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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타자에 대한 경멸과 비인간화만큼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은 없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11. 23.

윤미래

 


[미국과 유럽에서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 민중에 연대하는 좌파들이 반유대주의라는 빌미로 공격당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 관련해서 독일의 대학에서 이런 공격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윤미래 동지의 기고를 지난 7월에 실은 바가 있다.(https://www.anotherworld.kr/701) 그 사건은 계속 진행돼 왔는데 최근에는 프랑크푸르트 대학 총학생회마저 이슬람포비아적 선동의 손을 들어주는 입장을 발표했다. ‘무슬림 혐오에 반대하는 학생연합과 SDS, MLPD는 농담이 분명한 구호를 가지고 개인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흑색선전을 당장 중지할 것이며 모든 단체들은 이 반유대주의자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논리였다.(SDS는 좌파당 학생위원회이고 MLPD는 극좌파 학생조직이다) 이에 윤미래 동지는 총학생회의 입장을 반박하고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했는데, 그것을 번역해서 보내왔다.]


 

지난 여름에 백인 남학생이 학생회실 벽에 쓴 이슬람혐오적 낙서들 



알라 알라 알라 알라 이란을 폭격하라”, “히잡 대신 노브라”, “투석형 대신 진리”, “SDS를 금지하라”, “MLPD를 사냥하라등의 구호가 학생회실 벽에 쓰여 있는 데 대해 학생회에 항의를 하고, 다른 유색인 학우들을 찾아 함께 사안을 공론화한 사람이 접니다. 유인물을 작성하고 몇 번이고 떼어내길래 몇 번이고 다시 벽에 부착한 사람도 접니다. 제가 단체들에 연락을 한 것은 이것이 모두의 일이라 여겨서이고, 여러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의 이름을 유인물에 적시한 것은 그가 학부의 최상급 의결기구에 기성 정당 소속의 학생 대표자로 앉아 있으며 학우들은 이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익명성 뒤에 숨어서 개인을 매장시키려는 의도에서가 아니고요.

 

제가 학생회 회의에 간 것은 이 구호들이 진담이라고 볼 수 없다는 말이 이미 2주 전 가해자 자신의 입에서 나왔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 두 명의 여학우들이 벽을 깨끗이 닦아냈으나, 심지어 더 심한 구호들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녹취로도 남아 있는 학생회 회의에서 이 인물은 완전히 맑은 정신으로 진지하게 모든 구호를 진심으로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란은 이슬람파시스트들이 지배하는 나라로서 나치 독일이 그랬듯 전쟁으로 타도해서 민주적 제도를 도입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정확히 똑같은 주장을 앞세워 2003년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지요.

우리가 알라 알라에 버튼 눌린걸 보면 우리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경도되어” “투석형에 찬동하는 입장이라고도 했지요.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독재 정부에 반대하고 정치적 마녀사냥을 비판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탄압받고 처벌당해 왔으며 오늘날에도 당하고 있습니다. 반공주의에 경각심을 느끼는 자는 공산주의자가 분명하다는 논리로 말이지요.

서구 문명의 본질은 이성 개념을 정립한 데 있고 그것은 세계에 퍼뜨려 마땅한 것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정확히 똑같은 믿음을 가지고 유럽 식민주의는 수백년 동안 세계의 나머지를 예속시키고 수탈했습니다.

 

저는 이 일을 반차별 부서와 학과장단, 심지어 총장에게까지 알렸는데도 아무 조치도 없었기 때문에 공론화에 나섰습니다. 저는 반인종주의, 여성주의, 반식민주의를 연구하는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에 경제 개발에 관한 논문 지도 수업에서 이 사건을 주제화했습니다. 몇몇 학우들이 이 상황은 구호를 적은 사람에게 불공정하다’, ‘다른 사정이 있는 게 분명하다’, ‘말하는 방식이 도덕적 압박을 준다’, ‘그냥 매직으로 덧칠을 해버릴 수는 없었느냐따위의 발언으로 계속해서 방해하는 바람에 이런 대화가 성립할 수 없었던 것을 몹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제가 현실의 인종주의와 이런 구호들 사이의 연관이 복잡하고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고 명백한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는 비난이었습니다.

 

제게 이란을 폭격하라히잡 대신 노브라같은 말이 학생회실 벽에 적혀 있으면 전쟁 난민이나 히잡을 쓴 학우들이 학생회실은커녕 캠퍼스에서조차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고, 명백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저 역시 제가 소속된 단체를 금지하라는 요구가 쓰여 있는 방에는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이것까지 설명해야 하는 건 제발 아니길 바랍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구호들에서 표현된 사고방식으로 인해 이 나라의 거리에서 무슬림들이 위협이나 공격을 당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마을이 폭격당하고 사람이 살해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천재지변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무슬림들은 위험하고 야만적이며, 서구 문명은 다른 모든 문명보다 우월하고, 그러므로 폭력을 써서라도 온 세계에 퍼져 나가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말입니다.

 

저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이 이 점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승인되고 예찬되는 것이 이 구호에 대해 문제제기하기 시작한 이후로 반복적으로 맞닥뜨리는 폭행 위협보다 훨씬 더 저를 경악하게 합니다.

이른바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한 뉴스를 읽을 때마다 뜨거운 꼬챙이가 제 마음을 찌릅니다. 무슬림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당하는 공격에 대해 들을 때마다 정상적인 일상 속에 있다는 실감이 저에게서 떠나갑니다. 제가 아시아인이라 마찬가지로 인종차별을 당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제 마음이 이토록 아픈 까닭은 저를 항상 행복하고 안전하게 품어주신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 제 이웃이 저의 떼어낼 수 없는 지체(肢體)이게끔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웃보다 우월하다는 확신, 이웃을 억누르고 지배할 수 있다는 자격의식, 이 오만은 자신을 우파로 규정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좌파로 규정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나옵니다. 페기다[독일의 반무슬림 인종주의 단체]에서도 나오고 사민당에서도 나옵니다. 거리에 나온 노년의 기독교인과 대학에 다니는 젊은 무신론자들이 공히 유럽을 접수해 샤리아를 도입하려는 정치적 이슬람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망상을 공유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옥같이 끔찍한 미래가 점점 다가오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타자에 대한 경멸과 타자의 비인간화만큼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 없고, 그것이 결국 낳고야 마는 마녀사냥처럼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회주의 학생 조직(좌파당의 학생위원회)에 있는 것은 이 단체가 무엇보다도 이런 현실에 단호하게, 타협 없이 맞서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에게 더 나은 세계를 가능하게 해줄 지식을 찾으러 프랑크푸르트에 왔습니다. 그 지식을 위해 일한다고 믿었기에 학생회에서 네 학기를 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여러분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프랑크푸르트가 제시하는 답입니까? 100년의 전통을 이어온 프랑크푸르트의 사회학이 지금 우리에게 내놓는 처방이 전쟁과 경멸, 배제란 말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지금 제 눈앞에 펼쳐지는 일들을 어떻게 해석해야만 할지,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기사 등록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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