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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착한 기업은 '없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1. 5.

-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과 연대하며

 

박철균



 

1.

대략 17년 전 대학생이었을 때 이야기다. 여름방학 쯤 당시 LG정유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상경투쟁을 결의하고 대규모로 상경했는데, 그 노동자들이 내가 다니던 학교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 때 내가 했던 활동들은 학교로 들어오는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모아 피켓팅을 했던 것, 그리고 학교에서 관련 일정이 있을 때 함께 하는 것, 그리고 총학생회 홈페이지나 학교 게시판에 우리 학교에 LG 정유 노동자들이 상경투쟁하기 위해 학교에 왔으니 연대하자는 글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총학생회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본의 아니게 키보드 배틀을 하게 되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이 파업은 "귀족 파업"이니, 이 사람들이 "연봉이 얼마니" 식으로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비난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그 당시엔 게시판으로 일일이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사건의 본질은 그 사람들의 연봉이 아니라 "지역사회발전기금 출연, 비정규직 정규직화, 5일제 실시"같은 기본적인 인권과 노동권을 위한 것, 그리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에 대한 투쟁이라고 반박글을 올렸다. 그런데, 그런 글이 올라가면 또 같은 "연봉"으로 논점회귀를 하는 방법을 쓰고 우리 학교에 있는 건 안 되니 쫓아내야 한다는 식으로 공격을 했다.

 

한참을 그렇게 키보드배틀을 하고 일이 있어서 밖에 있었는데, 총학생회 간부가 전화를 했다. 확인해 보니 관련된 비난글을 올리는 IP 거의 대부분이 강남구 역삼동이었고, IP 대부분을 홈페이지에서 차단할 것이고 총학생회 게시판에 공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그 휴대폰 속 이야기를 떠오르면 소름이 끼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강남구 역삼동엔 GS강남타워(그 때 당시엔 LG강남타워)이고, 사측이 학교 학생을 사칭하며 조직적으로 파업 투쟁을 매도하고 선동하는 행위들을 한 것이 확인되는 순간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 소름이 끼쳤던 순간이다. 회사에서 노동조합이 쟁의가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상호 교섭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교섭보다는 치졸하게 학교 게시판에 악성 비난글을 도배하는 것이 대기업의 역할이라니....

 

그 후 서글프게도 상경투쟁이 끝나고 사측은 어마무시하게 민주노조를 와해 시켰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LG 정유는 허씨네의 계열분리로 GS정유가 되었고 그 당시 노동자들이 싸웠던 학교도 이젠 그 자리에 없다. 서울까지 올라와서 싸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역사 속으로 마치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2.

이 아주 오래전 이야기가 현재 LG트윈타워에서 며칠째 투쟁하고 있는 LG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났다. 이분들은 용역업체 변경으로 모두 해직 위기에 처하자 절박한 심정으로 빌딩 안에서 2020년이 끝나갈 때 즈음 투쟁이 시작했다. 그런데, LG에서 한 일은 난방도 전기도 끊어버리고 용역을 동원해서 음식 반입을 폭력적으로 막았다. 사람들이 연대의 마음으로 보내 준 도시락, 초코파이가 모두 그 끔찍한 폭력 앞에서 뭉개져 버렸다. 언론과 정당까지 붙으니 부랴부랴 음식 반입을 허용하는 듯 보이는데, 워낙 약속 어기기를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이라 계속 예의주시해야 한다나...

 

하도 삼성이 반인륜 반노동 기업이니 LG가 낫지 않냐는 사람을 많이 봤고 심지어는 휴대폰도 삼성이나 아이폰보다는 LG폰을 사야 하는 거 아니냐는 사람도 봤다. 심지어는 LG 그룹은 아무도 모르게 선행이나 사회 환원 사업도 많이 하니 착한 기업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봤다.

 

그 모든 말에 삼성이랑 비교하면 뭐든 나쁘지 않은 것이 어딨겠냐만은 그 "착한"이란 말에 너무나 동의가 되지 않았다. 그 옛날 일도 그랬고, 지금 청소노동자에게 하는 악랄한 행동들이 결코 "착한 기업"에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기업들이랑은 달리 형제들끼리 계열 분리도 사이좋게(?) 하고 이미지 관리를 잘 한다면 모를까 이 구&허 패밀리 역시 2000년대 초나 2020년대나 노동자와 노동조합에게 하는 모습은 역시나 반인권적 이라고 할 수 있겠다.

 

3.

하물며 소위 깨어 있다는 분들이 농심을 친일기업이라고 하며 비난하면서 그 반대 선상에서 갓뚜기라고 하면서 온갖 오버를 하며 칭송하는 대표 "착한" 기업 오뚜기는 어떻고? 그렇게 오뚜기를 착한 기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 오뚜기가 식품위생법 위반을 롯데 다음으로 하고 있는 기업이고, 오뚜기 라면에 몰빵하여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영업이익은 줄고 함씨 가문만 좋게 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오후조에 있는 직원을 오전조에 투입하고 점심 식사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으며 통근비 유류비 지원 없는 열정페이가 일상화 된 것에 대해선 침묵한다.

 

나는 그 "착한 기업"이라고 말하는 이중성을 경고한다. 소위 알려진 나쁜 기업과 경쟁하거나 대척점에 있는 기업이라고 그 기업이 꼭 아군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착한 기업"이란 이미지를 포장하며 누군가에겐 끔찍한 노동의 현장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오히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개선되는 것을 방해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노동자가 일하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기업을 취사선택하여 착한기업 나쁜기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각 기업 모두에게 안전하고 좋은 환경, 함부로 해고 당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도록 요구하고 투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4.

이 엄동설한에도 계속 일하기 위해 투쟁하는 LG 청소노동자들을 생각하고 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

 

 (기사 등록 20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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