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이번에는 4주차 세미나였고 5월 30일에 했다. ‘대공장 노동운동의 현실과 쟁점’을 다룬 논문과 ‘산별노조 건설의 과정과 쟁점’을 다룬 논문을 읽고 와서 토론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앞 부분에 대한 토론이 길어지면서 산별노조 문제는 토론하지 못했다. 따라서 산별노조 문제는 다음에 토론하기로 했다.
이번 세미나에서 제기된 쟁점과 토론 내용을 아래에 정리했다.(정리의 편의를 위해서 질의 응답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실제로는 많은 부분 다양한 참가자들의 주장과 토론 속에서 나온 내용들이다. 물론 정리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돼서 정리된 내용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논쟁됐던 내용에서도 양 쪽의 입장을 동등하게 정리했다기 보다 정리자의 입장으로 써있다는 점을 주의하라. 토론 때 충분히 정리되거나 답변되지 못한 점도 정리자의 의견으로 보충했다.)
* 경제주의 프레임과 물량의 덫을 넘어서 월급제,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해방 프레임’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은 상당히 타당한 것 아닌가?:
그렇다. 기본급이 낮아서 잔업과 특근에 매달리며 서로 다른 공장 노동자들 간에 더 많은 물량을 따오기 위해서 경쟁하며 장시간 노동에 빨려들어가는 체제는 분명히 문제다. 이것을 월급제로 바꿔서 잔업과 특근에 매달릴 이유를 줄이고 노동시간도 단축하자는 대안은 옳다. 그러면 노동자들의 처지는 명백히 더 나아질 것이고 노동운동에도 큰 전진일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 논문의 필자(공계진)가 말하는 ‘노동해방 프레임’에는 몇 가지 약점도 있다. ‘정치’를 협소하게 ‘통일, 반미문화제 개최’로 단순화시키고 있는 점, 생협과 연계한 소비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점, 장시간 노동을 벗어나고 노동자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 임금 양보를 암시하는 점 등이 그렇다.
사실 물량 문제는, 노조의 체제 내 조직으로서의 한계를 보여주는 이 나라 금속산업에서의 구체적 형태다. 체제 내에서 조건 개선을 추구하는 노조는 경쟁력과 경쟁의 논리를 받아들이기 쉽다. 여기서 ‘경제주의’라는 노조의 한계가 비롯된다.
이것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예컨대 해외공장의 생산을 줄여서 국내공장의 일자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가 있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결을 해친다. 하청업체에 단가를 올려주면 원청기업 경영이 어려워진다는 논리도 있다. 이것은 원하청 노동자의 단결을 해친다.
따라서 변혁정치와 조직없이도 월급제같은 특정 제도와 요구만으로 경제주의를 탈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 임금 삭감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돼야 한다는 논리는 원칙적으로 옳지만, 구체적인 현실에서는 당장 임금이 일부 줄더라도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결국 나중에 임금은 다시 올릴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물론 구체적 현실과 정서, 세력관계를 보면서 전술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원칙은 분명해야 한다. 어느 하나와 다른 하나를 교환한다는 관점은 노조와 노조 상근자들의 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동시간과 임금을 교환하고,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를 교환하고, 정규직의 양보와 비정규직의 조건 개선을 교환하고, 이런 논리들이 나온다. 단결과 투쟁을 빼놓고 보면 교환을 통해서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보게 되기 쉽다.
따라서 단결하고 투쟁해서 임금 삭감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이룬다는 원칙은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들 내에서 분열과 혼란이 벌어지기 쉽다. 노동시간 단축에 냉소적이라든지, 노동시간 단축 과정에서 줄어든 임금을 벌충하기 위해 부업을 한다든지, 비정규직에게는 이런 폐해가 더 크게 나타난다든지 등. 주5일제가 이런 식으로 도입되면서 한국의 세계 최장 수준 노동시간은 거의 그대로인 상황이다. 따라서 원칙은 분명히 하면서 투쟁 과정에서 전술적 타협을 고려하는 게 맞다고 본다.
* 이 논문에서 나타나는 현대차에서 윤여철 시스템과 노조 간부와 현장조직 활동가들이 사측과 유착하고 담합하는 각종 행태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논문에서 생생하게 드러나는 각종 부패한 행태와 사측이 노조 간부와 활동가들을 관리하고 방식은 우리가 지난 시간에 토론한 노조관료의 문제점과 연결시켜서 봐야 한다.
토니 클리프는 노조 관료가 현장에서 벗어나 협상을 중시하고 목적으로 여기게 되면서 협상 파트너인 자본가들의 논리를 받아들이고 유착하며 갈수록 보수화한다고 했다.
또 국가와 체제에 흡수 통합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따라서 단지 도덕적 타락보다는 바로 이런 한계가 나타나는 구체적 사례와 형태로 봐야 한다.
