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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사람'이 아닌 '조건'과 결혼한다는 것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5. 17.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국내에서 이미 잊혀진 듯하지만, '밖에서' 한국의 현대 사회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2002년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적극 권고합니다. 엄정화의 표정 연기도 독특하지만, 무엇보다는 남녀 사생활에 대한 '통념'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1960~70년대는 물론이거니와, 아마도 198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여성이 결혼초기부터 "절대 들키지 않을 자신"을 가지고 나서는 혼외 정사를 이처럼 중립적이며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여주는 영화는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1980년대라면 몰라도 1960~70년대만 해도 영화에서 "신성한 가족"과 같은 표현들은 반어적이지 않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가끔 쓰이기도 했습니다. 개발주의 국가가 스스로를 신성시했듯이, 그 국가를 밑에서 뒷받침해주는 사회의 '기본 단위'로서의 가정 역시 원칙상 신성불가침해야 했었죠. 오늘날에는요? 지난 2월에 한국보건복지사회연구원이 실행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혼여성의 54%가 결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으로 보고, 14%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다수의 여성들에게는 결혼이란 상당히 억압적인 구식 제도로 보이는 것이고, 사회는 인제 '가족'이 아니고 혼밥, 혼술 먹고 마시는, 원자화된 '개인'들로 구성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결혼이라는 제도의 틀 밖에서 성생활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뭘 따질 만한 '근거' 자체가 없어지고 만 것이죠. 인제야 폐지됐지만,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나온 17년 전만 해도 간통죄는 이미 상당한 도전을 받아 더이상 사회의 '통념'에 부합되지 않았습니다. <자유부인> 같은 영화들이 한 때에 얼마나 시비거리가 됐는지를 기억하는 입장에서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보는 게...참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왜 하필이면 "계획된 불륜"에 들어가야만 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둘 다 실은 결혼과 가정의 성립을 원했지만, '교수'가 아닌 '시간강사'이었던 남자 주인공은 여주인공의 '결혼 상대방에 대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 정규직 교수 임용장 하나가 "결혼면허증"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죠. 결국 여성은 "셋집살이"가 싫어서 시간강사 아닌 의사를 결혼상대자로 택한 겁니다.

 

한데 시간강사는 정이 든데다가 섹스도 워낙 잘했기에 "결혼은 따로 섹스는 따로"라는 사고에 이미 익숙해진 여주인공은 그 시간강사를 위해 가난한 동네에서 자취방 하나 구하여 꾸미고 거기에서 주말마다 보내기로 했습니다. 굴욕감을 결국 참지 못한 시간강사의 '울분'으로 끝에 가서 파국을 맞고 말지만, 그 중간에 시간강사가 내뱉은 말 한 마디가 참 의미심장했습니다. "너는 사람이 아닌 어떤 '조건'과 결혼하려 하냐". 이 말은, 한국 사회의 결혼풍토를 어떤 의미에서 너무나 핍진감 있게 잘 반영합니다.

 

'셋방살이'를 겁낸 여주인공은 결국 그 신랑의 의사면허증, 호화아파트, 그리고 은행계좌와 결혼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과연 세상이 최근 와서 이렇게 된 겁니까? 전혀 그렇지 않죠. '연애결혼'1920년대에 들어 일각의 신여성 내지 계몽된 도심 남성 일부 사이에 유행처럼 번진 단어이었지만, 그 때는 식민지 조선은 물론이거니와 노르웨이만 해도 남성의 '노동력' 내지 '경제력'은 대부분의 결혼에 있어서는 절대적이고 일차적인 조건이었습니다.

 

그 당시 노르웨이 문학 작품들을 보면, 결혼을 고민하는 대부분의 여주인공들은 상대방의 '외모'마저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나타납니다. 주벽이나 손찌검 등이 지나치게 심하다고 소문난 상대방들을 기피해야 했지만, 그나마 '성격이 괜찮은' 남자 중에서는 경제력 (빈민층 중에서는 노동을 할만한 체력)순으로 우선순위가 정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조건과 결혼한다'는 것은 상식이었죠.

