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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우리는 또 다른 위기를 향해 가고 있는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2. 25.

데이비드 맥낼리(David McNally)는 사회주의자이자 활동가이며 <글로벌 슬럼프: 위기와 저항의 정치경제학> , <시장의 괴물: 좀비, 뱀파이어, 세계 자본주의>를 포함한 수많은 책의 저자이다. 사회적 재생산 이론과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기여해 온 그는 휴스턴(Houston) 대학의 역사 및 경영학 교수이다. 대침체, 그 이후의 약한 회복, 체제 위기 신호의 증가, 그리고 그것이 사회주의자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그가 말한다.(번역: 두견) 

  

출처:

http://socialistworker.org/2019/01/28/are-we-headed-for-another-crisis?fbclid=IwAR1uxG9CANGL7Ktbrr-bthMRzrp1aKkw3ZfalDwENqcO3mrHuU-3BDSywRk

 




* 경제에 대한 경고의 신호가 전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또 다른 경기침체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가?

 

세계 경제가 또 다른 불황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타이밍은 예측할 수 없다. 정치적 발전은 그 과정을 가속화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 그러나 2010년 이래로 경기 확장의 주기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 다가오는 수축의 여러 징후들이 있다.

 

첫째, 수익 성장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을 투자자들이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지난 6개월 동안 미국 주식 시장에 나타난 실적이 있다. 둘째, 우리는 중국 경제의 급격한 둔화를 목격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해 중국의 실질 경제성장률이 2% 아래였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록 두 자리 수의 성장 시대는 대공황과 함께 끝났지만, 중국 경제는 여전히 매년 6퍼센트 이상 꾸준히 성장해 왔다. 경기 침체의 조짐에 겁을 먹은 중국 지도자들은 새로운 경기 부양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셋째, 작년 가을부터 산업 산출량이 위축되기 시작한, 유럽의 이른바 "기관차"인 독일 경제 전체에 경고등이 깜박이고 있다.

 

이번 경기 침체가 얼마나 심각할지는 경제적 데이터만으로는 예측할 수 없다. 이것에 결정적일 수 있는 경제와 정치적 요인들 사이에는 복잡한 상호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트럼프의 법인세 인하로 미국 경제는 추가적 부양을 받으면서 경기 침체로 향하는 경향을 어느 정도 늦출 수 있었다.

 

그러나 정치는 다른 방향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중국 간의 고조되는 무역전쟁은 경제 불황을 촉진하고 심화시킬 수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 관련 위기가 유럽의 경기 침체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곧 말하려고 하는데 보호무역주의의 새로운 물결은 전체 세계체제를 심각하게 손상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금융 시장에 또 다른 공황을 촉발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 부실 요인들이 있는데, 이것은 새로운 불황의 맥락에서 파괴적일 수 있다. 지난 경기침체 이후 세계경제에는 75조 달러의 부채가 증가했다. 이는 기업 부문의 1/3 이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 부채의 많은 부분이 자기자본 대비 높은 차입금 때문에 정크펀드 또는 거의 그것에 가까운 상태이다.

 

그 결과, 또 하나의 전면적인 금융 위기를 부르며 붕괴될 수도 있는 위태로운 기업 부채의 거대한 구조가 생겨났다. 몇몇 추정에 의하면 이것은 2008년의 마지막 붕괴 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채보다 더 큰 규모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새로운 휘발성과 경우에 따라 새로운 충돌을 가리키는 일련의 시나리오들이다.

 

*우리는 긴 회복 기간을 거쳤지만, 느릿느릿해진 성장이 지금의 특징이다. 왜 이런 것인가? 2008년의 대공황을 촉발시킨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2008년 대공황의 시작 이후 지난 10여년은 세계 경제에 매우 모순되는 시기였다. 그렇다, 2010년에 경제 회복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 많은 일시적 고장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지속돼 왔다. 그러나 투자율과 전체 성장률 면에서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부진한 '복구'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의 주요 이유는 세계의 중앙은행들이 2008~2009년에 대규모 불황 속으로 붕괴하는 것을 막는데 성공했던 것과 관련있다.

