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서평] 혁명의 동역학

닐 데이비슨의 『부르주아 혁명은 얼마나 혁명적이었나?』에 대한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서평[각주:1]

 

알렉스 캘리니코스

번역 이재빈

 

[편집자 주] 이 글은 닐 데이비슨(Neil Davidson)의 최근 저작인 『부르주아 혁명은 얼마나 혁명적이었나?(How Revolutionary Were the Bougeois Revolutions?)(Haymarket, 2012)를 알렉스 캘리니코스(Alex Callinicos)가 서평한 것이다. 원문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International Socialism)> 137호에 수록되었다. (http://www.isj.org.uk/?id=869) 최종 교정교열은 서범진이 했다.

이 서평을 번역해 소개하는 것에 대해 얼마간의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이 서평도 그렇고, 이 서평의 대상이 된 닐 데이비슨의 책 『부르주아 혁명은 얼마나 혁명적이었나?』도 다수의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만한 쉬운 내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보다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당 주제에 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이론적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해야 솔직한 일일 것이다. (이론적 배경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서범진이 작성한 위 책에 대한 간략한 서평http://pero.kr/30과 영국혁명의 성격에 대한 논쟁을 정리한 글http://pero.kr/17을 참고할 수 있다.) , 이 글이 지금 당장의 전술적 과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논점을 포함하고 있는 것 역시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서평이 담고 있는 논점의 이론적정치적 중요성은 결코 작지 않다.

이 서평에서 인용되는 캘리니코스의 몇 편의 논문과 데이비슨의 『부르주아 혁명은 얼마나 혁명적이었나?』는 큰 틀에서 같은 목적을 위해 작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수정주의 흐름에 맞서 마르크스주의의 부르주아 혁명개념을, 나아가 역사유물론을 이론적으로 방어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역사 발전의 동력을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 그리고 이를 대변하는 계급투쟁으로 파악한다. 봉건적 생산양식이 낳은 모순은 낡은 생산관계에 이해관계를 가진 봉건계급과 새로운 생산관계의 확대를 원하는 자본가 계급과의 투쟁을 낳았다. 그리고 혁명을 통한 자본가 계급의 승리가 자본주의를 이 세계의 지배적 생산양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런 모순과 계급투쟁이 자본주의에서도 반복되어 결국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포스트모던 역사학은 이런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관점을 단순하고 조야한 것으로 비판한다. 그들은 역사를 거시적이고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 무엇보다 사회를 경제에 기초한 하나의 법칙과 경향성으로 설명하는 것을 환원론이라고 비판한다. 그런 맥락에서 그들은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개념에도 도전한다. 프랑스 혁명과 영국 혁명 등은 봉건 계급에 맞선 자본가 계급의 투쟁이자 승리가 아니라, 그저 내전이거나 종교 분쟁, 지역 분쟁 등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만일 이 주장이 옳은 것이라면, 마르크스의 역사 유물론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며 사회주의 혁명이나 사회주의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이라는 비전 역시 공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캘리니코스와 데이비슨은 이런 수정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역사유물론의 과학성을 옹호하기 위해, 기존의 역사유물론이 가지고 있던 이론적 난점을 해결하고 이를 보완 및 발전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과물이 바로 이 서평에서 언급되는 부르주아 혁명에 대한 결과주의적 접근이다.

그러나, 닐과 알렉스의 입장이 서로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이 서평은 두 사람의 입장 차이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지는 않지만, 대략의 차이를 언급하고 캘리니코스가 자신의 입장에서 데이비슨을 비판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이 서평이 이론적정치적으로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 두 사람 사이의 차이에서 기인하는데, 그 차이 중 가장 대표적인 논점은 바로 트로츠키의 영구혁명 이론에 대한 것이다. 데이비슨은 오늘날 전 세계 국가에서 부르주아 혁명의 과제(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확립)가 대체로 완수되었고 보며, 따라서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혁명(예컨대 아랍혁명)은 대체로 생산양식의 이행과 무관한, 정치권력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정치혁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캘리니코스 역시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음에는 인식을 같이 하지만, 그럼에도 자본주의의 불균등 결합발전으로 인해 일부 자본주의 국가들에는 정치 모순과 경제 모순이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캘리니코스는 아랍혁명이-비록 그 미래가 결정되어있지는 않으나-가능성 면에서 트로츠키가 제시한 영구혁명의 양상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이런 입장 차이는 변혁 전략에서의 차이, 구체적으로는 아랍 혁명에 대한 전망과 전술 차이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서평이라는 이 글의 성격 상, 캘리니코스가 데이비슨의 입장을 독자들에게 상세하게 전달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일부 아쉬움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 글을 통해 아랍혁명의 전망과 영구혁명 이론의 유효성에 대한 논쟁이 영국에서 대략 어떤 구도로 벌어졌는지 정도는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정치를 이론과 연결시켜 보다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은 장중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일단 책의 겉모습 자체가 그렇다. 700쪽에 달하는 본문과 70쪽의 주석, 70쪽의 참고문헌, 멋진 디자인이 모두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물품으로서 책의 가치가 점차 쇠락해가는 현실 속에서 이 책의 출판 자체가 큰 성과다. 저자와 출판사 모두 찬사 받아 마땅하다.) 작업 자체도 훌륭하다. 책의 내용은 지적이며 뛰어난 역사적 시각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책 제목에서 던진 질문처럼 닐 데이비슨은 어렵지 않게 분석적인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모든 관점의 역사가들을 통틀어 보기 드문 수준의 박식함을 드러낸다. 두터운 분량에 겁먹은 독자들이라도 닐의 명료하고 유창한 설명이 풍부한 유머와 어우러지는 것을 보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가 닐의 스코틀랜드 역사를 다룬 두 권의 책과 다른 논문들을 읽고 그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서의 역량에 의문을 품었더라도, 그런 의문은 이제 이 책의 출간으로 말미암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자본을 위한 혁명

 

그렇다면 닐이 다루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저자가 책에서 보여준 것처럼,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개념은 일찍이 17세기 영국 혁명과 특히 18세기 스코틀랜드와 프랑스의 계몽주의에 의해 출현했지만, 궁극적으로는 1848년 혁명 이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정리를 통해 나온 결과물이다. 184812월에 마르크스는 당시의 소심한 프로이센 부르주아지들을 멸시하면서 더 혁명적이었던 그들의 선배들과 비교했다.

 

* 프로이센의 3월 혁명은 1648년의 영국 혁명이나 1789년의 프랑스 혁명과 혼동되어선 안 된다.

* 1648년에 부르주아지는 왕정, 봉건 귀족, 교회에 맞서 근대적 귀족들과 동맹을 맺었다.

* 1789년에 부르주아지는 왕실과 귀족, 교회에 맞서기 위해서 민중과 동맹했다.

* 1789년 혁명은 (적어도 유럽에서는) 1648년 혁명을 모범으로 삼았다. 1648년 혁명은 스페인에 맞선 네덜란드인들의 봉기를 모델 삼았다. 두 혁명은 한 세기 전의 사건들을 따라 발전된 것이다. 이것은 단지 시간적인 문제가 아니라 [혁명의] 내용상으로도 그렇다.

* 두 혁명에서 부르주아지는 진정으로 운동을 지향하던 계급이었다. 프롤레타리아 및 중간계급의 비부르주아 계층들은 부르주아지의 이와 같은 방향성에 거리를 두고 있었거나, 그들 자신을 독립적인 하나의 계급 내지는 계급 내의 한 부문으로 형성시키는 데에 실패했다. 1648년과 1789년의 혁명은 단지 영국 혁명 혹은 프랑스 혁명에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유럽식 혁명을 일으켰다. 그들은 옛 정치적 질서들 안에 있는 사회의 특정한 계급의 승리를 대표하지 않았다. 그들은 새로운 유럽사회의 정치적 질서를 선포했다. 이 혁명들에서 부르주아지는 승리를 거뒀는데, 이는 곧 당시 새로운 사회질서의 승리였고, 봉건적 질서에 맞선 부르주아지 질서의 승리였으며, 영주제에 맞선 국민국가의 승리, 길드에 맞선 자유경쟁의 승리, 장자상속에 맞선 균분상속의 승리, 영주의 토지지배에 맞선 지주의 자본지배의 승리, 미신에 맞선 계몽의 승리, 성씨(姓氏)에 맞선 소가족의 승리, 영웅들의 게으름에 맞선 산업의 승리, 중세적 특권에 맞선 부르주아 법질서의 승리였다.[각주:2]

 

부르주아 혁명들은 자본주의적 지배를 확립하는 사회적 전환이었다. 마르크스는 그가 살던 당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개념을 정식화했지만, 동시에 그의 역사이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도 이 개념을 활용했다. 위 인용된 글을 쓰기 전에도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와 『철학의 빈곤』에서 부르주아 혁명을 명확하게 정리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이론은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개념을 필요로 했다고 닐은 올바르게 말하는데, 의아하게도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않는다.[각주:3] 내가 보기에 그 개념은 두 가지 이유에서 필요했다. 첫째, 이론적 차원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의 변화가 차츰차츰 일어났다. 그러나 정치적 변화는 훨씬 더 극적이고 집중적으로 이뤄져서 종국에는 오늘날 국가 체제를 만들어냈는데, 이 둘 사이의 관계를 개념화하기 위해서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개념이 필요했다. 둘째, 정치적 차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살아있던 당시에도 국면의 전환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한 편에는 19세기 유럽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던 귀족적 구체제의 지배에 맞선 부르주아들의 혁명이 존재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으로 인해 사회주의 혁명의 가능성이 점차 형성되고 있었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혁명을 구분하기 위해서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개념이 필요했다. 닐은 게오르그 루카치가 이 두 번째 측면을 훌륭하게 설명한 문단을 잘 인용해놓았다.

