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코로나19 - 중국인 혐오에서 신천지 혐오로
코로나19가 지역사회로 급속히 확산되고 불안감이 커지면서, 그 과정에서 바이러스 전파 구실을 한 개인들과 특정 집단에 대한 비난도 더 커지는 것 같다. 초기에는 혐중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주장이 많았는데, 지금은 ‘신천지’에 대한 비난이 특히 눈에 많이 띈다. 신천지의 부정적 측면과 사례들만을 일면적으로 부각하고 과장해서 악마화시키는 주장들도 많다.
물론 신천지 교회의 지도부는 폐쇄적이고 부주의한 대응으로 문제를 악화시키는 데 책임이 있어 보인다. 신천지의 음모적 선교 방식과 공격적 확장 시도 등도 좋게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거기도 다른 집단들처럼 분명 다양한 문제점들이 있고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통제가 안 되는 사람들이 속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그 집단 전체가 용납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일까. 만약 이번 지역사회 감염이 주류 집단이나 종교에서 출발됐어도 이런 식의 낙인과 매도가 벌어졌을까? 만약 무슬림이 ‘슈퍼전파자’였다면 끔찍한 혐오 선동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따라서 신천지라는 교파와 교인들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고 배척하는 분위기는 옳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더 숨어들면서 솔직하게 상황을 드러내지 못하게 내몰 것이다.
더구나 지금 코로나19가 지역사회로 번지게 된 책임이 신천지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책임을 피해를 입은 개개인에게 전가하고, 심지어 표적삼아 공격까지 하면서 더욱 입을 열기 어렵게 만든 최악의 사례는 이번에 중국 정부가 보여줬다. 중국 정부의 구호는 ‘공산당의 말만 잘 들으면 문제없다’. ‘열이 나는데도 말하지 않는 자는 계급의 적’이라는 것이었다.
신천지를 낙인찍으며 ‘이단’으로 모는 분위기도 과해 보인다. 이미 기독교계에서는 교회 입구에 ‘신천지교인 출입금지’ 포스터, 스티커까지 붙이고 이단추방 캠페인을 해온지가 꽤 됐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서든 이런 식으로 ‘정통’과 ‘이단’, ‘우리’와 ‘저들’을 나누고, ‘이단과 타자’를 감별해서 배척, 추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사회가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차 있고, 그것을 풀어주지 못하는 기성사회와 종교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많을 때일수록 ‘이단’이 등장하기 마련일 것이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도 한국전쟁의 참혹한 후유증, 기아와 질병, 가난과 사회혼란이 극심했던 1950~60년대에 특히 이단종파들이 하층민들을 기반으로 많이 나타났다고 한다.
더구나 지금 한국 종교계에서 더 해악적인 것은 신천지보다 전광훈 목사와 한기총으로 보인다. 정치의 종교화, 신앙화를 추구하는 전광훈은 ‘공산주의, 동성애, 이슬람을 퍼트리는 북한 간첩총책 문재인을 끌어내리고 죽이자’는 온갖 막말, 욕설, 저주, 혐오선동을 지속하고 있다. ‘주사파 50만명이 전향하지 않으면 죽여야 한다’는 섬뜩한 주장도 했다.
광화문에서 그가 이런 연설을 할 때는 꼭 옆에서 영어통역을 하던데, 참 기가막힌 광경이다.(수어통역은 안하면서...) 황교안과 긴밀하던 그는 이번 우파통합에서는 빠졌지만 여전한 정치적 위협이다. 지난해 기독교 일부 교단들에서 성소수자 배제적인 여러 입장과 조치들이 발표된 것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물론 거짓선지자 전광훈이 주도하는 복음주의 부흥회 속에서 통성기도를 올리는 사람들과 목소리도 한국사회 모순의 반영이며 그 산물일 것이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고, 영혼없는 세계의 영혼”이며 “행복의 조건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제기는 환상이 필요한 조건을 버리라는 말”(마르크스)이라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종교에 대한 비판은 인간이 억눌리고 버림받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변화로 이어져야만 한다.
