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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의 불행한 결혼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4. 1.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의 불행한 결혼:

동구권 사회주의와 성평등에 관한 소론(小論)


 

윤미래 


서론


 이 소논문의 제목은 정통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비판하면서 여기에 제2물결 페미니즘의 사유를 어느 정도 동등한 위상으로 결합시키려고 시도했던 하이디 하트만의 유명한 논문을 오마쥬한 것이다. 나는 그녀의 이론적 접근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 표현[‘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의 불행한 결혼’]은 동구 사회주의권의 실제 실천을 일컫는 데 대단히 적합하다.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성차별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이 사회들에서 여성들의 이익은 여전히 부차적이고 중요성이 덜한 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기득권자 남성과 피억압자 여성의 불평등한 결혼에서 연애 시절의 약속이 깨지는 것처럼.


 그렇다고 사회주의 혁명이 남성들의 혁명이었다거나, 성평등의 측면에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 다르지 않다는 결론으로 비약할 수는 없다. 사회주의의 이상뿐만 아니라 동구권 사회주의의 현실을 보아도 그러하다. 현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가 담지했던 여성 해방의 이상은 상당 부분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정치에 침투했으며 그 사회의 정치를 빚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확히 똑같은 이유에서, 우리는 동구권 사회주의 사회의 결함들 모두를 혁명의 지연이나 미완 탓으로 돌릴 수도 없다. 소비에트의 젠더 레짐(Gender regime)은 여러 측면에서 자본주의와는 질적으로 달랐으며, 그 사회에 여전히 성차별이 존재했던 것은 단지 자본주의 사회의 잔흔을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주의 이념의 공백과 편향 때문이기도 하다.

 

 이 소논문은 사회주의 여성 해방이라는 기획이 성취한 바와 실패한 지점들을 개관하고, 당시 사회주의 강령의 강점과 약점에서 그 원인을 찾아봄으로써 이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이러한 검토 끝에 우리는 지난 세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강령의 어느 부분이 수정보완되어야 할지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9회 공산청년동맹(Komsomol) 회의 휴식 시간에 춤추는 사람들. RIA Novosti / Wikimedia


 

동구권 사회주의의 성과와 한계 


 흔히 통용되는 비판과는 달리, 사회주의 혁명은 여성 인권에 크나큰 진보를 가져왔다. 신생 혁명 러시아의 여성 부서 제노텔(Zhenodtel)의 정치는 여성사의 한 장()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조명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데, 볼셰비키는 1917년에 권력을 잡은 뒤 동일 임금, 여성의 법적 독립성, 부부간 평등, 임신중절의 자유화 및 공공 시술, 혼외자녀의 법적 평등, 직장과 의료에서의 모성 보호를 입법했으며 가사양육의 공공 보장(public coverage)을 시도하고 동성혼을 법제화하는 등 당대는 물론 현재의 관점에서도 놀라운 수준의 진전을 이룩했다. 이 과정을 지휘한 것은 해방적 성애(姓愛)에 대한 급진적인 발상으로 보다 유명한 볼셰비키 지도자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였으며, 공공 서비스와 캠페인을 조직하는 데는 전국적지역적 층위 모두에서 여성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했다. 정부는 여성들의 참여를 촉진하고 독려했으며, 이 변화의 흐름은 먼 외곽의 이슬람 지역에까지 미쳤다.(Bryson 1992: 117-8)


주로 나라를 덮친 전쟁과 심각한 기근 탓으로 이 개혁들은 대부분 얼마 안 있어 크게 후퇴했지만, 성평등은 동구권 사회주의가 존속했던 70년 동안 많은 부분 일관되게 사회의 목적으로 남았다. Katherine Verdery는 소비에트 젠더 레짐을 검토하면서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사회주의 정권들은 (불가피하게) 노동 집약적, 자본 절약적인 산업화 정책을 추진했으므로 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사회주의에서 성평등을 강조하고 성평등을 위한 정책들을 실시한 데는 어떤 이념적인 헌신보다도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긴 출산휴가육아휴직, 공공 보육, 임신 중절의 자유(1966년 이후의 루마니아는 제외) 등이 그러한 정책들로, 여성들은 이로 인해 삶의 이러한 측면에 대해 보다 큰 통제력을 가지게 되었다.(Verdery 1994: 230)


 소비에트 여성 정책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한 정치학자인 Norman C. Noonan1988년에도 여전히 이렇게 쓴다.

