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윤미향 의원 마녀사냥과 낙인찍기를 당장 멈춰라
위의 이미지가 요즘 여기저기 많이 나돌고 공유되고 있다. 일단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주류언론과 기득권 우파가 퍼트렸던 거짓을 반박하면서 마녀사냥 당한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니 말이다. 이것을 보면 대부분의 의혹이 사실무근이었고 검찰마저도 기소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반갑지만은 않다. 이 이미지는 이번에 새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난해 9월에 나온 한 군소 인터넷 언론의 기사중에 삽입됐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반년도 훨씬 전에 나온 이야기이지만 별로 관심을 받지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더구나 검찰은 이렇게 11개 혐의를 불기소해놓고도 여전히 8개 혐의에 대한 기소와 재판을 계속하고 있다. ‘영혼까지 털어내기와 죽을 때까지 찌르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윤미향 의원에게 찍은 낙인과 주홍글씨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는 오늘도 ‘가짜 진보들의 위선의 악취가 코를 찌른다’ 어쩌구하면서 윤미향 의원을 그 사례로 드는 칼럼을 실었다. 조선일보나 기득권 우파들만 그런다고 봐선 안된다. 진보개혁적이거나 좌파적인 지식인들마저 ‘기득권이 돼버린 민주당과 586의 위선과 부패’를 언급하는 분석과 주장들을 하다가 툭하면 윤미향 의원을 그 사례로 언급한다.
충분한 사실확인과 검증도 없이 지나가듯이 그렇게 툭툭 던지듯이 하는 게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조금도 고민하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낙인 효과’이다. 한번 낙인이 찍히면, 너도 나도 별 고민도 없이 무심코 돌을 던지고, 상대방이 어떤 고통을 느낄지 조금도 상상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녀사냥꾼들아 마음껏 ‘혐오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지난 재보선을 앞두고 윤미향 의원에게 ‘아픈 할머니를 끌고다니며 노래를 시켰다’는, 기발한 혐오적 상상력을 발휘했던 여명숙과 ‘개수작TV’가 바로 그것을 보여 줬다.
지난 총선 때 국민의힘 예비후보로도 출마했었고 오래동안 ‘개수작TV’를 운영해온 여명숙이라는 극우 유튜버는 그동안 조선족 혐오, 차별금지법 반대, 반페미니즘 등을 선동하며 막말과 욕설이 난무하는 콘텐츠들을 양산해 왔다. 재보선을 앞두고 여명숙이 먹이감 삼은 것은 윤미향 의원이었고 조선일보는 그것을 확대재생산했다. 항상 그렇듯이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온갖 막말, 욕설, 혐오와 저주의 댓글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 절정은 서민 교수였다. 서민은 “윤미향은 인류가 낳은 가장 잔인한 악마”, “정인이 양모보다 윤미향이 더 나쁘다”, “K악마의 끝판왕 윤미향”이라면서 “윤미향 잡으러갑시다”라고 선동했다. 솔직히 여기 인용하기도 주저될 정도의 혐오범죄 수준의 말이지만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은 그것을 또 기사화했다. 이런 기사나 SNS에 달린 댓글들은 가슴이 떨려서 읽기가 힘든 수준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과 문제의식도 없어 보였다.
이처럼 조선일보와 그들이 선호하는 서민같은 사람들은 나날이 차별과 혐오를 실천하고 있지만, 차별 감수성이 높은 진보정치인들마저 그것을 잘 지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언론들을 상대로 취재와 인터뷰에 응한다.
이런 마녀사냥과 낙인찍기의 결과는 무엇인가? 진보정당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나마 민주당의 오래된 주류 정치인들보다 좀 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의원들의 입에 재갈이 물리고 손발에 족쇄가 채워지는 것이다. 과거에 임수경 의원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던 방법이다. 종복몰이 속에서 임수경 의원은 4년 동안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팽개쳐졌다.
당장 얼마전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마크 램자이어 교수의 망언 문제, 위안부 책임 배상 2차 소송에 대한 사법부의 반역사적 결정 등에서 윤미향 의원은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또 각종 개혁법안에 함부로 이름을 올리기도 어렵게 돼 있다. 그러면 곧 ‘윤미향이 발의에 함께한 이상한 법안’이라는 식으로 낙인이 찍히고 마녀사냥이 또 시작될 것이다.
