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세상읽기 - 이석기/ 윤미향/ 코로나 백신/ 조두순

전지윤

 

이석기를 석방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

 

이번에도 이석기 의원은 사면 석방돼지 못했다. 암수술받고 목소리를 잃은 이석기 의원 누님 이경진 선생님이 펜으로 이석기 석방글씨를 쓰며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기대는 무참하게 꺾였다. 이것은 연말에 계속 이어지고 있는 몇가지 판결이나 조처들과 더불어 기득권 우파진영에 전해진 또 다른 승전보일 것이다.

 

주류질서에 도전한 사람은 절대 용서할 수 없고 평생을 고통받고 후회하게 만들어준다는 지배계급과 기득권 우파의 원칙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있다. 그런 사람은 언론에 의해 낙인이 찍혀서 대중적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마녀사냥은 검찰 수사와 사법부 판결로 완성된다. '전광훈의 표현의 자유는 보장하지만 이석기의 표현이 자유는 절대 보장할 수 없다' 것이다.

 

비록 비주류이지만 기존체제와 질서의 일부로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여기에 제대로 도전하기보다는 계속 눈치보고 타협할 것이라는 점은 처음부터 예상됐던 것이다. 기대가 크지 않았으니 실망도 크지 않다. 사실 더 실망하게 되는 것은 진보좌파 진영이다. 왜 아직도 이석기 의원 석방 문제는 주로 종교계 원로들과 인권단체들만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좁혀져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사상의 자유라는 민주주의나 자유주의의 원칙의 문제가 아닌가. 다수자와 강자보다는 소수자와 약자의 표현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는 기준에서도 518역사왜곡처벌법이나 대북전단금지법이 앞으로 낳을지도 모를 해악보다 지금 당장 심각한 해악을 눈앞에서 낳고 있는 문제가 아닌가.

 

우리가 홍콩이나 타이에서의 국가보안법에 반대하고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진정성을 가지려면 더욱 더 목소리를 높여야 할 문제가 아닌가. 기존 관행과 선배들 눈치보지 않고 할 말은 한다는 소신'들이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가. 이런 문제에 전혀 관심도 없고 심지어 적대적이었고 마녀사냥에 동참했던 사람들이 전체주의, 독재,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를 운운하고 있는 상황이 서글프기만 하다.

 

촛불 이후에 뭔가 개혁의 진척이 있었던 경우는 대부분 대통령이 결단하고 정부와 민주당이 열의를 갖고 노력해서가 아니었다. 촛불의 힘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모두 한 목소리도 분명하게 요구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강력한 운동이 벌어질 때 그나마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며 하나라도 이루거나 전진시킬 수 있었다. 이석기 의원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에서 이런 흐름을 만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재용은 감옥으로 삼성 피해자들은 집으로

 

얼마전 서울고법에서 이재용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이 있었고, 그래서 오전에는 삼성피해자공동투쟁이 기자회견을 했다. 가보니 윤석열을 응원하며 정경심 교수 구속을 촉구하는 극우세력의 기자회견이 먼저 진행중이었다. 이들은 의도적인지 한참을 시간을 끌면서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내용을 듣게 됐다.

 

들어보니, 이들은 자신들이 정경심 교수의 신체적 장애를 반인륜적 막말과 욕설로 비하하다가 고소당한 것을 안대를 하고 운전을 하면 사고 위험이 있다고 말한 것인데 고소당했다는 궤변으로 정당화하고 있었다. 또 주로 조국 교수, 윤미향 의원을 증오하고 저주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지만 나아가 매우 교묘한 논리를 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진보와 좌파 세력에게 약속한 것도 어기는 위선적인 정부이니 보수와 진보가 진영을 넘어서 힘을 합쳐 반문재인 투쟁을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차별과 인권, 심지어 세월호까지 사례로 들었다. 같이 지켜보던 과천 철거민 동지들은 지들이 언제부터 그런 문제에 관심있었다고 저러냐며 기막혀 했다.