 

 여성 노동자를 보호하고 여성들에게 다양한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소비에트의 법률은 포괄적이며 주기적으로 보완되고 있다 (Belyakova,1978). 비록 이런 법규들이 원하는 만큼 시행되지는 않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소련은 이 방면에서는 여러 나라들보다 앞서 있다.(Noonan 1988: 35)

 

 이 다양한 복지 혜택에는 공적인 보육·의료·교육을 제공하고, 공공 식당을 짓고, 최신식 부엌 설비를 공급하고, 요리 시간을 절감하기 위한 반()조리 식품을 생산하는 등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체로 여성들의 부불 노동으로 이루어지는 살림 노동[각주:1]을 국가가 넘겨 받는 것도 포함되었다. 이런 서비스들은, 비록 양적·질적으로 아주 불충분한 경우가 태반이었지만, 여성 해방이라는 지향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며, 인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켰고, 특히 가족 내 권력 관계를 바꾸어 놓았다.(Verdery 1994: 230-1). 


 그러나 여성들은 비록 권위가 신장되기는 했어도 여전히 가족 내에서 약자인 경우가 많았다. 알코올 중독과 아내 구타는 여전히 온존했고 사회적으로 널리 묵인되었으며, 독신은 여전히 피해야 할 불행으로 취급되었다. 살림 노동은 여전히 대부분 여성의 부담으로 돌아갔으며 이로 인해 여성 노동자의 일-삶 균형이 위협받을 때 팔을 걷어붙이고 도움을 주는 것은 남성보다는 여성 노인들이었다. 가사 노동을 대체하는 사회 복지 서비스 역시 압도적으로 여성들에 의해 수용되었다. 반면 국가 관료제나 이념적으로 강조되고 과잉 대표된 산업 분야들 가령 중공업 은 인적 구성에서나 고위직 비율에서나 여전히 남성 지배적이었다. 성별화된 노동 분업에서 전형적으로 그렇듯이, 공기업의 여성들에게는 비서직이나 영업직이 돌아갔고 요직에 앉은 몇 안 되는 여성들은 보통 남성의 대리인이나 보조자였다.(Verdery 1994: 233-4; Noonan 1988: 35-38).


 소련 인민들은, 특히 다수가 살림과 생산 노동의 이중 부담 경감과 가정에서의 성평등을 가장 중요한 의제로 여겼던 여성들은 이런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동구권 소비에트 블록이 붕괴할 때까지 그것들이 충분히 진지하게 다루어진 적은 없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구시대의 잔재나 자원 부족의 문제로 치부했기 때문이었다. (관영) 언론들은 남성의 태도를 바꾸고 가사 노동을 더 많이 분담하도록 장려했으나 이런 노력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Noonan 1988: 35-39). 


 당 지도부는 통제를 벗어나 사회주의의 대의를 거스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 여성의 독자적인 정치 조직이나 힘기르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여성의 이익은 노동자와 어머니의 문제로 다루어져야지, 남성 중심의 기존 질서와 불화하는 소수자의 문제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성국(제노텔)1930년대에 여성의 해방이 이미 완료되었다는 선언과 함께 해체되었으며, 여성 문제를 넘겨받은 부서들은 대체로 정권에 순치되어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국가 정책에 반영하는 상향식보다는 국가가 여성과 외부 세계에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는 하향식으로 작동했다. (Noonan 1988: 34-36)

 

사회주의 강령의 성별 편향


 이상으로 우리는 소비에트 혁명이 여성 해방에 다대한 진보를 이루어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가는 대규모로 가사 노동을 공급하고 지속적으로 성평등을 강조했으며, 이것은 그저 겉치장이 아니라 소련 인민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실재적인 정책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소련이라는 기획이 성별주의를 폐절할 수 있다는 약속은 결국 지키지 못했음도 확인했다. 이는 단순히 자원 부족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소비에트 남성들과 남성 중심적 국가 기구는 (가정에서나 공공 서비스에서나) 살림 노동을 성별 간에 재분배하고, 성별화된 노동 분업을 변화시키고, 자신이 당하고 있는 차별과 피해에 맞서도록 여성들을 장려하는 데에는 의욕이 없거나 좋게 말해도 소극적이었다.