 

마르크스의 이론적 성취 중에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을 명확하게 구분했던 것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구분은 전적으로 실천적이고도 전술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그의 동시대인들이 미숙하고 망상적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이러한 구분만이 오직 진정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요소들을 그 시절의 일반적인 혁명 운동들 사이에서 구분하여 인식할 수 있는 방법론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각주:4]

 

다시 말해,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개념은 이론적인 수단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수단으로서 필요했다. 그러나 1848년 혁명이 시작되었을 때 부르주아지는 마르크스가 묘사한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선배들과 같은 영웅적 구실을 그만둬버렸다.[각주:5] 닐이 철저하게 살폈듯이, 이런 현실은 20세기 초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풍부하고 복잡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그리고 그 가장 중요한 결과물이 트로츠키의 영구혁명 이론이다. 그는 세계 자본주의 경제가 불균등하게 결합발전하면서 후진적인사회들 안에서도 발전된 산업 자본주의가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전투적인 노동자들의 운동이 부상할 수 있다고 보았다. 노동자 투쟁에 대한 두려움과 해외 자본에 대한 의존성은 이런 나라들의 부르주아지가 구체제에 맞서는 데에 훨씬 더 소심해지도록 만든다. 하지만 발전성과 후진성의 결합은 민주주의적 요구를 담은 투쟁을 촉발시킨다. 이런 운동 자체가 이론상 자본주의의 존재를 위협하지는 않지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자들의 지도력이 이와 결합될 수도 있는데, 이 때 부르주아 혁명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더 나아갈수 있다. 1917년 러시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처럼 말이다.

트로츠키가 최초로 러시아 바깥의 사회에 이 이론을 제시했던 계기는 1925년에서 1927년까지 발발한 중국혁명에 관한 코민테른 내부 논쟁이었다.[각주:6] 그리고 스탈린주의적 정설은 트로츠키의 이론을 부정한 기초 위에서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걸쳐 정립되었다. 스탈린주의의 설명 체계는 오늘날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간주되는 혁명의 국면을 칼같이 구분하는 것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 나선 노동계급은 반드시 진보적인부르주아지와 동맹을 맺어야 한다. 이것은 1917년 이전 러시아 혁명 운동 안에서 멘셰비키가 옹호하던 주장이었다. (레닌과 볼셰비키는 보다 복잡한 입장에 서있었다. 그들은 트로츠키의 이론을 거부하면서도, 노동자 권력 창출의 바탕이 될 아래로부터의 부르주아 혁명 과정에 프롤레타리아트가 나서서 소작농과 쁘띠 부르주아지를 지도할 수 있다고 봤다.) 스탈린주의적 전략에 따라 형성된 부르주아 혁명의 개념은 사실 1914년 이전의 제2 인터내셔널이 표방한 정설 마르크스주의에 단초가 담겨 있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역사가 명확한 단계를 거치며 발전해나간다는 방식의 사고가 당연시되어 있었다. 닐은 조르쥬 르페브르와 크리스토퍼 힐처럼 저명한 좌파 역사가들에 의해 다듬어진 이런 관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16세기부터 도시 자본가 계급은 유럽 봉건제 하에서 자신들을 발전시키기 시작했고, 점차 새로운 사회적 형태의 경제적 기구들을 깔아놓았다. 그들의 경제적 비중에도 불구하고 이 자본가들은 시골의 봉건적 지주들에 의해서 사회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간주되었으며, 절대주의 국가는 이들에게 정치적 권력을 허용하지 않았다. …… 봉건적 규제의 손아귀로부터 자본주의를 풀어놓기 위해서 절대주의 국가는 극복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자본가 계급은 인구 구성 상 여전히 소수였다. …… 혁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계급적 연합으로 추동될 수밖에 없었다.[각주:7]

 

2차 대전 이후 부르주아 혁명에 대한 이와 같은 개념은 수정주의로 알려지게 된 일군의 지속적인 지적 공격에 직면했다. 알프레드 코번, 프랑수아 퓨레, 콘라드 러셀 등 주류 역사학자들은 자신들이 영국과 프랑스 혁명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계에서 이 효과는 전적으로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개념의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것이었다. 닐이 쓴 것처럼,

 

20세기 말에 이르면 기존의 정설이 다음과 같이 정리되는 새로운 합의로 대체되게 된다. 소위 부르주아 혁명에 앞서서 부르주아지는 부상하지않았고, 심지어 봉건 영주와 구분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소위 부르주아 혁명기에 부르주아지는 운동의 전위가 아니었으며, 심지어 그 반대편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혁명 이후에 부르주아지는 권력을 잡지 못했고 심지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국가에 대한 통제력마저 제거되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혁명들은 자본주의의 출현 내지는 강화와는 관련이 없었다. () 기존의 설명을 대체하여 수정주의자들은 이런 혁명들이 (설혹 진정 이것이 혁명이라 불릴 수 있다면) 그저 혁명처럼 보일 뿐이거나 참가자들이 특정한 현상을 혁명이라고 불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현상은 엘리트 사이의 자리다툼, 종교적 신념과 의례를 둘러싼 차이, 혹은 지역 자치를 방어하기 위한 운동의 표현이라는 것이다.[각주:8]

 

부르주아 혁명에 대한 정설 개념이 도전에 직면해야 했던 현상 자체는 특별히 놀랍지 않다. 이런 논란은 기존의 개념이 지닌 분석틀과 실제 현상의 불일치 때문에 벌어진 것이기도 하고, 냉전이라는 구체적 맥락 속에서 수정주의자들이 득세했던 덕이기도 하다. 다소 의외인 것은 마르크스주의 조류의 일부인 학자들조차, 지난 20년간 수정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주의적 부르주아 혁명 개념에 도전해왔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마르크스주의자들(Political Marxists)로 지칭되는 일군의 사람들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 대한 밥 브레너의 해석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여러 의미에서 이 그룹의 이론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엘렌 메이크신즈 우드는 자본주의를 극단적으로 협소한 의미에서 정의했는데, 그에 따르면 사실상 17~18세기 영국에서 출현한 일종의 농업적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가 생겨날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각주:9] 브레너의 암시를 따라가면서, “정치적 마르크스주의그룹은 부르주아 혁명 개념에도 도전했다. 조지 콤니넬은 현대 마르크스주의자가 집필한 최악의 책이라고 할 만한 저서를 썼는데, 그는 마르크스 역사이론의 어설픈 모방자들에게 지지를 받은 프랑스 혁명에 대한 수정주의 이론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주었다. 수정주의 입장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은 지배계급의 내부투쟁이며 자본주의는 18세기 프랑스에 존재하지도 않았다.[각주:10] 우드는 이를 보다 일반화한 비판을 전개한다.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개념은 몇 가지 이유 때문에 혼란스럽다. 혁명을 자본주의 발전의 필요조건으로 봐야할까? 아니면, 혁명은 그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하는 구실을 한다고 보아야하는 것일까? 자본주의 이전에 혁명이 일어나서 혁명이 자본주의를 창출해내는 것이라고 봐야하는가, 아니면 반대로 자본주의의 존재가 혁명을 만들어 낸다고 해야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부르주아 혁명을 자본주의 이행의 결정적 시점이었다고 간주하지만, 어떤 부르주아 혁명 개념도 자본주의의 출현 자체를 설명하지는 않는다.[각주:11]

 

부르주아 혁명을 다시 생각하기

 