코로나19로 좁혀봐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달되고 번져나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특정하고 구체적인 사회적 조건과 환경 속에서다. 중국, 한국, 일본에서 같은 바이러스가 왜 다른 결과를 낳고 있는지도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초동대응을 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분명 공정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정말 고맙게도 질병관리본부와 수많은 방역, 의료인력들이 그 과정에서 엄청난 헌신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지역사회 감염 확산 속에서 감염병 확산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와 체제의 문제점은 다시 드러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중국인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도 아니고, 신천지 교인들이 모두 잘못하고 있어서도 아니다.
핵심은 한국사회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었느냐는 것이다. 음압시설과 격리병상과 역학조사관과 방역인력, 의료인력과 보건의료 예산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났고, 지역으로 갈수록 심했다. 1339콜센터도 민간위탁으로 운영 중이었고 일하는 사람들도 직접고용 정규직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 강제입원 돼 있던 정신질환자 분들이 첫 희생자들이 됐다. 즉, 공동체의 안전과 보건보다 다른 것들이 우선이었고 공공병원과 공공의료는 여전히 너무 부족하고, 반면 너무 많은 것이 민간병원과 시장에 맡겨져 있었던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는 의료체계에서도 소외와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에 세계 금융위기가 닥치고 붕괴가 시작되자 ‘자유 시장에 맡기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던 신자유주의자들은 모두 입을 닫았고,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은 파산하는 거대은행과 기업들을 국유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우리 사회는 많은 것을 돌아보고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 코로나19와 야생동물을 이용한 돈벌이 구조
작년 8월에 나온 동영상인데, 여기서 최태규 수의사가 지금의 신종코로나와 같은 상황을 '예언'했다고 하면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꼭 봐야 할 동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5ZUCw5FyxU&feature=youtu.be&fbclid=IwAR2ZfIJvoRyAY_U3NXS8AzZgzEW642rI_zpMAwBCLoqj4er360RgsO642rc
이걸보면 중국에 대해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다.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도심의 ‘실내체험동물원’이나 ‘야생동물카페’에 각종 진기한 동물들을 가둬놓고, 아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직접 만지게 하면서 큰돈을 버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동물들을 ‘얌전한 구경거리’로 만들기 위해 날개 깃을 자르고 인대를 자르는 잔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좁고 컴컴하고 불결한 공간에서 하루 종일 사람들의 눈길과 소음을 들어야 하는 동물들을 그 스트레스로 정형행동과 자해행동을 한다고 한다. 원치 않게 내 생활과 일거수일투족이 주목의 대상이 되면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폭력이 되는지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감정을 느끼는 생명체이기에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최태규 수의사는 이런 공간의 직접 접촉 과정에서 ‘대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실내체험동물원’ 중에는 과일박쥐를 갖다놓은 곳도 있다고 했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 <컨테이젼>을 보면 박쥐가 돼지에게 바이러스를 옮기고, 그 바이러스는 돼지를 사육, 요리하고 먹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옮아간다.
결혼이주여성들과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들어보니 중국 결혼이주여성이 중국 소식을 챙겨보고 하루 종일 울면서 ‘중국의 친구들이 너무 불쌍하다. 한국의 분위기가 너무 심하다. 중국도 이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 여성의 아이는 학교에 가서 하루에도 몇 번씩 ‘방학 때 중국 다녀왔냐? 부모님은 어디있냐?’는 질문과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아내야 한다고 한다.
지금 정말 금지돼야 하는 게 과연 사람들의 교류인가, 아니면 야생동물까지 이용하는 이런 잘못된 돈벌이 구조인가. 우리가 정말 막아야 할 것은 중국인들인가, 아니면 감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잘못된 사회인가. 우리가 정말 불안과 공포를 느껴야 할 것은 중국동포인가, 아니면 혐오와 편견을 통제하지 못하고 더욱 부추기는 사람들인가.