 

뒤늦게야 시작된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이재용 봐주기 재판을 규탄하며 반드시 이재용을 제대로 처벌하고 삼성 피해자들의 문제를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도 발언 기회를 얻었다.

 

우리같은 사람들은 검사나 판사들 앞에만 서면 작아 질 수밖에 없다. 그러데 이재용은 온갖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고 있다. 검사들은 부패를 저지르고 판사까지 사찰해도 징계도 어렵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만든다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검사들, 판사들도 제대로 수사하고 처벌하면 좋겠다. 그런데 삼성과 이재용은 여전히 법 위에 있다. 삼성범죄자비리수사처라도 만들어서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노동자들이 죽어가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게 삼성이고, 코로나로 모두 힘든데 의료를 돈벌이 삼는 게 삼성이고, 살아있는 권력을 감시한다는 언론이 절대 감시하지 않는 게 삼성이고, 거악을 척결한다는 검찰이 지켜주는 게 진짜 거악인 삼성이다. 검찰도 개혁하고, 언론도 개혁한다지만 건들지 못하고 있는 게 삼성권력이고 재벌권력이다. 그래서 삼성 피해자들의 투쟁은 정당하고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지금, 삼성생명 본관에서는 암보험 피해자들이 340일 넘게 점거농성중이고, 과천 철거민들은 16년째 거리에서 투쟁중이며, 삼성 해고노동자들도 싸우고 있다. 이재용 재판은 올해 말에는 결론이 날 것이다. 이재용은 구속되고 삼성 피해자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코로나 백신 민족주의를 넘어서

 

코로나 상황에 계속 심각해지고 있다. 정치적 지지 여부를 떠나서 코로나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그동안 노력과 대응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지난 1년간의 객관적 결과가 말해주는 바이기 때문이다. 지금 유럽의 주요국가에서는 하루 사망자 규모가 한국의 하루 확진자 규모와 비슷하다. 특히 NHS로 유명한 영국도 그렇다는 것에 놀랍기만 하다.

 

문재인 정부보다는 급진좌파 정부가 필요하고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입장이 객관적 사실에 대해서 못 본 채하면서 억지스러운 비난을 하는 것으로 작용할 수는 없다. 어떤 정치세력이든 만약 그런 태도를 취한다면 객관적 사실과 스스로의 실력을 통해서는 문재인 정부를 넘어설 수 없다는 고백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부의 코로나 대응에서 그동안 지속된 한계와 지금 드러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비판을 삼가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공공의료 시설과 인력의 비중이 여전히 일부일 뿐이고 압도적으로 민간(시장)의료에 시설과 인력을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별로 손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확진자 수가 어느 규모를 넘어서자 그 한계는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둘째로는 지난 코로나 2차 확산사태 때 파업에 나서는 광경에서 드러난 의사협회 등 의료계의 특권 엘리트 집단의 권력에 별로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코로나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제한하고 의료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어떤 조치도 반대하고 있다.

 

셋째는 코로나의 영향이 상반된 결과를 낳을 사회불평등 구조를 크게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코로나 상황에서 오히려 그것이 기회가 돼서 불로소득이 더욱 늘어난 사람들과 이중삼중의 타격을 받아서 삶의 벼랑 끝으로 몰리는 사람들의 극적 대비가 나타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한국사회에서 자유시장과 특권 엘리트 집단의 힘이 여전히 얼마나 막강하고, 그들과 정면대결하지 않고 타협하려 한다면 어느 것도 진전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자유시장의 논리와 그것에 기반한 세력이 어떤 공공적 통제와 시도도 망치고 있는 것은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여기서 공공임대주택의 확대를 결사 반대하는 중이다. 자유시장 논리의 야만성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반대하는 경제단체들의 논리에서도 드러난다. ‘기업을 처벌하는 것은 시장에 공포를 불러일으켜 투자를 가로막는 연좌제라니 기가 막힐 뿐이다.