 

오늘날, 2008~2009년에 지배계급을 사로잡았던 죽음의 공포를 떠올리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당시에 월스트리트에서 독일까지, 아일랜드에서 아이슬란드까지 무너졌고, 그리스는 수십억 달러의 빚을 지고 채무불이행에 빠지는 것처럼 보였었다. 당시 행크 폴슨 미재무부 장관은 "나는 정말로 두렵다"고 측근에게 말했다. 그리고 메릴린치의 한 은행가는 "우리의 세상은 망가졌다"고 고백했다.

 

오로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국제적 은행 구제금융만이 지배계급을 그 상황에서 구해줄 수 있었다. 미국에서 1차 기업 구제책은 13조 달러라는 가격표를 달고 나왔다. 그리고 미국에서 추가적 구제금융과 세 차례의 "양적 완화"가 뒤따랐다. 중국과 유럽에서도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이어졌다. 10여년 동안, 기업의 비용을 줄여주기 위해서, 세계의 중앙은행들은 기록적일 정도의 낮은 수준으로 금리를 유지해 왔다. 일본에서, 이자율은 여전히 마이너스다. , 물가 인상률보다도 낮다.

 

중앙은행의 개입은 세계 금융시장의 전면적인 붕괴를 막았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그들의 "성공"이었다. 그러나 구제금융과 인위적인 낮은 금리가 초래한 또 다른 결과는 자본주의를 재활성화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필요한 자본의 구조조정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불황은 자본주의를 위해 유독성이지만 쌓인 문제를 청소해주는 기능을 제공한다.

 

그것은 가장 비효율적인 회사들을 파산시킴으로써 다른 회사들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도록 허용한다. 정리해고와 직장폐쇄를 통해 실업률을 끌어올려 노동자들의 임금을 끌어내리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경제 활동을 억제함으로써, 그것은 대출 비용을 낮추게 만든다. 불황으로 인한 모든 타격은 이와 같이 사업비용을 줄여주고 살아남은 기업들이 다시 투자를 시작하는 게 매력적이도록 만든다.

 

그래서 성장은 재개될 수 있지만 직장 폐쇄, 실직, 빈곤, 그리고 깨진 희망과 꿈들을 통해 엄청난 파괴와 인간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오늘날 아이러니한 것은 불황을 모면하게 해준 바로 그 금융정책이 또한 자본주의의 '창조적 파괴'를 흐지부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기록적인 저금리 덕분에 비효율적인 기업들이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수익성이 높은 회사들에게 새로운 시장을 열어줄 수 있었을 "청소"도 막아버렸다.

 

그것이 왜 신규 투자의 비중이 지난 9년 또는 10년 동안의 소위 "경제 회복" 국면 내내 두드러지게 낮았는지를 설명해준다. 이것의 다른 측면은 이윤 증대가 노동자들에 대한 쥐어짜기를 유지하는 것에서 크게 비롯했다는 것이다. 불안정한 노동 조건과 노조에 적대적인 사장들은 2008년의 대공황 이후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에 있어서 의미 있는 향상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새로운 부가 만들어져 1%에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것은 심오한 정치적 결과를 가져 왔는데, 나는 다시 이 문제로 돌아올 것이다.

 

*새로운 위기가 닥치면 국가 내부의 정치와 국가 간의 지정학에는 어떤 충격이 가해질까?


대불황으로 인한 후폭풍 - 특히 은행과 민간기업에 대한 대규모 구제금융이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임금이 삭감되면서 - 은 구제금융을 주도한 정치적 중심에 있던 정당들을 향한 분노의 폭발을 초래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40년을 거치면서 나타난 급진좌파의 약점 때문에 그 분노는 종종 좌파보다는 우파의 힘 쪽으로 더 이끌렸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히 좌파를 건너뛴 것은 아니었다.

 

미국을 예로 들자면, 정치적 불만은 티파티뿐 아니라 점거하라 운동으로도 즉각적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2015~2016년의 선거 기간 동안, 그것은 도날드 트럼프뿐만 아니라 버니 샌더스를 중심으로도 분명해졌다. 나라 안팎에서 계급 불평등 증가에 대한 좌절감이 두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더욱 더 양극화된 정치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강경한 우파의 성장을 위한 위험한 공간이 열리면서 좌파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

 

제레미 코빈이 영국에서 노동당 지도부로 등극한 것과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즈 오브라도르의 멕시코 대통령 당선은 둘 다 후자를 상징한다. 2016년에 약 6,000명의 회원으로부터 오늘날 55천명을 넘어선 미국 민주적사회주의자들(DSA)의 흥미진진한 성장도 그러하다. 국가 내부의 이러한 양극화는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쟁으로부터 동떨어져 벌어지지 않는다. 트럼프의 대중 무역전쟁은 후자의 한 증상이다.

