 이전보다 훨씬 더 게이 남성의 남성성과 레즈비언 여성의 여성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1990년대에 이르러 충분한 정도로 젠더질서에 순응적이지 않은 LGBTQ+ 사람들이 더 이상 게이와 레즈비언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 이르렀다. 게이와 레즈비언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좁은 정의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서 트랜스젠더 정체성의 출현이 있었다. 또한 성적 행위들은 모든 종류의 다른 방식으로도 증식했다. 예를 들어, S&M을 둘러싸고는 독특한 정체성의 기초가 되는 모든 종류의 것들이 나타났다.

 

제국주의적 국가들에서 노동계급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년 동안의 대중적 소비는, 노동계급 소득이 결코 높은 적이 없었던 종속국가들에서는 확립되거나 널리 퍼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지배적인 게이-레즈비언 패턴은 확립될 가능성이 적었고 균열이 훨씬 더 잘 보였다.

 

예를 들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는 게이 및 레즈비언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전에 이미 존재했던 동성 정체성과 젠더 정체성이 오랫동안 존재했다. 그것은 마리코네maricones와 로카스locas처럼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사라지거나 더 가시적이 되거나 더 강조된 적이 없다.[마리코네와 로카스는 성소수자에 대한 스페인어 멸칭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르헨티나는 강력한 트랜스 운동과 퀴어 사상을 가진 특히 흥미로운 나라였으며, 불가피하거나, 반드시 확립된 제도화된 유형의 페미니즘이 아니라 대안적인 부류의 페미니즘인 모든 종류의 페미니스트 활동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새롭거나 비교적 새로운 공동체, 더 큰 다양성, 다원주의 및 급진주의가 있었다.

 

* 이와 관련하여 당신은 1980년대 초에 레즈비언과 게이 정체성의 양상이 안정화되었다고 말한다. 즉, 젠더질서 순응의 경향이 증가하고 자신의 성적 소수자성을 주변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신자유주의가 자리잡으면서 이것들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더 이야기할 수 있는가?

 

전통적으로 수세기 동안 특히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는 일반적으로 동성 섹슈얼리티가 억압되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억압받았기 때문에 LGBTQ+와 좌파는 전통적으로 연관성이 있었다. 교회, 특히 가톨릭 교회와 다른 기독교 교회들 역시 전통적으로 매우 LGBTQ+에 적대적이었으며 교회는 우파에 연결되었다. 따라서 LGBTQ+ 사람들은 특히 활동가라면 자유주의나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해 개방적으로 다가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하에서 이것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점차적으로 우파, 신자유주의 우파, 보수적 형태의 기독교, 특히 증가하는 복음주의 기독교 사이에 지속적 연관성이 형성됐다. 이것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와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우익 복음주의 세력의 성장과 함께 존재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에서 어느 정도로는 전통적인 기독교 보수주의와 관련이 없는 신자유주의적 우파의 성장이 있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것이 가장 부유한 게이 남성과 그보다는 못하지만 레즈비언들에게도 신자유주의적 우파 안에서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LGBTQ+ 사람들과 좌파 사이의 오래된 연관성을 깨기 위한 게이와 레즈비언 보수주의, 특히 게이 남성 보수주의의 성장이 있었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는 먼저 소위 '테러와의 전쟁'이 발발했고, 이어서 2008년부터는 경제 위기가 발생했다.

 

소수이긴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소수의 게이 남성들은 특별히 극우파들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이것은 매우 역설적인 과정인데 왜냐하면 미국의 트럼프 같은 사람을 보면, 그는 LGBTQ+ 사람들의 이득을 어느 정도 끌어내렸지만, 그와 동시에, 예를 들어서 리차드 그레넬Richard Grenell과 같은 매우 유명한 공개적 게이 남성 지지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 대사이자 실제로는 유럽 극우파에 대한 대사로서 트럼프 행정부에서 다양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LGBTQ+ 사람들 사이의 균열의 다양성은 사회경제적 균열과 성적인 균열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균열이기도 하다.