 

아래 그림은 자유시장과 그것이 낳은 불평등이 코로나 상황에서 국제적으로도 어떤 부조리를 낳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것을 보면 코로나 백신을 (전세계 인구의 15% 밖에 안 되는) 북미와 유럽이 가장 먼저, 그 다음에 중국과 러시아와 한국 등 개도국들, 그 다음이 중동과 남미 나라들이 맞게 된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대부분 나라가 가장 나중에 심지어 내후년에 가서야 맞게 된다.

 

이런 불평등은 백신 특허권을 독점한 초국적 제약회사들에게는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주겠지만, 코로나 극복에는 아무 도움도 안 될 것이다. ‘너와 그들이 아프면 나와 우리도 아프게 되는 게 코로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대적 공적투자를 통해서 개발된 백신에 대한 특허권은 없어야 하며 전세계적으로 차등없는 무상 복제와 공급이 이뤄져야 마땅하다.

 

이 상황에서 한국의 대부분 주류언론들은 백신 민족주의에 휘말려 백신 전쟁에서 참패했다. K방역은 폭망했다며 아주 난리치는 중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아프든 죽든 모르겠고 나부터 먼저 백신을 맞겠다는 저 욕심많은 부유한 나라 집단에 우리가 더 빨리 끼어들지 못해서 그렇게 배가 아픈가? 백신도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트럼프가 그렇게 멋져 보이는가?

 

이러한 한국의 언론시장이야말로 자유시장의 논리와 그것이 낳은 불평등, 그것에 기반한 특권독점 집단의 폐해가 가장 심한 곳이다. 여기서 언론의 자유는 언론자본들이 돈 벌 자유, 족벌언론들이 맘대로 떠들 자유가 된지 오래다




 

마녀는 끝없이 소환되고 괴롭힘 당한다 - 윤미향 의원의 경우

 

윤미향 의원이 지난 127일에 지인들과 조촐한 식사자리를 가지고 그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 때문에 그후 며칠간 또 집중적 공격, 비난의 대상이 됐다. 지인들과 식사를 하다가 길원옥 선생님의 생일을 기억하며 그리움을 나눈 것이지만, 지금 코로나 비상 상황에서 노마스크로 술잔을 부딪치는 사진을 올린 게 공인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 며칠전의 모임이었지만, 코로나가 워낙 심각하다보니 다소 각박한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해되는 면이 있고, 잘못이라고 볼 부분이 없지 않으니 아쉬운 생각에 몇 마디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공인으로서 감수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후 며칠간 펼쳐진 집중포화는 과도해도 너무 과도하다. 마치 윤미향 의원이 방역지침이라도 어긴 것처럼 몰아가지만, 2단계는 물론이고 2.5단계에서도 식당에서 지인들과 식사 자체는 금지돼 있지 않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전히 하고 있는 일이다.

 

와인을 엄청 고가의 고급한 술처럼 묘사하는 것도 어처구니없다. 꼬투리 잡기는 길 할머니의 생일과 나이도 모르면서 불순한 의도로 사기를 쳤다는 음모론으로 발전했다. 수십년간 같이 투쟁하며 울고 웃어온 윤의원보다 자신들이 길원옥 선생님을 더 잘 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언론의 공격 메커니즘은 똑같았다. 먼저 조중동을 필두로 증오와 저주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러면 다른 언론사들도 슬금슬금 따라간다. ‘와인 파티운운하는 이 기사들은 포털에 올라가고 휴대폰, 컴퓨터, SNS에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많이 접하게 된다. 3일간에만 벌써 천여 개가 넘는 기사가 쏟아져 계속 조중동 등의 언론과 포털의 탑으로 올랐다.

 

이어서 독기어린 막말들이 나왔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좌파의 기괴함”(국힘당 허은아), ”할머니를 앵벌이를 시켜서 국회의원까지 됐다“, “할머니를 우려먹고 있다”(서민, 진중권) 언론사들은 이 발언들을 따옴표쳐서 또 기사들을 양산했다. 이번 일과 아무 상관도 없는 정의연도 다시 불러내 또 두들겼다.