 

그러나 경제적 보호주의 정책의 성장도 더 일반적으로 그러하다. 이것은 유럽과 북미에서 우파의 성장에 보탬이 되는 국수주의의 모든 유독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부끄럽게도, 개혁주의적 좌파의 일부에서는 보호무역주의와 반이민적 방향으로 그들의 정책을 조정하려고 하는 시도들이 있다. 그러나 우파의 무기로 우파를 물리칠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날 모든 곳에서 핵심적 도전 중에 하나는 좌파를 위한 어떤 진정한 전진도 결연한 반인종주의, 국제주의, 친이민 정치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달려있다.

 

* 이는 국제적으로 사회주의 좌파와 노동운동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가 직면한 도전과 위험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노동운동의 경우, 이 새로운 시기는 노조의 관행들을 급진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점거하라' 운동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을까? 그것은 그 운동이 전투적이면서 반역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여론 조사, 모금, 광고 캠페인 착수, 일부 정치인들에 대한 로비 활동 등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작하면서 바로 월스트리트 은행들의 현관 밖에서 공공 장소를 점거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수백만 명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왜 미국에서 교사들의 최근 파업 물결이 종종 성공적이었을까? 왜냐하면 그들 역시 반역적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에 그들의 대규모 파업은 불법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을 단념시키지 못했다. 그들의 행동은 주의회 의사당 건물에 대한 대규모 침입과 같은 전투적 전술들을 수반했다. 그들은 학생, 학부모 들과의 공동체적 연계를 쌓는 것에 기반을 두었고, 그들은 파업을 축제와 같은 사회적 격변으로 바꾸었다.

 

우리는 지금 1930년대 미국의 연좌파업의 시작과 비슷한 시기에 있는데, 당시 노동계급 운동은 활기차고 대결적이며 영감을 줬기 때문에 성장했다. 많은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뿌리 깊은 보수성은 완전히 막다른 골목이다. 그러나 새로운 스타일의 노동계급 조직화가 작동하고 있고, 그것은 확장되고 발전되고 심화돼야 한다. 그것은 청년 노동자들, 유색인종 노동자들, 여성 노동자들, 퀴어나 트랜스 노동자들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바꾸려는 사명에 의해 추진되는 노동조합주의여야 한다. 페미니즘, 반인종주의, 계급투쟁을 다시 연결하면서 또한 국제여성파업의 성공을 돌아봐야 한다. 파업은 노동조합에 의해서만이 수행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관성적 회의론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억압받는 모든 사람들의 대대적 분출로 나타나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대중 파업"에 대한 묘사를 망각하는 것이다.

 

대담하고 혁신적이게도 국제여성파업은 #MeToo운동과 교사 파업으로 거대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99%를 위한 페미니즘"의 정치와 실천을 구체화했다. 급진좌파에게 가장 큰 위험은 이 시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40년의 패배와 후퇴는 혁명가들을 매우 심각하게 사기저하시켰기 때문에 일부 좌파들은 그것을 좌파적 순결성의 표시로 보고 그들의 주변성을 이상화해 왔다.

 

그러나 정치는 영광스러운 고립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운동과 투쟁에 관한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받아들인 모든 내향화된 습관들을 깨야하는 순간이다. 우리 자신들끼리만의 대화에 만족하려는 모든 유혹들에 맞서야 할 순간이다. 사회주의를 다시 한번 대중 정치의 일부로 만들겠다는 우리의 관점을 세워서 좌파의 가능성과 전망을 넓혀야 한다.

 

물론 2세대에 걸친 패배를 지나서 사회주의 좌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과정은 모순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원칙적인 문제에 대한 타협을 통해 영향력을 구하려는 실수와 유혹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치적 교육은 좌파의 갱신을 위한 어떤 관점에서도 중심적이어야 할 것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을 개발하려면, 사람들은 진정한 반자본주의의 역사와 이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의 운동에서부터 국경을 향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움직임까지, 억압받는 사람들의 모든 투쟁에 대한 비타협적인 전념의 - 마르크스주의 반억압 정치에 대한 헌신을 요구한다.