윤미향 의원이 페이스북 프로필만 바꿔도 씹어대는 게 조선일보이다.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거의 정신적 고문 수준에 다다른 이 지독하고 끝없는 마녀사냥이 도대체 언제 끝날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진보, 좌파라는 사람들조차 툭하면 사실확인도 없이 윤미향 의원을 부패와 위선의 대표자인양 언급하는 관행을 멈춰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낙인과 편견을 걷어내기 위해 나서야 한다.
● 인도 코로나 팬데믹의 대재앙과 백신 제국주의
백신 도입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는 것 같으니까 이제 주류언론은 화이자 백신의 부작용을 부각하고, 백신을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건 공산주의라고도 하고... 항상 이런 식이다. 어떻게든 정부의 방역 정책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을 부추기려 해 왔다. 그 ‘성과’로 최근에는 정부의 방역 정책을 신뢰한다는 응답보다 불신한다는 응답이 더 많은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상황이 나은 편이고, 지금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4차대유행은 심각한 결과를 낳고 있다. 특히 요즘 인도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정말 끔찍하다. 하루 확진자만 30만 명, 하루 사망자만 2천여 명, 감염자는 무려 5억이 넘었고, 그동안 죽은 사람은 1백만 명이 넘을 것이라고 추산되고 있다. 시신을 소각하는 화장터를 모두 24시간 가동하는데도 모자라서 그냥 여기저기서 시체가 쌓이고 불태워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대학살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힌두민족주의를 앞세워 이슬람혐오를 부추기며 분열지배를 해온 인종주의적 우익 정부가 여기에 책임이 있다. 모디 정부는 근래에 힌두민족주의를 부추기는 대규모 노마스크 정치행사와 선거캠페인을 주도하고, ‘경제를 살린다’면서 방역을 방치해 재앙을 불러왔다고 한다.
백신제국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미국 등 강대국들의 책임도 크다. 미국은 몇 달 후면 3억만명 분의 백신이 남아돌게 된다지만, 인도에서는 백신이 없어서 맞지를 못하고 있다. 세계최대의 코로나 백신 생산공장이 있는 인도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맞을 수 있는 백신은 없다! 지금대로 가면, 부자 나라들은 백신을 몇 번을 맞겠지만, 가난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몇 년이 지나야 백신을 구경할 수 있다.
백신에 대한 특허와 지적재산권을 포기하고 기술을 공유해 대량생산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 가능하다. 그러나 전세계가 힘을 모으고 공공기관과 공적자금까지 대규모로 투여해서 만들어진 백신을 몇몇 부자 나라와 다국적 제약회사가 독점하는 이 극단적 부조리는 바뀌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제 한국은 백신을 충분히 확보했다’는 소식이 반갑지만은 않고, ‘백신 꼴찌’, ‘백신 거지’ 이런 천박한 단어들을 만들어내는 언론들을 보기가 괴롭고 화난다.
아래 영상은 인도 델리 화장터의 생지옥같은 모습이다. 끝없이 소각되는 시신들 속에서 인도 시민들은 병원도, 엠블런스도, 침상도, 산소호흡기도, 치료약도, 백신도 부족한 이 상황이 누구 책임이냐고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백신을 제일 먼저 맞고, 몇 번이나 맞을 수 있다고 자랑할 일도 부러워할 일도 아니다.
“내 친구들과 나는 학교에서 출석부처럼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매일 서로 전화하기로 동의했다. 우리는 서로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 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눈물과 떨림으로 이야기한다. 우리는 우리가 시작한 일을 끝내기 위해 살 수 있을지 모른 채 글을 쓰고 일을 한다. 어떤 공포와 굴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모든 것이 치욕스럽고 그것이 우리를 깨뜨리고 있다.”(인도의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 아룬다티 로이)
인도에서 코로나 팬데믹의 대재앙이 계속되고 있다. 그 고통과 슬픔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하루 사망자만 공식적으로 4천여명이다. 강대국들과 다국적 제약회사의 방관 속에 인도의 코로나 변종은 남아시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전역으로 번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의 학살과 만행에 분노하며 비판을 쏟아내던 서방 강대국 정부와 거대언론들은 여기에는 그 정도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세제개악과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에게 발포해 수십명을 죽이고 있는 콜롬비아 친미우파 두케 정부에도 침묵하고 있다.
