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제국주의 좌파는 미얀마 민중과 연대해야 한다
김지수
지난 2월 1일 미얀마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고문 아웅산 수치와 대통령 윈 민 및 여당(NLD) 고위 관계자들을 축출하여 가택 연금했다. 미얀마에서는 그에 항의하는 대규모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으며 며칠 전부터 군부의 유혈 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사상자가 수십명에 달한다. 필자는 미얀마에서 충돌하는 세력의 성격을 따져 보고 그에 따라 우리가 미얀마 민중의 항쟁에 연대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글을 쓰려고 한다.
미얀마에서 충돌하는 세력에 대한 이해
미얀마 군부는 단순한 군인 집단을 넘어 미얀마 독립과 건국의 핵심 세력이며 긴 기간 사회주의와 반제국주의의 기치 아래 미얀마를 통치해온 전통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미얀마 군부에게 있어서 그런 가치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자본주의 흐름에 대대적으로 영합하여 군부 인사(및 친인척)이 소유한 기업들이 미얀마에서 자본주의적인 기업활동을 한다. 이런 모습을 종합해볼 때 현재 미얀마 군부의 모습은 마치 극우로 넘어간 옛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떠올리게 한다.
군부와 충돌하는 대표적 인사인 아웅산 수치 고문은 과거 영국에서 유학한 인물이다. 또한 2011년 당시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이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 힐러리와 회동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웅산 수치가 고문으로 있는 NLD가 선거에 승리하였을 때 미얀마가 외교 기조를 바꾸어 친미 노선을 걷는 게 아닌가 의심을 하였다.
그러나 NLD의 선거 승리 후 아웅산 수치 고문은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장 왕이와 회담하였고 이후에 미얀마의 외교 노선 또한 중국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최근 수 년간의 행적으로 보았을 때 미얀마 군부는 사회주의, 반제국주의적이고 NLD와 아웅산 수치는 친영, 친미라는 등식으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번에 발생한 군사쿠데타의 성격에 대한 이해
만약 미얀마 군부가 사회주의와 반미, 반제국주의의 기치 아래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지금처럼 시민들을 수십명씩 살해하고 수천명을 구금하는 폭력과 인권침해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 군사쿠데타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작은 여지나마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 이유로 내세운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군부는 작년에 이루어진 선거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입증하기 어려운 이유를 대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얀마 군부 소유 기업들 또한 구데타 이후로 이전과 변화 없이 자본주의적 경영을 이어 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더욱 그 군사쿠데타를 반자본주의 기치 아래 일어났다고 봐주기 어렵다. 아웅산 수치와 NLD가 집권 후에 취한 외교정책이 친미 친서방 정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군부는 반미 반제국주의 이야기를 꺼내지조차 못하였다.
현재 아웅산 수치가 구금 중에 있고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워키토키 불법 수입 등인데 아웅산수치를 그런 이유로 구금하고 재판하는 것이 반제국주의, 사회주의 가치 실현의 과정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고로 경제 및 외교정책이 비슷한데 선거로 집권한 세력에 대해 군대에 기반 둔 세력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고 보는 게 합당해 보인다.
반면 미얀마 군부가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여 여러 명을 살해한 용서할 수 없는 죄는 마치 오월 광주를 연상하게 한다. 필자는 미국이 군부를 지도하여 시민들을 학살한 게 오월 광주라면 미국이 별 행동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군부가 시민을 학살하는 것이 미얀마의 상황이라 판단한다.
우리의 연대를 통해 미얀마 민중 항쟁의 성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 문화가 미얀마에 널리 퍼져 있고 미얀마에서 민중항쟁에 나온 시민들의 다수가 케이팝을 즐기고 있다. 그들이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신들을 지지해 주길 바라고 있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에서 어떤 기치 아래 움직이는 정치세력이 미얀마 민주화항쟁을 지지해 주느냐에 따라 그 운동의 내부의 여론과 판도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우리가 미제국주의에 가까운 세력들에게 우선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미국이 자기 멋대로 미얀마 상황을 재단해 역겨운 알리바이를 만들며 자유 민주주의 위선을 떨 여지를 잘라버리고 우리가 미국의 세계 패권에 반대하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모델을 미얀마 인민들과 펼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성공한다면 미국이 앵무새처럼 떠들어대는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역겨운 위선인지도 폭로가 가능할 것이다.