우드의 주장은 다른 두 가지 문제를 섞어놓은 것으로, 그다지 날카로운 제기가 아니다. 그는 한 생산양식에서 다른 생산양식으로의 획기적인 [경제적] 전환이라는 문제와 새로운 경제 체제의 우위를 보장하는 정치 구조의 재편이라는 문제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마르크스는 결코 자본주의의 출현을 설명하기 위해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인 적이 없다. 그는 자본론 1권의 8편에서 [사회구성체 이행의] 복잡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더 큰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반박이 곧 부르주아 혁명의 정설 이론에 결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설 이론은 혁명의 주체와 결과의 문제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 부르주아 혁명은 부르주아가 일으킨다는 점에서 부르주아 혁명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그런 명칭을 가질만한 것인가? 정설 이론의 지지자들은 본질적으로 둘 다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1960년대 이래로 몇 명의 저자들은(예를 들면 트로츠키의 전기를 쓴 아이작 도이처(Isaac Deutscher), 포스트-마르크스주의가 되기 전까지 뛰어난 역사가였던 개러쓰 스테드만 존스(Gareth Stedman Jones), 후기의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 현대 독일을 전공하는 데이비드 블랙번(David Blackbourn)과 조프 엘리(Geoff Eley) ) 이론적 재검토를 제안하면서 어떤 혁명이 부르주아 혁명으로 불릴만한지를 판별하는 여부는 [혁명의 주체가 누구냐가 아니라] 혁명의 결과에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페리 앤더슨은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더욱 날카롭게 표현했다. “이러한 전환들(부르주아 혁명)은 단일 계급의 의제에 따른 단선적인 과정일 수가 없다. 여기서 존재하는 각종 예외는 사실상 상수에 해당한다. 각각의 예외는 모두 의도치 않은 결과다.”[각주:12]

닐은 고맙게도 1989년에 내가 이 저널에 발표한 논문이 이러한 접근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도 포괄적인견해라고 말했다. 정치적 마르크스주의자인 벤노 테슈케(Benno Teschke)는 이를 결과주의라고 불렀다. [각주:13]그러므로 내가 내 자신의 글을 여기에 인용하는 것을 양해해 주길 바란다.

 

부르주아 혁명들은 자본가들의 의식적인 활동에 의해서 수행된 혁명으로서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촉진한 혁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강조점은 부르주아 혁명을 일으킨 계급이 아니라 이와 같은 혁명의 효과로 이득을 본 계급에게 맞춰져야 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부르주아 혁명은 정치적 전환, 즉 국가권력의 변화인데 이것은 대규모의 자본 축적과 부르주아지들의 지배계급화를 수립하는 데에 있어 전제가 된다. , 이런 방식의 정의는 곧 위에 언급한 효과를 수반하는 정치적 변화를 지칭하는 것이 된다.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개념은 이 전환을 실제로 수행한 사회세력과는 무관한 것이다.[각주:14]

 

이러한 개념의 재설정을 위해, 나는 부르주아 혁명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째, “고전적부르주아 혁명이다. 무엇보다도 영국의 1640년 혁명과 프랑스의 1789년 혁명이 이에 해당된다. 부르주아지가 구체제와 얼마나 혼합되어 있든지 간에 이 사건들에는 확실하게 그들의 힘이 작동했다. 부르주아 세력은 운동 내에서 도시와 지방의 소규모 생산자들과 광범한 동맹을 주도하여 절대주의 국가를 분쇄하고 자본주의에 훨씬 친화적인 정치적 형태로 이를 대체했다.[각주:15] 둘째, “위로부터의부르주아 혁명이 있다. 이것은 산업 자본주의로 재구조화된 세계경제에 대응해 일어난 것으로 19세기 국가체제를 변형시키려는 노력이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서 농촌의 지주 계급은 현존 국가를 점차 자본주의 축적에 유리한 형태로 변형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주도했다. (처음 두 사례에서는 각 주들 사이에서 통일전쟁이 벌어졌고, 마지막 사례에서는 내전이 일어났다.) 그람시는 이 과정을 수동혁명이라고 불렀는데, 대중의 참여가 제한적이거나 아예 배제되었다는 점을 그 근거로 한다.[각주:16] 미국 내전은 이런 유형의 약간 다른 형태였다. 에이브러험 링컨이 연방정부를 장악한 북부는 총력전과 같은 수단을 사용했으며, 남부의 분리독립을 분쇄하고 미국에서 산업자본주의의 발전을 크게 가속화할 중앙집권적 국가를 구축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점차 노예들을 소유주로부터 해방시키는 전략에도 사용했다. 셋째, 토니 클리프가 빗나간 연속혁명이라고 분석한 대단히 다른 사례들이 있다. 20세기에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 국가에서 스스로 혁명적 정치 주체가 되지 못한 노동계급을 대신하여 지식인 집단이 그 공백을 채웠는데, 그들은 새로운 국가 자본주의 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외국의 지배자들을 몰아냈다. 이에 해당하는 사례는 1949년 중국, 1952년 이집트, 1959년 쿠바가 있다.[각주:17]

본질적으로 닐의 책은 이러한 부르주아 혁명의 결과주의적개념을 재확인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이지만, 동시에 의문을 제기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전의 어떤 연구보다도 더 큰 그림을 제시하면서, 그는 보다 심층적이고 넓은 범위의 주제들을 살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에서 많은 보물을 찾아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닐은 수정주의적 전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에 대해 신랄하게 비꼰다.

 

[수정주의자들처럼] 따지고 보면, 에드워드 톰슨이 생각했듯 단지 가난한 직조공, 기계를 파괴한 농민, ‘한물 간베틀 제작자, ‘이상주의자장인, 심지어 조안나 사우스콧의 정신나간 추종자들만이 [역사의 주체성 문제에 대한] “후세의 폄하대상에서 구제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다. 부유한 세금 징수인, 음모를 꾸미는 왕당파 추방자, 여왕의 침실을 돌봤던 여인, 오해를 받았던 곡물 투기꾼, 전직 도미니크회의 노예 소유주, 그 밖에 많은 이들도 재평가되어야 한다.[각주:18]

 

닐은 또한 19세기 위로부터의 혁명들을 이끈 지도부들 사이에서 링컨 정부만이 크롬웰과 로베스피에르를 연상시키는 급진적인 수단을 활용했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훌륭한 통찰을 제시한다.

 

혁명적 폭력이 이제 체계를 갖춘 국가폭력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를 통해 외부의 적에게 효과적으로 그 힘을 집중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한 변화다. 이는 곧 다른 부르주아 혁명처럼 계급투쟁이 순전히 내적 차원에서, 시민적 차원에서 벌어질 때보다 훨씬 더 나아간 정도의 급진주의가 시도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 북부의 부르주아지는 패배에 직면하느니 차라리 총력전의 논리를 수용할 태세를 완전하게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이들은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켜주고, 나아가 그들을 연방군에 편입시켜 과거 자신들 주인인 백인들에게 대항하게 하는 일까지 용인했다.[각주:19]

 

그래서 부르주아 혁명은 얼마나 혁명적이었나?는 역사유물론의 무기고를 확장시켜준 중요한 지적 성과물이다. 하지만그렇다, 하지만이다이 책에는 심각한 약점들도 있다. 이 약점들은 크게 세 가지로 범주화할 수 있다. 첫째, 사소한 사실관계의 착오들이 심심찮게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심각한 개념적 변이들도 존재한다.[각주:20] 그러나 이런 문제는 이만한 규모의 작업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둘째, 책의 형태와 글의 길이에서 비롯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닐은 이 책의 주제가 본질적으로 사상사의 일부라고 말한다.[각주:21] 그래서 닐은 부르주아 혁명의 개념을 계통적으로 추적한 다음, 개념의 발전과 이에 대한 반박, 그리고 이를 다시 재구조화하는 과정으로 주제를 서술한다. 그러다보니 결과주의발전이라는 책의 요점은 끄트머리에 가서야 등장한다. 닐 자신은 이 주제를 부르주아 혁명의 특수성이라고 명명된 4장 결론부에 가서야 정리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런 순서를 따라감으로써 비로소 지금까지 언급된 사상사적 맥락들을 통합한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물론 이런 글쓰기 방식은 헤겔의 변증법을 따른 것이다. “절대 지성은 오직 정신현상학의 마지막에서나 등장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 분야의 초심자들에게 이런 방법은 상대적으로 고된 과정일 수 있다. 서두에서 그의 전체적인 입장을 안내하는 셈 치고 분명한 문장으로 책을 시작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헤겔은 이러한 방법을 부정행위 취급하며 폄하하곤 했지만, 사실 헤겔도 서문과 서장에 보통 그의 철학에서 가장 두드러진 문장을 포함시키곤 했다.)