마치 한국의 주류언론들이 평택의 부두 노동자 아들의 산재사망보다 서울강남의 명문의대 출신 청년의 죽음에 더 큰 관심과 반응을 보이듯이. 마치 한국의 권력자들이 마녀사냥 희생자들의 억울함과 인권보다 김학의의 억울함과 인권에 더 감정이입하듯이.
우리가 어떤 고통과 죽음에 더 공감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도 결국은 더 많은 돈과 힘을 가진 사람들이, 주류언론들이, 국가들이 정해주려고 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팬데믹이 예고된 상황에서 인도 정부는 대규모 힌두교 종교행사와 선거유세를 강행했는가?
왜 세계에서 가장 큰 백신 생산국 중 하나인 인도는 지금 백신이 부족한가?
왜 전 인류를 괴롭히는 질병의 백신과 치료제가 사적 재산권으로 인정돼야 하는가?
왜 그러한 독점을 고집하는 자들이 악당이 아니라 부러운 구세주가 돼 있고, 거기서 밀려난 이들이 ‘백신 후진국’, ‘백신 꼴찌’라고 조롱받아야 하는가?
● 미얀마 민중항쟁은 바로 우리의 투쟁이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qGxKVsW9o24
미얀마 페친이 이 동영상을 올린 것을 봤다. ‘밀크티 동맹’에 속하는 홍콩, 타이, 미얀마, 한국 등 각국의 언어로 민중의 노래를 부르면서 국제적 연대를 보여주는 영상이다. 지금 미얀마의 상황과 이런 영상을 올리면서 그래도 희망을 다짐하는 분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눈가가 뜨거워지고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렇게 국경과 장벽과 바다를 넘어서 무엇보다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다. 같이 기뻐하고 같이 분노하고 같이 슬퍼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지금 한국의 상황도 좋다고만은 볼 수 없다. 며칠전 김무성은 지난 2016년 촛불 때 박근혜 청와대가 하야를 거부하고 탄핵의 기각을 확신하면서 계엄령을 검토했다는 것을 실토한 바가 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우리가 미얀마보다 앞서서 역사적 비극에 직면했을 가능성이 존재했던 것이다. 지금 중도개혁 정부의 위기 속에서 갈수록 기득권 우파들의 목소리가 강해지고 그들이 원했던 일들이 관철돼 나가고 있다. 그들이 미워하는 표적들은 낙인찍혀서 하나씩 제거되고 있다. 반면 진보적 희망은 잘 보이지 않는다.
기득권 우파가 진보정당을 강제로 해산시켰던 그 야만적 역사는 전혀 되돌려지지 않고 있고, 어제 진보정당의 강제해산과 의원직 박탈은 정당했다는 대법원 판결만 또 나왔다. 놀라운 것은 이것에 주류언론만이 아니라 진보진영도 별 관심도 분노도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미얀마 민중과 동지들보다 더 힘들고 갑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미얀마 민중항쟁은 뛰어난 투사들을 많이 배출했고, 그 중에는 ‘리틀 판다’라 불리며 민중의 사랑을 받았던 왜 모 나잉도 있다.
불교도가 압도적인 미얀마에서 왜 모 나잉은 무슬림이다.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유대인 혁명지도자들이 배출되고, 중국 천안문 항쟁 때 위구르 출신의 지도자가 배출됐듯이, 위대한 민중항쟁은 우리가 차별과 편견을 넘어서게 만들어준다.
군부에 체포되어 고문당하고 있는 왜 모 나잉은 이전에 "투쟁하는 시민들 가운데 서 있을 때, 나는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며 "우리의 혁명은 승리할 것이다!"라고 했었다. 미얀마 민중의 투쟁은 바로 우리의 투쟁이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SaveMyanmar #save_myanmarpeople #StandwithMyanmar
#StopCoup #RejectMilitary
(기사 등록 202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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