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우리 시대의 계급 이론

레오 파니치Leo Panitch

번역: 두견

 

자본주의가 21세기까지 지속됨에 따라, 계급 분석을 위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자본가 계급뿐만 아니라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국제적인 구조 변화에 관한 것이다. 이 글은 계급 형성의 실제 과정, 특히 새로운 형태의 노동계급 조직의 발전 가능성이 당대의 투쟁들에 무엇을 드러내는가에 집중하기보다는 계급의 위치를 분류하는 엄격한 사회학적 그물을 그리는 것은 점점 더 가치가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이 글의 필자인 레오 파니치(Leo Panitch: 1945 ~ 2020)는 캐나다 요크대학교 정치학 교수였고, 25년 동안 <소셜리스트 레지스터Socialist Register>의 편집자로서 국제적 좌파의 이론과 실천에 많은 기여를 해 왔다. <위기 속의 노동계급 정치>, <의회 사회주의 종말>, <사회주의를 찾아서: 벤에서 코빈으로 가는 노동당 신좌파의 프로젝트> 등의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우리는, 지난해 연말에 코로나19로 인한 갑작스레 사망한 파니치의 주요 글들을 다시 소개하는 기획 연재를 지속하고 있다.

 

출처: https://catalyst-journal.com/2020/06/class-theory-for-our-time

 

 

그의 뛰어난 저서인 <마르크스, 자본, 그리고 경제적 이성의 광기>의 초반부에서 데이비드 하비는 칼 마르크스의<자본>에서 아주 유명한 구절을 인용했는데, 이 구절은 어떻게 기술의 자본주의적 배치가 노동자들을 기계의 부속품 수준으로 떨어뜨리는지를 묘사한 것이다.

 

그것은 과학이 생산에 통합되는 것처럼 그들의 지적 잠재력으로부터 그들을 멀어지게 하고, 그들이 높거나 낮은 비용을 받으며 노동하는 조건들을 변형시킨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하비는 또 다른 통찰력 있는 구절을 인용하는데, 마르크스는 자본에 의해 구현된 기술의 비인간적인 영향을 넘어서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그것의 파괴적인 함의를 다루고 있다.

 

대기업이 발전함에 따라 실질적 부의 창출은 노동시간 동안 가동되기 시작하는 기관들의 힘에 비해 노동시간과 고용된 노동의 양에 덜 의존하게 되는데, 그 '강력한 효과'는 그것들의 생산에 소비되는 직접적 노동 시간에 그 자체로 비례하지 않는다.

 

하비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런 맥락에서, 자본가는 덫에 걸려있다. 작업에 사회적 노동을 쏟아붓고 있는 노동자 한 사람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잉여 가치(이윤)를 추출할 수 있는지에는 한계가 있다. 마르크스는 이것으로부터 자본주의적 생산은 궁극적으로 끝나야 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물론, 1세기 반이 지난 이후, 우리는 더 잘 알고 있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그것을 끝내기 전까지는 결코 스스로 작동을 끝내지 못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디스토피아와 닮게 되더라도 말이다.

 

변화한 구조

 

자본주의가 21세기까지 존속함에 따라, 오늘날 계급 분석을 위한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자본가 계급 자체의 구조 변화와 그것이 자본주의의 정치적 통치에 가한 변형적 충격과 관련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계급 분석을 위해서는 자본가 계급의 변화하는 지형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것은 금융과 제조업에 걸쳐 기존 자본과 신흥 자본이 상호 침투하는 가운데 자본이 조직되는 방식과 국제적 차원의 패권 행사 전략에 대한 세심한 연구를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통합적인 정체성과 의제를 가진 국제적 자본가 계급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정치 행위자들은 서로 구별되는 지배계급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조율하는 어려운 과정에 관여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세계에서 매우 어려운 과제다.