* 좌파 지도부도 노조 관료로서 똑같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하는가, 아니면 좌파 지도부는 그런 한계를 의식적으로 벗어나려고 노력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하는가?:
‘노조 관료주의’라는 용어가 ‘주의’라는 말 때문에 오해를 사는 경향이 있는 데, 이것은 무엇보다 노조 관료들의 객관적 조건과 위치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다.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정론은 피해야 한다. 엥겔스는 자본가였지만 개인으로서 그는 노동계급 혁명가였다. 따라서 우리는 세가지 단계로 봐야 한다. 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자본가와 노동자의 차이를 봐야 하고, 노동계급 내에서 평조합원과 노조 관료의 차이를 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조 관료 내에서 좌우파의 차이를 봐야 한다. 노조는 대중조직이므로 위쪽과 아래쪽, 왼쪽과 오른쪽의 압력에 따라 좌우파 노조 관료의 차이가 나타난다.
우리는 여기서 대체로 좌파 노조관료를 지지해야 한다. 좌파 노조관료는 노조의 한계 속에서도 투쟁을 최선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무비판적인 추수와 동맹은 안 된다. 좌파 노조관료도 그들의 객관적 위치가 가하는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진정한 동력은 현장조합원들의 자신감과 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파 관료 하에서 더 큰 투쟁이 벌어진다거나, 좌파 관료가 우파보다 못한 구실을 한다거나 하는 사례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도 좌파 지도부를 지지하거나 기회가 되면 그런 지도부 건설에 나설 수 있다. 그런데 그럴 경우에도 그 자리를 이용해 현장조합원들의 자신감을 높이고 그들 스스로의 행동을 건설한다는 관점이 분명해야 한다.
또 노조 관료가 된 사회주의자는 항상 자신의 활동을 사회주의 조직에 보고하고, 조직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거꾸로 노조 관료가 사회주의 조직을 통제하는 식이 되선 안 된다.
* 현장조직의 문제와 현장조직 중 하나인 국민파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현장조직은 이 나라 노동운동 속에서 노조의 지도권 장악을 두고 경쟁하면서 형성된 일종의 의견그룹, 정치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크게 국민파, 현장파, 중앙파가 있다.
국민파는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 노선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국민파’는 단지 현장에서의 투쟁만이 아니라 정치적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노동계급뿐 아니라 중간계급까지 포괄한 범국민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민중주의의 한국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국민파는 그동안 산별노조와 정치세력화라는 양날개 전략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정치’는 민중주의적이어서 ‘사회적 교섭, 합의, 타협’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현장파’는 상층의 협상보다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을 강조하지만 정치를 소홀히 하고 노동조합적 투쟁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노동자주의의 한국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국민파에 맞서서 좌파 지도부 건설이라는 범좌파 전략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좌파 지도부도 노조 관료로서 한계를 보이고, 이들이 기권한 정치의 공백을 결국 민중주의 정치가 메우는 일이 반복돼 왔다. 요즘은 좌파 지도부 세우기를 넘어서 좌파노총 건설 주장도 나오기 시작했다.
* 공동교섭을 통해서 원하청 연대가 돼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한 것 아닌가?:
그렇다. 사실 금속 산별노조를 만들고 나서도 이것이 잘 안 되고 있다. 자동차부품업체인 하청기업들의 노조들만 힘을 합쳐서 금속 중앙교섭과 파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것이 다 마무리되고 나서야 원청기업의 자동차 4사 노조가 다시 본격적인 교섭과 파업에 나서는 패턴이다. 심지어 자동차 4사 노조 간에도 연대가 잘 안 된다. 이 때문에 이럴거면 왜 금속 산별노조를 만들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 지난 한미FTA 반대 투쟁 때 노동운동 진영의 논리는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국익 논리로 접근한 것이 한계였다. 한국과 미국의 경쟁력의 차이가 있으므로 이 협정이 국익이 도움이 안 되고, 특히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의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큰 피해를 준다는 논리로 주되게 접근했다.
그러다보니 주로 농업과 서비스업의 자영업자들이 당할 고통이 강조됐고, FTA로 수혜를 입을 산업에 속해있느냐 피해를 입을 산업에 속해 있느냐로 운동이 분열될 여지가 생겼다.
자동차 산업은 대표적으로 수혜를 입을 산업으로 부각되다보니 관심이 높아지기 힘들었고, 그럼에도 농민들을 도와줘야 한다거나, 수입차가 대거 들어오면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점이 강조되기도 했다.
그보다는 자동차 자본가들이 FTA로 수익이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낳는 구조조정과 비정규직화, 민영화가 어떻게 노동자들 모두에게 고통인지가 더 강조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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