또한 이 책이 지성사적인 방법으로 저술되다보니, 부르주아 혁명 자체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이나 분석을 포함하고 있지 못하다. 특정한 문제나 사건들을 많이 다루고는 있으나, 책 전체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때로 내용들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닐은 내가 미국 남북전쟁에 대해 인용한 내용을 두 차례나 언급한다.[각주:22] 다른 한편으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저자가 중요한 논점들을 빠트렸을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닐은 지나가는 말로 미국 독립전쟁은 영국 지배에 대한 정치적 혁명이었으나 사회적 관계들을 어떤 형태로든 바꾸는 데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고 간단하게 언급한다.[각주:23] 이것은 정치적 마르크스주의자인 찰리 포스트의 시각과는 대비되는 것인데, 포스트는 자신의 스승인 엘렌 우드와는 달리 미국 혁명과 내전은 부르주아 혁명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사건들은 미국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한 정치적제도적 조건을 안착시켰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각주:24] 포스트의 주장은 미국 역사에 대한 풍부하고 다각적인 해석에 기초한 것으로 설득력이 있는 결론이다. 포스트가 틀렸고 닐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지만, 닐 자신이 1776년 혁명[독립 전쟁]에 대해서 진전된 분석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이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부르주아 혁명들은 얼마나 혁명적이었나?”라는 모호한 책 제목으로 인해 더욱 불분명해진다. 이 질문은 혁명의 일반적 속성과 부르주아 혁명의 속성 자체를 되돌아보게 한다. 물론 어떤 면에서 이것은 불가피하다. 루카치가 강조한 것처럼 부르주아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의 구분은 정치적으로 몹시 중요하다. 내 글을 다시 인용해보면,

 

부르주아 혁명의 특징은 혁명의 수행자와 결과 사이의 괴리다. 다양한 사회정치적 세력들독립지주, 자코뱅 변호사, 사무라이 관료, 심지어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이 자본주의적 발전을 급격하게 지향하면서 정치적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이러한 괴리는 사회주의 혁명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쓴 바 있다. “과거의 모든 역사적 운동은 모두 소수의 운동이었다. …… [그러나] 프롤레타리아의 운동은 압도 다수에 의한 자기의식적이고 독립적인 운동이다.[각주:25]

 

하지만 닐은 혁명에 대한 일반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범위를 훨씬 더 넓게 확장시킨다. 그는 책의 첫 장에서부터 근대 초에 혁명이라는 개념이 변화했음을, 즉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운동을 가리키는 말에서 사회가 진보적으로 변형된다는 의미로 바뀌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보다 일반적인 논점들도 이 책에서 계속 다뤄진다. 이를테면 닐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를 다룬 길고도 중요한 장을 1924년에서 1940년까지 활동한 세 명의 인물에 할애한다. “추방당한 트로츠키, 감옥에 갇힌 그람시, 방황하는 벤야민이 바로 그들이다. [각주:26]트로츠키와 그람시를 포함시킨 것에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다. 이들은 각각 영구혁명론과 수동혁명이라는 아이디어를 일반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터 벤야민에 대한 닐의 짧고도 불균등한 서술만 보아서는비록 닐이 다른 이들과 달리 벤야민을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라기보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다루는 훌륭한 설명을 하고 있긴 하지만벤야민이 부르주아 혁명과 관련한 논의에 뭔가 큰 기여를 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 책에서 지엽적 문제로 새는 서술은 꽤 일관되게 나타난다. 때로 이 책은 마치 <트리스트럼 쉔디>[각주:27]처럼 하나의 연상을 그 다음 연상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절대주의 국가 문제를 다룰 때도 그런 식인데, 닐은 (내 생각에는 올바르게도) 절대주의 국가가 봉건국가의 형태를 취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이행을 촉진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해당 논의를 공납제 생산양식으로까지 넓게 확장시킨다. 공납제 생산양식이란 소작농들이 지주 계급을 대변하는 독립적 국가에 의해 착취당하는 것을 뜻한다. 물론 절대왕정과 공납제 생산양식이라는 두 주제는 서로 연관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 이 중 하나를 다룬다고 해서 반드시 나머지를 다뤄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각주:28] 그러나 딱히 의도하지 않은 논점이탈에까지 이런저런 불평을 지나치게 늘어놓는 것은 아마도 무례한 일이 될 것이다. 닐은 느긋한 방식으로 여러 주제들을 살피면서, 복잡한 개념을 소개하고 때로 광범한 서술 범위들 중 무작위로 어떤 논점을 잡는 서술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아주 유창하고 지적인 방식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그의 논의를 따라가는 과정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링컨의 말을 빌자면 이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곧 이 책이 바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그 스타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서술 방식을 취한 결과, 정제된 이론적역사적 분석으로 정리되기보다는 여러 방향으로 확장된 생각할 거리들을 제시하는 것에 머물고 있다.

물론 이것이 곧 닐이 어떤 논쟁점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이 책의 세 번째 약점으로 내가 제시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그가 부르주아 혁명의 결과주의개념을 확장하려는 주장을 폈다는 데에 있다. 부분적으로, 이런 시도는 위에서 적었듯이 그가 지나칠 정도로 글을 복잡하게 서술하는 경향과도 연관이 있다. 그는 두 차례 당혹스러운 방식으로 내가 사용한 결과주의개념에 대해 반대의견을 밝힌다. 첫째, 나는 (페리 앤더슨의 말을 빌려서) 부르주아 혁명이 일반적으로 다른 혁명들이 그렇듯 압축된 일정 기간 동안 특정 목표에 집중된 급격한 정치적 변화가 이뤄지는 사건으로, 확실한 출발점이 있고옛 국가기구가 온존한 상태에서그 국가기구들이 결정적으로 파괴되는 분명한 종결점이 있으며, 이를 대신하는 새로운 기구가 세워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각주:29] 닐은 (그의 모국인 18세기 중반의 스코틀랜드 사례를 포함하여) 수동혁명[위로부터의 혁명]의 결과 출현하는 통일 국가는 상당히 장기적인 기간을 거친 결과물이다. 혁명이란 법적 정당성을 가진 전통적 군사 활동의 누적된 효과로서 설명될 수 있는데, 다시 말해 이것은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각주:30] 이는 올바른 지적이지만 핵심에서 비켜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앤더슨의 글을 인용한 것은 국가의 형태 변화가 자본주의의 우위를 가져온다는 인과관계를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확산되는 사회경제적 변화는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간단하게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점진적이고 느릿느릿한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수동혁명이 단지 한 두 가지의 사건이 아닌 과정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 점은 모든 혁명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20111월에 [아랍혁명을 목도하면서] 우리 자신이 제기한 주장도 이것이었다. , 분명 수동혁명의 과정은 전형적인부르주아 혁명과 전형적인사회주의 혁명과는 다른 형태를 취하는데, 사실 나 역시도 이런 구분을 했었다.

둘째, “더 큰 …… 문제는 …… 세계에 존재하는현재 약 200개의국민국가들 중 절대 다수는 위로부터의 혁명과 관련이 있을지언정, 그들이 격변을 겪은 적은 없다는 닐의 서술을 보자.[각주:31] 이 말은 사실이지만, 나는 [수동혁명에] 반드시 그러한 격변이 수반되어야만 한다고 한 적이 없다. 부르주아 혁명의 개념에 대한 결과주의적 재고의 강점이라면, 이런 관점이야말로 격변들을 [단지 개별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맥락 속에서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르주아 혁명에 관해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는 혁명의 누적적인 효과다. 개별 혁명은 그것의 계승자들을 위해 의의가 변질된다고 쓴 바 있었다.[각주:32] 영국 혁명 이후 생겨난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는 경쟁 압력을 통해 프랑스 부르봉 절대주의의 위기를 만들어냈고 결국 프랑스 혁명을 촉발했다. 이러한 이행과정이 만들어낸 산업자본주의의 출현은, 그 다음으로 다른 구체제의 전복을 이끌어냈다. 독일의 통일과 메이지 유신이 특기할 만한 사례들이다. 그리고 일정 수준을 넘어선 이런 자본주의의 세계적 우위라는 변화 양상은 다른 국가들에서도 아주 강력한 구속력을 지닌 하나의 흐름을 창출한다. 그들은 선진 부르주아 국가들의 형태를 따라 그들의 경제정치사회 구조들을 변화시키는 점진적 과정을 경험한다. 이에 대해서 닐 자신도 이렇게 서술한다.

 

19세기 중반 자본주의 세계 경제가 형성되기에 이르면 부르주아 혁명은 더 이상 자본주의적 발전의 도입 또는 확립에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않게 되었다. 자본주의 발전은 공식적으로는 어떤 외부적 압력과 무관하게 수행된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그리고 만일 정치 혁명의 성공이 분명하게 뒷받침된다면, 장기적 과정으로서 자본주의에 적응하기 위한 개혁은 이전의 사회혁명이 가져왔던 것과 동일한 수준의 사회 변화를 성취할 수 있다.[각주:33]

 

영구혁명에 작별을 고하기?

 

이런 통찰은 분명 옳지만, 이것이 닐이 주장하는 것처럼 결과주의의 이론적 난점을 완전히 해결한다는 차원은 아니다. 이는 차라리 결과주의를 보완하는 주장에 가깝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닐의 영구혁명론 비판이다. 이미 이 저널의 다른 지면을 통해 제기한 바처럼, 그는 오늘날 이 이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본다. 물론 이것이 그가 영구혁명론의 이론적 중요성을 완전히 기각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그는 영구혁명론을 마르크스 자신의 죽음 이래로 사적 유물론 내에서 가장 두드러진 혁신 중 하나라고 부른다).[각주:34] 그의 주장은 두 가지 논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첫째는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의 구분이다. 닐에 따르면, 이런 구분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에서 암시되어 있고, 트로츠키도 분명하게 이를 서술하였다.