 

* 당신은 미국과 캐나다 좌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는가?

 

각각 정치적 맥락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이들 두 국가의 좌파를 위한 구체적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더 어렵다. 캐나다에서는 퀘벡의 경우가 가장 희망적이다. 얼마 전의 대중적 학생파업이라는 지속적인 유산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의회 의원도 다수 거느린 좌파 정당인 퀘벡 솔리데어(Québec solidaire: QS)도 있다. 몇몇 정치적 문제와 도전에도 불구하고 QS의 존재는 퀘벡의 사회 생활에서 좌파정치에 대중적 존재감을 준다.

 

그곳을 넘어서면, 공식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캐나다에서 좌파는 신민주당(NDP)이라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난관에 봉착해 있다. 이 당은 어떤 의미있는 좌파의 갱신도, 최선을 다해 바퀴를 돌리는 조직화된 노동운동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15달러와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같은 몇몇 확고한 현장 캠페인들이 있고, 이주노동자 행동주의를 중심으로 유망한 주도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급진적 사회주의 정치로 향하고 있는 부류의 사람들은 정치적 행동과 표현을 위한 수단이 부족하다. 이것은 이 지역의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이, 상황이 허락할 때 상당히 큰 무대에서 작업하기 위해 활동가 집단, 읽기 모임, 사회주의 단체들의 준비를 도우며 조직화를 위한 준비 모드로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보잘것없는 첫걸음의 단계에 있다고 한다면, 그런 점에서 미국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2008년 대공황 직후의 시기에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운동과 점거하라운동과 연관된 대단히 중요한 투쟁의 상승이 나타났다. 그 다음에 버니 샌더스의 대선 캠페인은 구제금융 이후 이어진 분노의 상당부분을 사로잡아 사회주의 사상을 중심으로 묶어낼 수 있었다. 이것은 대중 정치에서 밀려났던 사상이 지금 다시 끼워넣어지는 변혁의 순간이었다.

 

더 나아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사회주의와 동일시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그들 정치의 기준점으로 삼기 시작했다. 나의 사회주의 개념이 샌더스의 버전보다 훨씬 급진적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의 선거운동이 미국에서 모든 사회주의 정치에 대한 청중을 대대적으로 확대시켰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는다. 물론, 과거의 방식에 얽매인 사람들은 이러한 새로운 상황의 출현을 기회로 이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새로운 가능성에 조응하려는 사람들은 미국에서 사회주의를 대중운동으로서 재건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길을 모색해야만 한다. 분명히, 미국 사회에서 DSA의 성장은 새로운 정치적 순간에 대한 가장 명확한 왼쪽 표현이다. 그들은 ICE에 대항하여 강력하게 동원했고, 파업 중인 교사들과 연대를 건설했고, 상당히 설득력 있는 선거운동을 전개했고, 수만 명의 다른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지표가 됐다.

 

미국에서 이처럼 수만 명에 이르는 사회주의 조직을 갖게 된 것은 새로운 행동주의와 조직화의 시대로 가는 중대한 전진을 의미한다. 내가 말했듯이, 미국에서 이런 사회주의의 재탄생과 관련된 수많은 모순들이 있을 것이고, 이것들은 때때로 날카로운 논쟁을 필요로 할 것이다. 더구나 이 모든 발전은 아직 미숙하고 취약하다.

 

그러나 새로운 좌파의 건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DSA와 그 지지자들에게 깊숙이 관여해야 한다. 설사 그들이 그 조직에 가입하지 않기로 선택했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뉴레프트의 상승기 동안에 그랬듯이, 미국 좌파의 성장이 세계 모든 곳의 급진좌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위험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시기이다. 그람시(Gramsci)의 말을 다르게 바꾸어보자면, 새 좌파는 여전히 "야수의 시간" 속에서 탄생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우리는 그 야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고, 그들은 새로운 경기침체의 시작과 함께 더 포악하게 그들의 추악한 머리를 치켜들 것이다.

 

그러나 길고 암울한 세월이 흐른 후, 다시 한번 좌파에게 생명력이 주어졌다. 진정한 사회적 세력으로 태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좌파가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희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행동주의, 교육, 사회주의적 조직화가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미래에 핵심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어줘야 한다.


 

(기사 등록 201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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