 

노르웨이 같으면 그 상식이 파괴된 것은 대체로 1960년대 이후이었습니다. 교육을 받고 '학생혁명'의 영향을 받은 신세대로서는 '조건과 결혼한다'는 것도 '억압' 중의 하나이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성격이 맞지 않고 원만한 성생활을 하지 못해도 한 때에 '조건에 따라' 결혼한 뒤 그다음에 '어쩔 수 없이' 같이 평생을 보내야 했던 자신 부모 세대처럼 비참하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도 인제 없었죠. "일하는 여성"은 통례가 되고, 공공의료나 교육에의 접근의 기회를 얻기 위해 더이상 남성 경제력의 힘을 입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복지국가가 결혼을 '조건의 만남'에서 '인격의 만남'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인제 남녀 공히 상대방을 '인격' 내지 '나와의 원만한 공존의 확률'로 평가하기 시작했으며, '결혼'의 경제공동체로서의 의미 자체가 퇴조를 맞았습니다. 현재 노르웨이에서 결혼한 커플 중에서는 약 58%가 공동은행계좌를 갖고 있지만, 나머지는 아예 경제생활을 "완전히 따로따로" 합니다. 그런데 전체 커플 중에서는 약 30%가 결혼 대신 동거를 하고 있는데, 동거자 중에서는 공동계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37%에 불과합니다.

 

공동계좌가 있다 해도 보통 공동지출(식량품 구입, 관리비 납부 등)을 위해서만 쓰이고 그외에는 결혼 상대자들이 또 별도의 개별 계좌도 갖고 있습니다. 민법상 아직까지 노르웨이에서 결혼 상대자들이 필요시에 서로를 경제적으로 지원할 '의무'를 지고 있긴 하지만 (동거의 경우 이와 같은 의무는 없습니다) 이 조항은 가면 갈수록 무의미화됩니다. 그러니 오늘날 노르웨이에서는 "조건과의 결혼"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좀 어려울 겁니다. 결혼은 더이상 경제적 내지 사회적 신분을 부여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면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궤도는 많이 달랐습니다. 대한민국에는 1968년 학생혁명과 '모든 억압'과의 싸움은 없었고 주로 군바리들의 구닥다리 독재만은 투쟁의 대상이었습니다. 개발국가의 가부장적인 '가국'이 그대로 있다가 결국 1997년에 신자유주의 폭풍노도에 노출된 셈이죠. 그러기에 '조건과의 결혼'이라는 패턴은 없어지긴커녕 오히려 더 강화됐습니다


비정규직 여성으로서 잘못하면 최고은 작가처럼 아예 굶어죽을 수도 있는 이 지옥에서는 특히 경제적인 차별에 노출된 여성들로서는 결혼이란 그야말로 마지막의 '사회보장'의 성격을 지닙니다. 또한, 노르웨이와 달리 집안일을 평균적으로 하루에 20분 정도만 하는 남성의 일상까지 '책임'져주어야 하니까 남성으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을 이에 대한 합당한 보상, 즉 일종의 가사노동에 따라 주어지는 "집안 임금"으로 사고할 수도 있는 판이지요.

 

남성을 옆에서 참아주고 그 일상 하나하나 챙겨주는 것이 엄청난 부담인지라 가면 길수록 결혼 그 자체를 포기하는 여성들의 수가 늘어나지만, 그래도 결혼을 고려하는 여성이라면 92%의 경우에는 남성의 '경제력'을 염두에 두고 결정을 한답디다. , 취직 전선에 뛰어든 취준생이 그나마 임금지불능력이 있어 보이는, 튼튼한 회사를 골라 지원서 내는 정서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만큼 결혼이란 여성으로서 커다란 희생, 남성이 거의 돕지 않는 매일매일의 중노동을 의미하는 것이죠.

 

한 마디로 약자가 도태되게 돼 있는 ''의 상황에서 과거의 가부장적인 '기국'이 일종의 '공동 생존을 도모하는 경제, 생활 동반자 관계'로 변한 셈입니다. 그 틀 안에서는 남성의 경제력과 여성의 가사, 육아노동이 교환되는 것이고, 남성 경제력에 대한 '검증'은 이 관계 수립의 '기본조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시간강사라면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처럼 결혼 시장의 '약자'일 가능성이 크지만, 2002년과 달리 오늘날에는 아마도 시간강사는 임용에 필요한 영어 논문 등을 생산해내느라고 소개팅을 할 시간적 여유도 부족할 겁니다... 노르웨이에서와 같은, 경제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남녀들의 '결합'은 한국에서 달나라 이야기 같기만 하고 가면갈수록 연애, 동거, 결혼 등을 다 포기하는 사람들의 수만 늘어납니다. 참 슬픈 광경이지요...


 

(기사 등록 2019.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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