나가며
이미 군부가 시민들을 향하여 발포를 하였고 수십명이 사망하였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어쩌구저쩌구 하는 알리바이를 만들어 개입하고 그것이 심지어 군사적 개입으로까지 이어진다면 더욱 비극적인 일이 벌어질 거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좌파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세력이 더 앞장서서 미얀마 사태에 관심을 갖고 민중에게 연대해야 한다.
● 쿠데타와 학살을 옹호하는 어떤 주장도 정당화될 수 없다
민철식
미얀마 군부는 총선에서 선거부정이 있었다는 것을 문제삼아 쿠데타를 일으켰다. 국민들은 쿠데타에 맞서서 비폭력적으로 쿠데타를 규탄하는 항의를 했다, 그러나 군부는 군경을 동원해서 실탄발사와 같은 살인적인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많은 수의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
사망자들의 사인을 보면 군경의 조준사격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군부의 살인적 유혈 진압에도 미얀마 국민들은 비폭력 저항을 하며 싸우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기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집회소식을 알리고 공유하며 미얀마 군부의 유혈진압의 잔학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이렇게 미얀마 국민들의 목숨을 걸고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전세계에서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얀마 군부 쿠데타 저항하는 미얀마 국민들과의 연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모금을 해서 투쟁하는 미얀마 국민들의 민주화 투쟁을 지지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아주 일부에서는 미얀마 군부는 미국과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하고 사회주의를 지향해 왔다면서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를 옹호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미얀마 국민들의 투쟁은 미국과 서방의 사주를 받고 하는 것이라고 폄하하는 경우마저도 있다,
나는 한국에서 이런 경향이 나타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사회주의 노선을 표방하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 반제국주의 투쟁을 하는 군부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쿠데타를 일으키고 국민들을 학살하는 것은 사회주의 노선이라고 정당화되거나 옹호할 수 없다. 인민의 불평등한 삶을 개선하고 증진시키는 게 올바른 사회주의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미얀마 군부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어떤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사회주의자라면 미얀마 군부의 잔인한 학살에 맞서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미얀마 국민들과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연대해야 하는 게 맞다, 그것이 고난받는 민중과 함께하고 싸우는 사회주의와 좌파의 기본 정신에 맞다,
● 미얀마 민중항쟁에 승리를!
전지윤
미얀마 군부가 폭력과 학살을 통해서 민주항쟁을 분쇄하려 한다. 벌써 수십여 명이 살해당했고, 부상자와 수감자는 수천 명으로 확대되고 있다. 군부가 사주한 깡패들도 흉기를 들고 시위대를 습격해서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 동시에 쿠데타기구인 ‘국가행정평의회(SAC)에 일부 정치인과 정당들을 끌어들여서 구색을 맞추고 저항운동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이번 쿠데타가 미얀마 민중의 누구로부터도 그 명분과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에 군부가 의존할 것은 폭력 말고는 없다는 것, 각종 차이와 부문을 뛰어넘은 저항운동의 단결에 직면한 군부가 어떻게든 분열을 조장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군부의 무지막지한 폭력에도 아직 미얀마 민중은 무장 저항으로 나아가지는 않고 있는데, 시리아 등이 보여줬듯이 민중항쟁이 군사적 대결로 발전하는 것이 운동의 단결과 힘을 유지하는데 꼭 효과적이지만은 않다는 고민이 바탕에 있을 것이다. 나아가 미얀마 민중은 폭력 탄압과 인터넷 차단 등에 맞서 홍콩과 태국의 민중이 발전시켜온 각종 투쟁 방법을 학습해 창조적으로 응용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은 미얀마 민중의 압도다수가 동참하고 있는 총파업과 시민불복종(CDM) 운동이다. 이것은 근래 우리가 노동운동에서 많이 봤던 소수의 노조원들만 참가하는 의례적, 상징적, 부문적 파업이 아니다. 그야말로 산업, 유통, 운송, 교육, 의료, 공공 등 모든 부문에서 실질적이고 무기한으로 진행되고 있는 행동이다.
