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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정의연 마녀사냥의 함의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6. 3.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등 많은 책을 썼다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현금 '정의연 사태'의 본질적 함의를 보자면 '피해자''지원자' 사이의 갈등 그 자체보다는 보수언론들이 정의연을 겨냥한 '집중 포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더 일차적일 듯합니다. '피해자''지원자' 사이의 갈등 그 자체는 사실 생각보다 아주 흔한 일입니다. 굳이 역사적 '기원'을 따지자면, 19세기 초반 미국에서의 (백인 중산층 이상에 속하는) 흑인 해방론자 (abolitionists)와 흑인 당사자 사이의 갈등에 찬 관계부터 상기해보면 됩니다.

 

가까이는 주로 개신교 계통의 외국인 노동자 지원 단체들과 외국인 노동자 본인들 사이의 매우 복잡다기한, 갈등과 협력이 교차되고 얼키고 설킨 관계를 생각해봐도 되고요. '지원자'들은 대개 중산층, 고학력자층에 속하는가 하면 그들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피해자들 중에서는 '중산층'은 거의 없습니다. '지원자'들은 대개 특정의 이념적 (내지 종교적) 배경이 있고 국가와의 이런저런 관계를 구축하는 경향은 있지만,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그 피해에 대한 보상 내지 해결부터 당연 더 급합니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생기는데, 정의연 활동가들이 이 갈등들을 미리미리 민주적, 평등한 소통을 통해서 예방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아마도 스스로 비판적으로 성찰해볼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드린 대로 이런 갈등은 꽤나 일반적일 뿐입니다. 윤미향 당선인에 대해 제기된 의혹들은 현재 수사 중의 '의혹'일 뿐이지, '범죄 사실'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어떤 '의혹'들이 제기돼도, 유죄 판결을 받지 않은 사람을 범인 취급하는 것은 무죄추정 원칙의 위반입니다. 그런데 지금 언론들이 이처럼 정의연과 윤미향을 범인 취급하고 사실상 마녀사냥하는 진정한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이 이유를 캐보자면 지난 527일 문정인 특보가 미국에서 한 이 발언을 주목해보셔야 할 것입니다. 현재 격화 일로를 치닫고 있는 중-미 관계와 한국의 입장에 대해 문정인 특보는: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고 중국과는 전략적 파트너, 확실히 동맹은 전략적 파트너보다 중요하고 그러므로 우리에게 최우선은 미국"이라고 밝혔습니다. 중국에 지금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지만", -미 관계가 또 악화되면 중국이 "한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수도 있고 북한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은 문 특보의 우려이었습니다.

 

이 발언은 왜 중요합니까? 문정인 특보는 현재 집권 중인 한국 자유주의 진영의 외교적 브레인이며, 사실 나름대로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에 서는 학자이자 관료입니다. 대북 평화 접근, 한국의 자주성 강화를 주장해온 사람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아마도 한국의 자유주의 지식인 중에서는 가장 균형 감각이 발달한 문 특보에게도 한 가지는 절대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그들의 세계의 중심에 '미국'이 있는 것이고, 최악으로 갈 경우 그들은 - 미국이 요구할 경우에는 - 당연히 미국의 편에 설 준비는 돼 있습니다.

 

자유주의 진영도 그렇지만 극우보수 진영은 더하면 백배 더 합니다. 결국 삼성이나 LG, 현대 등등에게는 중국은 중요한 시장이고 한때에 매우 매력적인 투자 대상국이었지만, 당이 재벌들 위에 서서 재벌들을 통제하는 중국식 시스템보다는, 재벌들의 재산권과 정치 개인권이 절대 보장돼 있는 미국식 시스템은 그들에게는 훨씬 더 좋은 겁니다. 재벌의 의향이 이렇다면 한국의 여야 정치인들도 별 수 없지요. 군사 등의 부문에 있어서의 역사적 대미 종속도 있고요.

