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울산에서 가능하다면 전국에서도 가능하다
● '진보 선거연합'은 왜 선택지에서 제외돼 왔는가
비례선거연합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돼 왔다. 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고 부담스러운 주제이지만, 이것은 단순히 당장의 총선이라는 시간 속에서 볼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2016년 촛불 이후 진보좌파의 과제가 무엇이었나는 더 긴 틀 속에서 봐야 한다.
진보좌파는 촛불이 만들어준 공간 속에서 적폐를 철저히 청산하고,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는 민주개혁을 뒷받침하면서, 더 나아가 급진적 사회경제개혁을 아젠다로 만들어내야 했다. 그리고 이것을 수행할 역사적 블록을 구축해야 했다.
왜냐하면 촛불 이후 집권한 민주당이 그것을 수행할 의지나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의가 아니라 역사적, 구조적 한계의 문제다. 진보좌파와 노동운동은 이런 과제를 수행하며 촛불에 함께했던 사람들을 견인해 자신의 기반을 확장해야 했다. 튼튼한 연대를 통해서 힘을 키우며 민주당을 넘어설 정치적 대안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은 단지 민주당의 한계만 열심히 폭로하고, 민주당 지지에 머무는 사람들을 조롱하며 내친다고 완수될 과제는 아니었다. 민주당이 촛불의 요구를 수행하는 부분은 지지하고, 촛불의 가능성을 억누르는 부분은 비판하면서, 진보좌파를 설득력있는 대안적 선택지로 세워내는 과정이어야 했다.
적폐청산과 민주개혁마저 민주당보다 진보좌파가 더 철저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면서, 더 나아가 급진적 사회경제개혁의 필요성을 납득시키는 과정이어야 했다. 진보좌파가 지난 3년 동안 이 과제에 성공했다면, 이번 총선은 훨씬 더 유리한 조건 속에서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는 그것을 잘 해내지 못했다. 애당초 이 상황에서 선거제도만 일부 바뀌었다고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는 없었다. 더구나 선거제도마저 보수우파의 결사 반대, 민주당의 타협, 진보정당들의 계산착오, 현직들의 밥그릇 챙기기 속에 여러 구멍이 생겼다.
여기서 그나마 나은 선거 결과를 얻으려면, 진보정당들이 각자의 후보를 내면서도 비례투표에서 힘을 모으는 ‘진보 선거연합’을 하는 게 필요했다. 그것이 우파도 민주당도 아닌 제3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지들을 최대한 하나로 모으며, 사표심리도 피해가고, 군소 진보정당들이 3% 벽도 넘어서게 해줄 방안이었다.
이것은 민주노총과 일부 좌파가 오래전부터 거듭 진보정당들에게 주문한 방안이었지만, 진보정당들은 별로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종북’몰이가 남긴 갈등과 불신 때문에 원내에서 정의당과 민중당의 연대도 어려운 게 쓰디쓴 현실이었다. 연대와 협력보다 경쟁과 배제의 논리에서 진보정당들도 자유롭지 못했다.(‘종북’배제는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바뀐 선거제도의 구멍을 노린 보수우파 위성정당이 등장했다. 바뀐 제도로 진보정당들이 얻을 수 있게된 의석을 훔쳐간다는 점에서 이 야비한 꼼수의 최대 피해자는 민주당이 아닌 진보정당들이다. 결국 진보정당들은 선택지가 매우 줄어든 기막힌 상황 속에서 선거 전술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그러면 우리에겐 어떤 선택이 가능한가? 먼저 ‘전술’을 ‘원칙’과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원칙’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면 ‘전술’은 필요 없을 것이다. 원칙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를뿐더러, 그 ‘원칙’마저 고정불변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이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변혁으로 가는 과정에서 작은 일부를 차지하는 선거와 투표일뿐이다.
언제 어디서든 무조건 가장 좌파적 독자 후보를 내는 것이 항상 옳은 전술(심지어 ‘원칙’)일 수는 없다. 그러면 우리는 버니 샌더스나 제레미 코빈의 시도도 지지해서는 안 됐다. 미국 민주당이나 영국 노동당의 한계를 논하자면 한국 민주당만큼이나 끝이 없고, 그것만 보면 샌더스와 코빈도 ‘원칙의 배신자’일 뿐이다.