● 선출되지 않은 권력과 억압적 국가기구
얼마 전 폭로된 ‘좌파 인물들의 이중적 행태 및 고려사항’이라는 국정원 비밀문건은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대부분 언론들은 이 문제를 잘 다루지 않고 있다. 윤석열 부인의 주가조작 관여 의혹에 대한 뉴스타파 특종을 외면하듯이. 이명박근혜 시대에 작성된 이 문건의 내용을 보면 이렇다.
좌파 인사들이 “겉으로는 도덕성 청렴성을 내세우면서도... 표리부동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바”, 이것을 “좌파입지 약화 논리로 적극 활용”하고 “이중적 실상을 파헤쳐 비난 여론을 조성하겠다.” 이를 위해 “검찰, 경찰, 감사원, 국세청 등과 긴밀협조하 좌파의 부정부패 등 취약점을 철저히 조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언론에 적극 전파하는 한편, 폭로기사 및 사설, 칼럼 게재를 측면 지원”한다고 돼 있다.(이 과정에 협조했던 언론들이 이 문제에 대한 보도에 소극적인 것은 자연스럽기도 하다.)
나아가 “웹사이트를 정비하고 블로거를 집중육성”한다는 내용도 있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혐오, 거부여론 확산에 주력”하고 “조직내 분열을 꾀하면서... 자괴감, 분노 확산을 통해 투쟁의지 무력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관련해서 “종북좌파 연계 불순활동 혐의자 주요목록”이라는 명단이 있다는데 명진 스님이 이런 비밀공작의 희생양으로 최근 밝혀진 것을 보면, 웬만한 좌파 진보인사들은 대부분 그 타겟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정원은 관련 내용의 공개나 취재를 거부하고 있다.
이것은 이명박근혜 때의 일이었을 뿐이고, 지금 국정원과 검찰, 경찰 등은 양심을 갖고 정의를 추구하고 있을 거라고 본다면 그처럼 순진한 생각도 없을 것이다. 좌파적 분석은 항상 자본주의에서 진짜 권력은 바로 이런 억압적 국가기구들에게 있고, 개혁적이거나 심지어 좌파적 정부가 들어서도 바꾸기 어려우며, 따라서 사회변혁의 핵심 과제는 바로 이런 권력기관들의 재구성과 해체에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지난 ‘촛불혁명’은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 그것이 냉정한 역사적 한계와 현실이다. 아래로부터 거대한 힘은 제도권으로 수렴돼 갔고 주도권은 의회, 헌재, 검찰에게 넘어갔다. 촛불혁명을 촉발한 이명박근혜 시대의 누적된 역사적 범죄들 - 용산참사, 국정원 선거 개입, 세월호 참사, 종북몰이와 진보당 해산, 노동 개악, 백남기 살인진압, 개성공단 폐쇄, 국정교과서 추진, 위안부 합의, 사드 배치... 등은 뒤로 가려지고 몇가지 개인적 비리와 법률적 쟁점들이 본질인 것처럼 프레임이 변해갔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부정을 감시하고 불의를 단죄하는 정의의 사도라는 가면을 쓸 수 있었고 반면에 사법농단, 쿠데타 음모, 검찰의 온갖 구조적 적폐들은 덮어지거나 면죄부를 받았다. 그래서 바로 몇 년 전에 증거조작, 여론재판을 통해 내란음모 조작과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등을 저질렀던 바로 그 검찰이 지금 ‘사실에 기초해서 공정하게 수사하며 살아있는 권력의 부패를 감시하는 정의로운 집단’이라는 평가를 일부 진보 지식인들과 좌파에게서까지 받고있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근혜 시대 때 검찰 등 권력기관이 그런 식으로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을 벌일 때 침묵하거나 일부 동조하기도 했던 기성언론들이 지금도 그러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이런 것을 보면 “속은 것인가, 공범인가... 고개가 갸웃거려질 때가 많았습니다”라는 임은정 검사의 지적에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럼 억압적 권력기관의 개혁을 말하면서 윤석열같은 검찰주의자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하고, 윤석열 사단을 청와대에까지 받아들여 안팎 협공으로 뒤통수를 맞은 민주당과 자유주의자들의 헛발질과 무능은 여전하다. 언론들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중앙일보 기자를 또 청와대 대변인을 받아들인 그 나이브함과 타협에 대한 집착은 애처로울 정도다. 신문 칼럼에 빈정 상해서 그걸 고발하는 속 좁음과 어리석음은 또 뭔가.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이번에 ‘민주당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나도 고발하라’고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좀 당혹스러웠다. 지금 이 정부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있다고? 그런 말을 하는 언론이나 사람들은 토요일에 광화문에 나가보지 않은 것 같다. 거기 가보면 전광훈 등은 막말과 욕설과 혐오표현의 완벽한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이 정부의 진짜 문제는 혐오와 차별의 ‘자유’를 막아설 의지가 없다는 데 있다.
