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균
1.
내가 언제나 언어 사용에 있어서 인권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안다. 다만, 운동을 할 때 활동을 할 때 공식적인 언어에서 어떤 단어들은 인권적으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언제나 고민하고, 그것을 고려하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중이다.
2.
그런데, 다른 사람들 특히나 운동한다는 사람들, 깨어있다는 사람들,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번번히 혐오성 발언을 공식 자리에서 일삼고 특히나 집회 주요 표어로 사용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속상하다. 어떤 연대 집회를 갔을 때 발언자가 대표적 장애 혐오 욕설인 ㅂ으로 시작하는 2음절 단어를 얘기할 때의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떠오르고, 어디서는 또 발언자가 ㄷ으로 시작되는 장애 혐오성 발언을 하는가 하던 기억, 그리고 최근 반일 시위 주요 표어에는 아예 "토착 왜구"라는 혐오성 용어가 오피셜 표어로 쓰였다.
3.
문제는 이것에 대해 문제제기 하면 "왜 그 단어를 못 쓰게 하나요?"하시는 분들이 있다. 모 페친이 등신이란 단어를 집회 장소에서 쓰는 사람에게 문제제기 했다는 것에 ‘등신이 어떻게 장애 혐오에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진다’는 댓글을 보았고, "토착왜구"란 단어가 일본인이 가족 구성원으로 있는 다문화가정, 한국에서 살아가는 일본인 등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당사자들에게 혐오로 사용된 사례가 있다는 것을 얘기하며 문제제기하니 ‘왜 절박하게 싸우는 나를 향해 그런 단어를 못 쓰게 하는 폭력적 행위’를 하냐는 등, ‘앞으로 그런 거 못 쓰면 운동을 못 한다’고 하거나, ‘왜구는 사전적으로 이러하니 혐오가 아니에요’ 등등 다양한 항변을 지켜 볼 수 있었다. 심지어는 이걸 투표로 결정하자고 말하는 어처구니없는 발상도 있었다.
4.
이런 문제를 통해서 느낀 것은 단 하나다.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 깨어있다고 하는 사람들, 좌파라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어떤 언어를 사용할 때 타인에 대한 감정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했다. 어떤 언어가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고 차별과 배제의 언어가 된다는 것은 그 단어가 누군가에게 차별과 침해 배제가 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장애 비하 단어를 장애인이 아니라 어떤 나쁜 정치인을 향해 쓴 거라고 하며 정당화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나쁜 정치인을 까기 위해 스스로 비하성 단어를 쓴 것은 1도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자신이 쓰는 단어가 이미 누군가를 얕잡아 보는 용어라는 것을 인지하고 비유하여 사용한 것인데, 어떻게 그것이 누군가를 혐오하고 비하하는 단어가 아니라고 우길 수 있는가?
5.
장애 혐오의 단어와 마찬가지로 토착 왜구도 마찬가지다. 왜구가 무슨 뜻이고, 누구를 대상화하는 것이고 이래저래 정당화하지 마라. 그 단어가 당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혀 상관없는 한국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무고한 ‘토착 일본인’과 그 가족(한국인 구성원 포함)에게 멍이 되고 상처가 됐다면 그것은 혐오성 차별성 단어가 되는 거고 그렇다면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왜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활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그런 기본적인 언어 사용도 남을 배려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바꾼다고 으쓱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6.
그리고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그런 언어조차 쓰지 못하면 어떤 다양한 표현으로 이야기를 하냐는 사람들이다. 그건 그런 비하적이고 반인권적인 언어를 일상적으로 써 왔다는 것인데, 그건 본인이 스스로 되돌아보고 성찰해야 할 일이지, 왜 문제제기 하는 사람에게 적반하장으로 항의하는가? 왜 그동안 언어 사용조차도 남을 생각하는 언어를 거의 써 본적이 없다고 실토하면서 그것이 당당한 권리인 것처럼 얘기하는가?
7.
이런 이기적인 진보, 좌파, ‘깨어있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뭐라 장황하게 써도 바뀌는 것은 거의 없을 것 같아 더 비참한 기분까지 든다. 정말 힘이 들지만, 아직도 나는 부족하고 그럴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인권운동을 하는 이상 나는 최대한 실천하고 성찰하고 그리고 인권적이지 못한 언어를 당당하게 쓰고 공식적으로까지 사용하려는 것에 계속 문제제기하고 이야기할 것이다. 어떻게든 그냥 당연시 지나갈 수 있는 언어의 인권 감수성에 나의 돌팔매가 물결이 되고 파도가 되길 빌고 또 빈다.
(기사 등록 201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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