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안희정 판결과 99%를 위한 페미니즘
체육계 미투에 이어진 안희정 2심판결은 1년전 이맘때부터 본격화했던 미투운동의 의미와 성과를 기념하기에 아주 시의적절한 이벤트가 됐다. 미투는 전세계적인 운동이기도 했다. 이 운동은 성폭력이 얼마나 사회 곳곳에 널리 퍼져있었는지 만이 아니라 그것에 맞설 수 있는 여성, 소수자들의 힘도 보여줬다.
그것만이 아니다. 지금 미국에서 전국적 파업 물결을 주도하는 것은 전통적 산업이나 남성, 백인들이 아니다. 교육, 호텔, 보건의료 부문에서 노동계급의 재구성을 주도하는 것은 주로 여성과 유색인종들이다. 쇠락한 공업지역의 제조업 백인 노동자들이 인종주의에 취약하다는 말들이 나오던 상황에서, 그 지역의 여성, 다인종 노동자들이 치고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나라에서도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최근 민주노총의 총력투쟁이나 파업 집회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돌봄, 서비스 등에서 일하는 여성, 비정규직들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체제에 맞서며 계급투쟁을 주도할 전략적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
나아가 우리는 이들의 노동이 보이는 부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안다. 임금이나 보상도 없이 사회 곳곳에서 이뤄지는 ‘보이지않는 노동’, ‘그림자노동’, ‘돌봄노동’, ‘감정노동’은 자본주의와 우리의 삶의 유지와 재생산에 필수불가결하다.
국제적으로 '99%를 위한 페미니즘'을 말하는 급진좌파나 페미니스트들이 임금만이 아니라 보육, 교육, 의료, 주거, 세금, 환경, 인종주의, 성차별, 성폭력 모두가 우리의 요구이자 투쟁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 나라에서도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어떤 요구와 방향으로 힘을 모을지에 있어서 이런 문제의식이 반영돼야 할 것 같다. 얼마전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는 다행이 유회돼지 않았고 12시간 가까운 치열한 토론의 모습도 보여줬다.
하지만, 경사노위 참가 여부가 핵심인 것처럼 됐고, 별로 열린 토론같아 보이진 않았고, 그것마저 확실한 부결도 아닌 어정쩡한 결과가 됐다. 정파 갈등, 지도력 부족, 문정부의 정책방향과 경사노위의 구실에 대한 여전한 의구심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계속 여기 머문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직도 노조 울타리 밖에 있는 저 수많은 사람들을 주체로 세우고 함께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촛불이 문정부를 넘어서 새로운 세상과 미래로 나가기 위해서 어떤 요구가 필요한지, 그 과정에서 사회운동이 대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서로 귀를 열고 다양한 의견들을 존중하며 진지하게 토론하고 함께 힘을 모으며 답을 찾아나가길 기대한다.
● 성평등과 ‘역차별’에 대한 어긋난 토론
성평등과 역차별 문제를 다룬 MBC 100분 토론을 뒤늦게 봤는데 이준석, 정영진 씨가 나와서 망쳐놓은 토론회였다. 비아냥, 말끊기, 끼어들기 등 토론자세부터 엉망이었다. 이런 주제로 이런 사람들을 섭외할 때부터 실패는 예정돼 있었으니 방송사의 책임도 크다.
두 사람은 사실상 여성 차별은 지나간 과거 일이고 기성세대의 책임이며, 지금 청년남성들은 오히려 역차별당하고 있다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여성이 채용, 승진, 임금에서 받는 차별과 비정규직의 다수가 여성이고, 해고도 먼저 당하는 현실에 눈감았다.
고위직에 여성이 극소수인 것을 지적하면, 은행과 초등학교는 여성이 고위직에 많다고 나왔는데, 그 분야에서도 전체 종사자의 70%가 여성인데 고위직엔 여전히 과반수 이상이 남성인 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고민하지 않는 눈치였다.
진학, 취업 등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차별뿐 아니라, 일상에서 여성이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게 만드는 공기처럼 퍼져있는 차별은, 왜 돌봄과 재생산의 부담이 여성에게 전가돼야 하는지는 전혀 관심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그냥 각자 경쟁하도록 나두면 돼지 왜 차별시정 조치가 필요하냐고 했다.