미얀마 군부는 단지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기업과 자본 등 경제권력도 장악해 왔기에 이것은 더 강력한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초기에는 여성 의류노동자들이 앞장섰지만, 이제는 미조직된 수많은 노동자와 다양한 부문과 계층의 사람들이 동참하는 총파업의 양상은 대중투쟁의 발전 속에서 자발성과 의식성,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상호작용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의 민중항쟁에서 미얀마노총(CTUM)이 하고 있는 중요한 구실도 부르주아민주주의의 핵심적 의미는 노동자 민중이 자주적 조직을 결성할 권리를 허용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이것을 부르주아적 한계 속에 벌어지는 보수파와 개혁파의 권력다툼이라는 식의 태도로 무시할 수 없다.
또 아웅산 수치의 사진을 들고 거리에 나서는 미얀마 민중의 심정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결함이 많은 부르주아 정치인에 대한 어리석고 잘못된 추종이 아니라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애타는 열망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얀마 민중의 용기와 투지가 대단하더라도, 군부의 잔인한 학살과 분열공작이 지속된다면 저항운동의 기가 꺾이고 균열이 시작될지 모른다. 소득감소와 실직을 감수하고 총파업과 시민불복종을 지속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기업주들부터 대열에서 이탈해 군부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따라서 미얀마 민중이 애타게 호소하는 국제적 연대가 더욱 강력하게 건설돼야 한다.
특히 동아시아 독재자들의 동맹에 맞선 아래로부터 민중연대가 중요하다. 지금 동아시아의 독재자 동맹은 미얀마에서 도미노가 쓰러지면 다른 곳에서도 연쇄적으로 도미노가 쓰러질 것을 걱정한다. 이것이 동아시아 민중 모두가 힘을 합쳐서 미얀마 쿠테타 군부라는 도미도를 반드시 쓰러트려야 하는 이유이다.
이 나라에서도 정부가 군부를 비판하는 입장을 냈고, 국회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민주노총도 미얀마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이 힘을 모아서 더 강력하고 분명하게 미얀마 민중을 지지하고 군부를 규탄하는 입장 발표와 행동에 나서야 한다. 미얀마에 투자한 한국기업들이 군부를 돕지 못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이러한 국제적 연대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하는 일각의 잘못된 정보와 논리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먼저 네윈 독재 시기의 버마가 ‘사회주의’였다는 주장은 커다란 착각이다. 독재자 네윈은 ‘불교와 마르크스주의의 융합’을 운운하며 군사통치와 일당독재를 정당화했는데, 이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가장 기괴한 왜곡이었을 뿐이다.
미얀마 민중저항을 미국이나 서방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사주했다거나, 이득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아무 근거도 없는 잘못된 이야기이다. 미국은 2년전 볼리비아 쿠데타를 사주한 적은 있지만 어디서든 민중저항을 사주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또 민주주의와 아래로부터 민중의 힘이 강화되는 것은 미국, 중국을 떠나서 전세계 모든 강대국과 지배자들이 싫어할 일이다.
철식 동지가 소개해 준, 미얀마 민중항쟁 속에서 거리에서 만들어진 아래 노래는 ‘군부독재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되풀이해 외친다. 이 영상을 소개하는 측에서는 ‘미얀마의 DJ doc’라고 하는데, 그보단 2011년 아랍혁명 때 등장했던 혁명적 힙합그룹들이 떠오른다. 물론 K팝의 영향이 느껴지지만 힙합이라는 형식과 노래말, 랩, 춤 속에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박진감과 투지와 결의가 넘치는 올해의 노래라고 할만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0Oj2k_zZ08Y
● 살인마 흘라잉과 군부 테러리스트들은 학살을 중단하라!
전지윤
쿠데타 이후 한 달이 넘은 지금, 미얀마 군부는 이제 용서받을 수 없는 학살 범죄집단이고 그우두머리인 훌라잉은 무도한 살인마라는 게 분명해졌다. 이들이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미얀마 사회의 정치권력뿐 아니라 사회경제 권력까지 독점한 현 체제를 고수하기 위해서 이미 온갖 범죄를 저질러 왔다.