 

그 기사들에는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온갖 막말, 욕설, 혐오의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고, 표적이 된 사람은 영혼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너덜너덜해진다.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런 집중적 공격과 잔인한 취급을 당해도 되는 사람이란 없다.

 

하지만 지금 한국사회와 언론은 윤미향 의원을 그래도 되는 사람취급하고 있다. 예컨대 이번에도 윤미향 증오 선동에 앞장선 서민 교수 자신의 페북에는 2.5단계 격상 며칠 후에도 지인들과 어울려 장난스런 포즈의 노마스크 술자리 사진이 올랐다. 하지만 누구도 그걸 욕할 리가 없다. 오히려 국힘당 한 의원은 거기에 나도 가고 싶다고 댓글을 달았다.

 

룸살롱에 모여서 접대받고 어울리는 관행이 다시 드러난 검사들은 어떤가. 이것야말로 양주 성착취 파티라며 사회적 공분과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검찰은 100만 원이 안 넘었으니 문제가 아니라고 하고, 대부분의 언론은 별로 보도조차 않했다.

 

하지만 윤미향 의원의 경우는 다르다. 윤의원은 이미 지난 봄에 언론의 집중포화로 할머니들을 이용해 돈을 벌고 비리를 저지르고 의원 자리까지 차지한 마녀라는 주홍글씨가 이마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이 낙인은 이후 많은 부분 허위가 밝혀졌지만, 지금도 검찰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번 새겨진 낙인을 벗겨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마 윤미향 의원은 열심히 의정 활동을 하면서 진정성을 보이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 몇 달간 윤의원은 비정규직와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산업 안전, 여성인권, 미군기지, 환경보호 등의 문제에서 정말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언론은 그런 모습은 절대 보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수언론들에게는 윤의원이 국회로 들어가 그런 활동을 하는 것이 더 싫었을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조중동이 윤의원에 다시 주목한 경우는 2번이었다. 한번은 윤의원 사건을 맡은 판사가 갑자기 사망했을 때다. 그 판사의 돌연사와 윤의원과는 아무 책임도 관련도 없음에도 이상한 제목을 달아서 마녀사냥에 또 이용했다.

 

두 번째는 이낙연 비서였던 분이 사망했을 때다. 그러자 쉼터 소장님의 죽음과 연결시켜 불법과 비리의 연결고리여서 죽음을 택했다며 또 윤의원 마녀사냥에 이용했다. 그리고 윤미향 의원실의 공식페북에 올라오던 헌신적 활동 내용은 단 한번도 기사화 않던 언론들은 윤의원의 사적인 인스타그램을 계속 감시하다가 결국 꼬투리를 잡아냈다.

 

감정은 쉽게 전염된다. 마녀사냥은 그 표적이 된 사람을 혐오하는 감정을 사회에 퍼트린다. 사회와 기성언론이 계속 표적을 바꿔가면서 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증오하고 저주하면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동조하게 된다. 그러면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입을 떼기가 어려워진다.

 

그럴수록 증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그 사람을 비난하는 말들은 더 신뢰를 얻게 된다. 그 사람의 문제점과 실수, 잘못에 대한 정보만 더욱 더 많이 자주 노출되고, 그럴수록 낙인과 편견은 더욱 강화된다. 그러면 아제 그 사람이 비인간적 취급을 당해도 사람들은 그러려니하고 둔감해진다.

 

언론(그리고 검찰)의 표적이 된 사람과 그 가족과 지인들까지 그야말로 탈탈 털리는 과정을 몇 번 목격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스며들고, 표적인 된 사람과는 거리를 두게 된다. 민주당과 개혁언론들에서 또 윤미향과 선을 긋고 잘라내서 우리에게 불똥이 튀지 않게 하자는 정치공학적 주장들이 힘을 얻는 이유다.

 

윤미향 의원실 페북에 가서 막말, 혐오, 욕설의 댓글은 그만 좀 하자고 댓글을 달았더니, 나에게도 수십개의 악플이 달리고 개인 메시지로도 욕설이 왔다. ‘마녀의 곁에 있으면 같이 돌을 맞는 법이지만, 이런 것에 침묵하면서 누구에 대한 차별, 혐오, 낙인, 멸시도 반대한다고 듣기 좋은 그럴듯한 말만하고픈 생각은 조금도 없다.