 

그런데 동북아에 있어서의 미국의 핵심적인 '동맹국'은 과연 어디입니까? 맞습니다. 바로 일본입니다. 한국 지배층의 식민지 시대로부터의 계보도 있고 해서, 특히 극우보수의 진영은 대개는 친미적인 만큼 노골적으로 자민당의 극우적 계파들과의 친화성을 전시하다싶이 마구 보여줍니다. 한국의 극우 정객들은 아베의 신민족주의를 노골적으로 좋아하고, 이영훈 따위의 위안부 강제성의 부정론, 위안소 '공창'론은 실은 하타 이쿠히코 (秦 郁彦) 등 일본 극우 사학자의 아류에 속합니다. 이 측면에 있어서는,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은 극우보수와는 좀 다릅니다.

 

뉴욕타임스지 등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이 아베에 비판적인 만큼 한국 자유주의자들도 비판적 스탠스를 갖고 있으며, 아베보다 더 온건한 자민당의 계파나 국민민주당 등 일본의 중간파, 중도파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또 일부 한국 자유주의자들은 1980년대의 반독재, 반제 운동에서의 참여를 그 주된 정치자본으로 삼고 있는 만큼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한국인의 구 식민모국에 대한 반감에의 호소하는 듯한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 자유주의자들의 '항일'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습니다.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이며 미국, 한국처럼 재벌의 재산을 절대 보장해주는 체제인 이상 아무리 '거리'를 둔다 해도 아주 멀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제스쳐'를 취하더라도 문재인 정권은 지소미아와 같은 주요 대일 정보 공유 협정에는 손을 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현재의 대미관계 차원에서는 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죠.

 

이게 다 "윤미향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아주 직접적인 관계가 있지요. 윤미향 당선인을 미치듯이 공격하는 극우보수 매체들은 기본적으로는 '연일론', 즉 한--일 삼각 동맹 강화론자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윤미향 당선인의 '조직의 사조직화' 등의 의혹은 문제 됐겠습니까? 조선일보의 조직은 방씨 족벌에 의해 1930년대 중반부터 이미 사조직화돼 왔으며, 동아일보의 조직은 애당초부터 김성수-김연수와 그 후손 집단의 사조직입니다.

 

사조직화나 비합리적 운영 등으로 치면 정의연보다 백배, 천배 더 할 것이죠.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도 아니고, 피해자들의 지원자에 대한 불만도 아닙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위안부' 인권 회복 운동 그 자체는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 즉 중국을 암묵적으로 겨냥하는 자민당과의 파트너십 강화의 '장애물'에 불과합니다. 지금 피해자와 지원자 사이의 노골화된 갈등 국면을 이용해서, 저들이 그 '장애물'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주의 진영은? 그들은 공격에 대놓고 참여하지는 아니더라도 공격을 말리려 하지도 않습니다. 관망을 하고 있는 셈인데, 정의연 운동의 '위기'를 은근슬쩍 꼭 슬퍼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아베를 싫어하더라도 아베가 일본의 수상인 만큼 아베와의 "소통"을 해야 할 것이며 "관계 관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고, 그 입장에서는 일본의 "과거"를 캐내는 운동은 '불편'하기도 합니다.

 

아주 단순화시켜서 이야기하자면, 정의연에 대한 마녀 사냥의 근원적인 이유는 정의연의 운동이 한--일 삼각 동맹의 "발전"에 걸림돌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주의적, 평화주의적 진보의 입장에서는 이 운동의 내재적 문제 (피해자와 지원자의 소통 부족 등등)를 지적하면서도, 모든 '의혹'에 대한 공정한 조사를 기대하면서도 일차적으로는 마녀 사냥을 당하는 운동가들을 응원해야 합니다.

 

--일 삼각 동맹은 미래 전쟁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한편, 정의연의 운동은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의 전시 성폭력을 문제 삼은, 기본적으로 반전평화를 위한 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의 미숙함이 있었다 해도 그 기여부터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게 우선이며, 그 공격자들의 저의부터 정확히 관찰하는 것은 우선입니다.

 


(기사 등록 202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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