역사는 …… 부르주아가 봉건적 체제를 대제했던 사회혁명만이 아니라 사회의 경제구조를 파괴하지 않고 옛 지배자들을 쓸어버리는 정치혁명(1830년과 1848년의 프랑스, 19172월의 러시아 등)이 존재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각주:35]

이 말에 근거해서 보면 정치혁명이란 기존 생산양식의 틀이 유지되는 가운데 이뤄지는 국가권력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사회혁명은 생산양식의 변화를 촉진한다. 핼 드레이퍼는 사회 혁명이라는 개념이 국가 권력을 새로운 계급에게 넘겨주는, 사회 변혁의 동력을 가진 정치 혁명을 묘사하는 데 적합하다. , 마르크스가 초기(1844)에 세운 정식처럼 사회적 내용을 가진 정치 혁명인 것이다.”[각주:36]고 주장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닐은 정치 혁명과 사회 혁명에 대한 이런 구분을 동의하기 어려울 만큼 지나치게 확장한다. 그는 올바르게도 드레이퍼가 제시한 사회구조 혁명이라는 세 번째 범주의 혁명 개념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드레이퍼가 제시한 사회구조 혁명은 결국 하나의 생산 양식에서 다른 형태로의 이행을 가리키는 말인데, 내가 앞서 지적했듯이, 이런 [점진적] 과정은 부르주아 혁명처럼 [일정기간 동안 급격하게] “사회 변혁의 동력을 이끌어내는 정치적 이행 과정과는 다른 단어로 지칭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사회 혁명의 범주로 분류될 수 있는 획기적인 과정은 세 차례만 존재한다. 가장 극적인 전환은 노예제에서 봉건제로의 전환이다. 또 다른 단적인 사례는 사회주의 혁명인데 …… 이것이 만일 성취된다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전환이 시작될 것이다. 이런 두 극적 전환 사이에 부르주아 혁명들이 자리하고 있다.”[각주:37] 이런 정리에는 두 가지 문제가 뒤따라 제기된다. 첫째, 닐은 사회 혁명을 생산 양식 사이의 이행과는 다른 것으로 [개념상] 구분해놓고도, 사회 혁명의 사례들을 검토할 때는 다시금 생산 양식 사이의 이행 문제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다룬다. 그래서 닐은 전통적 고대가 막을 내리는 과정을 살피면서, 생산양식의 변화 문제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초점을 맞추는 반면, 크리스 위컴이 초기 중세의 구성에서 꼼꼼하게 밝혀냈던 고대와 중세의 정치적 변화 양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둘째, 사회 혁명이 그렇게 적게 일어났다고 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닐은 노예제에서 봉건제로의 이행이 착취를 존재 근거로 삼는 하나의 생산양식에서 다른 마찬가지 생산양식으로 곧장 이행한 최초의 사례라고 서술한다. 그렇다면 묻고 싶어진다. 기원전 10세기 이후 보병을 구성하는 시민의 영향력이 커지고 생산에서 노예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승하면서 그리스가 종속적 궁정관료국가에서 도시국가로 전환한 것은 어떻게 봐야할까? , 얼마 뒤 중국에서 형성된 제국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각주:38] 이 외에도 추가될 사례는 매우 많다.

닐은 [생산양식 변화의 중요한 결절점이 되는 사회 혁명과 장기간의 생산양식의 이행 과정, 이 두 가지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회혁명과 정치혁명에 대한 그의 접근은 결국 영구혁명론의 [적용] 범위를 제한하는 그의 두 번째 주장으로 나아가게 된다. 닐은 과거를 답습하는 것에서 위로를 찾으려는트로츠키주의자들이 정치 혁명이 의제로 놓였을 뿐인 여러 사례들에서 종종 영구혁명의 가능성을 억지로 찾아내려 한다고 지적한다. 그 혁명은 크든 작든 그저 자본주의 국가 권력의 재편을 위한 것일 뿐인데도 말이다.[각주:39] 닐은 트로츠키가 그의 이론을 일반화하면서 자신의 영구혁명론을 공통점이 있지만 분명히 다른 두 가지 역사적 유형들에 적용했다고 주장한다. 첫째 유형은 러시아적 모델인데, 자본주의적 발전이 유력하게 진행되는 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기구가 봉건적 절대주의인 상태로 남아 있는 경우다. 이런 상황은 지역 자본주의의 발전을 대도시 권력의 경제적 필요에 맞춰 억제하는 식민지배 체제와도 유사하다. 이런 상황들에서는 부르주아 혁명이 여전히 의제에 올라있다고 할 수 있다.[각주:40] 둘째 유형은 전간기(戰間期) 스페인과 같은 사례들로, 국가는 이미 자본주의 국가로 변했지만 불균등 결합발전의 결과로 주요한 민주주의적 요구가 달성되지 않은 경우다. 이런 경우에는 민주적 요구를 둘러싼 투쟁의 잠재력이 갈수록 성장하고, 이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사태가 발전할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닐은 부르주아 혁명이 더 이상 의제에 오르지 않은 곳에서 영구혁명 개념을 확장시켜 적용하는 것이 실수이며, 이를 피해야 한다고 본다.[각주:41]

정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부르주아 혁명의 과제들보통 민족독립, 농지개혁, 민주주의 등의 목록이 뒤따른다이 모두 완전하게 성취되지 않는 한, 영구혁명은 여전히 역사적 과제로 노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만일 이렇게 본다면 위 두 유형의 사례들 모두가 부르주아 혁명이 미완된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30년 전에 이런 주장이 너무나 보수적인 관점이므로 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설 트로츠키주의의 입장은 부르주아 혁명 개념을 프랑스 사례를 가지고 정식화한 것인데 이런 접근은 일종의 당위적 유형화에 가깝다. 물론 분명 이런 [역사적 사례를 기준으로 삼으려는] 주장은 완전하고 순수한 해답을 찾기 위해 형이상학적 개념을 끌어오는 것보다는 일리가 있다. 이 주장은 부르주아 혁명을 [특정 사회가] 자본축적의 자율적 중심을 형성하는 데에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간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일 정치적 질서를 민주화하는 데에 실패하거나 봉건적 사회관계를 일소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각주:42]정설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설명 방식을 따르자면 브라질과 인도도 그들 내부의 사회적정치적 구조가 가진 결점들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것으로 부정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이들 국가를 무슨 초강대국마냥 선전하는 주장들만큼이나 터무니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본다면, 부르주아 혁명의 의의가 크든 적든 과거보다 퇴색한 오늘의 세계에서 영구혁명 이론은 어떤 가치를 갖는 것인가? (닐은 부르주아 혁명의 시대가 1974년에 끝났다고 보는데, 바로 이 때 에티오피아 혁명이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았던 봉건체제를 청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팔레스타인이 여전히 봉건체제에 가깝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인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지금도 이스라엘의 이주 식민주의에 의해 국가결성, 기본권, 거주권 등을 부정당하고 있는 처지다.)[각주:43]

닐은 몇 개의 논거들을 활용하면서 영구혁명은 이제 현실에서 유효성을 잃었으며, 이에 따라 빗나간 연속혁명 이론도 마찬가지로 역사적 개념이 되었다는 결론을 내린다.[각주:44] 사실 그가 제시한 근거 중 어떤 것도 아주 설득력이 있지는 않다. 그는 영구혁명론이 스탈린주의 단계 혁명론을 비판하는 기초로서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a) “어떤 스탈린주의 조직도 …… 모종의 민주주의적 요구 제기 단계를 건너뛰는 혁명을 의도한 적이 없으며, (b) 관료적 국가자본주의가 붕괴한 198991년 이래로 총체적인 단계론적 전략의 토대가 제거되었기 때문이다.[각주:45] 이런 접근법은 이론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잘못된] 방식인데, 만일 특정한 사상의 주창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그들의 제안이 유효성이 없다면 우리는 그 이론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에 빠져있는 일부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자들의 사회 운영 원리를 현실에서 무망한 것으로 보고 나아가 이들을 사기꾼 취급했으면서도 <잉여가치이론>에 매달린 이유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단계 혁명론은 역사에서 결코 실현가능했던 적이 없었지만(이것은 트로츠키의 비판에서 핵심적인 내용이다), 이것이 곧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그 이론이 지금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최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기존 지배 세력인 의회 동맹은 마리카나 학살[각주:46]을 계기로 분열했다. 이 당시 양측은 민족민주혁명을 들먹였고, 여기서 ANC 정부를 지지할 것인지 비판할 것인지를 두고 대립했다.[각주:47]

