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약 40일 전에 노르웨이에서 지자체 의회 선거가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어려운 일은 있었지만, 일단 투표를 작정해서 했습니다. 제 소속 정당 (적색당)이 제가 사는 지역에서 어차피 2%의 득표율도 보이지 못하니까 제 한 표라도 그래도 꼭 던져주고 싶었습니다. 노르웨이는 저 같은 영주권 보유자들에게 지자체 의회 선거 때 투표권을 부여하는데, 그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권리를 행사하고 싶었죠. 그런데 학교 가는 출근길에 저를 기다리는 것은 스탈린주의 조직 "인민에 복무하라" (Tjen Folket)"의 선전 플라카드이었습니다. "가짜 민주주의를 지지하지 말라, 투표 참여하지 말라!"는 말은 골짜이었죠. 글쎄, 저만 해도 투표를 통해서 혁명해 이 사회를 본질상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당연 안합니다.
제 투표의 목적은 훨씬 더 작은 것이죠. 그냥 우리 당의 힘을 좀 키워서 우리 지역의 구체적인 인간들의 구체적인 고통을 덜어주게 하자, 그리고 그렇게 해서 탈시장화의 경험이라도 쌓아나가자, 이 정도이었습니다. 예컨대 우리 당의 당세가 커지면 사립 유치원에서의 비정규직 양산부터 공립 양로원에서의 파견인력 사용까지 종지부를 찍어 "계절 노동 아닌 이상 무조건 정규직 고용!"의 대원칙을 보다 잘 관철시킬 수 있을 터인데, 뭐 사회주의로의 기나긴 여정에서 정치가 시장을 이겨보는 이런 경험도 중요하겠죠? 비정규직이 되는 고생을 누구에게 면케 할 수 있는 것도 좋고요. 그것도 하지 말라 그러면 아무래도 극좌적 편향 같다, 이런 생각은 좀 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대의 의회 정치 제도는 정말로 엄청난 문제들을 안고 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긴 합니다. 그 문제들 중의 하나는, '국민 국가'라는 단위 자체의 불완전성이지요. 자본주의적 국민 국가의 경우에는, 그 주권 영토와 경제 영토는 전혀 동일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 영토란, 헌법대로라면 한반도 전체와 부속 도서고 실제로는 DMZ이남의 남한과 부속 도서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경제 영토라는 것은 훨씬 더 복잡한 문제죠. 한국 자본의 돈이 한국에만 투자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총국민생산액에서 해외직접투자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대한민국에서는 1,9% 정도 됩니다. 물론 "정통" 부국에 비해 좀 낮은 수치긴 하죠. 해외투자 대국인 일본에서는 3,4%나 될테고, 노르웨이만 해도, 2,3% 정도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해외투자의 (총국민생산에 비해) 상대적 규모는, 예컨대 중국과 거의 같고 러시아 (1,7%) 같은 준주변부 제국주의 국가에 비해 좀 높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만만한 수치는 결코 아닙니다. 그만큼 한국의 경제 영토는 한반도 남반부와 그 부속 도서보다 훨씬 큽니다. 해마다 조금씩 왔다갔다하지만, 예컨대 2013년이나 2016년에는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으로 부상한 바 있었습니다. 지금 그 투자열기가 좀 식었지만, 9년전에는 캄보디아 총외국인투자액 중에서 한국 기업의 투자액이 무려 44%나 차지한 적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컨대 방글라데시에서 가동 중인 약 150개의 한국인 봉제 공장들은 한국 섬유, 방직업에서 상당한 몫을 차지한다 해도, 그 기업에서 매일매일 10시간 이상 노동해야 하는 현지인들은 한국 정치에 있어서는 투표권은 물론이거니와 그 어떤 발언의 기회도 당연히 없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한국의 경제 영토인 현지에서의 한국인 기업을 위해 잉여가치를 생산할 수는 있어도, 한국의 정치 영토와는 전연 무관하게 살아야 하지요. 현지 한국 기업들이 그들을 어떻게 다루어도, 그들이 한국의 유권자가 아닌 이상 이 문제는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부상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접어들어 국민 국가 단위의 민주주의는 그만큼 한계가 많은 거죠.
한국에서는 대한민국이 "헬조선"이지만, 아시아의 많은 나라로부터의 시각으로 본다면 지옥이긴 하지만 그래도 상대적 고임금 지옥입니다. 중국의 조선족 입장에서나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입장에서는, 비록 지옥이긴 하지만, 이를 악물고 몇년 참고 견디면서 한국에서 벌이만 잘 한다면 - 즉, 그 흔하디흔한 산재 등을 당하지 않고 과로로 쓰러지지 않는다면 - 나중에 본국에 돌아가서 어쩌면 무산계급에서 약간의 유산계급, 즉 중소상인 등으로 "약진"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외국인 노동자들을 "동포"와 그냥 "외국인"으로 분리시켜 분리, 통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조선족이나 고려인들에게 비교적 관대한 (가족 동반 등이 가능한) 동포 비자를 주니까 더더욱더 그 기회를 타고 싶은 마음은 강해지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동포비자는 (가족 동반 등이 불가능한) 고용허가보다야 낫긴 하지만, 지자체 의회 투표권 같은 걸 줄 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동포라 해도 귀화를 쉽게 허락하는 것도 결코 아니고요, 그러니까 조선족이나 고려인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문제, 예컨대 고려인 4세까지 동포 범주에 넣어야 하는가 라는 등등의 문제를, 조선족이나 고려인들이 대표되지 않는 한국의 국회에서 다루어지게 돼 있는 것이죠. 이와 같은 역학관계를 정치학에서 "내부 식민지"라고 보통 부릅니다. 노동을 할 수 있고 세금을 내야 하지만, 정치적인 발언권이 전무하다는 것을 식민지 말고 어떻게 불러야 마땅할까요? 좌우간, 이건 "가짜"라고 하지 않아도 "불완전한 민주주의"라고 보는 것은 맞을 듯합니다.
국회에서 대표되지 않는 사람들은 꼭 국내외의 외국인 노동자들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온실 가스 배출로 엄청난 기후 참사를 당하게 될 아직도 태어나지 않은 후세대들도 국회에 대표자를 보낼 수 없는 것입니다. 기후 참변으로 멸종 위기를 당하게 돼 있는 동식물들도 인간의 국회와 별 인연이 없고요... 대한민국의 온실가스배출량은 지난 10년간 약 20% 늘어났는데, 기후 변화로 곧 침몰 위기에 빠져 있는 태평양 도서국가들은 대한민국의 국회에 그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짜", "진짜" 등을 넘어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 발달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솔직히 자인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내외국인 불문하여 해당 정치체와 유관한 모두들에게 참여의 기회룰 주고, 인간이라는 종의 이기심을 넘을 수 있는, 지구별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까지 다 고려할 수 있는, 그런 참 민주주의는 아직도 탄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사회주의로 가자면, 이런 참 민주주의야말로 사회주의 건설의 전제조건이지요.
(기사 등록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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