특정 국면(예컨대 박근혜 탄핵)과 사안에서는 민주당이나 민주당 일부(예컨대 금태섭)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게 전술이다. 전술은 구체적 상황 속에서 무엇이 우리 편의 사기와 단결력을 가장 높이고, 더 많은 사람을 우리 주변으로 끌어들이고, 장단기적으로는 손해보다 이익을 가져오며 사회변혁에 기여할지를 두고 판단해야 한다.
충분한 고민과 토론 속에서 가장 적절한 전술이 나올 것이고, 서로를 신뢰하면서 자신감을 갖고 추진하는 공동의 전술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그 점에서 지금은 매우 걱정되는 상황이다. 시간에 쫓겨서 충분한 고민과 토론이 없이, 더구나 신뢰와 협력이 아니라 불신, 갈등, 분열 속에서 갈라져 서로 다른 전술을 택하게 됐기 때문이다.
어떤 길이든 결과는 불확실해 보이고 서로 간에 상처와 앙금을 낳을 것 같았다. 단기적 실리가 있더라도 장기적 손해를 가져올 듯하다. 이런 상황에 책임이 있는 (특히 더 크고 힘있는) 진보정당의 지도자들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왜 ‘진보 선거연합’을 할 수는 없는 것인지 묻고 싶다. ‘진보정당들이 뿔뿔이 흩어져 3%를 넘느냐 못넘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리는 길’과 ‘진보정당의 일부가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해서 원내로 진출하는 길’이라는 양자택일 밖에 없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것은 형식은 좀 달랐지만 지난 10년 동안 이미 많이 가본 길이다. 진보정당들이 갈라져서 각자 그런 길들을 가고, 매번 선거 끝나고 나면 어느 쪽은 기뻐하고 어느 쪽은 좌절하면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는 그런 결과를 보면서 씁쓸한 심정을 느껴본 게 이미 여러 번이다.(지난해 창원 재보선에서도 진보가 갈라져서 일부가 민주당과 연합해 당선했다.)
민주당하고 보다는, 서로 간의 정치적 공통점이 훨씬 더 많은 진보정당들이 (정의녹색민중미래의)선거연합을 구성해서 보수우파에 맞서면서 민주당과도 독립적인 좌파적 대안을 함께 제시하는 길, 그러면서도 서로 다른 강조점을 드러내고 독자적으로 선전하는 길이 가능했다.
이를 통해 비례득표에서 더 큰 시너지를 내고, 상대적으로 큰 진보정당이 작은 진보정당을 도와서 3%의 벽도 넘어서게 해줄 수 있었다. 의회 안에서도 반우파 비민주 진보 독자 블록을 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전술은 진지하게 고민되지 않았고, 그보다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나머지 방안들만이 선택지로 남았다.
결국, 지금 일부 진보정당들은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거부하고 진보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선거 전술을 택해 의회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일부 진보정당들은 민주당과 조건부 선거연합을 통해서라도 3%의 벽을 넘어서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려다가 좌절하고 있다.
어느 길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두 가지 모두 일리가 있었다. 앞의 전술은 분명 민주당과 구분되는 진보의 독자적 가치를 알려내는 데 더 효과적이고, 좌파적 주장과 정책의 후퇴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선, 양당체제를 넘어선 제3의 좌파적 대안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뒤의 전술도 이해가 갔다. 급박한 상황과 열악한 조건에서 좌파적 가치를 제도권에 진출시키려는 불가피한 전술로 보였다. 다급한 민주당의 처지를 이용하고 압박해 급진적 생태주의자, ‘종북’으로 몰리던 반제국주의자,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의회에 진출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됐다.