 

자본 축적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있어서 기술적, 지리적 측면 모두의 심오한 변화가 일어나 자본가 계급의 재편성을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들은 또한 네트워크화된 생산, 통신, 유통의 세계적인 가치 사슬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새로운 이주 패턴을 반영하여 훨씬 더 지역화된 방식으로 국제적 수준의 노동계급을 융합시켰다.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애국주의적" 깡패가 부상하는 데 매우 중심적인, 국제화된 자본주의 속에서 동시적으로 유도되고 저지되는 현대적 이민은 국경을 넘어 점점 더 많은 가구들을 연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세계화와 이주는 우리가 계급 형성의 특수성과 각각의 특정한 국민국가에서의 정치적 통치의 형태를 바꾸는 데 있어서 그들이 수행하는 역할을 인식하는 것을 조금도 덜 중요하게 만들지 않는다.

 

계급 형성의 역사는 -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특히 남쪽의 아르헨티나에서 북쪽의 캐나다까지 모든 이 반구에서 - 그것이 억압적이고, 심지어 대량 학살을 일으키고, 원주민들에게 타격을 강한 이주의 역사를 포함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나라에서의 계급 구조와 관계의 바로 그 특수성만 보아도, 계급은 항상 지난 2세기에 걸쳐 나타난 특정한 민족국가 내에서 역사적 형성에 의해 - 우리가 그것이 좋든 싫든, 우리가 국제주의자든 아니든 - 구별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계급 형성

 

21세기의 계급에 대한 우리의 논의는 낡은 노동 과정과 새로운 노동 과정을 대조하거나 그러한 변화가 작업장의 관계들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함으로써 포착할 수 있는 것을 훨씬 넘어설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것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그것은 자본과 노동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중간 계급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의 구체적인 윤곽과 양상 못지않게 지속적인 계급 형성의 맥락에서 배치될 필요가 있다.

 

좌파는 "중간 계급"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단순히 이데올로기적 장치, 근본적인 사회적 관계와 자본과 노동 사이의 잠재적 충돌을 모호하게 하려는 정치적 담론의 수사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지나치게 단순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양극(화이트칼라 대 블루칼라 또는 서비스 대 제조업 노동자 - 더구나 "생산적" 노동 대 "비생산적" 노동)의 관점에서 “구” 또는 “신” 중간계급을 피상적으로 도식화함으로써 각 민족국가에서 구분되는 집단적 행위자로서 중간계급의 형성을 기록할 수는 없다.

 

1970년대의 계급론은 생산·유통·물류·통신 분야에서 조정·감독의 직업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적 재생산 및 공공과 민간의 행정 기관 내에서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점점 더 많이 관찰되는 현상인 '신중간계급'의 '모순된 사회적 위치'를 기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는“독립적 상품 생산자”와 낡거나 새로운 다양한 종류의 “소부르주아”적 판매상의 지속, 심지어 성장과 다르지 않다. 여기에는 노동 기준보다 자영업에 대한 과세에 더 관심이 많은, 미국에서는 "배관공 조"로 잘 알려져 있는 소규모 기업가 겸 육체 노동자가 포함된다.

 

나아가, 그것을 넘어서 지역 상점 주인과 시장 상인에서부터 국제적 사이버 공간에서 거래자와 경쟁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범위의 직업을 포괄한다. 그리고 독립 생산자로서 청소, 미용 또는 신체단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로부터 민간 및 공공 부문 모두에서 상담사, 강사, 연구원으로서 계약되어 일하는 사람들까지.

 

중간계급 또는 노동계급?