 

 자본주의 진영의 군사적 위협과 경제적 저개발 때문에 성평등 정책의 우선 순위가 낮아졌다는 반론에도 어느 정도 진실은 있지만, 성평등을 위해 필요한 중요한 조치들 여러 가지가 의제에서 아예 사라져 있었던 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없다. 소련 사회가 돌봄의 공공화나 남성 계몽을 위한 언론 캠페인 등 다른 성평등 정책들에는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양의 자원을 아끼지 않았던 사실과 대비해서 보면 더욱 그렇다. 국가자본주의나 타락한 노동자 국가가 사회주의 강령의 일부를 포기하거나 삭제했다고 보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살림 노동의 성별 간 재분배나 성별 분업의 폐지, 젠더 폭력 근절에 대해서는 혁명 이전의 사회주의 강령에도 구체적인 정책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맹점이 분명하게 있는데도 혁명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안정화되기만 했더라도 지난 세기에 쓰인 사회주의 강령이 충분히 여성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의 힘은 여성 억압을 초역사적, 영구적인 인류의 악덕처럼 간주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매우 구체적인 경제적·정치적·기술적 구조와 역사적 상황의 산물로서 여성 억압을 바라보는 데서 나왔다. 이런 관점에서 해방은 오직 사회 구조를 완전히 재조직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러한 접근에 기반해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공사 분리와 사적 영역의 부차화가 근대 특유의 현상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살림 노동의 조직 양식이라는 여성 억압의 근원을 정확히 지목하고, 노동과 생산의 사회화라는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경향에서 해방의 전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낼 책임은 이 경제적인 단위에, 즉 자신의 존속을 위해 새로운 세대를 필요로 하는 사회 공동체에 있다는 생각을 논리적으로 당연하게 할 수 있다. 가족이 경제 단위이기를 그쳤을 때, 산 노동의 유입을 필요로 하기를 그쳤을 때, 성인들이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가족이 아니라 더 넓은 공동체에게 받게 되었을 때, 어린 아이들과 그들을 낳은 어머니들을 돌보는 일 역시 공동체의 책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그러나 사회에 맡겨진 전체의 이익에 진정으로 부응하는 사회에서만 정당하다. ... 반면 현존하는 국가 권력은 오직 독점 자본가들의 이익에만 복무하며, 어린 아이들과 어머니들의 생존에 대한 책임은 방기하면서 완성된 노동력만 써먹으려고 하고, 인간의 경제적 발달의 초기 단계에서 자신이 담당했었던 책무들[육아와 모성 보호: 옮긴이]을 개별적인 사적 가족에 부과하기를 선호한다. 이러한 부적절하고 모순적인 사태는 오직 역사적인 산물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제 아이들과 어머니들의 운명에 대한 공공의 관심을 증대시킴으로써 이 부조리한 상황을 극복하도록 요구받고 있다.(Kollontai 1916)

 

 소련의 강력한 모성 보호 제도와 살림 노동의 사회화는 우연의 산물도, 단순히 여성을 상품 생산에 동원하려는 수작도 아니었다. 그것은 볼셰비키들의 눈에 여성 차별과 억압의 근본 원인이었던, 살림과 생산의 이중 부담이라는 구조적 차별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기 위한 사회주의 강령의 핵심이었다. 소련에 온존했던 성별주의가 사회 전반적인 진보와 함께 점차 사라져갈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되었던 것 또한 이러한 사고방식에서는 자연스러운 결론이지, 단순히 성평등에 대한 요구를 침묵시키기 위한 명분만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사회적 불평등은 그것을 전복하는 데 가장 열심인 사람들의 인식에조차 침투하며, 사회 변혁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전망조차 구시대의 편향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할 수 있다. 볼셰비키들은 여성 억압의 현실에 공분했고, 문제의 뿌리에 생명의 생산, 즉 살림 노동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인식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현실이, 가령 남성이 인간의 표준형이라는 무의식적인 믿음의 형태로 자신들의 세계관에도 침투해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로 성찰하지 않았고, 그러한 믿음을 다음 세대의 생산은 존중받아 마땅한 중요한 과업이라는 그 자신들의 선언으로 대체했을 때 살림 노동의 성격과 조직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도 그다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대신 여성에게서 국가로 그것을 이전함으로써, 즉 여성의 삶을 남성의 것과 같게 만듦으로써 여성 해방이 가능하다는 결론으로 급하게 도약해 버렸다. 그들의 예상을 깨고 공공 부문과 가족 모두에서 살림 노동의 불균등 분담과 성차별 전반이 여전히 존속하고 있음이 드러났을 때 그들이 더 많은 언론 캠페인과 교육말고는 처방이 없었던 것도 당연하다.