 

조두순 악마화가 과연 대안일까

 

자주 챙겨보고 여러 유익한 정보와 도움을 얻었던 KBS <저널리즘토크쇼 제이>가 곧 중단된다고 한다. 기성언론의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KBS 자신의 문제도 거침없이 지적하던 언론비평 프로를 이제 더 볼 수 없다니 너무 아쉽다. 특히 시즌2에 와서는 임자운 변호사가 결합하면서 삼성, 노동자과 산업재해의 문제 등에 대한 내용이 더욱 많아지면서 더 많이 보게 됐던 프로인데 말이다.

 

이런 목소리가 불편한 세력들이 이 사회와 언론계, KBS에도 여전히 많고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의 반영으로 보인다. 언론 개혁은 역시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다. 특히 이 프로를 중단시키는 과정에서 경영진이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태도가 노골적이어서 더욱 입맛이 썼다.

 

이제 KBS에서 볼 게 없다는 말도 있지만, 과장된 이야기이고 <시사직격>같은 좋은 프로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매번 중요한 이슈를 깊이있게 다루던 <시사직격>에서 특히 얼마전 조두순 출소가 던진 숙제편이 인상적이었다. 조두순에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돌맞을 각오하며 조심스레 이야기 하자면 조두순에 대한 언론 보도가 매우 문제가 많다고 느껴왔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조두순 출소일을 디데이로 잡고서 하루하루 카운팅을 하며 가해자뿐 아니라 심지어 피해자의 개인 정보까지 공개하고 전시하면서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보도에 매달려 왔다. <저리톡>의 강유정 교수도 지난 방송에서 이것을 마치 클릭수를 높일 장이 열렸다며 신이 난태도라고 지적한 바 있다.(‘조두순 때문에 불안해서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며 클릭장사에 총집중하고 있는 조선일보에는 연예인 성착취로 유명한 조선 사장 아래서 일하는 직원들의 불안부터 돌아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조두순 악마화도 그 선정성의 정도가 심하다. 이런 것이 조두순이 출소하면 직접 찾아가서 그를 패 죽이겠다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호응을 얻게 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조두순에 대한 분노에 공감하고, 죄에 비해 처벌이 너무 약했다(여기에는 검찰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개인만 악마화하는 속에서 그런 괴물을 만들어내거나, 낯선 이보다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더 많이 일어나는 성범죄의 사회구조적 원인이나 해법, 피해자 치유와 보호나 지원에 대한 무대책, 성범죄자들을 수사하고 처벌한다는 엘리트 검사들이 룸살롱 성착취를 관행적 문화로 유지하는 현실 등은 시야에서 사라져 왔다.

 

'전두엽의 손상으로 자기통제가 안 되는 성범죄자'에 대한 이수정 교수의 설명을 듣다보면 뇌수술이라도 해야 하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고, 범죄자에 대한 더욱 강한 처벌만이 해법인가도 의문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기징역이나 (폐지돼야 할)사형이 가장 좋은 해법일 것이다.

 

이런 엄벌주의를 강조할 때 항상 비교하는 게 미국인데, 사실 미국은 엄벌주의가 성범죄를 줄였다고 보기 힘든 경우이고, 그보다 경찰력 강화가 여러 문제를 낳았다. 흑인남성 청년의 1/3이 감옥에 있고, 경찰의 흑인 살해에 대한 미국 보수언론의 흔한 방어논리도 그 흑인은 성범죄 전과자였다는 것이다.

