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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극단의 시대는, 한국에서는 계속 지속된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6. 6.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유명한 사학자 홉스범은 20세기를 '극단의 세기'라고 명명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위기, 세계 대전 등 속에서는 19세기후반-20세기 초반 열강의 체제를 뒷받침했던 중도, 온건 성향의 의회주의는 붕괴되고 일부 국가들은 극우적 독재, 또 일부 국가들은 경제의 전면적 국가화와 당-국가 건설 ('현실 사회주의') 길로 접어든 것이었습니다. 군사화된 국가의 힘이 극대화되는 그 과정에서 지속적 전쟁의 화염 속에서는 개별적 인간의 목숨 가치란 '파리' 이하로 떨어진 것이죠. 이걸 총칭해서 '극단의 세기'라고 부르곤 합니다.

 

한반도는 '극단의 세기'의 축소판이었습니다. 극단의 연속은 아마도 1937년쯤, 일제의 중국 본토 침략과 조선에서의 파쇼화로 시작됐을 것입니다. 일제가 중국 침략, 나아가서는 '영미귀축'을 상대로 한 전쟁을 '성전', 즉 '성스러운 전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1945년 이후에는 남북한에서 공히 쓰이게 된 거죠. 남한은 '반공 성전'을 반공규율체제 속에서의 사회 결속의 중심으로 삼았는가 하면 북조선에서는 '미제와 남조선 괴뢰에 대한 성전' 역시 선포됐습니다.

 

'성전'의 그늘에서는 남북한에서 최고 지도자의 영구 집권이 성공되거나 적어도 시도되고, 중화학공업 중심의 군사적 색깔이 강한 공업화가 이루어지고, 군사화된 병영형 관료 국가들이 건설됐습니다. 결국 두 군사주의의 경쟁에서는, 보다 강력한 미국 중심의 국제 체제와 직결된 남한이 승리해, 그 승리가 확정된 뒤에는 1980년대말-1990년대초 군정에서 민정으로 이양된 겁니다. 일단 적어도 '정치'의 영역에서는 '극단'은 종료됐습니다.

 

1997-8년 정권 교체 이후 남한에서는 안정적인 보수적 양당제가 착근됐습니다. 극우/영남 정당이 이기든 중도 보수/호남 정당이 이기든 신자유주의적 색채의 '성장/재벌' 본위의 정책에 있어서는 큰 차이는 없고 많은 부분에 있어서는 양당은 협력합니다. 예컨대 지소미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를 박근혜 정권이 맺었으며 문재인 정권이 계속 지속, 연장합니다. 지정학적 부분에 있어서는 한국 여야 차이는 존재하긴 하지만 아주 미미하죠.

 

그런데도 보수적 '안정'을 찾은 주류 정치판에서도 행동은 이제 다소 얌전해도 언어는 '극단' 그 자체입니다. 예컨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강경 보수 지향 언론들의 언설이나 극우 정치인들의 발언, 언급을 보면 그가 우주적인 '악의 중심'쯤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정적을 향해 비판하는 거야 어느 정치판에서나 있겠지만, 이건 '비판'이라기보다는 '인격 말살'에 가깝죠.

 

조국 전 장관에게 있어서 극우들이 문제 삼는 부분들 ("영어 논문 제1저자" 등)을 보면 본인들도 많은 경우에는 똑같은 일을 그대로 하는 것인데...한국 지배층 전체의 문제점에 대한 고민이나 자기 반성은 전무하고 오로지 '공격'일 뿐입니다. '극단' 그 자체죠. 그렇다면 자유주의적 보수 정당 (현재 집권 여당)의 일부 과격 지지자들은 어떤가요?

 

그들이 고 노무현 대통령을 거의 '성인', 요순임금처럼 여기면서도 그 시기에 세상을 등지게 된 노동 열사, 전용철 열사나 홍덕표 열차처럼 그 시절에 시위 도중에 극단적인 폭력 진압으로 사망한 농민, 노동자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평택 미군 기지 건설 반대자에 대한 폭력 진압, 외국인 노동자들의 가족 동반이나 직장 이동을 금지한 반인권적인 고용허가제 입법, 반노동적 비정규직 악법....'노사모'식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 현실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극단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아마도 '극단'이 가장 많이 남는 것은 우리 일상 속에서인 것 같습니다. 한국은 이미 고소득 국가가 됐지만, 한국인 직장인의 하루하루는 여전히 '전장'에 가깝습니다. 초고강도, 초장기 노동의 강요를 통해서, 극단적 경쟁을 부추김으로서 한국 자본이 이윤을 남기니까 직장 생활은 '극단' 그 자체입니다. 면박을 듣고 빨리 뛰고 스트레스로 잠을 못자고 거의 매일 깊은 밤이 돼야 파김치 된 채 집에 오고...

 

전체 근로인구의 87%나 직무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조사에 응답하는 나라는 아마도 한국 이외에는 - 적어도 고소득 국가에서는 - 없을 것입니다. 이런, 거의 살인적 스트레스 지수로 특징지어지는 삶에서는 개개인에게 심적 탈진 현상이 아주 쉽게 나타납니다. 여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은 툭하면 분통이 터지고, 자그만한 이해 충돌에도 상대방을 '불공대천지수'처럼 대하고, 무엇에 반대할 일이 있어도 꼭 '결사', 문자 그대로 '죽음을 결정한' 반대를 합니다. "빨리빨리"식 초착취 모드는 이렇게 사회성과 인간성의 파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선진국' 한국의 일상은 여전히 '극단' 그 자체입니다. '평온함'은 별로 없고 특수 계층 일부를 제외하면 '여유'라고 전무합니다. 힘들고, 다수가 불행하게 사는 겁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출산율이 0,84가 된 게 놀라운 게 아니라 그게 아직 0,00이 되지 않고 그래도 아이들이 계속 생겨난다는 게 더 놀라운 일입니다. 초경쟁, 초긴장, 전장형 사회는 물리적 재생산을 못하게 돼 있습니다. 이 사회를 바꾸지 않는 이상 수천년 '한국사'의 끝은 결국 이제 멀지도 않는 미래에 보이는 겁니다.

 

(기사 등록 202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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