이런 논리와 선동이 많은 청년남성들이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갖도록,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도록, ‘각자도생과 공정한 시험’을 최고의 잣대로 삼도록 몰고있을 것이다. 이 계층에서 문정부 지지율이 최저인걸 넘어서, 많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보수적 응답이 높아지고 있는 게 진짜 문제다.
100분 토론에서 가장 기막힌 순간은 이, 정 두 사람이 청년남성이 처한 ‘역차별’을 강조하기 위해 고 김용균 님의 사망을 끌어들일 때였다. 이윤체제와 그 지배자들에게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묻고 해결을 요구하기보다, 페미니즘과 여성들을 공격하기 위해 이용하는 전형적인 꼴불견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이 사회에서 산재는 보통 개인의 부주의와 책임으로, 우발적 사고로, 기껏해야 개별 작업장의 문제로 접근된다. 이번에 김미숙 님(김용균 어머니)의 투쟁의 그토록 중요했던 건 이 모든 걸 넘어 민영화, 외주화, 비정규직화 등 사회구조적 문제로 접근하고 해결책을 요구했다는 데 있다.
두 사람을 반박하면서 최태섭 작가는 그런 측면을 지적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가부장제와 남성성의 문제도 지적했다. 남성을 군대와 작업장으로 동원하면서 여성에게 돌봄을 전가하는 구조 속에 강요되는 ‘남자다움’이 위험을 방치하는 작용도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 또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구조 속에서 원인을 찾는 진지한 접근이고, 왜 남성 노동자들이 더 많이 위험에 노출되는지 고민하게 해주는 의미있는 문제제기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도 이준석은 최태섭 작가의 논지를 왜곡해서 공격했을뿐 아니라, 이후에도 온라인에서 수많은 공격들이 쏟아진 거 같다. 글과 책을 통해 페미니즘의 대의를 방어하고, 청년남성들의 불만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는 시도에 맞서면서 최태섭 작가가 계속해서 공격과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 용기를 지지한다.
● 5.18 망언과 우파의 미래
자한당 김진태 등이 지만원을 초대해서 막말의 판을 깔아준 사태는 정말 경악하고 분노해 마땅할 일이다. “전두환은 영웅”, “광주는 북한의 앞마당” “5·18은 폭동”,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 그날 현장에서 항의하러 갔던 5.18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당한 모욕과 혐오발언들은 더 극단적이었다고 한다. 눈 앞에서 그런 혐오와 증오의 표정과 발언들에 직면했을 때 무너지는 가슴의 상처와 고통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자한당 일부에서 나온 돌출적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 행사를 주최한 의원 중 하나는 자한당의 원내대변인이고, 자한당의 요구 때문에 5·18 진상규명 특별법에 ‘북한군 개입 여부’가 조사 대상으로 포함돼면서 이번 같은 공청회가 가능할 근거가 마련됐던 것이다.
유럽의 일부 나라에서라면 이런 일은 혐오표현과 ‘역사부정죄’로 규제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 차별금지법도 없는 이 나라에서는, 저런 혐오발언들이 제1야당 의원들의 입에서 나오고, 국회도 저런 행사를 허용해주고선 뒤늦게 비판하고 있다. 5.18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잘못된 과거와 적폐 청산이 아직 멀었다는 것이 너무나 극명하다.
지난 주말에 고 김용균 노동자 영결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른 동지와 태극기 집회를 좀 더 자세히 관찰해보았는데, 더 심한 막말들이 아주 공공연하게 펼쳐지고 있을 뿐 아니라, 잘 조직된 그 행진 규모가 끝이 안보일 정도였다. 주말마다 이런 막말과 혐오발언들을 쏟아내며 광화문과 종로 일대를 해방구처럼 휘젖고 있는 것이다. 3.1절 때는 더 큰 규모로 총집결한단다.
이 태극기 부대는 근래 대규모로 자한당 ‘입당운동’을 벌이고 있고, 그 때문에 홍준표, 황교안 등이 더욱 막나갈 뿐 아니라 김진태같은 자가 더 목소리 높이고 있는 듯하다. 제1야당인 자한당이 가로막는 한 김진태 등의 제명은 불가능하고, 오히려 김진태는 지지자 결집을 위해 잡음을 즐기는 듯 보인다. 그런데도 자한당 지지율이 계속 상승하고 있는 것도 매우 불길한 조짐이다.
