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균
* 주의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마치 러브레터의 2021년 Summer Ver. 같은 느낌을 받았다. 러브레터에서 고베 쪽 연인으로 나왔던 토요카와 에츠시와 나카야마 미호도 그대로 부부로 나오는 연결점(단, 영화에서 둘은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이다.) 이 있다. 다만 러브레터는 아련히 "오겡키데스카"와 "도서카드"를 통해 떠나간 사랑과 첫사랑을 마음에 담는 듯한 느낌이라면 '라스트 레터'는 떠나가 버린 사랑(첫사랑이든 가족애든)을 그리워하지만 다시 앞을 향해 걸어가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런 것이 영화 내내 몇 번의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사인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후반부를 마무리하는 옛날 고교 졸업식 연설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2.
또한 러브레터는 "첫사랑" 혹은 "그리움"이라면, 라스트 레터는 "상처"와 "치유"가 더 키워드에 맞는 듯 하다. 첫사랑 같은 부분도 나오지만, 동생 유리의 첫사랑은 러브레터의 그것만큼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고, 고등학교 때 썸을 타던 미사키와 쿄시로는 대학 시절 연애를 하지만 결국 헤어지는 등의 과정이 있기에 러브레터의 그리움과는 또 결이 다르다. 편지를 주고 받는 것도 러브레터나 라스트레터나 똑같지만, 중반부부터는 쿄시로가 아예 사람들을 만나러 센다이로 오면서 그 의미가 확 줄어져 버린다.
결국 라스트레터는 떠난 사람을 둘러싼 주변인물의 상처, 그리고 다시 나아가는 치유가 좀 더 비중이 있다고 본다.
러브레터의 남자 이츠키는 사고사였다면 "라스트 레터"의 미사키는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의 상황은 직접 영상을 통해 나오지 않지만 미사키와 고교 동창이자 옛 연인이었던 쿄시로, 미사키의 옛 남편이던 아토의 말을 통해 그녀가 세상에 있던 동안 얼마나 불행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사키와 딸 아유미에 정이 떨어졌다고 정서적으로 학대하고 떠나가 버린 아토, 헤어진 이후에 이제서야 동창회에서 미사키(실은 언니의 죽음을 알리고자 찾아갔다가 아무 말도 못한 동생 유리)에게 25년 동안 줄곧 사랑했다고 말하며 연애 시절을 소설로 담게 했던 미사키의 삶을 쫓는 쿄시로 조차도 죽은 미사키에게 무책임했다.
다만 미사키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상처를 품은 사람들이 다시 서로를 만나면서 슬픔을 나누고 다시 앞서서 나가는 치유의 측면이 영화 후반부에서 많이 보인다. 쿄시로는 결국 미사키의 딸 아유미와 유리의 딸 소요카를 만나면서 미사키에게 추모를 하고 서로의 그리움을 함께 나누고 떠나기 전 쿄시로가 둘의 사진을 찍으면서 그 치유를 마무리하고, 좀 더 관계가 복잡미묘한 쿄시료-유리도 쿄시료가 도쿄로 떠나기 전에 만나는 대화를 통해서도 둘의 상처도 치유도 모두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아토의 현 처이자 책도 제대로 읽어 보지 않은 채 건성으로 사인을 해달라 요구하며 그 상처에 되는 대로 살아가는 사카에와는 다르게, 서로 상처와 치유를 함께 나눈 아유미와 유미의 사인은 확실히 결이 다른 모습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덤으로 친척 아유미를 돌봐 준다는 핑계였지만 사실은 학교에서의 짝사랑 때문에 집이건 학교건 돌아가기 싫어했던 소요카도 이 과정에 함께 하면서 예정보다 더 일찍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3.
결국 사람간에 받은 상처는 또 사람을 통해 치유되고 나갈 수 있음을 영화에서 보여 주는 것 같다. 주변에 자살이란 것을 병사로 숨기지만 그것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아 하던 아유미는 읽어 보기 꺼려하던 엄마가 남긴 마지막 봉투 속에 남긴 편지가 고등학교 시절 졸업식 연설문을 마침내 확인한다. 그동안 세상에서 받았던 상처를 예전 가장 행복했고 찬란했던 시절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만들었던 졸업문을 통해 마치 졸업하듯 떠났던 미사키의 글은 아유미에게 역설적으로 새롭게 삶을 입학하고 더 나아갈 수 있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와이 슌지가 24년만에 비슷한 형식으로 이 영화를 왜 만들었지 싶었지만, 결국 이 작품을 통해 러브레터는 물론 특히 일본 사회를 둘러 싼 지난 상처를 졸업하고 다시 한 발짝 나아가고 싶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적 배경 역시 후쿠시마의 옆동네 격인 센다이인 것도 러브레터와는 다르게 계절이 여름인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닌가 생각한다.
연출 방법은 1995년의 러브레터와는 크게 다른 바 없는 점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와이 슌지의 감성 포인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역시나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처럼 현재 계절도 여름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모두에게 이 여름은 이 영화처럼 치유로서 다가오길 기원한다.
(기사 등록 20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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