 

이러한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는 형태는 신중간계급이나 노동계급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금세기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이다. 우버Uber나 리프트Lyft와 같은 회사들이 전형적으로 보여준 이 '긱gig 이코노미'의 새로운 선대제도는 중간계급 형성을 유도하기 위해 명시적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우버나 리프트 직원들을 조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들 운전자들은 노동계급 형성에 종사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차역 밖에 있는 라 살라다La Salada 시장의 판매상들 사이에서 유사한 계급 형성에 대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나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들이 인민경제연합전선La Confederación de Trabajadores de la Economía Popular(CTEP)에 의해 조직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경영 자문위원 및 정보처리기사에서 종종 노조원과 함께 일하는 비노조원 청소원에 이르기까지 개별 계약자에게 국가 및 준국가 업무를 아웃소싱하는 새로운 공공 관리 관행에서 또 다른 차원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동료는 심지어 전투적인 노동조합원 될 수도 있다.

 

교사나 간호사 같은 전통적인 중간계급 전문직 종사자들의 조직도 계급 형성에 대한 투쟁을 반영한다. 신분에 대한 의식이 확고하여 20세기의 학교 교사들은 종종 외국인 혐오적 민족주의의 주된 사회적 주체였다.

 

이것이 21세기에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긍정적인 정치적 발전 중 하나이며, 여기에서는 특히 많은 교사 노조가 전투적이 되고 심지어 부모들과 끈질기게 연계를 구축함으로써 노동계급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감각까지 생겨난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공동체 의식은 종종 이주자 가족을 포용하고 보호해왔다.

 

제인 맥클래비Jane McAlvey는 간호사부터 청소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련 노동자들의 집단적 조직화를 포함해, 노동권에 관해서 반노조적인 네바다 주에 있는 개인 병원에서 노동계급 형성을 위한 투쟁의 또 다른 최근 사례를 이끌고 기록했다.

 

노동시간 교대 설정은 여전히 가족을 위해 사회적 재생산 작업의 부담을 지고 있는 이들 병원의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공통의 문제였다. 이러한 요구를 중심으로 동원하는 것은 중환자실 간호사와 지하실 주방에서 환자의 음식을 준비하는 요리사들을 단결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사와 간호사 노조들은 전투적일 때도 뚜렷한 기술지향성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캐나다 앨버타에서 열린 연합 간호사 대회에서 기조 연설을 하도록 초청받은 적이 있다. 그들은 비록 불법적이긴 하지만 매우 성공적이었고 엄청난 대중의 지지를 얻은 파업을 감행한 직후였다.

 

나는 연설에서 다음 번 단체협상을 위해서는 각 병원 병동의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노동절차를 논의할 수 있는 주 1시간 유급시간 확보를 우선순위로 삼아서 그들의 성공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음 협상에서, 그들의 우선순위는 유급 시간을 한 시간 더 따내는 것이고, 그것은 병동의 노동자들이 환자들과 함께 하는 집단적 모임에 이용되는 것이어야 했다.

 

나는 이 제안에 대해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임원진이 제안한 첫 번째 안건은 병원의 잡역부들이 노조의 일부가 되도록 지원(잡역부들은 환자 이동, 의료장비 살균, 객실 청소, 침대 시트 교체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했다. 이에 대한 토론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회의장에는 두 개의 마이크가 있었다.

 

하나는 결의안에 찬성하는 발언자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간호사는 단 한 명도 "그렇다"는 마이크를 들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그 제안에 반대해서 주장하기를 원했다. 이 역시 중간계급과 노동계급 형성 사이의 투쟁이었다.

 

새로운 형태의 발명

 

이것은 오늘날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속해 있더라도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상황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노동계급이나 중간계급과 구별되는 새로운 계급으로 "프레카리아트"를 식별하는 것은 유용하지 않다.

 

고용주들은 항상 그들이 원할 때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배치하고, 그리고 그 사이에 가능한 한 적은 제약 속에서 노동력을 이용하려고 노력해 왔다. 누가 노동계급 안에 있는지,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하기 위해 촘촘한 사회학적 그물을 그리는 것은 (또는 그 문제에서 중간계급에 대해서도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점점 더 가치가 없다.