다른 한편으로, 닐은 트로츠키가 영구혁명 개념은 사실상 사회주의 혁명과 같은 의미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각주:48] 과학철학자 임레 라카토스는 개념 확장최초에 의도되지 않았던 영역까지 포괄하기 위해 개념을 확장하는 것이 과학적 혁신의 원천일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각주:49] 때로는 개념을 확장한 결과가 사리에 어긋날 수도 있다. 수동혁명이라는 개념에는 그람시가 검토하던 시점부터 이미 이런 문제가 있었다고 나도 지적한 바 있다.[각주:50] 하지만 트로츠키가 자신의 이론을 확장시킨 것에서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때의 개념 확장은 불균등 결합발전이 일정 지역의 자본주의 구조를 정착시키지만 동시에 민주주의를 제약한다는 점, 그리고 이로 인해 커다란 사회적 균열이 일어나 대중투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 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딱 들어맞는 사례는 아니지만 역사적인 사례로서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20세기 초반 네덜란드 이주민 출신들이 세운 나라를 영국이 정복한 이후 위로부터의 혁명을 경험했다. 그 이후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가는 자본주의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지만, 특히 광산을 중심으로 한 특정한 자본축적의 형태는 체계적인 인종 억압 구조에 발맞추고 있었다(이주노동체계, 흑인유입 제한, 흑인들의 시민권 박탈 등).[각주:51] 그 결과 도시에 거주하는 흑인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투쟁이 주기적으로 거듭되었는데, 1973년 더번 파업으로 시작되어 1976년 소웨토 봉기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들은 사회주의 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고 있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최근의 이집트를 들 수 있겠다. 이집트는 1952년 혁명 이후 의심할 여지없이 자본주의 국가로 변모했는데, 근래 수십 년 동안 군부독재가 이뤄져 왔으며 미국 제국주의와 긴밀한 동맹을 맺고 있기도 했다. 이집트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착수했는데, 이것은 나세르 집권기에 도입된 사회-경제적 구조를 상당부분 뒤흔드는 일이었다. 20111월의 혁명은 무바라크 독재에 맞선 정치적 요구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사회경제적 문제들로 쟁점이 번져갔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영구혁명의 동학을 탐색하는 일은, 단지 사회주의 혁명이 모든 사회문제의 해답이라는 보편적 진실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작업은 불균등 결합발전이 일부 경우에 빚어내는 정치적사회적 투쟁의 고유한 유동성을 인식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동역학의 한 단면은 민주주의적 요구가 그 중심에 놓인다는 점이다. 최근 영국의 대중운동이라크 반전운동, 등록금 인상 반대, 긴축반대 등에서도 모두 민주주의적 요구가 제기되었고, 종종 경찰탄압과 국가감시에 반대하는 것으로 운동이 발전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요구들이 운동의 중심에까지 놓이지는 않았었다. 이를 혁명의 중심이 무바라크 정권 잔여세력의 숙청에서 군부 최고회의에 맞선 민주주의 투쟁으로 옮겨간 이집트와 비교해보라.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영국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형태의 의제 통합적 특징을 지닌다.

닐은 영구혁명에 대한 새로운 의미 부여는 ……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혁명의 성격을 곡해하고 있다. 사회주의가 그 혁명의 종착점일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혹은 기대를 담아 바라보게 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각주:52] 하지만 이 주장에는 근거가 제시되지 않는다. 아랍혁명의 발발에 대한 나 자신의 반응은 그 사건을 영구혁명의 전망 하에 놓고는 있지만,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은 정치혁명이었으며 이것이 사회혁명으로 발전할 필연성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각주:53] 내 오랜 친구인 콜린 스팍스가 1970년대에 강조했듯, 영구혁명론은 대안의 이론이다. 영구혁명은 가능성의 윤곽을 그릴 뿐, 필연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이론이 이런 방식으로 이해된 채 거부되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현재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정치적인 격변이 영구혁명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 닐은 책에서도 때로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는 19101920년에 일어난 멕시코 혁명을 사실상 무시하고 19세기 중반 캐나다의 식민지 재조직 사례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사실 멕시코 혁명은 20세기 격변 중에서도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이며, 트로츠키주의 역사가인 아돌포 길리는 멕시코 국가가 이미 자본주의적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 이를 자신의 주요 연구주제로 다루기도 했었는데 말이다.[각주:54] 더 일반적인 문제로 이야기해서, 그의 이런 오류와 정치혁명을 사회혁명과 칼같이 구분하려는 관점은 드레이퍼가 이야기한 정치혁명의 오늘날의 경향을 무시하게끔 만든다. 정치혁명이 제한적인 차원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점점 잠재된 사회혁명의 요소를 일깨우며 새로운 수준의 운동으로 나아가는 현상 말이다.[각주:55]