따라서 미얀마 군부의 뿌리를 반세기도 더 전에 아웅산 장군과 그 동료들에서 찾으려는 것은 완전히 틀렸다. 당시 아웅산 장군과 동료들은 적어도 반제 민족독립 투쟁에 헌신했고, 미얀마 민중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소수민족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1947년 팔롱합의를 추진했다. 지금의 군부는 이런 전통과 아무 연관이 없다.
이들은 제국주의 강대국들과 맞서긴커녕, 어떻게든 그들과 손잡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있다. 민중의 삶을 개선하긴커녕 민중의 삶을 파탄낸 것도 모자라 생명까지 앗아가고 있다. 소수민족을 학살해 온 장본인들이다. 이들은 오히려 소수민족 자치권 인정에 불만을 품고 아웅산 장군을 암살한 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아웅산의 딸인 수치와도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군부는 1988년까지 ‘버마식 사회주의’를 내세워 일당독재를 하던 네윈과도 다른 세력이다. ‘사회주의’를 독재의 가면으로 쓰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의 군부는 그조차도 내팽개친지 오래다.
흘라잉 군부는 이미 수십년 동안 ‘무노조, 장시간 노동, 세금 면제, 토지 장기 대여, 규제없는 원스톱 서비스’를 내세워 다국적 자본들을 유치해 왔다. 포스코 등 한국에서도 노조탄압과 산업재해로 악명높은 기업들이 진작부터 미얀마에 몰려가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반제국주의나 반자본주의라는 기준 때문에 미얀마의 투쟁을 독재-반독재 구도만으로 보고 지지할 수는 없다’는 일부의 주장은 조금도 동의하기 어렵다. 미얀마 민중은 바로 제국주의 강대국들, 다국적 자본들과 손잡아온 군부에 맞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얀마 민중항쟁에 대한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의 태도가 위선적으로 보일 수 있다. 자신들의 과거 식민지배와 분할통치에 대한 반성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라틴아메리카에서 쿠데타를 사주하던 미국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의 침공과 폭격으로 인한 수많은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주목하고 애도할 죽음과 그렇지 않은 죽음을 서방국가와 서방언론이 판단하는 현실이 씁쓸할 수도 있다. 바이든 정부가 미얀마에 주목하는 진정한 이유가 민주주의나 생명의 소중함보다는 대중국 봉쇄망을 재구축하려는 데 있다는 것을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런 봉쇄망을 뚫고 인도양으로 나가려는 계산과 천연자원에 대한 욕심 때문에 미얀마 군부에 손을 내밀며 쿠데타와 학살에 침묵하는 중국을 옹호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유엔에서 미얀마 군부 규탄 결의조차 한사코 가로막고 있는 게 중국이다. 이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양쪽 모두에 추파를 던지는 게 미얀마의 살인마 군부집단이다.
이들 모두는 자신들의 패권, 권력을 우선하면서 미얀마의 민주주의에는 관심이 없다. 미얀마 민중의 삶과 생명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종속시키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 모두에 반대해서 미얀마 민중의 삶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두고 판단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민중의 생명을 부차적인 것으로 종속시키는 어떠한 정세판단과 정치노선도 정당화될 수가 없다.
미얀마 민중의 반독재 민중항쟁이 승리하도록 강력한 국제연대를 건설해야 한다. 민중항쟁이 승리하지 못하고 희망이 사라지면 외세와 강대국들의 개입이 더 앞당겨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시리아에서 민중항쟁의 패배와 시민들의 절망은 내전과 강대국들의 군사적 개입을 낳았고, 아직도 그 피해와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미얀마 민중은 지금 민족, 종교, 부문의 차이를 넘어서서 강력한 연대로 나아가고 있다. 양곤 지역의 거대한 판자촌에서도 수많은 빈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투쟁에 합류하고 있다. 수천만 명이 투쟁에 동참해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독재 타도와 민주 쟁취’를 외치고 있다. 80년 5월 광주에서 고립된 채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오랜 부채감을 기억한다면, 오늘날 미얀마 민중에 대해 그런 죄책감을 다시 남길 수는 없는 일이다.
#SaveMyanmar #save_myanmarpeople #StandwithMyanmar
#StopCoup #RejectMilitary
미얀마 시민행동 연대기금 488401-01-224956(국민은행, 해외주민운동연대)
미얀마 아동과 시민 지원 1005-802-499757(우리은행, 따비에)
(기사 등록 202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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