 

우리의 전략적 논의를 간호사나 바리스타, 교사나 소프트웨어 개발자, 농장 일꾼이나 트럭 운전사, 판매원이나 은행원들을 주어진 시간에 조직화하는데 집중해야 하는지 여부로 제한하는 대신에,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21세기를 위한 광범하고 포괄적인 노동계급 조직화와 형성의 새로운 형태를 시각화하고 개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세계 역사상 최초로 하층 계급의 영구적인 조직으로 등장한 대중적 노동조합과 노동계급 정당들은 정확히 이것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점점 착취적이고 혼란스럽고 비합리적인 자본주의 앞에서 너무나 많은 직업과 정체성, 그리고 다양한 공동체를 아우르는 노동자들의 삶의 서로 다른 측면에 뿌리를 둔 다중적 투쟁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계급 형성 과정을 촉진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적 형태를 발견하지 못한 우리의 무능은 다시 한번 극우적 정치세력이 대중의 분노와 불만을 동원하도록 허용했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민주적 사회주의’의 경우를 통해 일부 신뢰도가 회복되는 것을 보아왔다. 모든 곳에서, 심지어 미국에서도 ‘점거하라’ 운동 이후, 좌파의 시위에서 정치로의 두드러진 전환이 있었고, 이것은 여전히 새로운 국면을 규정한다.

 

우리가 우리 시대의 수많은 다른 억압과 생태적 위협에 저항하는 동안 자본주의는 더 이상 묶어질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권력의 복도 밖에서 영원히 항의할 수는 있지만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느낌과 결합되어 있다.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반대가 거리에서 국가로 이동함에 따라, 시위에서 정치로의 이러한 전환은 특히 소득과 자산의 거대한 불평등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영국의 최대 노동조합인 유나이트United의 앤드류 머레이 의장이 언급했듯이, 이러한 전환은 "계급적 기반(class-rooted)보다는 계급적 초점(class-focused)의 문제다." 이에 의해 제기되는 전략적 질문은 <공산주의 선언>이 모든 공산주의자들의 첫 번째 과제로 지목한 것과 관련이 있다. "프롤레타리아를 하나의 계급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계급 구성과 정체성의 엄청나고 다양한 변화와 낡은 노동계급 정당과 노조의 큰 한계와 실패를 감안할 때 계급에 초점을 두는class-focused 정치가 실제로 어떻게 다시 노동계급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20세기의 마지막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노동계급 조직들이 당한 극심한 패배는 자본주의가 미국이라는 비공식 제국의 보호 아래 완전한 국제적 자본주의로 가는 길을 닦는 데서 중요한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의 표면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신기술이 특정 분야의 일자리 증가와 고용을 제한하지만, 그들은 다른 분야의 일자리 증가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집단적 조직화에 대한 잠재력을 가진 완전히 새로운 일자리를 도입한다.

 

또한, 킴 무디Kim Moody가 보여준 것처럼 부품공장 파업이나 창고와 항만 공급 체인의 중단이 글로벌 통합 생산망을 통해 폐쇄를 강요할 수 있다는 점도 전략적 중요성이 크다. 마찬가지로, 데이터 정보처리사들 속에서의 내부 고발은 기업과 국가에 의해 숨겨져 있던 방대한 양의 정보를 노출시킬 수 있다.

 

노동계급 조직은 그것의 치명적 약점으로 고통받아 왔다. 심지어 그것이 국가에 도달했을 때도 그것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 국가가 자본주의 재생산이 아닌 사회주의 변혁의 기관이 되도록 국가 내부의 노동 과정을 어떻게 변혁해야 할지 몰랐다.

 

새로워진 노동계급 형성에 대한 야심찬 목표와 국가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 국가 변혁을 위한 새로운 창조적 전략의 개발을 연결하는 것은 역사유물론을 21세기를 위한 더 나은 분석 도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지식인들에게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기사 등록 2021.9.26)                                                                                       

*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newactorg@gmail.com/ 010 - 8230 - 3097 http://www.anotherworld.kr/608

 

 

 

 

 

 

 

 

 

 

 

 

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