바로 얼마전 윤석열이 한겨레를 고발했을 때, 나경원이 MBC와 뉴스타파를 고발했을 때는 ‘나도 고발하라’는 해시태그, 캠페인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는데... 이번에 ‘나도 고발하라’는 용기를 보인 분들이 만약 이명박근혜 시대 종북몰이 마녀사냥 속에 그야말로 표현의 자유를 짓밟힌 사람들이 줄줄이 끌려가던 공포 분위기 속에 ‘나도 잡아가라’고 했다면 그 용기를 정말 인정해주고 싶었을 것 같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그 시절에 침묵하거나 끌려가던 사람들 뒤에서 돌을 던지던 것이 자꾸 떠오르니...
●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진중권 씨의 태도
사람은 누구나 항상 옳을 수 없고, 모든 것을 알거나 정답을 독점하고 있지 않기에 토론이 필요하고, 현실에서 검증 받아야하며, 계속 토론과 현실에서 배우며 오류를 수정하고 생각을 고쳐나가야 한다.
그래서 토론에서는 내용만이 아니라, 이견을 존중하고 자신이 틀렸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열린 태도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요즘 진중권 씨의 토론은 그 내용보다도 태도에서 매우 문제가 많다고 보인다.
물론 내용에서도 문제가 있다. 민주당도 특권층이나 기득권 구조에 일부이라는 지적들은 분명 일리가 있고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중권 씨의 주장에서는 그것이 작동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분석은 별로 없고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과 도덕적 비난만 넘쳐난다. 그런 식이면 누군가 자가용 비행기를 소유하고 취미로 삼았던 진중권 씨에 대해 문제삼으며 토론의 논점을 비틀어도 뭐라고 할 말이 없게 될 수 있다.
개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항상 그것이 어떤 구체적 맥락과 방향에서 제기되는지 봐야 한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왕세손비인 메건 마클의 ‘사치와 허영’에 대한 언론들의 집중적 공격이 벌어져왔다. 막대한 부와 특권을 가진 왕실 구성원에 대한 공격이니까 박수치고 구경하면 된다? 글쎄. 그 공격은 재혼 여성, 비영국인, 흑인에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마클이 감히 영국 왕실 구성원이 된 것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증오심과 백인우월주의가 깔려 있었다.
또 한국사회에서 검찰이 비리척결과 사회정의의 수호자라는 식의 진중권 씨의 단순한 관점은 너무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것은 검찰이라는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성격과 한국사회에서 검찰이 가진 막강한 권력구조와 그 역사를 파헤치면 금세 무너질 주장이다.
특히 검찰이 삼성과 재벌의 부패를 처단하려 한다는 시각과 믿음은 너무나 나이브하다. 검찰은 역사적으로 ‘삼성공화국’ 건설의 일등공신이었다. ‘검찰은 파는 수사로 명성을 얻고, 덮는 수사로 부를 얻는다’는 제보자X의 격언처럼, 삼성이 일시적으로 ‘파는 수사’의 대상이 된 것은 촛불민중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지, 검찰의 정의감 때문이 아니었다.