 서두에서 언급한 하트만의 논문을 비판하는 <불가능한 결혼>이라는 글에서 린다 번햄은 볼셰비키들의 입장을 상술하면서 자본주의 생산 양식은 임신, 출산, 월경 등을 단순히 노동에 지장을 주는 것으로 치부할 뿐 자리를 주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이 차별을 받게 된다고 주장했다.(Burnham 1985).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성차별은 많은 부분 설명해 주지만, 생산을 장악한 정부가 강력한 모성 보호 정책을 추진하고 여성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일관되게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성별화된 노동 분업은 여전히 이루어졌던 이유, 특히 남성들이 살림 노동을 분담하기를 고집스럽게 거부했던 이유는 밝히지 못한다. 이것은 번햄이(그리고 그가 대변하는 사회주의 강령도) 문제의 절반에 대해서만 정치적인 귀결을 끌어내고 나머지 절반은 등한시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 나머지 절반이란 여성들의 살림 노동이 사회에 필수불가결하고 큰 기여임에도 불구하고 보상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번햄과 사회주의 강령의 논지를 연장해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와 달리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에 기여하는 노동이 기여에 상응하여 보상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는 데에서 여성 해방의 전망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의 사회적 규정과 평가, 보상에서의 성별 편향을 찾아내고 바로잡는 과정이 없이 자동적으로 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과정이 바로 사회주의 강령에서 명백히 비어 있는 공백 부분이다.

 

 콜론타이나 크룹스카야 등 가장 탁월한 여성해방 이론가들조차 이 문제에서는 별로 내놓은 바가 없다. 특히 콜론타이는 그 자신 사회주의 문헌에서 모성 보호만큼 찾아보기 힘든 사회 정책도 없다고 비판했고(Kollontai 1916), 모성의 사회적 중요성을 재평가하고 대안적 전망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던 이 전통의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임에도 불구하고 이 한계를 넘지 못했다.

 

 수백만 명의 어머니들의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것, 사회가 어린 아이들을 등한시하는 것에 여성의 직업 활동과 모성의 양립 불가능성을 둘러싼 작금의 심각한 갈등, 모성 문제 전체의 중심에 있는 이 갈등의 원인이 있다. 이 갈등에 대해 해결책은 두 가지밖에 있을 수 없다. 1) 여성을 가정으로 돌려보내 국민 경제 생활에 어떤 참여도 할 수 없게 하거나 2) 포괄적 모성 보호와 보육을 포함한 사회 정책들이 시행되어, 여성이 직업적인 책무를 소홀히 하지 않고도, 경제적 독립을 잃지 않고도, 계급적 이상을 위한 투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를 그만두지 않고도 자연적인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Kollontai 1916; 원문 강조)

 

 사회 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절절한 호소는 오늘날에 읽어도 마음을 울리지만, 그녀는 여기에서 모성 또한 국민 경제 생활이나 계급적 이상을 위한 투쟁의 일부로 포함할 수 있다고는 생각도 해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현재의 기술적 조건에서는 사회화할 수 없는 것이 아주 명백한 부분, 가령 임신, 출산, 수유, 혹은 가족 간의 감정 노동 따위에 대해서도 별다른 고려가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혹스러운 것은 이 논의에서 아이의 아버지는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성을 여성의 자연적 본분이라고 칭하는 부분은 거의 성별주의자의 발화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실비아 페데리치나 낸시 프레이저 같은 후대의 페미니스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여전히 가족 내에서 수행되는 살림 노동을 경제적으로 보상할 가사 노동 임금’(Federici 1975)이나 모든 성의 시민들에게 일정량의 돌봄 노동을 제도적으로 책임지우는 돌보는 시민상’(Fraser 2013) , 살림 노동을 급진적으로 재분배하기 위한 정책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것들 역시 구체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적어도 사회주의 사회의 성평등 정책이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해주기는 한다.