한국사회의 부와 권력을 독점해 왔던 핵심 세력은 그 사회경제적 기반이 존재하는 한 그렇게 쉽게 파국과 몰락으로 가지 않는다는 게 거듭 드러나고 있다. 구조는 그대로 남은채 흙수저 혜나만 죽고 김주영만 가지치고, 금수저 가족들은 화해, 화목으로 갔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결말이 더 현실적이고 타당해 보였던 이유도 비슷하다.
물론 이들이 지금의 계급적, 세대적, 지역적 기반을 더 넘어서 확장할 가능성은 아직 높지 않다는 게 지난 주말 광화문에서 다시 느낀 바다. 하지만 난민, 청년남성, 영세자영업, 탈원전 문제 등에 대한 일부 우파의 새로운 접근과 선동을 보면 위험성은 여전하다.
● 트라우마와 치유
얼마전 경찰청이 쌍용차, 용산 살인진압에 동원됐던 경찰들에 대한 트라우마 치료에 나선다는 보도를 보면서 지난해 봤던 책과 관련 내용이 떠올라 찾아봤다.
“20대를 돌아보면서 여러 가지 후회되는 것들이 있어요.... 좀 더 정직하게 질문하고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예를 들어, 산업재해로 자살한 노동자를 추모하는 집회에서 전경들과 몸싸움을 할 때에, 이제 막 20대 초반인 전경들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군대에 끌려와 우리와 부딪쳐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시위를 진압하는 전경으로 복무해야 했던 젊은이들이 겪었을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상처에 대해서 직업병 역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꼭 연구해보고 싶어요. 세상에 상대방을 때리고 상처를 주면서 아무런 죄책감없이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되겠어요. 정작 그 싸움으로 이득을 본 사람은 노동자도 전경도 아니잖아요.”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이 부분에서 공감갔던 게 나도 경찰을 무조건 악마화해서 증오하던 치기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 속에 제복 안에 있는 개인의 인격이나 마음은 지워져 있었다. 국가와 자본이 경찰을 통해서 자행한 일들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번 소식을 큰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국가폭력의 피해자와 주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여기에는 분명한 선행조치들이 있어야 한다.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회복조치들이 그것이다.
모든 트라우마는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바로 세워져야 치유될 수 있다. 특히, 김석기같은 사람이 ‘지금이라도 똑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하면서 국회의원 자리를 지키는 상황에서는 피해자든, 경찰이든 그 누구의 트라우마도 제대로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 다가오는 이재용 대법 판결
얼마전에도 삼성본관 앞에서 삼성 피해자들이 모여 규탄집회를 열었다. 삼성해복투, 과천철대위, 반올림, 노동당, 정의당 등이 함께했고, 특히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삼성생명 암보험 피해자들이 2백여명이나 참가했다. 그래서 삼성의 피해자인 해고노동자와 반올림과 암보험 피해자들이 함께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아름다운 연대’를 보여주었다.
지금 ‘전두환은 영웅이고 5.18은 폭동’이라는 망언이 나오고, 그런 망언을 한 김진태가 자한당 대표 출마까지 한 상황은 역사부정, 촛불부정의 현실을 보여주는데, 이건 국정농단의 몸통, 사법농단의 공범인 이재용이 처벌받지 않은 것과도 관련있다. 반면 박근혜 집단이 종북으로 몰았던 이석기 의원은 6년째 감옥에 있고, 3.1절에도 석방되지 못할 거라 한다.
요즘 이재용은 무슨 국가지도자라도 되는양 투자유치한다며 국내외를 돌아다니고 있고, 언론들은 그걸 띄어주고 있다. 드라마 ‘킹덤’에서 후계문제 처리를 위해 죽지 않는 좀비가 돼 백성들의 괴롭히는 조선왕가의 모습이 이건희, 이재용 일가를 연상케 한다는 반응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러다가 다가오는 대법 판결에서도 이재용이 면죄부를 받으면, 나중엔 ‘이재용은 영웅이고 촛불은 폭동’이란 망언도 나올지도 모른다.
지난 연말에 안희정 법정구속같은 사이다가 다가올 대법 판결에서 나와야 한다. 안희정이 위력으로 성폭력을 저질렀다면 이재용은 위력, 재력, 권력으로 국정농단, 사법농단, 노조파괴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른 책임자다. 이재용 재구속을 위해서 삼성의 피해자들이 앞장서겠다고 결의하는 지금 더욱 더 많은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
(기사 등록 2019.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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