닐은 영구혁명을 폐기하면서도 불균등 결합발전 법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열정적인데, 그는 불균등 결합발전을 “20세기 마르크스주의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고 묘사하고 있다.[각주:56] 그는 최근 몇 년간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불균등 결합발전의 개념을 둘러싼 논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매우 중요한 기여자이며, 일부 사람들이 냉정함을 잃은 것처럼 보일 때에도 침착하게 이 문제에 천착해온 사람이다. 불균등 결합발전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부정할 여지없이 매우 중요한 개념이며, 영구혁명론의 본래 맥락에서 타당한 방식으로 분리해 논의할 수도 있는 개념이다(나 자신도 이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각주:57] 하지만 이 개념으로 모든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기계적인 끼워 맞추기를 시도한다면 오히려 그 개념은 몰역사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변질될 위험성도 있다. 닐이 자신의 역사서에서 직접 그런 방식으로 개념을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불균등 결합발전 이론의 정치적 중심을 잡아주는 영구혁명 이론을 기각함으로써, 그는 의도치 않게 이런 달갑지 않은 경향을 강화시켰을 수 있다. 4장 결론부에서 그는 불균등 결합발전의 잠재적 불안정성을 강조하는데, 그는 결국 이런 불안정성이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정치-사회적 혁명과 크게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이 서평의 꽤 많은 부분을 닐이 언급한 영구혁명 문제를 비판 하는 데 할애했다. 그럼에도-이 책의 많은 부분이 영구혁명론의 발전과 문제점에 대해 서술되어 있는 만큼, 이런 비평이 책의 본질을 비켜나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이러한 비판이 그의 지적 성과물에 대한 나의 경탄을 조금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부르주아 혁명들은 얼마나 혁명적이었나?는 역사유물론의 지형을 바꿔놓았다. 설사 우리 중 일부가 닐이 혼란을 보여준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하더라도 우리가 그 문제에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한, 이 책이 주는 지적 즐거움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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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주]Callinicos. A, 2013, The dynamics of revolution, International Socialism, no.137. [본문으로]
  2. Marx, 1977, 160~161쪽. [본문으로]
  3. Davidson, 2012, 117쪽. [본문으로]
  4. Lukács, 1970, 47~48쪽; Davidson, 2012, 240쪽. [본문으로]
  5. 닐은 위에서 인용된 “부르주아지와 반혁명” 절의 한 단락이 종종 마르크스를 곡해하는 방식으로 번역된다고 지적한다. “그가 실제로 그랬던 것보다 더 부르주아지들에게 긍정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었던 것처럼” 옮겨진다는 것이다. Davidson, 2012, 717쪽. 하지만 내가 사용한 이 번역본에서는 그런 결함이 덜 한 것 같다. 어쨌거나 이 단락의 전체 구조는 프로이센 부르주아지를 영국과 프랑스의 부르주아지와 비판적으로 비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후자는 혁명적 열정을 보다 많이 드러냈다고 암시했을 뿐이다. [본문으로]
  6. 영구혁명 이론의 발전에 관한 내 견해는 Callinicos, 1982, 98~102쪽과 Callinicos, 1990, 6~11쪽 참조. Geras, 1975는 1917년 이전 러시아 혁명의 성격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논쟁에 대해 탁월하게 설명하고 있다. [본문으로]
  7. Davidson, 2012, 264~265쪽 및 254~256쪽. [본문으로]
  8. Davidson, 2012, 366쪽. [본문으로]
  9. 일례로 Wood, 2002 참조. 이행 문제를 다룬 브레너의 주요한 논문은 비판적인 논평이 덧붙여진 채 간행된 바 있다. Aston and Philpin, 1985 참조. Harman의 1989년 논문은 브레너의 주장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다. 이 논쟁에 대한 나 자신의 견해는 Callinicos, 2009, 3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문으로]
  10. Comninel, 1987 참조. 이 책에 대한 비판은 Callinicos, 1989, 141~151쪽에서 볼 수 있다. 브레너의 부르주아 혁명 개념에 대해서는 Brenner, 1989를 보라. 닐의 책은 본래 도이처 수상 강연에서 비롯된 것인데, 당시 그의 책과 정치적 마르크스주의자인 벤노 테슈케가 공동 수상했기 때문에 이 강연은 애초부터 논쟁으로 기획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Davidson, 2005와 Teschke, 2005 참조. 안타깝게도, 강연의 균형은 닐의 반대편으로 기울어져 있었는데, 이는 콤니넬이 세 번째 발언자로 나왔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11. Wood, 2002, 118~119쪽(Davidson, 2012, 420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12. Anderson, 1992, 113쪽. 이 중요한 논문은 비록 1976년에 작성되었으나 출판은 1992년에 되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1989년에 낸 논문에서 이에 대해 논평할 수 없었다. 놀랍게도 닐은 이 논문에 대해서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본문으로]
  13. Davidson, 2012, 481쪽; Teschke, 2005, 6쪽. [본문으로]
  14. Callinicos, 1989, 124쪽. 이 글은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호의 일부로 작성되었던 것으로, 당시 편집부 일부에게는 논란의 대상이기도 했다. 부분적으로는 이 글이 길어서이기도 했고, 다른 한 편에서는 이행에 대한 브레너의 해석에 상대적으로 공감을 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글은 린지 저먼에 의해 효율적이지만 과감하게 수정되었다. 산문체로 쓰인 들쑥날쑥한 글을 설명이 이해되기 쉽게 만들기 위한 수정이었고, 닐이 주장한 이유처럼 내가 제시한 부르주아 혁명의 실제 개념이 논란을 불러온 것은 아니었다. 이 개념은 이 글이 제출된 때보다 약 1년쯤 전에 던컨 핼러스가 먼저 훨씬 효율적으로 설명한 바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Hallas, 1988 참조. [본문으로]
  15. 나는 16세기 네덜란드의 봉기는 어떤 방식으로도 다루지 않았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내가 초기 근대의 네덜란드 북부 사회를 자본주의적 사회로 보지 않았던 잘못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오류에 대해서는 Brandon, 2007 연구를 참조하라. 역설적으로 브레너는 영국 혁명에서 소위 “신(新) 상인”이라는 특정한 자본가 집단이 혁명의 전위 역할을 했음을 밝혀냈다. 이에 대해서는 Brenner, 1993과 Callinicos, 1994를 참조. 앤더슨이 논평했듯, “이 집단은 혁명적 부르주아의 전형적 모습이다.” Anderson, 2005, 251쪽. [본문으로]
  16. 수동혁명에 관한 더 일반적인 서술은 Callinicos, 2010 참조. [본문으로]
  17. Cliff, 1963. 닐은 빗나간 연속혁명에 해당하는 사건들이 위로부터의 부르주아 혁명과 아래로부터의 부르주아 혁명을 구분해주는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다며 논점을 흐리고 있다. Davidson, 2012, 478쪽.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답을 하자면, 빗나간 연속혁명은 그 두 종류의 부르주아 혁명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18. Davidson, 2012, 361~362쪽. [본문으로]
  19. Davidson, 2012, 615~616쪽. 또한 닐은 이렇게도 썼다. “미국 발전의 특수성은 바로 (…) 부르주아지가 자신들을 마지막까지 혁명적 계급으로 상정하지 않다가 결국 그 위치로 나섰다는 점에 있다.” Davidson, 2012, 168쪽. [본문으로]
  20. 다음은 사소한 사실관계 오류의 사례들이다: 탁신 시나왓트라에 맞선 노란 셔츠단 운동은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타이에서 일어났다(Davidson, 2012, 서문 16쪽); 닐은 아마도 아랍 천문학(점성술이 아닌)이 르네상스 시기에 되살아났다는 말을 하려던 것 같다(12쪽).; 찰스 1세는 제임스 2세의 아버지이지 삼촌이 아니다(104쪽); 비스마르크는 1862년에 총통이 아닌 내각수반에 임명되었다(162쪽); 중국의 소작농들은 정말로 “지방 부르주아지의 일부”였는가?(256쪽); 1930년대 공산당의 문화정책을 되돌아본 인물은 퀸시로 이름을 날린 잭 클루그만이 아니라 제임스 클루그만이다 (266쪽); 닐이 이 책 뒷부분에서 정확하게 알고 있듯이 하이예크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본성에 부합한다고 믿지 않았다(334쪽); 콘라드 러셀은 더 이상 상원에 앉아 있지 않다. 사실 어디에도 없는데, 그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365쪽); 노예와 농노들은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496쪽); “이집트 2011-?”는 “실패한 사회주의 혁명들”의 목록에 포함되는가?(499쪽); 『상상의 사회기구(The Imaginary Institution of Society)』를 쓴 사람은 카를로스 카스토리아디스가 아닌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다(521쪽); 영국령 북부 캐나다는 “오타와”가 아니고, 이들 중 대부분은 현재 온타리오 주를 이루고 있다(617쪽); 대체로 닐이 스코틀랜드에서 받은 교육에 따른 문제로 보이는데, 자코뱅주의는 “자코바이트주의”로 번역된다. 가장 심각한 이론적 착오로서 글 전체에 보이는 오류는 다음과 같다: 닐은 마르크스의 “노동의 공식적 포섭”이라는 표현을 “자본주의 이행기에 소규모 독립 생산자들은 ……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할 수 있었고, 고리대금업자나 상인들을 대표하는 이들은 노동과정을 조직하는 직접적인 역할을 거의 수행하지 않았다”(Davidson, 2012, 576쪽)는 현상을 설명하는 말로 보았다. 그러나 사실 마르크스는 자본 통제 아래서의 노동의 공식적 포섭이라는 것을 임노동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임노동 관계를 촉발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노동자들은 돈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들에 도전한다. 노동자는 그 자신의 소유주로서, 노동력의 소유주로서, 그리고 임노동 상품의 판매자로서 그렇게 한다. …… 노동의 객관적 조건(원료, 노동에 활용되는 기구, 즉 노동시간 중에 필요한 모든 수단)은 전적으로 혹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노동자 본인이 아닌 그의 노동력을 구매하거나 사용하는 사람에게 귀속되고, 그들은 노동자에게 자본으로서 도전한다. 이러한 노동의 조건이 되는 요소들이 다른 이[자본가]의 자산으로서 노동자에게 보다 철저하게 도전할수록, 이 조건들은 보다 철저하게 자본과 임금 노동 사이의 관계를 공식화한다. 그 때문에 자본 아래서 노동의 공식적 포섭은 더욱 철저하게 이뤄진다.” “아직까지는 생산관계 그 자체로는 차이가 없다. 노동과정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이전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오직 노동과정이 자본에 종속되어 있을 뿐이다.” (Marx, 1994, 95쪽.) 마르크스는 닐이 논의한 것과 같은 사례들을 이행기적 형태의 사례라고 보았다. 이행기적 “상태에서는 자본의 관계라는 것이 아직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노동은 이미 자본에 의해 착취되고 있지만, 자본은 아직 생산적 자본으로 발전하지 못한 상태이다. 노동 그 자신은 임노동자화 되어있고 말이다.” (Marx, 1994, 117쪽) 이 문제와 연결되어 있을 수 있는 오류로, 닐은 임노동자를 “서발턴 노동자들”의 더 넓은 범주 안에 포함시키는 마르셀 반 더 린덴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Davidson, 2012, 415~416쪽; van der Linden, 2008과 비교하여 읽어 볼 것) 그러나 이것은 “정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큰 논리적 약점을 노출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21. Davidson, 2012, 서문 18쪽. [본문으로]