검찰 기득권의 핵심이었고, 기업들과 결탁한 부패와 비리의 주범이었고, ‘이명박근혜’ 때 대개 승승장구했었고, 검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었었고, 성폭행과 비리 검사들을 덮어주던 장본인들을 ‘적폐청산의 영웅이자 삼성의 부패를 파헤치다가 날개를 잃은 이카루스’ 취급하는 순진한 칭송은 정말 그만 듣고 싶다.
구체적으로 울산하명수사 논란에서도 <PD수첩>이나 <뉴스타파>의 치밀한 탐사 취재보다 검찰의 억지 주장을 더 신뢰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PD수첩>과 <뉴스타파>가 ‘민주당에 불리한 내용은 덮어온 어용언론’이라고? 두 언론의 보도와 궤적을 지켜봐 왔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주장이다. ‘검찰의 주장과 수사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임은정 검사가 지적하듯이 지금으로선 섣부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내용들은 복잡한 현실의 다양한 측면이 있고, 또 계속 변화해 가니까 얼마든지 토론해 나가면서 서로 받아들일 면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것을 가능하지 못하게 만드는 잘못된 토론 태도에 있다.
자신과 생각과 방향이 다르다고 해서 정연주 전KBS 사장, 이탄희 전 판사, 임은정 검사 등을 “애완견”, “양아치”, “잡범”, “파렴치한”이라며 모독하고 비웃는 것에는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반자본주의의 지향을 가지고 있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중도 자유주의적 한계로 진보의 대안이 아니라고 보는 나도, 이 사람들과 여러가지 입장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의 삶이나 역경을 돌아볼 때, 존중할 면이 있고, 그런 식으로 모욕하고 비웃어도 되는 사람들이 아닌 것은 알겠다.
진중권 씨가 이광철 비서관에게 막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도 씁쓸했다. 이광철 비서관은 적어도 변호사로서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던 사람들 편에서 함께 싸웠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보안법으로 몇 번 고생한 적이 있던 처지로서, 탄압받던 사람들과 연대하는 과정에서 보게 됐던 사람이고 기본적 신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검찰 인사 과정에서 이광철 비서관의 주도로 인사 대상 검사들에게 ‘이석기 의원 판결과 용산참사에 대해 어떻게 보냐?’고 물었다는 보도를 보고 반가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을 ‘검사들의 사상과 양심을 검증을 하며 십자가 밟기를 강요한 것’이라고 흥분하는 <조선일보>를 보면서 쓴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진짜 문제는 이석기 의원을 석방하지도, 용산참사 주범들을 처벌하지도 못하는 그 기득권 타협적 한계인데 말이다. 과감하게 임은정 검사를 검찰 수뇌부로 임명해서 급진적 검찰개혁을 밀어붙이지 못하는 그 소심함인데 말이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며 진중권 씨가 과거에 종북몰이가 한참이던 박근혜 정부 초기 때 그 마녀사냥과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들에게 돌을 던지며 막말을 했던 것을 다시 찾아봤다.
“주사파는 김정일, 김일성 초상화 앞에서 묵념하고 회의한다”, “정치적 발달장애를 앓는 일부 주사파 정치 광신도들이 80년대의 남조선혁명 판타지에 빠져 집단으로 자위를 하다가...”, “80년대에도 저런 또라이들은 없었거든요”, “어떻게 인간의 머리를 가지고 주사파가 될 수가 있지요?”
다시 봐도, 전사회적인 매도와 공격에 몰린 사람들에게 결코 해서는 안될 말이었고 토론을 차단하는 말들이었다. 이런 식으로 막말과 모독을 통해서 자신과 생각과 방향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언론과 국가기구의 공격에 몰린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게 잘하는 것인가?
이런 언행에 온라인 댓글들을 통해 또 다른 예의없는 언행으로 반격하는 사람들도 결코 옹호할 수 없지만, 그것을 또다시 더 큰 막말과 모독과 조롱으로 대응하는 게 옳은 것인가? 이런 언행에 대리만족과 속시원함을 느끼면서 더 많은 지면을 제공하고 막가는 다툼을 더욱 부추기는 사람들은 또 뭔가? 지켜보기 괴로운 풍경들이다.
(기사 등록 20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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