 이런 요구들은 물론 가사 노동의 사회화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남성 특권을 위협하기 때문에 노동 계급 내에서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더 높다. 우리 중 많은 이들에게 이것은 무시할 수 없는 우려이고, 이 문제를 사실상 기각하고 자본주의 철폐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유혹은 이론적으로는 조야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훨씬 뿌리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요구는 노동 계급의 단결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이 계속 희생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남성 중심주의로 답하는 것이다. 세계 전역에서 각성한 여성들이 사회를 뒤흔드는 시대에 진보 정치가 이러한 불의 위에서 지탱되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다. 남성과 여성, 기득권자와 피억압자, 다수자와 소수자가 콜론타이의 호소처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깨를 건 충성스러운 동지들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 사이의 부정의를 직시하고 시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노동 계급의 일부가 자기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도. “적대적인 계급 기반의 구세계를 파괴하고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더 나은 신세계를 건설하는데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얻게 될 해방과 복리와 비교하면, 성별주의의 시답잖은 특권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Kollontai 1908)

 

<참고 문헌> 


English

Burnham, Linda (1985) The Impossible Marriage: a Marxist Critique of Socialist Feminism. Institute for Social and Economic Studies.


Bryson, Valerie (1992) Marxist Feminism in Russia. In: Feminist Political Theories. Palgrave Macmillan. 104-21.


Federici, Silvia (1975) Wages Against Housework. Bristol: Falling Wall Press, 1-8.


Fraser, Nancy (2013) After the Family Wage: A Postindustrial Thought Experiment. In: Fortunes of Feminism: From State-Managed Capitalism to Neoliberal Crisis. Verso. London & New York. 111-35.


Kollontai, Alexandra (1909) Introduction to the Book The Social Basis of the Women's Question. In: Alexandra Kollontai: Selected Articles and Speeches, Progress Publishers, 1984. Retrieved from: https://www.marxists.org/archive/kollonta/1908/social-basis.htm. Last seen 2018. 10. 6.


Kollontai, Alexandra (1916) Preface to the Book Society and Motherhood. In: Alexandra Kollontai. Selected Articles and Speeches. Progress Publishers. 1984. Retrieved from: https://www.marxists.org/archive/kollonta/1915/mother.htm. Last seen 2018. 9. 22.


Norma C. Noonan (1988) Marxism and Feminism in the USSR. In: Women & Politics. Vol. 8. Nr. 1. 31-49.

 

German

Haug, Frigga (2018) Ein marginales Zentrum: Geschlechterverhältnisse sind Produktionsverhältnisse. Luxemburg. Vol. 2.

 


(기사 등록 20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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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널리 정착된 ‘재생산’이라는 개념 대신 여기서는 프리가 하우그(Frigga Haug)가 제시한 ‘살림(life-production)’을 사용하였다. 하우그는 가사, 양육, 감정 노동 등 인간 존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부불 노동은 단지 상품 생산의 지속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 아니라 그 자체 고유한 기능과 가치가 있다는 맥락에서 이러한 명명을 제안했다. 한국어로 옮길 때는 직역인 ‘생명 생산’보다 일상적 용법과 훨씬 가까워 특별한 지식 없어도 이해하기가 쉽고, 출산·양육·수유뿐만 아니라 가사 노동을 직관적으로 포함하고, 이러한 노동이 여성과 결부되어 평가절하되어온 역사적, 사회적 현실을 드러내주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으며, 한자어 중심의 지식 생산·유통 체계 속에서 보기 드물게 순우리말에 자리를 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여 ‘살림’이라는 번역어를 택했다.(Haug 2018)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