 

신상고개, 전자발찌에 이어서 제기되는, 출소한 성범죄자를 최장 10년간 다시 격리수용한다는 (이수정 교수와 국힘당이 적극 주장하는) 보호수용법도 독재시절의 사회보호법(보안관찰법)과 마찬가지로 이중처벌과 인권침해의 여지와 복잡한 논란이 생기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성범죄 전과자에게 무슨 인권이냐고 물을 것이다. 피해자의 고통 앞에서 충분히 이해할만한 반응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제정을 요구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에도 차별금지 사유 중에 하나로 전과가 들어가 있다. ‘전과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해결하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문제 중 하나인 것이다.

 

물론 범죄를 통해서 타인에게 심각한 고통과 피해를 준 사람을 싫어하고 혐오까지 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자 감정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문제이다. 그것이 결국 우리 모두의 인권과 연결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 어려운 문제에서도 역시 침묵하지 않고 의견을 낸 것은 마사 누스바움이다.

 

강간범이 피해자의 인간 존엄을 침해하는데 찬성해서는 안 되듯 우리는 강간범이 다른 모든 사람과 평등하게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싶어 해서는 안 됩니다. 강간범의 존엄성을 떨어뜨린다고 해서 피해자의 존엄성이 높아지는 건 아니라는 점도 대단히 중요하고요. 인간존엄은 제로섬 게임의 대상이 아닙니다... 한 개인을 사냥개처럼 추적하면서 그 개인에게 편집적으로 분노해야만 존엄성이 지켜지는 건 아니라는 주장을 이번에도 이어나가야 겠습니다.”(<분노와 용서>)

 

누스바움의 책을 추천하면서 김영란 전 대법관도 성범죄자 신상공개에 반대한 헌법재판소 소수의견을 소개한 적이 있다


신상정보공개 제도는 현대판 주홍글씨에 비견할 정도로 수치형과 흡사한 특성을 지닌다. 공개적으로 범죄인의 체면을 깍아내려 그에 대한 대중의 혐오를 유발하고... 대중의 조롱거리나 경멸의 대상으로 만들어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의도가 짙다. 이는 단지 범죄인의 인격을 황폐화시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인간 존엄성에 대한 불감증을 만연시킬 수 있다.”

 

여기서 보면 강조점은 결국 그러한 대응이 가해자만이 아니라 피해자나 우리 모두의 존엄성까지도 해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다. 실제로 이번에 조두순을 악마화하며 불안과 공포를 부추기는 언론 보도들을 접하면서 걱정된 것도 그것이다.

 

교정이나 교화보다는 감금에만 그치는 감옥에서 출소한 성범죄자가 악마나 괴물로 찍혀서 가족, 친구, 이웃들로부터 철저히 절연되고, 취업이나 생계는 엄두도 못내면서 사회에 대한 분노를 키우며 사는 게 과연 우리에게 좋은 일일까? 결국 그 성범죄 전과자는 자포자기식으로 또 자기를 해하거나 타인을 해하지 않을까? 그러면 또 누가 고통과 피해를 겪게 될까?

 

그 점에서 성범죄자를 사회에서 영구히 격리추방하지 않는 한 결국 어떻게 교정, 치료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난번 <시사직격>이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언론과 일부 진지한 탐사프로마저 불안과 공포를 부추기는 것에 머무는 상황에서 더 그랬다. 특히 뒷부분에서 소개한 캐나다의 지역사회 프로그램은 큰 관심이 갔다.

 

캐나다판 조두순 사건과 그 범죄자의 출소 이후에 오히려 이웃들이 그를 찾아가 관심을 갖고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그것이 큰 효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후원과 책임의 공동체라는 곳에서 일반인 멘토들이 출소한 성범죄 전과자들과 정기적으로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6년 진행했는데 단 1건의 재범도 없었다고 한다.

 

자신과 진영이나 노선, 생각만 달라도 귀를 막고 벽을 세우고 미워하는 것, 누군가를 정해서 증오하고 저주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처럼 굳어지고 있는 사회에서, 혐오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범죄 전과자들을 만나서 변화시키고, 더 많은 피해와 고통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와 공공의 안전을 위해 노력한 분들의 용기가 참 인상적이었고, 이런 시도를 소개한 <시사직격>이 고마웠다.

 

(기사 등록 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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