  22. Davidson, 2012, 169쪽 참조. [본문으로]
  23. Davidson, 2012, 59쪽. [본문으로]
  24. Post, 2011, 426쪽. 이어지는 문장에서 포스트는 모순되게도 미국 혁명이 “비자본주의적 상인 계급”에 의해 추동되었다고 서술한다. 비자본주의적 상인이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이윤에 관심 없는 상인들인가? 그런 존재가 있기나 했나? 당연히 마르크스는 “자본의 거래는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보다 오래된 것이고, 사실 자본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곳에서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생산양식”이라고 주장했다(Marx, 1981, 442쪽). [본문으로]
  25. Callinicos, 1989, 160쪽. [본문으로]
  26. Davidson, 2012, 275쪽. [본문으로]
  27. [역주]<트리스트럼 쉔디>는 로렌스 스턴(Laurence Sterne)의 소설로, 원제는 이고, 흔히 줄여서 <트리스트럼 쉔디(Tristram Shandy)>라고 부른다. 1759년에 출간된 이 유머 소설은 책 제목과 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의 전기처럼 되어있는데, 자주 옆길로 새고 장황한 부연을 하는 문투로 쓰여있다. [본문으로]
  28. Davidson, 2012, 539~551쪽. 닐은 일반적으로 자이루스 바나지(Jairus Banaji)와 내가 가진 견해처럼 공납제 양식을 봉건제와 다른 별개의 전자본주의적 경제 체제로 보는 견해에 동의하는 듯하다. 이에 대해서는 Banaji, 2010, 15~40쪽과 Callinicos, 2009, 116~124쪽 참조. 하지만 그런 개념과 모순되는 내용으로 보이는 구절도 있는데, 그는 “대규모 공납제 제국에서 (…) 국가는 집단적인 봉건권력으로서 작동했다”고도 말했다(Davidson, 2012, 422쪽). 이것은 크리스 하먼과 크리스 위컴의 견해에 더 가까운 것으로, 이들에게 공납제 사회구성체는 봉건제의 하위 유형이다. Harman, 2004 및 Wickham, 2005 참조. [본문으로]
  29. Anderson, 1984, 112쪽(Callinicos, 1989, 126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30. Davidson, 2012, 482쪽. 스코틀랜드에 대한 그의 견해에 대해서는 Davidson, 2010a. [본문으로]
  31. Davidson, 2012, 482쪽. [본문으로]
  32. Callinicos, 1989, 141쪽 및 Callinicos, 2009, 123~136쪽 참조. 나는 1989년 글의 논지 중 이와 관련된 대목을 크게 발전시켜 2009년 글에 포함시켰다. 그런 점에서 테슈케가 그동안 “‘부르주아 혁명’ 개념을 유지하기 위한 마르크스주의적 시도가 부재”(Teschke, 2005, 9쪽)했다고 의기양양하게 언급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 [본문으로]
  33. Davidson, 2012, 609쪽. 닐은 여기서 조셉 추나라와 매우 유사한 주장을 펼친다(Choonara, 2011, 181쪽). 또 닐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수행한 비교를 언급하면서, “부족 사회”의 식민지적 정복이 부르주아 혁명의 사례로 간주될 수 있다고도 여기는 듯하다(Davidson, 2012, 607~608쪽). 하지만 이런 사건들에서는 필연적으로 국가 형태의 변형이 이뤄질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이런 일들은 기껏해야 마르크스가 보았던 것처럼 원시적 축적의 사례로 접근하는 편이 나아 보인다. 직접 생산자를 강탈하는 것을 통해 자본 축적의 조건들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실제로 룩셈부르크에게서도 나타나는데, 그녀는 제국주의를 전자본주의 주변부의 “자연 경제”가 강제로 자본에 복속되고 파괴되는 과정으로 묘사한다(Luxemburg, 1971, 26~32장). [본문으로]
  34. Davidson, 2012, 223쪽. 또, 닐은 2010년 자신이 쓴 논문(Davidson, 2010b)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여러 논점들을 이미 제시한 바 있고, 이를 더 발전시켜서 이번 책에서 다룬 것이다. 2010년 논문에 대한 반박으로는 Choonara, 2011. [본문으로]
  35. Trotsky, 1972, 288쪽. [본문으로]
  36. Draper, 1978, 19쪽. [본문으로]
  37. Davidson, 2012, 493쪽 및 494~495쪽. [본문으로]
  38. Davidson, 2012, 497쪽.닐의 설명을 보면, 나는 그가 논리학자들이 “타입과 토큰”이라고 부르는 오류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하는 주장의 맥락을 감안해 우리가 사회혁명에 단 세 가지 경우만 존재한다는 견해를 수용한다 해도, 이것이 곧 사회 혁명이 세 번 발생했다는 진술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 각 혁명의 부류에 해당하는 한 가지 이상의 사건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인데, 예컨대 부르주아 혁명만 보더라도 여러 역사적 사례들이 있다. [“타입과 토큰”(종류와 개체) 오류란 어떤 개념에 해당하는 특정한 예와 그 개념 자체를 혼동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A와 고양이 A를 포함한 전체 고양이 종(種)은 같은 “고양이”라는 단어로 말한다고 해도 완전히 다른 의미를 나타낸다. - 역자] [본문으로]
  39. Davidson, 2012, 622쪽. [본문으로]
  40. Davidson, 2012, 620쪽. [본문으로]
  41. Davidson, 2012, 284~308쪽. 어떤 면에서 이 부분이 이 책이 담고 있는 이론적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본문으로]
  42. Callinicos, 1982, 110쪽에서 나는 Löwy, 1981를 비판하였다. 사실 닐의 논의는 얼마간 페리 앤더슨 류의 정설 트로츠키주의 비판과 유사하다. Davidson, 2012, 454쪽 참조. [본문으로]
  43. Davidson, 2012, 621쪽. [본문으로]
  44. Davidson, 2012, 627쪽.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적 변화를 감안하면, 빗나간 연속혁명 모델에 딱 들어맞는 사건이 더는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닐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닐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 해도 나는 이 주제로 독자들을 굳이 고민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므로 더 이상의 논의는 삼가려 한다. [본문으로]
  45. Davidson, 2012, 623쪽. [본문으로]
  46. [역주]2012년 8월 16일, 남아공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에서 북서쪽으로 약 70㎞ 떨어진 마리카나 광산에서 임금 인상 시위를 벌이는 광부들에게 경찰이 무차별 총기를 발포한 사건. 총 34명이 죽고 78명이 다쳤다. [본문으로]
  47. 남아프리카 금속노동자 전국조합이 발표한 훌륭한 성명서(http://bit.ly/Uef20u)를 남아프리카 공산당의 대표인 블레이드 은치만데의 소름끼치는 연설(www.sacp.org.za/main.php?ID=3750)과 비교해보라. 스탈린주의에 대한 전적으로 정당한 혐오감 때문에, 닐은 때로 공산당의 이념과 전력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1930년대 초반 스페인 공산당이 취했던 입장들을 요약하면서 인민전선 정책의 영향을 누락시키기도 했다(Davidson, 2012, 259~260쪽). [본문으로]
  48. Davidson, 2012, 307쪽. [본문으로]
  49. Lakatos, 1976. [본문으로]
  50. Callinicos, 2010. [본문으로]
  51. 아프리카 남부 지역의 국가 형태에 대한 연구로는 Yudelman, 1984와 Keegan, 1986, 그리고 Krikler, 1993을 참조. [본문으로]
  52. Davidson, 2012, 626쪽. 닐은 우리가 “영구혁명에 대한 새로운” 의미부여를 한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사실 트로츠키가 영구혁명 이론을 전간기(戰間機)에 정식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이론은 그렇게 크게 “새로운” 재해석이 필요할 정도로 낡은 것도 아니다. [본문으로]
  53. Callinicos, 2011. [본문으로]
  54. Davidson, 2012, 609~610쪽 및 616~618쪽. 이를 Gilly, 1983과 비교해보라. [본문으로]
  55. Draper, 1978, 20쪽. [본문으로]
  56. Davidson, 2012, 224쪽. 불균등 결합발전을 다룬 그의 긴 논의의 앞 부분에서, 닐은 트로츠키가 이 개념을 발견한 시기가 “1927년 4월 장개석 군대가 상하이에 들어갔던 시점과 1930년 11월 14일 『러시아 혁명사』 1권의 서문을 작성하던 시점 사이”라고 말한다. 이 서문에 “불균등 결합발전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Davidson, 2012, 286쪽). 하지만 “불균등 결합발전”이라는 표현이 상대적으로 더 늦게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이 개념 자체는 루이 알튀세르가 말한 바처럼 “실천적 맥락”에서 보자면, 닐이 지적한 것보다 훨씬 일찍부터 존재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내 생각에 닐이 이렇게까지 매우 엄격한 해석을 하려고 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불균등 결합발전 논쟁 과정에서 그가 “이 개념은 불균등 발전의 내재적 효과에 대한 설명을 포함한다”고 주장해온 것과 관련이 있다(Davidson, 2010b, 184쪽. 흥미로운 일이지만 이 문장은 닐의 책에서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당혹스럽게도 닐이 전 지구적 차원의 자본주의 결합 발전을 불균등 발전이라는 범주 속에 포함시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트로츠키는 1928년 일국사회주의론에 맞선 논쟁에서 자본주의 발전에는 “두 가지 근본적 경향”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나는 불균등발전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에 그가 정확하게 이렇게 부르지는 않았지만) 결합발전이다(Trotsky, 1970, 20쪽). 하지만 어쨌거나 트로츠키는 이미 1908~1909년에 집필되고 1922년에 러시아판 수정본이 나왔을 때 1905년 혁명을 다루면서 차르 치하의 러시아에 불균등 결합발전의 “내부 효과들”에 대한 훌륭한 설명을 내놓은 바 있었고, 이것은 『러시아 혁명사』에서 더욱 진전된 분석의 기초가 되었다. [본문으로]
  57. Callinicos, 2009, 2장. 또한 Callinicos and Rosenburg, 2008도 그 일환이며 보다 다양한 논문들을 바라는 독자들은 Dunn and Radice, 2006과 Anievas, 2010을 참고할 것.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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