물론 어떤 전술이든 문제점과 모순, 약점도 크게 보였다. 하지만 전술에서는 더더구나 정답이란 있을 수 없고, 지금은 서로 상대방 전술의 문제점과 약점을 파헤치는데 집중할 순간은 아니었다. 다른 선택에 화를 내고 조롱하며 결과를 저주하진 말아야 했다. 그것은 진보좌파 내부에 상처와 균열의 씨만 뿌리고 장기적으로 서로 신뢰하고 협력할 기회를 더욱 가로막을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선거 이후에도 한국사회의 급진적 전환을 위해 함께 싸워야 할 동료들이니까.
어떤 전술과 방식으로 21대 국회에 진출하든지, 그 안에서 또 진보정당들이 갈라져서 민주당과는 협력해도 서로 간에는 협력하지 않는 모습은 그만보고 싶다. 서로 협력하면서 진보의 가치를 주장하고 양당체제에 맞서는 대안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지금은 서로의 선택을 가능한 이해하고 응원할 때이다. 위험을 경고하면서도, 나중에 그 결과를 가지고 함께 평가하면서 다시 연대할 기회를 만들어갔으면 한다.
● 기성언론과 왜곡된 ‘여론’의 흔들기에 계속 굴복할 것인가
최근에 정의당 비례후보인 신장식, 장혜영, 류호정에 대한 기성언론과 왜곡된 여론의 흔들기가 계속됐다. 계속 반복되는 패턴인 것 같다. 누구든 살아가면서 인간적 실수와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을 끄집어내서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뒤섞어서 여론재판하는 기성언론, 그런 공격에 갑자기 살아온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사람들, 그런 ‘여론 눈높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람들, 그것을 경쟁, 적대관계였던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 이용하려는 사람들... 나는 정의당원도 아니고 이번 총선에서 어느 진보정당을 지지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이런 식의 공격에는 분명히 반대하고 세 분을 지지한다.
물론 신장식, 류호정과 장혜영에 대한 공격은 결이 좀 달랐다. 장혜영 후보에 대한 공격은 전형적인 여성혐오이고 ‘메갈리아 마녀사냥’이다. 지금 ‘메갈리아’는 마치 ‘종북’처럼 주홍글씨가 돼서 성차별, 성폭력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잘못된 프레임으로 낙인찍어서 배척하는 공격에 이용되고 있다. 그런 식이면 나도 ‘메갈리아’라고 자처하겠다. 반면 신장식, 류호정 후보에게는 과거의 잘못을 끄집어내 비난하고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세 경우 모두 마녀사냥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본다.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매도하면서 본인들의 구체적 해명은 들어보려고 하지 않는 점도 비슷하다. 보통 기성언론과 왜곡된 여론은 일방적으로 공격만 하지 당사자의 해명은 들어주지도 실어주지도 기회도 주지 않는다. 장점과 기여한 점들은 사라지고 단점과 결함만 부각된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도 보면, 잘못된 구조와 폐습을 개혁하려던 신임 야구단장을 제거하려는 세력은 언론을 통해서 신임단장의 도덕적 결함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가 병역회피한 선수를 스카우트하고, 자기 동생을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것이다. 그것 자체는 사실이기도 하고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과거의 잘못이 있는 사람은 앞으로 영원히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 ‘도덕적 잘못’을 바로잡는 게 과연 그런 공격의 진정한 목적인지 하는 것이다.
이런 공격이 계속 먹혀들면 앞으로도 기성언론과 기득권 세력이 추동하는 왜곡된 ‘여론’은 진보적 정치인들의 모든 걸 탈탈 뒤져서 흠집과 결함을 찾아내고 그걸로 공격해서 낙마시키려고 할 것이다. 그동안도 그런 일은 이미 반복돼 왔고 비극도 있었다.(나는 조국 전 장관의 경우도 그런 요소가 있었다고 본다.) 인생을 모두 뒤져서 잘못된 판단이나 행동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사람은 있을 수가 없고, 중요한 것은 그런 잘못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즉 반성하고 반복하지 않으려고 하는가이다. 이처럼 어떤 결함과 잘못도 없는 사람만이 정치인이나 활동가로서 자격이 있다는 ‘도덕정치’는 결국 가장 비도덕적인 세력들에게 이용되고 그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 것 같다.
(기사 등록 2020.3.20) *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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