 

* 당신의 작업에서 당신은 LGBTQ+ 공동체에서 사회적 양극화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빈곤하고 노동계급인 사람들은 기존의 레즈비언 및 게이 정체성에서 단절되어 퀴어queer 정체성에 더 가깝다고 느끼며 이것이 반드시 젠더 정체성에 의해 정의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과정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정확히 집어내기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퀴어가 특정한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매우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언어의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런 의미에서 퀴어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영어로 사용되었고 그 다음에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나 이브 코소프스키 세지윅Eve Kosofsky Sedgwick과 같은 영어권 퀴어 이론가들에 의해 사용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LGBTQ+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한 국제적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수입이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지만, 평균 이상 수준의 교육을 받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영어나 번역으로 된 퀴어 이론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그들은 다채롭고 다양한 국제적 스타일을 선택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뉴욕, 파리로 여행하는 퀴어라면 소울 메이트를 알아볼 수 있다. 이는 어느 정도 정치적인 입장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신은 어느 정도는 정치적 흐름이거나 정치적 흐름과 겹치는 일종의 국제적 퀴어 하위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 현재의 세계적 경제 위기에서 LGBTQ+ 사람들과 공동체가 직면하는 어려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내년에 세상이 어떻게 될지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백신의 효과가 입증되고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에 대해 상당히 지속적인 면역을 제공하더라도 우선 백신의 이점을 동등하게 공유하지 않을 것이고, 팬데믹이 전 세계적으로 균일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매우 강한 느낌이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유럽, 미국, 캐나다가 사용할 수 있는 백신의 상당 부분을 사들였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며, 이는 겉으로 드러났던 수사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전염병은 부유하지 않은, 물론 세계의 대부분인 일부 지역에서 더 오래 지속될 것이다. 이것은 AIDS와의 투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진행중인 전쟁의 또 다른 전투이다. AIDS에 대한 투쟁과 코비드에 대한 투쟁 사이에는 특히 교역과 건강 제품 교역과 관련하여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둘러싸고 중요한 연속성이 있다.

 

처음에는 미국으로부터 Act Up[AIDS에 대한 공공치료를 요구한 운동단체]이 국제적으로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었지만, 특히 AIDS가 아프리카를 강타했을 때, 그것은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아프리카에서 끔찍하게 파괴적이었다. 당신은 신자유주의 무역 체제, 특히 이른바 TRIPS(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 체제라고 하는 무역 관련 국제적 소유권에 도전하는 데 세계적 선봉 역할을 한 남아프리카에서의 치료 행동 캠페인을 볼 수 있다.

 

행동주의 덕분에 의약품이나 백신이 인명을 구하는 데 결정적일 때 다국적 제약기업의 이윤에 대한 권리가 도전받을 수 있다는 원칙이 확립되었다. 예를 들어, 브라질은 제국주의 국가에 기반을 둔 다국적 기업들이 판매하는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레트로바이럴을 제조하는 주요 국가였다.

 

코로나19로 이모든 것은 다시금 투쟁이 되고 있다. 그 승리는 극복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LGBTQ+ 사람들을 포함하여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COVID-19 전염병과 동시에 발생한 경제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을 전보다 훨씬 더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이미 끔찍했다. 이제 그것은 다시 훨씬 더 나빠지고 있다.

 

전 세계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그와 정부들은 극심한 빈곤은 감소했고 이것이 자본주의 하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자랑해왔다. 이제 세계은행의 좁은 정의에 따라도 극단적 빈곤에서 탈출한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다시 극단적 빈곤으로 돌아갔다. 이것은 내가 앞서 이야기한 LGBTQ+ 사람들 사이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분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치적으로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른다.

 

불행하게도 1990년대 이후 수십 년 동안은 반자본주의적인 좌파에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리 좋지 않았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작용이 있었지만, 많은 나라에서 가짜 반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을 뜻하며, 이는 극우파에게 이득이 되었다. 팬데믹과 위기로 인해 그러한 추세에 몇 가지 유망한 단절이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확산되고 또한 일부 다른 국가에서도 반인종주의 운동의 물결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좌파에게 엄청난 중요성과 가능성이다. 내년과 향후 몇 년 동안 세력 균형이 어떻게 될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며 그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거기에 많은 것들이 걸려있다.

 

(기사 등록 2021.9.15)                                                                                       

*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newactorg@gmail.com/ 010 - 8230 - 3097 http://www.anotherworld.kr/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